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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詩 :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중에서
귀뚜라미
詩 : 나희덕 작곡 : 안치환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소리에 묻혀
우~우~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우~우~
귀뚜라미 이어듣기
귀뚜라미 (공연실황) - 안치환과 자유
귀뚜라미 - 별라군
귀뚜라미 (스튜디오 녹음) - 안치환
가을을 선언하는 우정어린 귀뚜라미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오.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콩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나희덕 시인의 살가운 언어를 가사에 담은 가수 안치환은 화려한 도시의 구석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귀뚜라미’의 조용한 외침을 노래한다.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고, 계단을 타고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소리,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오.” 아직 뜨거운 늦여름, 매미 소리가 화려한 회색도시의 삭막한 시멘트 공간 한 구석에서 귀뚜라미의 ‘우우~ 우우~ 귀뚜루루루~ 귀뚜루루루~’ ‘타전 소리’는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갈 수 있을까.” 나희덕 시인은 묻고, 집회 현장에서 더 알려진 안치환은 단순하면서 쓸쓸한 음률로 가을을 맞으려 한다.
열띤 논쟁으로 기진맥진한 대기업 연수원 회의실, 기계가 쏟아내는 찬바람을 피하려 시스템 창호를 활짝 열면 창밖 키 큰 조경수는 죽을힘을 다해 울어제치는 매미소리를 경쟁적으로 토해낸다. 회의실의 긴장은 풀어지지만 귀는 이내 성가셔지고 자료를 들여다보기 불편하게 회의실은 온통 시끄러워진다. 눈치챈 실무자는 얼른 창호를 닫고 에어컨을 차게 가동시켜야 한다. 사생결딴 울어대던 매미가 맥 빠질 무렵이면 어느덧 가을이다. 철지난 바닷가처럼, 관객이 물러간 관중석처럼, 사방에서 흩어지이던 “축하한다!” 소리가 사라진 졸업식장처럼, 가을이 쓸쓸하게 다가올 때 귀뚜라미는 운다. 남은 일이 기다리는 연구실을 향해 밤이 길어진 도시를 천천히 움직일 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귀뚜라미는 지금부터 가을이라고 조용하지만 다부지게 선언한다.
마지막 지하철을 빠져나와 지친 발을 끌고 천천히 집을 향할 때, 아파트 현관 앞, 콘크리트 벽체 옆 엉성한 잔디 속 어느 구석은 귀뚜라미가 숨어 우는 곳이다. 작년도 재작년도 올해도 가을이면 그 자리를 고수한다. 귀뚜라미도 제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나. 독촉되는 원고가 풀리지 않아 텔레비전 소리 새들어오는 책상머리에서 공연히 머리 쥐어뜯을 때 밖으로 나가 어둠이 내려앉은 놀이터를 서성이면, 근처 나무벤치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웃들 정담 사이로 살금살금 귀뚜라미가 운다. 가을이라는 거다. 바쁘기만 했지 뭐 이렇다 하게 해 놓은 일 없는 내게, 뭔가 채근하는 것 같다.
차창 밖 신록을 아무리 가리켜도 시큰둥하니 엠피쓰리만 듣던 아이들은 가을을 어떻게 느낄까. 예전에, “귀뚜라미 귀뚤귀뚤 고요한 밤에, 귀뚜라미 귀뚤귀뚤 글을 읽는다. 가을이라 즐거운 밤 달이 밝아서, 귀뚜라미 귀뚤귀뚤 글을 읽는다.”하고 불렀던 동요 ‘가을밤’이 요즘도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를 지키고 있을까. “귀뚜라미 귀뚤귀뚤 서늘한 밤에, 귀뚜라미 귀뚤귀뚤 노래를 한다. 가을이라 즐거운 밤 달이 밝아서, 귀뚜라미 귀뚤귀뚤 노래를 한다.”고 즐거워했던 아이가 어느덧 어른이 되어 귀뚜라미 소리에서 가을을 타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가을은 중간고사의 계절일 뿐이다. 단풍이 설악산을 내려오건 말건, 엄마 감독 하에 학습장 줄긋기 바쁘다.
“특허 제 10-2004-16180번!” “저희 귀뚜라미농장에서는 토종 왕귀뚜라미를 애완이나 학습용으로 판매합니다. 환경오염으로 주위에서 곤충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현실에서 울음소리가 조용하고 은은한 왕귀뚜라미는 공부에 지친 댁의 아이의 정서교육에 한몫을 할 것입니다.” 인터넷의 한 사이트는 아열대산보다 수명이 긴 토종 왕귀뚜라미의 사육과 인공 산란에 대한 특허를 필한 후, 광고에 열중한다. 애완용 ‘왕귀뚜라미’는 등록된 상표라면서, 상업적인 사용을 금한다고 못 박는 그 사이트는 사육방법도 친절하게 안내하는데, 발명 명칭이 ‘귀뚜라미’다. 야외에서 귀뚜라미를 채집해 학교나 집에서 사육하면 법에 저촉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어처구니없다. 인간보다 먼저 진화한 귀뚜라미와 그 생활습성에 특허를 걸고 돈을 벌어도 좋은 것일까.
흙속에서 동면한 알을 뚫고 새싹이 풍부한 5월에 세상에 나온 어린 귀뚜라미는 숫한 천적을 용케 피한 9월이 돼야 짝을 찾을 정도로 성숙한다. 여린 풀과 풀섶의 작은 벌레도 먹지만 사람이 버린 음식찌꺼기도 마다하지 않으며, 다 자란 수컷은 오른쪽 앞날개 안쪽과 왼쪽 앞날개 바깥쪽을 마치 바이올린 켜듯 비벼 꼬리 사이에 산란관을 늘어뜨린 암컷을 집요하게 유인한다. 한밤중 네 시간 여 울어대는 동안 4만 번이나 반복한다고 하니, 여간 끈질긴 세레나데가 아닐 수 없다. 한 가수는 10월의 마지막 밤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노래하지만, 귀뚜라미에게 10월의 마지막 밤은 없다. 중순에 낳은 알에 제 생명을 넘긴다.
눈이 녹으며 오던 봄이 여성의 화사한 노출로 시작되는 요즘, 도시의 가을은 어떻게 시작될까. 인터넷은 시민들의 핸드폰이 가을을 알린다고 광고한다. 아침에 연실 시계 들여다보고 저녁에 술콰한 지하철 승객에게 귀뚜라미 컬러링이 가을 정취를 안내해준다는 것이다. 업자가 메뉴로 제공하는 컬러링은 ‘귀뚤 귀뚜리’하고 우는 왕귀뚜라미일까, ‘후이리리리’하고 우는 풀종다리일까. 어쩌면 ‘귀또 리리’하고 우는 보통 귀뚜라미일지 모른다. 귀뚜라미 종류가 세계적으로 3천종이라는데, 광고로 들리는 개구리처럼 설마 미국 귀뚜라미 소리는 아니겠지. 아직 다른 이의 핸드폰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본 적 없지만, 귀청을 찢는 최신 유행가나 숨넘어가듯 “자기 전화받어!”하는 컬러링보다 훨씬 낮겠지.
가을을 더욱 쓸쓸하게 하는 귀뚜라미를 옛사람들은 영리하게 보았다. 모르는 게 없이 일마다 한 마디 거드는 사람에 비유하곤 했다. 가을철 긴긴 밤을 함께 지낼 연인이나 친구가 없어 어느 구석에서 고독을 씹을 때, 가까운 곳에서 사분사분 말벗 돼주는 귀뚜라미에게 조상은 우정의 감정을 느꼈나보다. 깊어가는 밤, 귀뚜라미라도 있어 고맙다. 막힌 원고를 혼자 해결해야 할 때는 물론, 회색도시에서 고독한 이웃들에게 거꾸로 타는 보일러나 특허가 아닌 우정이라는 지혜를 나누어주지 않을까. 귀뚜라미마저 줄어드는 요즘, 내일의 가을이 벌써부터 적적하다.
귀뚜라미 소리
주경 스님(조계종 템플스테이 사무국장)
산사의 가을은 아랫마을보다 조금 빠른 듯 하다.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한기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식구들도 다들 긴팔 옷을 꺼내 입고, 저녁에는 한차례씩 보일러를 돌리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벽녘에 찾아오는 차가운 기운에 덜덜 떨며 잠을 깨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며칠 전 내방에 커다란 귀뚜라미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다. 검게 빛나는 몸에 통통하게 살이 올라 아주 건강하고 예쁘게 보였다. 아마 보일러의 따뜻한 온기를 찾아 들어온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는 귀뚜라미를 잡아서 키우기도 했었다. 때로 형제들이랑 날 수 있는지 본다고 던져보기도 하고 다리를 잡고 흔드는 등 못된 장난도 많이 했었는데, 어떻게 들어왔는지 몰라도 귀한 손님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벌레들이 방에 들어오면 필시 며칠 못가서 죽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잡아 창밖으로 놓아주었다. 따뜻함을 찾아 들어왔겠지만 자연에서 자기 생명대로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었을 때 머리맡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귀뚤 귀뚤~ 귀뚜르르”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일어나 귀뚜라미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귀뚜라미를 찾는다고 뒤적이면 잠시 잠잠해졌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소리를 내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없어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형제들과 함께 지내던 속가의 어린시절에도 귀뚜라미를 찾는다고 잠을 설쳤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귀뚜라미를 찾으려고 몇날 며칠을 애썼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잠이 들곤 했었다. 바로 귓가에서 소리가 들려오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던 귀뚜라미는 마치 어떤 비밀을 품은 신비한 존재로 생각되기도 했다.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뚜라미를 좋아하여 키웠다고 하는데, 침소의 머리맡에 두고 그 소리를 즐겼다고 한다. 귀뚜라미는 울음소리가 특이하여 예로부터 문학작품에도 많이 등장하곤 한다. 그 소리는 외로운 사람의 위안이 되기도 하고,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시름을 나타내기도 하며,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되었다.
귀뚜라미는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친숙한 곤충중의 하나이다. 근래 나희덕선생의 시에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이고 부른 귀뚜라미라는 노래가 있다.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소리는 아직은 노래가 아니요.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소 음음~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으로 실려 갈 수 있을까…”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다가오는 가을을 더욱 가슴깊이 느끼게 해준다. 이 가을 내 안에서 또는 누군가 가까이에서 귀뚜라미처럼 애절한 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귀기우려 보아야겠다. |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김천석 작성시간 08.09.09 귀뚜라미 박사??? 귀뚜라미들이 노니는 계절이 왔네요. 노래....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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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텅빔 작성시간 08.09.09 며칠전 귀뚜라미 한마리가 부엌을 서성거리다 결국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녀석...마치 제 집인양 이 구석 저 구석을 활보하지만 난 저 놈을 어떻게 내보낼까..궁리하다 종이 한 장 꺼내들고 내쳐보지만 퍼어~얼쩍 뛰어 다시... 더 구석을 찾아 이젠 몸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고는 간간이 노래를 불러댄다. 아이고~저녀석을 어쩐다~ 결국 엄마의 손에 의해 밖으로 내쫓겼다. 2~3일 함께 했던 것이 정(?)든 것인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그녀석이 아닌지 잠깐 궁금해지기도 한다. ...^*^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이 노래 차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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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블루로즈 작성시간 08.09.18 귀뚜라미와의 동거라~~~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