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제주 올레’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제주를 이해해 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놀멍 쉬멍 걸으멍” — 걷고 쉬고 또 걸으며 올레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했고, 그만큼 제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가는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겨우 7개 코스를 걸은 초보 올레꾼이지만, 올레를 향한 애정만큼은 누구보다 커지고 있다. ‘올레’는 제주어로 집 대문에서 마을길로 이어지는 좁은 길을 뜻한다. 지금의 제주 올레는 제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총 27개 코스, 437km에 이르는 긴 여정이 되었고, 길 위의 화살표와 리본, 간세 등의 표식을 따라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를 알아가는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 되었다
특히 ‘간세’ 표식은 걸으면서 발견할 때 마다 미소를 짓게 하는 상징이다.
제주어로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간세다리’에서 온 말로, 마음을 비우고 간세처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으며 마음의 치유를 얻고 새로운 희망을 채워 넣는 것이 올레길의 의미라 할 수있다
올레 12코스의 풍경과 이야기들
12코스는 제주의 바다와 오름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다.
걷다 만난 ‘절부암’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난당한 남편을 기다리다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서린 곳이다. 그림처럼도 보이는 기하학적 글씨가 더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신혼부부였다기에 그 사연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고씨부인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다른 제주 어머니들처럼 강인하게 버티며 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내 마음속의 작은 상상이 스쳐 갔다.
차귀도
옛날, 제주에서 걸출한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한 진시황이 풍수사 호종단을 제주로 보냈다고 한다. 그는 제주의 수맥을 끊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를 가만두지 않은 한라산 산신이 매로 변해 풍파를 일으켰고, 결국 호종단은 차귀도 앞바다에서 최후를 맞는다. 호종단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았다고 하여 ‘차귀도(遮歸島)’라 불리게 되었다.
차귀도는 와도, 지시리섬, 본섬 세 섬과 작은 부속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저 고래 모양이라 ‘고래섬’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알고 난 후 바라본 차귀도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설문대 할망의 막내아들, ‘장군바위’
오백 장군의 어머니인 설문대 할망은 흉년이 든 어느 날, 아들들을 먹일 죽을 끓이다 발을 헛디뎌 커다란 솥에 빠져 죽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들은 배가 고파 허겁지겁 죽을 먹었으나, 막내아들만은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의식하며 먹지 않았다. 그러다 솥 안에서 커다란 뼈를 발견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자, 그는 이곳으로 날아와 장군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당산봉을 걸으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장군바위를 직접 보는 즐거움은 특별했다.
이번 12코스 탐방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제주라는 땅에 스며 있는 이야기와 숨결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제주의 역사와 설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만나게 해주었다.
초보 올레꾼이지만, 앞으로도 나머지 코스들을 천천히, 간세처럼 꼬닥꼬닥 걸어가며 제주를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지기 김천석 작성시간 25.11.25 수학 선생님 다웁게
논리 정연하고 깔끔 삼빡 하게
정리 하셨어요 ㅎㅎㅎ
참 이쁘고 정겨운 산책길이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
작성자립싱커 작성시간 25.11.26 간단 명료
핵심적인 스토리텔링~~
본인의 인생 스토리텔링도 그러할 것 같군요.
수고 많으셨어요. -
작성자이원심 작성시간 25.11.27 그날 날씨마냥 살랑거리는 통통 튀는글 조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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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허윤선 작성시간 25.12.02 바위에 새겨진 "절부암", 애달픈 사연인데 글씨체는 굉장히 힘이 있네요~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게 잘 정리된 후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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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정열 작성시간 25.12.02 늦었지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제주가 고향인데도 아직까지 두 곳의 올레코스를 돌아봤는데, 일곱 곳을 돌았다 하니 대단하십니다^^
분발해야겠다고 느껴집니다.
그날 탐방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잘 정리해주신 덕분으로 수업에 참여한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