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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지도사 17기

문화탐방 17기 (심화) 15주차-B조 시연 제주 해녀에 대하여

작성자이현숙|작성시간26.06.22|조회수38 목록 댓글 2

제주해녀 이야기

1. 노수민 _해녀의 역사와 기원
바다속에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널리 볼 수 있지만,
생계를 위해 특별한 장비 없이 바다 속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음.

■ 해녀의 역사
-해녀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직업 중의 하나
인류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한 원시산업시대부터 시작됨
* 우리나라 옛 문헌의 여러 기록
- 5세기 경 탐라시대에도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 남성 중심
- 삼국사기 (503년경) 제주에서 채취한 진주로 추정되는 내용이 있는데, 진주 채취는 곧 단시간 잠수를 통해 해산물을 채취했을 것이라는 의미로 추정.
- 고려사 1079년 (문종33) 에도 진주 채취와 관련한 기록이 있음
- 고려 숙종 때인 1105년에는 ‘해녀들의 나체 조업을 금한다’는 기록있음
- 1679년 정의현감이 기록한 <남천록>에는 “포작인의 수가 경신년(1620)이후 거의 사라졌다”고 언급하며 전복 채취를 더 이상 남성들이 하지 않고 여성들이 대체했음을 알 수 있음.
- 1694년 제주목사 이익태의 <지영록>에서는 해녀들의 고충이 기록
-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은 “섬의 풍속이 남자는 전복을 따지 않으므로 다만 잠녀에게 맡긴다”라고 기록하기도 했음.
- 조선 인조 때는 제주목사가 ‘남녀가 어울려 바다에서 조업하는 것을 금한다’는 내용도 있음
이 기록을 보면 그 시절에는 해녀뿐만 아니라 해남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해남은 포작인(鮑作人), 포작간(鮑作干) 등으로 불림)

■ 출륙금지령
- 고려 때부터 전복과 미역을 왕실에 공물로 바침
공물로 바쳐야 하는 전복의 할당량이 꾸준히 늘어나자 뭍으로 도망가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에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을 뭍으로 도주하지 못하도록 「출륙금지령」을 내렸는데, 1629년부터 이후 200년간 계속되었음
포작인들의 어려움은 해결하지 못하고 강제로 제주도에 발을 묶어버리는 조치만 취한 격
이에 포작인들의 이탈이 심해졌고, 결국 해녀가 모든 작업을 떠안는 결과를 낳음. 제주도에서는 어선 건조마저 금지. 이 모두가 공물을 제대로 받기 위함이었음

- 출륙금지령은 1850년 무렵 풀렸으며, 이때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뭍으로 상경할 수 있었음. 해녀들도 부산, 울산 등으로 돈벌이를 위해 떠나기도 하였음.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다롄, 칭다오까지 진출

■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 공납 제도가 폐지되며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로 수입을 얻을수 있게 되면서 이때부터 제주 해녀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기 시작하며 제주에 여성 가장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함.
- 1960년대에 해녀 수가 가장 많았고 당시 수입도 많았음.
- 1970년대 들어 감귤산업과 관광산업이 발전하며 해녀 수가 감소하기 시작함. 젊은 세대가 더욱 안정적이고 안전한 직업을 선호하기 시작하며 계승에 문제가 생겼고, 해녀 수가 급감하기 시작함
- 1990년대 들어 해녀 노령화가 심화
- 해녀가 단순 직업이 아닌 공동체 문화 생태 지식 여성문화로 재조명 되기 시작함.
* 2015년 제주 해녀어업이 처음으로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
* 2016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 2017년 5월 국가무형문화유산 등재


2. 마혜옥_해녀의 도구와 복장
■ 과거 해녀의 복장
- 과거 해녀들은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낫으로 전복과 미역 등 해산물을 채취했음
- 기록을 보면 고려 숙종 10년인 1105년 탐라군의 구당사(句當使)로 부임한 윤응균이 '해녀들의 나체(裸體) 조업을 금한다'는 금지령
- 조선 인조(1623∼1649) 때는 제주목사가 남녀가 어울려 바다에서 조업하는 것을 금지
- 1629년 이건이 유배지 제주에서 쓴 '제주풍토기'에도 '잠녀(潛女)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낫을 들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미역을 따고 나온다. 남녀가 뒤섞여 일하고 있으나 이를 부끄러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기록
- 조선 숙종 1702년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화공 김남길에게 그리도록 한 '탐라순력도'에는 지금의 제주시 용두암 인근에서 흰색 수중작업복을 입고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

* 기록을 미뤄짐작해 보면 조선 초·중기까지 자유롭게 물질을 하던 해녀들은 육지에서 내려온 관리들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점차 '물옷'이라 일컬어지는 재래작업복을 입기 시작했고, 각종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임

■ 해녀의 복장 변화
- 하의에 해당하는 '물소중이'와 상의에 해당하는 '물적삼', 머리카락의 흐트러짐을 막기 위해 쓰는 '물수건'으로 이뤄져 있음
- 물소중이는 옆트임이 있어 체형의 크기 또는 체중 변화에 구애받음 없이 품을 조절할 수 있고, 입고 벗기 편할 뿐만 아니라 활동하기 좋게 디자인 되어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음
- 조선 시대에는 흰 무명으로 만들어 입다가 일제 강점기에 광목이 나오면서 검정 물을 들여 입기도 했음

■ 물질도구
- 테왁은 부력을 이용한 작업도구로, 해녀들이 물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그 위에 가슴을 얹고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 테왁에는 채취한 수산물을 넣어둘 수 있는 망사리가 부착돼 하나의 세트처럼 이뤄져있음
- 과거 잘 여문 박에 구멍을 뚫고 씨를 빼낸 다음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구멍을 막아 테왁을 만들었으나, 이후 플라스틱 또는 스티로폼 등 더욱 가볍고 편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 사용함
- 빗창은 해녀들이 물속 바위에 붙어있는 전복을 떼어내는 데 쓰고, 종개호미는 미역이나 톳·모자반 등 해조류를 채취할 때, 호맹이는 호미처럼 생겼지만, 전체적으로 길쭉하고 가늘게 만들어 암반 틈의 소라·문어·성게 등을 잡을 때 사용함
- 이런 다양한 모양의 도구들은 밭일할 때 사용하던 기존 호미와 낫을 변형해 만든 것으로 대장간에 따로 주문해 만들었음
- 족쉐눈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끼는 작은 알이 둘인 물안경이고, 쉐눈은 알이 하나로 된 큰 물안경. 유리를 주재료로 하고 주위를 둘러싼 테는 놋쇠나 구리로 만듬
- 재래작업복인 물옷은 197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온 고무옷이라고 하는 잠수복으로 대체됨
고무옷은 부력이 있어 연철이라는 납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물에 들어갈 수 있으여 고무옷이 등장하면서 해녀의 작업환경이 크게 변함
- 이전 30분에서 1시간 남짓하던 작업시간이 고무옷을 착용하면서 3∼5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고,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작업할 수 있게 됨
- 바닷속 20m 가까이 물질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잠수병과 같은 부작용이 생기고 장시간 해산물 채취로 인한 바다 밭의 황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나 해녀 스스로 자정작용과 수입 증가, 편리성 등 이유로 고무옷은 현재 모든 해녀에게 널리 보급됨
- 2012년부터는 선박과의 충돌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정색 잠수복 대신 주황색 잠수복이 보급되고 있음


3. 한민영_해녀의 일터와 계급
■ 해녀들의 일터
- 불턱
바다로 들어가기전, 물질을 하고 나와서 반드시 거치는 아주 중요한 일터. 돌로 둥그렇게 벽을 쌓아 안에서 불을 피우던 해녀들의 대기실이자 사랑방. 해녀들은 이곳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바다에 들어가기 전 그날의 날씨나 해산물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도하고 바닷물에 언 몸을 녹이기도 하고, 허기를 달래기도 함
- 제주어로 ‘바당’
바다가 해녀들의 진정한 일터
지금은 예전과 달리 이상기후, 환경오염, 근처에 있는 발전소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 때문에 톳, 미역, 몸, 감태 같은 해초들이 많이 사라지고 해산물도 적어져서 해녀들의 일터가 위협받고 있다고 함

■ 해녀들의 계급
- 얼마나 깊은 바다에서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해산물을 채취 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정해지는 절대평가 계급.
- 가장 얕은 바다(3~5m)에서 작업하는 '하군',
- 중간 깊이(5~8m)의 '중군',
- 가장 깊고 험한 바다(10m 이상)까지 내려가는 베테랑 최고 능력자를 '상군'

■ 화순리 해녀할망이야기
- 실제 만난 46년생, 올해 여든한 살이신 이 할머니의 친정어머니도 해녀셨는데 평생 '하군'이셨고, 할머니는 '중군'이시래요. 어머니는 딸이 본인은 깊어서 가지 못하는 바다에서 귀한 해산물을 따 올 때마다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 하셨대요.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어촌계에는 총 23분의 해녀가 계시는데, 그중 '상군'은 딱 세 분뿐이래요. 가장 나이가 많으신 분은 무려 94세이고, 가장 젊은 막내 해녀는 75세랍니다. 그리고 현재 수습기간중인 40대 중반의 두 분이 계시다고 해요
이 해녀 할머니의 어머니께서는 ‘중군’인 딸을 자랑스러워 하셨지만, 이 할머니의 두 딸에게는 해녀를 시키지 않으셨대요.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힘든 일이고, 연세도 많으신데 할머니들이 왜 아직도 거친 바다로 나가실까요? 할머니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바당에 나가면 온갖 걱정이 싹 사라지고 가슴이 탁 트여. 그리고 거기엔 평생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있잖아.'


4. 홍경실_해녀의 신앙
■ 해녀들을 지탱해 준 심리적 버팀목
- 해녀 신앙은 제주의 독특한 척박한 환경, 역사적 고난, 그리고 공동체 의식이 결합하여 탄생한 제주 무속 신앙과 해양 문화의 정수
- 해녀 신앙의 핵심 신격(神格)
해녀들이 의지하고 기도를 올리는 대상은 바다를 관장하고 해녀들의 안전과 풍요를 책임지는 신

*영등신 (영등할망): 제주 해녀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제주도를 찾아와 바다 전역에 소라, 전복, 미역 등 해산물의 씨앗을 뿌려주고 음력 2월 보름에 떠난다고 믿어지는 '바람과 풍요의 여신'

* 용왕 (요왕님): 바다 밑 궁궐에 살며 바다의 모든 생명과 날씨를 관장하는 남신. 해녀들은 물질을 시작하기 전이나 물질 도중 위험에 처했을 때 늘 "요왕님, 살려줍서"라며 용왕에게 목숨을 의탁했다고 전해짐

* 선왕신: 배를 지켜주는 선신(船神)으로, 배를 타고 멀리 나가 물질을 하는 '출가 해녀'들에게 특히 중요한 신앙 대상이었음

■ 대표적인 신앙 의례와 의식
해녀들은 개인적으로, 또 공동체적으로 다양한 의례를 통해 신에게 무사 안녕과 풍작을 기원
- 영등굿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음력 2월, 영등신이 제주에 머무는 기간에 마을 공동체(어촌계와 잠수회)가 중심이 되어 치르는 가장 큰 의례로 심방(제주 무당)을 청해 영등신을 맞이하고, 바다 씨앗을 번성하게 해달라는 '씨드림'과 '배방선(액을 담은 짚배를 바다로 띄워 보내는 의식)' 등을 진행

참고: 제주시 건입동의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은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 잠수굿 (해녀굿)
마을 해녀들이 기금을 모아 수시로 치르는 굿으로 바다에서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안과태평), 전복과 소라가 많이 잡히기를(수망형통) 기원. 굿판에서는 먼저 간 동료 해녀들의 넋을 기리는 의식도 함께 행해짐

- 고삼과 개인 치성
큰 규모의 굿 외에도, 해녀들은 일상적으로 바다에 들어 가기 전 바닷가 바위나 선창에서 '고삼(고레)'이라 불리는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으며, 먹을 것을 조금 떼어 바다에 던지며 요왕님께 예를 갖추는 '고레치기'는 해녀들의 몸에 밴 일상적 신앙이었음

■ 해녀 신앙이 가진 문화적·심리적 의미
- 생존을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
현대 과학으로도 예측하기 힘든 바다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해녀들은 신앙을 통해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다스리고,신이 자신을 보호해 준다는 믿음은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의 원천

■ 공동체 결속과 평등 의식
- 해녀 신앙의 의례는 개인의 안녕만을 구하지 않고, 마을 잠수회 전체가 참여하여 비용을 분담하고 굿판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바다라는 하나의 운명'을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이 극대화.
굿판에서는 상군, 중군, 하군의 구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복을 빌고, 굿이 끝난 뒤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노고를 위로했음

■ 자연에 대한 경외와 상생
- 해녀들은 바다를 인간이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 신이 다스리고 잠시 빌려 쓰는 공간으로 여기며, 신앙을 바탕으로 '욕심을 내지 않는 물질(물턱을 넘지 않는 것)'을 계율처럼 지켰으며, 이는 제주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수백 년간 지속 가능한 물질을 이어온 원동력이 되었음

* 제주 해녀의 신앙은 단순히 미신이나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그것은 자연 앞에 겸손했던 인간의 태도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어난 가장 간절한 생의 의지였고, 오늘날까지도 제주의 크고 작은 포구와 해녀당(잠수당)에는 바다로 향하는 어머니들의 간절한 숨비소리와 기도가 깃들어 있음


5. 이현숙_해녀의 숨비소리
■ 숨비소리
- 어떠한 기계 장치없이 본인의 숨만으로 바닷속에 잠수하여 바당속 해삼, 전복, 성게, 소라와 같은 해산물 채취해오는 직업을 해녀라고 하며, 그 해녀들이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한후 수면위로 올라와 참았던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과정에 나오는 아름답지만 슬픔을 담고 있는 소리

■ 해녀들의 놀라운 폐할량
- 일반인들은 30초에서 1분 30분초가량 숨을 참을수 있으며, 평균적으로 1분정도 숨을 참을수 있다고 함
- 해녀들은 보통 2분정도 숨을 참으며, 상군의 경우 3분까지도 참고 깊은 바닷속에 잠수가 가능
이것은 오랜훈련과 반복되는 잠수로 인해 폐활량이 증가하고 호흡충동을 참을수 있게된것

■ 호흡충동과 잠수반사
- 호흡충동은 산소가 부족한것이 아니라 몸속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자하는 충동
- 잠수반사는 얼굴에 물이 닿거나 잠겼을때 신체에서 산소부족 경우를 대비하여 일어나는 포유류만의 반사작용
* 서맥: 얼굴에 수분이 닿으면 수분감지 수용쳬가 반응하여 뇌로 산수부족 경고를 보내고 뇌가 자율신경계를 통해 심장의 박동수를 10%~50%까지 줄여 산소소비를 줄이는 반사작용
* 말초혈관수축: 손끝, 발끝같은 말초부위로 전달할 혈액량을 줄임으로써 뇌, 폐, 심장으로 가는 혈액을 증가시켜 만약의 사태에 대비에 중요 장기로의 혈액, 산소를 집중적으로 보냄.
* 비장수축: 비장내에서 비상용으로 비축되어있던 혈액을 수축을 통해 내보내어 심장, 뇌, 폐로의 혈액, 산소공급 효율을 극대화시킴

■ 해녀의 호흡
- 이완호흡 -> 최종호흡 -> 숨머무르기(잠수) -> 회복호흡. 단계로 호흡이 이루어지며, 회복호흡 단계에서 빠르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산소를 빠르고 충분히 보충하는 과정에서 숨비소리가 나게 됨

■ 사라지는 숨비소리
- 경제적인 현실과 고령화로 인해 해녀의 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바다에서 들리던 이 숨비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모두가 해녀문화 계승에 관심을 가지고, 이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 소리를 오랜동안 지속적으로 들을수 있기를 바람


6.김영희_항일운동


■ 제주해녀 항일운동
- 1931년부터 1932년 1월까지 3개월 동안 연인원 1만 713명의 해녀들이 238회에 걸쳐 궐기한 해녀항일투쟁.
-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과 더불어 제주도 3대 항일운동 중 하나.
- 일제강점기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주도의 항일운동.

* 역사적 배경
- 조선시대부터 제주의 해녀들은 관리들의 수탈과 노동력 착취로 고통 받아왔으며. 이에 1920년 4월 16일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을 설립하였으나 1920년 중반부터 일제는 조합장을 일본인 제주도사가 겸임하는 어용조합으로 변질시키고 횡포도 날로 심해짐.
- 1930년 성산포에서 일본인 관리들에 의한 우뭇가사리 부정사건이 발생함. 또한 하도리에서도 턱없이 낮은 금액으로 수산물 가격을 책정하자 1931년 6월 해녀들은 공동투쟁을 모색하게 됨.
- 1932년 1월 7일 세화리 장날을 이용하여 본격적으로 시위를 전개하기 시작하였으나 일제는 1월 23일 부터 사건의 조사와 함께 제주도내의 청년운동가들을 배후세력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을 검거하기 시작함. 또한 해녀대표 주동자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이 수감되고 이 외에 구속된 해녀들이 100여명에 이르러 1월 27일 시위를 끝으로 해녀항일운동은 일제에 의해 진압됨.

■ 해녀 항일운동의 의미
- 여성들의 자주권 회복을 위한 최초의 대규모 여성운동이자 생존권 투쟁을 위한 항일운동
- 해녀대표들은 청년지도자들이 운영한 야학소에서 한글, 한문, 산수 등을 배우며 불의에 맞서고 민족의식에 눈뜸
- 우도출신 청년지도자 강관순은 옥중에서 '해녀의 노래'를 작사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제주도 전역에 항일운동을 확산시킴


7.양재생_미래와 보존

■ 제주의 환경
- 제주는 예로부터 바람이 많고, 돌이 많아서 농사짓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고,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음
그런 환경에서 제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었음

* 첫번째 해녀 공동체
- 해녀는 산소통 같은 장비 없이 바다에 들어가 전복, 소라, 해조류 등을 채취하는 제주의 여성들
채취 장소를 구별하여 작업하고, 금어기를 정해 자원고갈을 예방하고, 공동 작업을 통해 수익을 배분하고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었으며, 이처럼 해녀문화는 경쟁보다는 협력과 배려이 정신이 담겨 있음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되어세계적으로도 공동체 정신의 모범 사례로 인정받고 있음

■ 제주 해녀들의 현실
- 해녀의 고령화
예전에 수 많은 젊은 해녀가 있었지남 현재는 대부분 6~80대
- 기후변화로 인한 바다자원 고갈
수온 상승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변화 (제주 앞바다 사막화 현상)과 해조류 감소로 인한 전복 등이 먹이 부족, 그러면서 해녀 수익 감소
- 젊은 세대의 관심과 신규유입 저조로 세대교체 실패

■ 해녀문화 보존노력
- 지난해 국회에서는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이 전국해녀협회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실시하여 전국해녀협회 창단식을 준비하고 있으며, 제주해녀협회와 제주도는 해녀학교를 운영하여 새로운 해녀를 양성하고 있고 학교와 박물관에서 해녀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음

■ 해녀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해녀 문화에 관심 갖기
- 바다쓰레기 줄이기
- 플라스틱 사용줄이기 등

* 문화유산은 누군가 대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합니다.
* 해녀는 제주인의 강인함과 협동정신,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여러분도 제주 해녀의 미래를 함께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 문화탐방 심화반 한학기 수업을 마치며..
기초반 수업을 듣지못한채 바로 심화반 수업을 듣게되어 여러가지 부족하고 서툰점이 많아 아쉬운 시연이 된것에 속상한 마음입니다.
각 조원분들이 준비하신 훌륭한 내용들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것도 죄송했습니다.

단기간 제주살이로 내려와있는 동안 제주도에 대해 다양하게 공부할 기회가 있었던것에 대해서는 너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주보았으나 그 이름의 유래나 뜻을 알지못하였던것들도, 제주의 아픔을 바로 알게 된것도 뜻깊었으며 함께 했던 좋은 분들과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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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카레 | 작성시간 26.06.22 new 바쁜 일정 속에서 마지막까지 후기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머리에서 해녀시연 때가 스윽~ 지나가네요!
    댓글 이모티콘
  • 작성자지기 김천석 | 작성시간 26.06.22 new 일정을 내가 흔들어버려
    되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준비한대로
    계획대로 했다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지송ㅋ)

    개인별로는 모두 훌륭했어요.
    준비한 내용들도 좋았고
    해설 시연도 바로 현장에 가도 좋을만큼
    훌륭했어요~
    고향도 제주가 아닌 분들이 제주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크게 감사드립니다.
    멋지게 준비하신 후기~
    잘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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