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볼프강 주교 (10.31)◀
1. 가톨릭 굿 뉴-스 성인록 ▷
성인명: 볼프강(Wolfgang)
축일: 10월 31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활동연도: 930-994년
같은이름: 볼판고, 볼판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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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설명 :
• 독일 남서부 풀링겐(Pfullingen)의 백작인 슈바벤(Schwaben) 가문의 후손인 성 볼프강은 어린 시절 가정에서 개인교수에게 교육을 받고 이어서 라이헤나우(Reichenau) 대수도원과 뷔르츠부르크(Wurzburg)에서 수학하였고,
☞ 그의 친구인 하인리히와 더불어 뷔르츠부르크와 트리어(Trier)의 대성당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친구인 하인리히가 956년에 트리어 교구의 대주교가 되자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구 개혁과 교회 쇄신에 앞장서는 하인리히 대주교의 성실한 협력자가 되었다.
하인리히 대주교는 964년 선종하였다.
· 그 후 성 볼프강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수도생활을 실천하고자 아인지델른(Einsiedeln)의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다.
그의 뛰어난 학식과 영성을 알아본 수도승들이 그의 가르침을 청하면서 성인의 명성은 곧 나라 전체로 퍼져나갔다.
968년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의 성 울다리쿠스(Uldaricus, 7월 4일)에게 사제품을 받고,
오늘날의 헝가리 지역인 판노니아(Pannonia) 지역까지 침략해 정착한 마자르족(중앙아시아 출신 유목민족)에 대한 선교활동을 하던 중 972년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즉시 교구 내의 성직자와 수도원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선교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설교했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교구민으로부터 ‘위대한 자선가’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황제를 수행하여 프랑스를 여행하였고,
바이에른(Bayern)의 공작의 아들로 후에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공작의 개인교수로도 활약했다.
· 하지만 성 볼프강 주교를 시기한 이들의 모함으로 교구에서 물러난 그는 실망하기보다는 평소 소망했던 은수자의 삶을 살고자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오늘날 오스트리아의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 지방에 있는 볼프강 호숫가에 성당을 짓고 말년을 보내고자 했다.
볼프강 호숫가에 있는 장크트볼프강(Sankt Wolfgang)이란 도시는 바로 성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성인의 상징으로 도끼가 등장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볼프강 성인이 호숫가에 성당을 지을 장소를 찾을 때 산 아래로 도끼를 던져 정했다고 한다.
· 그는 오스트리아 북부를 여행하던 중 병에 걸려 린츠(Linz) 교외의 푸핑겐(Puppingen)에서 선종하였다.
1052년에 교황 레오 9세(Leo IX)에 의하여 성인품에 오른 후 장크트볼프강의 성 볼프강 성당은 주요 순례지가 되었고,
1481년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하엘 파허(Michael Pacher)는 성 볼프강과 성 베네딕투스 사이에서 성모 대관이 이루어지는 제단화를 제작했다.
그는 볼판구스(Wolfangus, 또는 볼판고)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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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성인록 ▷
< 10월31일 성 볼프강 주교 >
...... (안젤라 | 2009.10.28 Ud.)
△ Coronation of the Virgin between St Wolfgang and St Benedict-PACHER, Michael
1479-81. Polychrome pine. Parish Church, Sankt Wolfgang
▷ 축일:10월31일
< 성 볼프강 주교 >
- St. Wokfgan
- ST. WOLFGANG
- San Volfango di Ratisbona Vescovo(注: Ratisbona 주교 성 볼프강)
-(924 in Swabia -31 October 994 at Pupping, Linz (Austria)
(注: 924년 Swabia 출생 - 994년
Linz (오스트리아) Pupping에서 선종)
- Canonized :1052 by Pope Leo IX
• 스바비아 가문의 후손인 성 볼프강은 라이키난 대수도원과 비르쯔부르그에서 수학하였고,
그의 친구인 헨리꼬와 더불어 비르쯔부르그와 트리엘의 대성당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친구인 헨리꼬는 956년에 트리엘 대주교로 봉사하였으나, 964년에 서거하였다.
그 후 볼프강은 아인지델른(오스트리아)에서 베네딕또회원이 되었는데, 그는 그곳의 수도원 학교장이 되었다.
그는 971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후 그는 판노니아의 마갸르인들에게 선교활동을 하던 중, 972년에 레젠스부르그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즉시 교구 내의 성직자와 수도원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여러 지역을 다니며 선교활동에 직접 관여하고 설교하였으며,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적으로 증거하여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수차에 걸쳐 교구를 떠나 은수자로 살려고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황제를 수행하여 프랑스를 여행하였고, 바바리아의 아들인 헨리꼬 공작(성 헨리코2세)의 개인교수로도 활약하였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린즈 교외 푸핑겐에서 서거하였고, 1052년에 레오 9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와 많은 귀족들은 그가 수많은 기적을 하는 것을 불신했으나 큰 기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다하며,
주교로써 겸허한 삶을 살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고 살아 생전에도 이미 성인으로 존경을 받으셨다고합니다.
*성 헨리코2세 축일:7월13일.게시판1272번
*성녀 쿠네군다황후 축일:3월3일.게시판996번,1644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 성녀 쿠네군다 수도자(2회, +1292년)축일:7월23일,게시판1285번
• 성 볼프강은 920년경 독일의 남방 스웨덴 귀족의 출신이다.
소년 시대는 당시 유명한 라이헤나우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 맡겨져 교육을 받았는데,
그 천부적 재능은 학업에 탁월한 진보를 보게 되었다.
한편 신심에도 매우 열심하여 일찍이 주님의 성소를 깨닫고 몸을 바쳐 수도자 되기를 열망했다.
같은 수도원에는 교육을 받은 명문 출신의 자제가 많았지만,
그는 특히 웰츠부르크의 주교 포포의 동생인 헨리코와 두터운 친교를 맺고,이 둘은 뜻을 같이하여 그 시에 있는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영성 지도 선생인 이탈리아인 스테파노는 볼프강의 재능이 탁월해 가끔 자기의 실력을 능가함을 시기해 그를 퇴학 처분하려 했다.
그러나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그는 이 같은 비행을 말 한마디없이 꾹 참았다.
그러는 동안 트리르 대주교로 선임된 헨리코의 초청으로 그 시(市)에 있는 신학교에 영성 지도 신부가 되어 덕을 닦으며,
솔선수범하며 맡은 바 직무를 완수하고 학생들을 훌륭한 사제로 육성하는데 전심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종종 불쾌한 일이 있어 쓰라린 경험을 맛보게 되었다.
그의 뜻이 실현되어 스위스에 있는 베네딕토회인 아인지델룬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은 친우 헨리코 주교의 서거 후 얼마 안되어서였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신품 성사 받기를 진심으로 사양했으나 아우구스부르크 주교 우달리코(울릭)의 명을 어길 수 없어 그의 손으로 서품되어 사제가 되었다.
곧 그는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로 전교에 열망을 품고,
당시 남 독일에 침입한 헝가리 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허락을 얻어 수명의 수사를 거느리고 그 지방으로 떠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러 장애 때문에 전교 활동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 헝가리를 떠나 그 국경선 지대인 독일의 파사우 시의 주교 필그림 밑에서 다시 전교의 준비에 착수했다.
☞ 그러자 필그림 주교는 그의 탁월한 인격과 학덕을 겸비한 출중한 인물됨을 알고,
당시 공석 중이던 레겐스부르크의 주교좌에 가장 적임자로 인정해 교황 요한 12세에게 주교로 추천했는데,
그 교구의 성직자, 신자들도 이를 매우 환영했으므로 사르츠부르크의 대주교의 집전 하에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뜻하지 않은 일에 놀라 자기와 같은 사람은 그 중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하다고 사양했으나 도저히 피할 길이 없어 마침내 승낙하고 말았다.
볼프강이 주교로 임명된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것이 차츰 명백하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신앙이나 수덕에 대한 열의가 냉랭해지고 염증을 일으키는 사제, 수사, 수녀들이 그의 솔선수범과 적절한 훈계로 그 폐풍에서 벗어나게 되고,
생각 이상의 쇄신 실적을 거두었고, 신자들은 더욱 신앙심이 깊어지고, 성당 건립이며 미신자 냉담자의 개종하는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고한다.
한편 그는 주교의 영직에 있으면서도 과거 수도원 시대의 검소하고 준엄한 고행의 생활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또한 빈민, 병자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애정으로 대하며 가난한 이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름을 습관으로 했다.
• 볼프강은 후일 독일 황제가 된 성 헨리코와 그 3형제를 교육할 책임을 맡았다.
“나라를 성화 하려면 성스러운 군주가 필요한 것이다.”
가끔 이런 말로써 그들을 격려했던 그는 과연 그 나라를 성화시킬 기회를 얻었다.
즉 그의 정성어린 교육을 받은 헨리코가 마침내 황제가 되자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선정을 베풀며 신앙에 열심했던 것이다.
따라서 볼프강의 성덕의 감화는 비단 레겐스부르크 뿐만 아니라 이 고귀한 제자를 통해 전 독일에까지 미쳤다.
그런데 헨리코가 즉위하자 그는 곧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 중 그는 오스트리아의 푸핑센에서 병을 얻어 정성스럽게 성체를 영한 후 주님의 청빈을 본받는 뜻으로 맨땅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때는 994년 10월 31일이었다. 그는 1052년에 레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1.Kyrie-빈소년합창단
https://youtu.be/DXh-25c6b_s
ㅡㅡ끝.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