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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성인 / '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상가 중의 한 분인, 성인 보나벤투라 '/ 추기경, 신학자, 교회학자 (축일 : 7월 15일)

작성자아타시 한|작성시간16.07.15|조회수918 목록 댓글 0

< 성 보나벤트라 >

1. 프란치스칸 성인록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교회학자(축일)>
· 전설에 따르면 죠반니 디 피단자란 아기가 중병에 들어 사경에 헤맬 때,
성 프란치스코의 전구로
치유됨으로써 '보나벤투라'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 온다.
보나벤투라(1221-1274년) 성인은 프란치스코회원이 되어 영국의 유명한 학자 알렉산더 헤이스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그 후 파리대학에서 신학과 성서를 강의하였다.
그는 탁발 수도회를 무차별 공격하는 일련의 사람들을 상대로 토론을 벌였으며,
이즈음에 '마지막 시대의 환 난'과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하여'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후 성인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파리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시기에 보나벤투라라는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으로 피선되었으며,
1260년에 열린 나르본느 총회에서 회칙을 설명하는 회헌을 선포하였다.
또한 그는 영국의 요크 총 대주교 선임을 끝까지 거절했지만 추기경 주교로 선임되는 것은 허락하였으며,
리용 공의회의 일정을 준비하고 모든 회의를 주관하던 중에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보나벤투라는 중세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이자 사상가 중의 한분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시대인으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세라핌 박사'로 알려진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관한 주석',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생활' 등의 영성 서적을 비롯하여 성서 주석,
약 5백편의 설교 등이 특히 유명하다.
성인은 식스토 5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된 위대한 프란치스칸이다.

ㅡㅡㅡㅡ

2. 가토릭 성인록

성인명 : 보나벤투라(Bonaventure)
축일 : 7월 15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추기경, 신학자, 교회학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1217?-1274년
같은이름 : 보나벤뚜라, 보나벤처
♧♧♧♧ T ♧♧♧♧ T ♧♧♧♧
성인설명 :
· 조반니 디 피단차(Giovanni di Fidanza)라는 이름의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아버지 조반니 디 피단차와 어머니 마리아 디 리텔로(리텔라)의 아들로 바뇨레조에서 태어났다.
불확실한 전설이긴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받은 이름이라 한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어렸을 때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중재 기도를 바쳐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그는 1238년에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되어 영국의 유명한 헤일스의 알렉산데르 문하에서 공부하려고 파리(Paris)로 갔으며, 그로부터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되었다.
그는 1248-1255년까지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쳤는데, 그의 강의는 새로운 탁발 수도자를 반대하던 교수들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생 아무르의 빌리암을 비롯한 반대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 논쟁에 뛰어들어서,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가난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남겼다.
마침내 125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생-아무르를 단죄하고
탁발 수도회에 대한 공격을 중단시켰다.
탁발 수도회가 파리에서 다시 부흥될 때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
(Thomas de Aquino, 1월 28일)와 함께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이와 비슷한 초창기에
성 보나벤투라는 작은 형제회의 총장으로 피선되었고,
수도회의 내부 분쟁자들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였으며,
온건한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극단주의 그룹을 단죄하였다.
1260년 나르본(Narbonne)에서 열린 수도회의 총회에서 그는 오랫동안 수도회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는 회칙에 대한 회헌을 선포하였다.
그는 1265년 요크의 대주교좌를 거절하였고, 1271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의 선출을 적극 지지하였다.
1273년 그는 알바노(Albano)의 교구장 추기경이 되었으며,
다음 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로마(Roma)와 동방 교회의 일치를 토의하려는 리옹(Lyon) 공의회의 의사일정을 짜도록 그를 위촉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회기 중인 7월 15일에 리옹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상가 중의 한 분이다.
‘세라핌 박사’로 알려진 그는 수많은 글을 썼고 또 남겼는데, “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대한 주석”,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 생활” 등의 영성 서적을 비롯하여 성서 주석,
약 5백 편의 설교 등이 유명하다. 그는 1482년 4월 14일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체와 성합 그리고 추기경 모자가 그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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