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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이 싸우는 이유♧ -1992년 8월부터 지금까지(34년) 싸우는 來歷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6.05.20|조회수45 목록 댓글 0

안성 도피안사 송암 노스님은 불광사의 광덕 스님(1927~1999) 제자로 출가했습니다. 그런데 이 불광사가 수년째 불미스러운 이야기의 당사자가 되어 내부 간 물리적 충돌 및 다수의 민·형사 소송까지 끊이지 않는 불명예 사찰이 되고 있습니다.

편집자 개인적으로는 오래전 한 선배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받았는데, 광덕스님의 육조단경 세로판 중고책이었습니다. 육조도 모르고 광덕도 모르던 때였지요. 하여간 이 책이 제 인생에 더해지면서, 고등학생 때 국어선생님(현 서울과기대 교수가 되셨더라고요)으로부터 받은 중국(대만) 선만화 에세이와 함께 불교를 책으로 접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습니다. 그 후 한참 뒤, 광덕스님의 육조단경을 외우듯이 읽던 시절도 만나게 되었구요. 하여튼 이런 애틋한 사연이 있는 제게 송암 노스님과의 인연, 불광사 사태가 남일 같지 않게 다가옵니다.

아래는 이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불교닷컴 기사의 주요 내용입니다. (편집자)

 

불광사 사측과 불광법회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8년째 합일되지 않고 있다. 

(중략)

불광사태는 2018년 회주 지홍 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이 여직원과 주고받은 부적절한 문자와 유치원 공금 횡령 의혹이 제기되면서 촉발됐다. 

이후 재건축 불사 감사 거부, 회칙 및 운영규정 무력화, 지정 스님의 은처승 의혹 등으로 갈등이 증폭되면서 여러 건의 법적 다툼이 이어졌고, 여러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불광법회를 중심으로 신도들이 사찰재정 투명화 및 범계 등 발생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화 조치 등을 요구하면서 분쟁이 장기화됐다.

이러한 ‘불광사·불광법회’의 한지붕 두가족 사태가 불광법회를 이끌어온 현진 박홍우 회장(KCL 고문변호사)이 퇴임하고, 이광우 신임 법회장(세무법인 포유 회장 겸 대표세무사)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지 관심이다.

박홍우 법회장이 퇴임하면서, 지정 스님이 불광사 창건주 자리를 내려놓을지 관심이다. 불광법회는 지홍 스님이 2018년 9월 합의 때 8년 후 불광미디어 운영권을 불광사ᄋ불광법회에 이양하기로 한 약속을 지킬지, 불광유치원을 폐원 결정을 취소할지 등 광덕문도회의 청정 화합 행보가 특별히 주목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불교닷컴 기사 전문을 읽어보세요

https://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63908

 

송암스님과 서명원신부님(2026.4)

 

♧불광이 싸우는 이유♧

-1992년 8월부터 지금까지(34년) 싸우는 來歷- 

 

귀의삼보하옵고  

 

1. 주인이 없어서다

싸움은 불광 창건주[開山祖師]이신 광덕대선사(光德大禪師)께서 끝내 사자상승(師資相承)을 못하셨기 때문에, 즉 불광에 참다운 주인이 없어서 벌어진 事端이다. 사자상승은 법에 의한 전승이다. 출가도 이점에 대해 무식한 경우를 본다. 또한 재가는 재가이기 때문에 사자상승의 중요성을 모른다. 쉽게 말해 신분에 의한 입장 차이다. 지금 불광은 법에 의한 전승보다 권력쟁탈에 의한 나눠먹기 식이다. 그러나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1) 첫번째 사자상승

첫번째는 軍僧을 마치고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인물을 대선사께선 후임으로 점지하셨고, 문도나 재가나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스승과 도피안사 지원 건으로 대립하여 제 발로 불광호에서 하선했고, 그는 스승에게 도발했다. 스승의 뜻을 꺾으려고 했다. 1992년 8월 백중법회 때였다. 스승의 뜻에 叛旗를 들고 佛光號에서 자발적으로 내린 뒤, "스승은 노망이 나서 생각이 잘못됐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변 재가들에게 强辯했다. 소위 제자로서 반란을 일으켰다.  

 

2) 두 번째 사자상승

두 번째는 당사자가 非行을 저지른 것이 불씨가 됐다. 1993년 6월이었다. 이때부터 재가는 정치색을 띄고 불광호에서 내린 인사의 편을 강하게 들었고, 대선사와도 팽팽하게 대립하고 투쟁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어디서나 무례하게 대선사의 이름을 마구 불러대고 있다. 1차 불광사태다.) 

 

3) 그 이후로는 후계자가 아닌 소임자

몇 명의 소임자가 나타났다가 자발적으로 떠났다. 급기야 1998년 가을, 자신의 삶이 이 세상에 얼마남지 않았음을 느끼신 대선사께서는 막내상좌에게 창건주승계권을 마치 물건 던지 듯 물려주었다. 이는 무엇을 뜻하심인가? 아무리 둘러보고 또 보아도 자신의 상좌들 중에선 사자상승할 인물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있어도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늙고 병든 자신을 학대한 상좌들에게 내리신 집단 꾸짖음이셨다. 대선사께서는 이듬해 이른 봄, 사자상승을 이루지 못 하신 채 그렇게 입적하셨다. 

 

2. 불광상좌는 悖倫兒들

스승이신 대선사 49재 때, (한 사람만 뺀) 저녁 불광사에 모두 모여 앉은 상좌무리는 승계권을 가진 막내 상좌를 회유, 협박 그리고 거액의 사탕을 내밀며 창건주승계권을 강탈했다. 스승이신 대선사에 대해 반성과 참회는 아랑곳 없이 뒷골목 깡패들보다 못한 빡빡대가리들은 패거리가 되어 불광권력을 찬탈했다. 법력이 아닌 온갖 세속적인 더러운 방법으로 말이다.  

 

1) 상좌들은 충성과 헌신이 없다

강탈로는 진정한 불광의 주인이 될수 없다. 대선사께 사자상승한 책임감 있고, 정통성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상좌들은 자신들이 지은 절을 스승의 교화사업에 바쳐 등록한 사람은 고작 몇이다. 그러고도 불광권력 장악엔 용맹하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탐욕이다. 탐욕의 끝은 멸망이다. 어쩌면 한 밑천 장만해 가지고, 자신들의 소굴로 훌쩍 떠날 수도 있는 일이다. 

 

2) 강탈 1호, 창건주는 소위 맏상좌

맏상좌는 패륜들이 정한 기준인 10년을 채우지 않고, 5년 만에 물러나 함안 봉불사 토굴로 돌아갔다. 왜, 그토록 일찍 돌아갔는 지, 불광으로 보면 5년이라는 금쪽 같은 시간낭비만 했다. 그는 끝내 떠나는 까닭을 선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많은 의혹을 남긴 채 돌아갔다. 

 

3) 강탈 2호, 창건주는 종단의 벼슬아치

그는 종단 일보랴, 불광 일보랴. 더우기나 불광사중창불사를 한답시고 내실엔 등한했다. 진정한 2세라면, 개산조의 사상과 원력 계승을 최우선으로 삼아 뿌리를 내려야 함이 우선일 텐데도, 그는 오직 벼슬살이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그가 맡은 불광은 '한국불교 새 물줄기'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강탈 1호와 2호, 지금의 3호는 합세하여 불광사를 범속한 사찰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법으로 佛光法床을 지켜내지 못했다. 2호는 그 나름의 기준으로 불광사를 다시 지었지만, 그는 그일로 자만해졌고, 스승을 능가하는 慢心을 가지게 되자 곧 일탈했다. 그의 非行이 측근에 의해 폭로됐던 것이다. (2차 佛光沙汰의 시작이다.) 

 

4) 강탈 3호, 창건주의 佛光觀

목하, 불광사의 현 소임자들이 보내오는 소식지를 보노라면, 나는 엉엉 울고 싶다. 개산조사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주지로 내세워 놓고, 창건주의 이름을 버젓이 달고 있는 걸 바라보노라면 사람이 어디까지 뻔뻔해질 수 있을까 싶어서다. 설령, 누구를 주지로 내세우더라도 불광정신에 위배되면 시정을 시키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텐데도, 그에겐 또는 그의 하수인에겐 아무 생각이 없나보다. 불광무식의 대표자인 당사자가 바로 강탈 3호 창건주이고, 강탈1호와 동일인이다. 그렇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대로 불광엔 탐진치가 있다. 탐욕은 누구일까, 진에는 누구일까, 우치는 누구일까? (독자는 한사람씩 점검해 보시라.) 

 

※학륜스님

입실상좌(?) 학륜스님은, 보현사에서 대선사를 열심히 모셨다. 그 증거는 대선사께서 보현사에서 생활하시는 걸 일종의 휴식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때 불광사에서 소임을 봤기 때문에 증언할 수 있다. 즉, 그는 대선사의 심부름은 했지만 사상이나 원력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는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오스님이 불광사 주지를 할 때 보현사에서 그를 떠나게 만들었다. 이는 대선사의 뜻이 아니었음을 나는 증거할 수 있다. 분명한 점은 학륜스님에게 지홍스님은 속가의 舍兄이고, 출가의 師兄임에 틀림 없다. 그의 특수한 입장이 불광에 毒이 될지, 得이 될지는 좀더 두고 봐야할 것이다.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오스님은 그걸 몹시 싫어했다.  

 

3. 불광의 사자상승을 대중이 다시 살려내자 

 

1) 스승이신 대선사를 모르는 무식한 상좌들

상좌들이 스승이신 대선사의 사상과 원력을 모른다는 말이다. 재가도 아닌 출가가 스승의 뜻을 모른 채 어떻게 스승의 자리를 잇는단 말인가. 이는 어불성설이다. 상좌 자신들이 얼마나 스승을 모르는 지를 그들 자신도 캄캄 알지 못한다. 참으로 가관이다. 맹인들이고 허수아비들임에도 공부하지 않는다. 자리만 날쌘돌이처럼 잽싸게 차지한다.  

 

2) 오늘의 현실에서 다시 사자상승을

스승이신 대선사께서 이루지 못하신 사자상승을 대중이 성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에 의한 전승인 사자상승만이 믿고 의지할 불교의 정통승계법이기 때문이다. 화합차원에서 현재 남아 있는 2세들을 모두 초대하여 차례로 불광법회에서 설법하도록 한다. 각각 두 차례 설법하여 재가대중이 그 중에서 2~3명을 추천하여, 문도회의에 올려서 그 중 1명을 추대하도록 한다. 스승이 이루는 사자상승이 아닌, 부득이 대중이 이루는 사자상승이지만,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다. (강탈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3) 2세가 살아 있을 때 반드시 이뤄야ㅡ

추대된 사자상승의 전승자에게, 佛光中興을 맡긴다. 모든 걸 뛰어넘어 1992년으로 되돌아가 불광을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대선사의 사상과 원력을 오늘의 현실 위에 살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사자상승자에게 힘을실어 주어야 한다고 봐서다. 또한 佛光家風이 그동안 오랜 세월[34년] 속에 왜곡, 소멸이 너무나 우심했기 때문이다.  

 

4) 同業者들의 同墮地獄

지난 5월 2일(토) 법회 회장단이 도피안사 참배 때, 어떤 동참자가 감연히 말하길ㅡ "우리 재가는 혜담스님의 은혜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됩니다. 긴 세월 동안 누가 변함없이 우리들 곁에 그토록 오래 남아 있었겠습니까, 흑흑ㅡ"했다. 필자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가 존엄한 스승의 사자상승을 스스로 내던지지만 않았다면, 나의 불행도, 불광의 슬픈 오늘도 없었을 텐데ㅡ 쯧쯧'하고 말이다. 그가 두 팔 걷어부치고 열렬하게 망가뜨린 스승의 사자상승을 죄 없는 그의 재가동지들과 다시 일으켜 세운다.  

 

5) 역사는 돌고도는 수레바퀸가?

길이 같으면 業이 같다고 말했던가. "正義는 끝내 이렇게 되돌아 가는구나[事必歸正]" 하고, 나는 장탄식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불기 2570(2026)년 병오년 사월초파일을 맞이하며

안성 청량도솔산 도피안사 주지보살 불광문인 송암지원 합장

 

출처
https://story.kakao.com/_KNXKp5/5KnQLtB2On9

 

#불광사사태 #불광사내분 #청정불가 #광덕문도회 #송암노스님 #잠실불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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