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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빅퀘스천>을 읽고: 허공 중에 뿌리 없는 나무/ 적천 거사 - 선도회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0.09.24|조회수109 목록 댓글 0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하였더니 그는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한 사람이 연상된다고 말하였다.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남녀 성별의 차이나 서로 다른 생활환경 및 성장과정

그리고 종교나 견해 등의 극단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조건들을 초월해서

각자의 삶을 통해 느끼는 희로애락의 번민들을 통해

내면적인 성찰들을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때로는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실존적 존재의 유한성에 좌절하게 만드는 현상적 모습에 머물지 않고

근원적인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평안平安의 쉼터에 도달하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을 떠나 신비스러울 지경이다.

 

아마도 영성의 발견은 거대 집단으로 형성된 기존의 종교전통을 통해서만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의 보편적普遍的인 마음의 심연深淵에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공감은 여태껏 잠들어 있던 마음을 일깨우는 파동을 일으키고,

그 울림이 점점 커져가면서 급기야 온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 그간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깊은 영성적 체험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본문에서 발췌

 

<일상의 빅퀘스천>을 읽고:

 

허공虛空 중에 뿌리 없는 나무

적천滴穿 이상호 거사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공통주제로 엮은 <일상의 빅퀘스천>(안티쿠스, 2020년)을 보면,

저자들의 삶에 대한 자전적自傳的 고백告白과 담화談話를 통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저자들은 모두 이웃 영성 전통에 열린 그리스도교인, 불제자, 명상가, 지식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만큼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의 지혜가 곳곳에 묻어있다.

특히, 이 책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영성에 접근하는

저자들의 입각처立脚處가 다양하므로 서로 상보적相補的이면서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같은 종교라도 그 관점이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입장뿐만 아니라,

특정 종파에 속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이론 체계를 바탕으로 영성을 말하는 명상가 및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영성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관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세간의 확증편향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구성은 자연스럽게 현대 문명에서 영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현대인들로 하여금 종합적인 통찰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줄 것이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과 깊은 체험을 공유하는 담화의 형식은

개개인의 일방적인 진술보다는 훨씬 풍요롭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와 더불어 상호보완적인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와 같이 서로 상반되는 입장에 있더라도 서로 모여서 담화를 통해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사회적 대통합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 책의 전반부인 에세이에서는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사실 요즈음 전공 분야 외의 책을 가까이 접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폭 넓은 독서讀書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은 부수적인 수확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힘들었던 것은 깊은 공감共感 때문이었다.

반면에 후반부의 담화에 이르러서는 흥미진진한 전개에 빠져들어

책을 놓기가 싫을 정도여서 언제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게 단숨에 읽고 말았다.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하였더니 그는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한 사람이 연상된다고 말하였다.

나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남녀 성별의 차이나 서로 다른 생활환경 및 성장과정

그리고 종교나 견해 등의 극단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조건들을 초월해서

각자의 삶을 통해 느끼는 희로애락의 번민들을 통해

내면적인 성찰들을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때로는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실존적 존재의 유한성에 좌절하게 만드는 현상적 모습에 머물지 않고

근원적인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평안平安의 쉼터에 도달하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을 떠나 신비스러울 지경이다.

 

아마도 영성의 발견은 거대 집단으로 형성된 기존의 종교전통을 통해서만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의 보편적普遍的인 마음의 심연深淵에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공감은 여태껏 잠들어 있던 마음을 일깨우는 파동을 일으키고,

그 울림이 점점 커져가면서 급기야 온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 그간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깊은 영성적 체험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영인 교수님의 빅퀘스천은 생생하게 느껴지는 근원적인 힘으로서의 하느님[하나님]을 바탕으로

의식의 진화를 통해 지혜라는 깨달음의 내면화를 이루어가는 것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영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의 전형적인 패턴을 잘 보여준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질 때,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이라고 말하기 어려우며, 반면에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할수록

인간의 이성은 그 존재와의 만남을 더욱 갈구하게 만든다.

 

만약, 창조주로서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피조물로서 지난한 삶은

과연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가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면, 느닷없이 찾아오는 인간 존재의 소멸

즉 죽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것들을 알지 못한 채 받아들이는 무의미한 죽음은 생각하기조차 싫을 것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앎으로써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치더라도

굳건히 견디고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박영재 교수님은 일상에서 화두참구를 통해 생업生業과 수행修行의 둘이 아닌

생수불이生修不二의 통찰체험을 바탕으로 나눔 실천을 병행하는

통보불이洞布不二의 가치 있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염원하면서 향상向上의 길을 보여준다.

 

그 분은 <무문관無門關> 제47칙 ‘도솔삼관兜率三關’에 들어있는 화두로 빅퀘스천을 대신하고 있다.

이 화두를 점검 받은 이후로 거의 날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과연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을 떠나도 정말로 여한은 없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숙면熟眠에 든다고 한다.

하나의 화두라도 치열하게 참구한 결과는 전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송순현 원장님은 영성이 온전히 발현發顯된 삶은 어떤 삶인지 화두삼아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1980년대를 청년기로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그 당시 영성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명상 서적들을 한 권이라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도 물론 정신세계사에서 발간된 책들을 보면서 내면의 물음을 따라간 기억이 난다.

 

그 분의 빅퀘스천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존재의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물음은 명상가들의 주제이자 동시에 오랫동안 인류의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존재양식과도 결부된다.

즉 ‘나’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 다음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물을 것이다.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자유의지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

 

만약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면 아무리 열심히 살려고 해도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건성건성 살더라도 운명에서 정해진 대로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정해져 있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도 알 수 없다.

반면에 운명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그 힘으로 이 한 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지만,

그런 삶의 결과에 대한 안정된 보장도 없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결국 결정론과 자유론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을 우리는 영성을 통해서 찾고자 한다.

 

이영환 교수님은 이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자연스럽게 영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 믿음의 종착역은 자신의 에고를 뛰어넘는 그 무엇에 대한 외경畏敬이라는 것이다.

즉 이성은 필요하지만 그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초월하는 초이성적 사고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분의 빅퀘스천은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영성을 바라보는 학자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먼저 의식이 뇌의 산물인지 아니면 뇌와 독립적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이것은 유형적인 뇌와 무형적인 의식의 관계를 말하며, 그 관계는 사후생死後生의 문제와 연관된다.

즉 의식이 유형적인 뇌의 산물이라면 뇌사 후 사후생은 있을 수 없을 것이고,

만약 의식이 뇌와 관계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사후생의 존재가 가능해지면서

현생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뇌와 의식의 독립성 여부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에게 미칠 영향과도 연관될 수 있다.

만약 뇌가 의식과 독립적인 것이라면 인간의 뇌작용은 인공지능과 비교될 수 있지만,

이렇게 된다면 인간의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 없으며, 이와 동시에

영성에 대한 문제는 의식과 함께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가 되어야 한다.

반대로 뇌와 의식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면, 수수께끼 같은 생명의 신비현상에 대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비교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영성에 대한 논의도 주로 의식의 초월성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 1982년에 대학 입학하고 여름방학이 가까워 졌을 때 종달宗達 선사님을 처음 친견親見했다.

그 다음 해 연말에 그 분과 마지막 만남이라 생각하고 ‘무’(無)자(字) 화두를 가지고 독참獨參을 마쳤는데,

그때 문득 스스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 이후 나머지 시간들은 이 질문에 매여 있었다.

그 영향으로 2005년도에는 간화선의 의정에 대한 석사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2016년에 <무문관> 제9칙 ‘대통지승大通智勝’이라는 화두를 참구할 때,

문득 1983년 연말에 종달 선사님과 독참 할 때의 내적 경험과 겹쳐지면서 그 의문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모든 정황들이 납득되었다.

마치 그 질문이 떠올랐던 시간을 다시 마주한 것과 같았으며, 그때 솟아올랐던 질문 ‘이게 뭐지?’는

땅 속에 깊이 뿌리박힌 나무가 뽑혀져 허공중에 뿌리 없는 나무처럼 힘을 잃어 버렸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서가 아니라 그 질문이 사라짐으로써 출구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편, 지난 과거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영성 추구에 대한 환경은 매우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종달宗達(1905-1990) 선사님과 백봉白峯(1908-1985) 거사님 등이

재가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편의상 1세대의 시기라고 한다면,

그 제자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2020년대 현재까지가 2세대의 시기로 볼 수 있으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3세대가 머지않아 활발하게 활동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시기적으로 2세대에 해당하므로

1세대와 2세대 간의 대략적인 전승관계와 그 성장 과정들을 간략히 보여준다.

 

1세대는 근・현대 한국의 역사적 질곡과 함께한 세대들이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폐허 및 보릿고개 등으로 상징되는 가난과 고난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영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일생을 바쳤던 사람들이다.

2세대는 경제적 상황이 호전되어 가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의 열풍을 직접 목격하면서 내적인 영성 혁명을 꿈꾸었던 세대들이다.

그 시대는 외적 자유에 대한 열망과 내적 혁명에 대한 열망이 동시에 나타나는 시기였다.

만약 시대별로 수평선을 긋고 그 위쪽을 현실참여를 통한 외적 자유 추구,

그 아래로 내적 자유의 추구로 구분하여 점을 찍는다면

그 어느 시대보다 큰 폭이 생길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3세대에 있는 현대인들의 입장은 그 앞 세대들과 다르다.

정치적으로는 안정된 민주사회에서 생활하고, 경제적으로는 선진 국가들과 경쟁하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한류의 열풍을 일으키는

한국 문화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세대들이다.

이들에게서 영성추구에 대한 강한 기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두 가지의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영성추구에 대한 욕구와 실천적 행위가

어느 정도 일정 수준 이상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

두 번째는 예전 1, 2세대가 겪은 여러 방면의 환경조건과 달리,

현대는 IT 기술과 같이 매우 발달된 과학 기술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하여 영향을 끼치고,

다양한 문화현상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영성추구가 큰 이슈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세대들이 가진 영성 추구라는 동일한 목적이 외부적 환경 조건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불변하는 공통점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바와 같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그 해답에 대한 간절함일 것이다.

 

아마도 1・2세대에 비해서 3세대에게는 상대적으로 외부적 요인보다는

자기 개인적인 생활 속에서 유발되는 문제들이 동기 부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요즈음 온라인 매체 등의 발달로 인해 개인과 대사회적 소통은

과거보다 더 수월해지고 확장되어서 그 파장력도 단시간 내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지만,

그만큼 개인의 영역은 촘촘하게 얽힌 사회 관계망 속에서 쉽게 노출됨에 따라

사생활이 침해당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 문명이 발달할수록 유형적 삶의 한계를 초월하여

쉼터로서 역할 할 수 있는 영성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는 만큼

영성의 보편성도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지렛대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 9월 16일 적천 합장

 

 

관련 자료들:

 

출판: (신간)〈일상의 빅퀘스천〉/ 금강신문 편집부

http://www.seondohoe.org/120000 (2020.09.17.)

 

영성적 삶의 실천-코로나19 사태의 교훈 (<일상의 빅퀘스천>)

http://www.seondohoe.org/119981 (2020.09.16.)

 

상속(相續)의 참 의미/ 세종대 이은선 명예교수

http://www.seondohoe.org/119713 (2020.08.22.)

 

신간 소개: 도영인, 박영재, 송순현, 이영환 공저, <일상의 빅퀘스천>

http://www.seondohoe.org/119433 (2020.07.26.)

 

 

원문으로 보시면, 이어지는 댓글과 기타 자료들도 보실 수 있습니다.

www.seondohoe.org/120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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