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6년 4월 27일 선도회 국제거점모임 소속으로 입문 점검 과정을 모두 마친 모니크 다르덴느(Monique Dardenne) 대자大姉님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저는 그동안 입실점검을 맡으셨던 천달天達 지도법사(예수회 서명원 신부)님과 조율해 ‘하늘[圜]의 지혜智慧를 온몸으로 체득하기’라는 뜻을 담은 ‘원혜圜慧’로 법호法號를 확정지었습니다.
참고로 원혜 대자님은 어제 프랑스로 출국하셨는데, 2026년 6월 6일 열리는 종달宗達 노사老師 추모법회에서 법호를 수여할 예정입니다.
2026년 5월 11일 선도회 제2대 지도법사 법경法境 합장合掌
인생지도人生地圖:
내적으로 가볍고 단순해질수록, 더욱 살아있음을 느끼다
국제거점모임 원혜圜慧 대자大姉
저의 조상은 더 나은 삶을 위해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리스도교인이셨는데, 어머니는 신앙생활을 하셨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기 때 세례를 받았고 어릴 적에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저는 세 명의 남자 형제 사이에서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집 주변의 들판과 숲에서 놀곤 했습니다. 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에게 깊은 자유와 독립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저는 혼자 유럽을 여행했고,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뒤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의대생이었던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우리는 딸 둘과 아들 하나,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이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어머니가 되는 것은 제 삶의 핵심이자 가장 큰 소망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했습니다.
제가 53세가 되었을 때, 저는 일종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아이들은 품 안을 떠나고 있었고, 저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삶에는 새롭고 더 넓은 방향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인간관계의 단절, 죽음, 자녀 중 한 명의 투병 등 역경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심리학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많은 것이 필요했고, 이 실존적 위기를 이해해 줄 신부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요가를 배우는 학생이기도 했기에 요가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좋은 스승을 찾던 중 저의 첫 번째 스승인 한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그와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불교와 선(禪) 명상에도 끌렸습니다. 좋은 스승들을 찾아 나선 끝에 천달(天達) 베르나르 세네칼(Bernard Senecal)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천주교 신부이면서 저의 모국어를 사용하고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저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결정적이고 중대했습니다. 저는 다시 복음서로 돌아가 그리스도와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수년간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분이 결코 저를 떠난 적이 없으며 제 마음의 은밀한 곳에 계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천달 신부님과 함께 불교를 공부하고 선 명상을 실천하며, 함께하는 참선피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치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장애인을 포함한 국제적인 공동체를 세울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즉시 제가 이 프로젝트와 연결될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마치 목이 몹시 마르던 사람이 갈증을 해소할 샘물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 수년 동안 천달 신부님이 프랑스에 오실 때마다 그의 참선피정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요가 교사였기에 요가 경험을 더 심화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뿌리를 찾아 인도로 가서 인도 스승들에게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도로 떠나 1년을 보냈습니다. 9개월은 아쉬람(ashram)에서 머물며 인도의 세계와 철학에 몰입하고 요가의 8단계를 수행했습니다. 이 또한 결정적인 경험이었으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9개월 과정을 마친 후, 불교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인도 북부 히말라야로 향했고 그곳에서 티베트 불교를 접했습니다. 인도에서의 1년이 지난 후 프랑스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시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저는 적응해 냈고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요가 수행자로서 자신이 가진 지식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행과 철학을 전수하는 것은 의무이기에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2017년 천달 신부님께서 이사장 직을 맡고 있는 ‘도전돌밭공동체(Way's End Stone Field Community)’를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의 구성원들을 만나 정착을 돕고, 그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그 나라와 문화, 삶의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마주하고 함께 수행하며 일하고 싶은 강렬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중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거의 매년 1~3개월 동안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제 가족과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항상 따뜻하게 환영해 준 천달 신부님과 공동체 회원들, 제가 만난 모든 스승님, 저의 길을 도와준 사람들, 그리고 저의 발걸음을 이곳 한국으로 인도한 그 ‘신비(Mystery)’에 깊이 감사합니다. 요가, 선 명상, 침묵, 고독, 그리고 경전(불교, 요가, 그리스도교)을 통해 제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저는 더 가볍고 단순해짐을 느끼며 그럴수록 더욱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2026년 4월 27일 원혜圜慧 두손 모음[合掌]
국제거점모임 관련 자료들:
송암 스님과 천달 신부, 동갑 성직자의 함박웃음/ 김선래 대자 정리
https://blog.naver.com/seondohoe/224266428309
국제거점모임의 스위스 참선피정 후기/ 김선래 연구원 (2026.03.03.~03.07.)
https://blog.naver.com/seondohoe/224217927912
[마음을 찾는 사람들] 서명원 예수회 신부/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https://blog.naver.com/seondohoe/22352444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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