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회 제주지방회 장로안수식설교---
이런 장로 보고 싶습니다.
180225 (벧전5:1-5)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아멘
먼저, 오늘 안수 받으시는 박경규 장로님! 축하드립니다.
우리 아버님도 장로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나라에 계시고요.. 오늘 저희 아버님 얘기 좀 드리려고 합니다. 이해하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희 본 교회가 서울 서대문지방 낙원교회입니다. 교회가 개척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면서 달동네의 건물들을 모두 철거한 때가 있었는데, 그때 교회도 달동네에 조그만 흙벽돌과 기와로 지붕을 한 교회였는데, 이때 교회도 헐리게 되었습니다. 개척교회가 돈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가 헐리고 터를 닦으니까 교회 재정은 바닥이 나고, 그 때부터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건축하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개척교회라 교인들도 얼마 없으니 건축헌금이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이 때부터 아버지의 엽기적인(?) 믿음의 행보가 시작됩니다.
고향에 있는 선산 만 삼천 평을 팔아서 드리고, 나중에는 그래도 안 되니까 서울로 이사 오면서 전답 팔아 장만했던 아파트 팔아서 드리고 전셋집으로 이사하고, 그래도 안 되니까 전세금 빼서 헌금하고 우리 오남매를 데리고 교회 밑에 축대가 있고, 그 밑에 판잣집들이 있고, 버려진 하꼬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하꼬방으로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고생시작 행복 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을지로 5가에 있는 중부시장에서 1평 반 정도 되는 노점다이에서 나물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아버지는 물론, 교회 일에만 매달리시고요. 새벽에 나가셔서 도매시장인 경동 시장에 가서 각종 나물을 떼다가 중부시장으로 가져가셔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제 소원 중에 하나가 어머니가 싸주는 따뜻한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기도 했죠...
그러니 당연히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죠... 더구나 사춘기 때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드린 헌금으로도 교회 건축이 힘들어지니까 여기저기서 빚을 냈습니다. 교인들도 그렇게 했고요... 어느 날은 빛쟁이들이 교회에 몰려와서 예배도 못 드리게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목사님을 막아서면서 대신에 머리를 끄댕기고,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예민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새벽 다섯 시면 나가셔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들어오시고, 겨울에는 얼굴에도 동상이 걸려 얼음이 박히고, 손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도록 고생하시면서 우리 가족을 위해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죽어도 목사 안 되겠다고 했던 제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에 와서 하나님께서 개척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민박집에 살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셔서 땅을 빌려 10평짜리 컨테이너를 놓고 개척설립 예배를 드리고, 1년 만에 조립식으로 예배당 30평, 사택 22평의 건축을 하고, 지금의 예배당은 대지 550평에 연건평200평으로 개척 5년 만에 건축을 하고, 지난해에는 건축하며 졌던 은행 빛도 모두 청산하였습니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필리핀 선교지에 예배당을 건축 중에 있고, 후반기에 감리교회가 없는 대정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교회를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어떻게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이런 은혜를 누립니까?
저는 감히 아버지 덕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버지가 이 땅에 뿌리신 헌신의 씨앗, 하나님 나라에 쌓아놓으신 상급을 제가 거두며 목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맨손으로 개척해서 우리 중문한사랑교회가 그래도 지방에서 은혜롭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성도들의 열심과 헌신도 있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나의 아버지 황봉한 장로께서 뿌리 신 희생과 헌신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인 제게 복을 부어 주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천국 가시기 전에 병든 아버님을 모신 적이 있습니다. 뇌경색과 당뇨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시고, 말씀도 약간 어눌하셨는데... 자꾸만 눈물을 흘리시며 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님 왜 자꾸 우세요!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감사하고, 안 고쳐주시고 이대로 데려가시면 천국 가셔서 좋은 일인데 왜 자꾸 우세요?
그랬더니 아버님은 제게 너무나 의외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당신이 섬기던 서울 마포지방 참좋은교회 빛도 다 갚지 못하고, 아들 교회 건축하는데 마지막으로 힘이 되고 천국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안타까워서 자꾸 눈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죽음이 두려우시거나 아픈 것이 한탄스러워서 우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병들어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더 헌신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이 고백을 들으면서 속으로 이런 간절히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종이 목회하면서 이런 교인 좀 만나게 해 주세요”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했습니다. “장로는 자기의 것이 없어야 한다” 아버님은 그렇게 말씀하신대로 하나님 앞에 전부를 드리고 충성을 다하시다가 천국 가셨습니다. 아버님의 장례를 모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정부에서 주는 노인수당을 받는 통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통장에 잔고가 230원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이 땅에 남기신 전부입니다. 중부시장이 개발되면서 당시 노점상인들에게도 보상을 해줬는데, 그 때 받은 보상으로 빚을 갚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 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리셨습니다. 노년에 손에 쥔 돈 까지 다 하나님께 드리시고, 자식들에게는 십원 한 장 유산으로 물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금액으로 환산 할 수 없는 믿음의 유산을 우리 오남매에게 물려주셨습니다.
이런 장로님 보고 싶습니다. 제주지방에서 이런 장로님 뵙고 싶습니다.
곧 장로 안수례를 합니다.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기름부음을 받는 것인데,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이제부터 너는 온전히 내 것이다”고 인 치시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에게는 바람막이가 되시고, 교회를 목숨 바쳐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로 살아가시는 장로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