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 ----------
부름 받은 자의 복
180304낮 (창12:1-3)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아멘
창12장부터 25장까지는 주로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하여 14장에 거처 기록하고 있는데, 그 시작이 이렇게 시작 됩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소명을 받고 역사 전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와요메르 예흐와 엘 아브람) 라고 시작합니다.
이는 비록 역사의 전면에서 활동하는 자는 인간 아브라함이지만 그 배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사실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그래서 주인공인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것이고, 높임을 받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배후에 항상 하나님이 계시고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인물, 믿음의 사람 뒤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셨고, 선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것은 나의 배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르신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르신 말씀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너의 고향’은 ‘메아르체카’는 문자적으로 ‘너의 땅에서부터’라는 뜻입니다.
‘친척’은 ‘우밈몰라드데카’ 친척이나 가까운 혈족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의 집’은 ‘우밈베트 아비카’는 가족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고향 즉,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을 떠나는 지역적 이동을 해야 하는 것 뿐 아니라 친척을 떠나는 공동체로부터의 이동, 그리고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마저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친지와 가족은 상당히 유대관계가 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관계를 끊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8절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버리고 떠날 것이 고향(본토), 친척, 아버지집입니다. 이것은 철저히 과거의 모든 것을 버려야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고향을 쉽게 떠날 수 있으며, 누가 친척공동체를 떠날 수 있으며, 누가 부모형제인 가족을 쉽게 떠날 수 있겠습니다. 가족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관계 아닙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것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 가지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판단으로는 가혹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때로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하여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완전히 포기할 것을 요구하시고, 현재 붙들고 있는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것을 요구하시기도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신앙 때문에 세상 적으로 좋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할 때가 많습니다. 제주에서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면 괜당이라는 공동체에서 배제당합니다. 이것이 무서워서 교회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사를 안 드리면 부모로부터 재산(땅)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주에서 믿음생활 제대로 하려면 내려놓아야 할 것들 내려놓고 믿음생활 제대로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주일 성수나 예배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좋은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주에서 주일날 쉬는 일을 찾으려니 쉽지 않죠?
예화) 원종수권사
세속적인 가치를 버리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12:1)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라“
“떠나....가라”는 “완전한 분리”를 의미합니다. 우상과 죄악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수가 네 집안에 있다는 말씀처럼, 가족과 친척이 믿음생활에 제일 방해가 되고 맙니다.
일단 떠나온 뒤에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전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눅9::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아 믿음을 가진 자는 다시는 세상을 바라보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왜 부르셨을까요?
1. 복주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2절)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시는 것은 그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성도들을 불러 영생의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당신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이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사망의 위험이 우리를 위협하고,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나아갔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로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천국을 향해 영적 순례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복의 전달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아브라함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영적인 축복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차적으로 볼 때 이 말씀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아브라함 자신이 이웃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복의 전달자가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영육 간에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곧 타인에 대한 축복권이 주어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없이 남에게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사랑이 없는 데, 어떻게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 될 아브라함에게 먼저 복을 주셨습니다.
창12:2, “네게 복을 주어...“
하나님은 나만 잘되고 형통하라고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 복을 세상에 흘려보내는 복의 전달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1월 2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린 손주와 함께 양념치킨을 먹으러 온 할아버지에게 치킨을 공짜로 드린 한 치킨집 사장님의 사연이 올라오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연에 따르면, 맛이 없으면 돈을 절대로 받지 않는 한 치킨 집에 한눈에 봐도 행색이 초라해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치킨 집에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는 왼팔이 없으셨고 얼마나 험한 일들을 많이 하셨는지 오른쪽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양념치킨 한 마리를 시키셨고 주문한 양념치킨이 나오자 입에 대기는 커녕 살을 뜯어 어린 손주 접시에 올려놓기 바쁘셨습니다.
손주 녀석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념치킨을 정신없이 먹기 바빴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주 녀석을 흐뭇하게 바라보실 뿐이었습니다.
한참 양념치킨을 맛있게 먹던 손주는 할아버지가 손을 대지 않자 "할아버지, 왜 안 드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묵묵히 어린 손주가 먹을 양념치킨 살을 발라주시면서 "할아비는 배불러"라고 짧게 대답하실 뿐이었습니다.
어린 손주 입가에는 어느새 양념이 덕지덕지 묻혀져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듯이 흐뭇하게 웃으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주를 지켜보고 있던 치킨집 사장님은 아이가 부모님 없이 할아버지와 단둘이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한참을 서있더니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치킨집 사장님은 주방장에게 오늘 양념 맛을 못 봤다면서 양념치킨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맛을 보더니 "양념이 너무 매운 것 같지 않아?"라고 주방장에게 말했습니다.
마치 할아버지와 손주가 들으라는 듯이 치킨집 사장님은 큰소리로 "닭도 너무 질긴 것 같아. 이래가지고 손님한테 돈을 받을 수 있겠나"라고 물었습니다.
주방장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치킨집 사장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오늘 양념치킨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고 사과하면서 "다음에 다시 오시면 꼭 맛있는 양념치킨을 드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며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꼭 들려주십시오"라며 "그땐 정말 맛있는 닭을 공짜로 다시 드리겠습니다"라고 할아버지에게 계산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어린 손주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치킨집 사장님이 배려해준 사실을 눈치 챈 할아버지는 손주 손을 잡고 치킨집 문을 열고 나오면서 뒤돌아 치킨집 사장님을 바라봤고 치킨집 사장님은 고개를 숙여 조심히 가시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치킨집 사장님의 배려에 할아버지는 "고, 고맙구려"라는 말씀을 하고는 치킨집 가게를 나가셨고 치킨집 사장님은 말없이 환하게 웃으며 바라봤습니다.
어찌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치킨집 사장님은 어린 손주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할아버지를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다가 치킨이 맛이 없다며 돈을 받지 않고 할아버지를 챙겨드렸습니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손주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양념치킨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습니다.
남을 돕고, 사랑을 베푸는데도 이런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복을 흘려보낸다는 것이 이런 치킨집 사장님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형통한자가 되어 그 복을 이웃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흘려보내주는 복의 근원, 복의 전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3절)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이 나와 한 편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한편이 되신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진정으로 우리와 한편이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이신데, 주눅들 것도, 자학할 것도, 자기를 비하할 것도 좌절하여 낙담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진 것 없어도, 아는 것 없어도, 세상을 향하여 당당해야 합니다. 내 것으로 당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당당한 것입니다. 내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것으로 당당한 사람은 그 당당함이 잠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름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당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당당함도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이십니다.
시118편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편121:5-6, “5)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히13:6, “6)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복의 전달자가 되게 하시고, 내편이 되어 주시기 위하여 부르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