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180401낮(부활주일) (마28:1-10)
<1)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아멘
기독교는 다른 종교가 가지고 있지 않는 특별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 신앙입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수없이 많이 있지만 부활을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 외에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불교가 산에서 도심으로 내려와서 기독교를 여러 가지 면에서 모방해 가고 있습니다. 찬불가도 만들어 부르고, 심방도 하고, 불교 어린이학교도 개설하고, 여름 불교학교도 하고, 수련회도 갖고, 요즘에는 주일마다 정기 예불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대중들 하고는 거리가 멀었었는데, 이제는 대중들과 아주 가까이 있는 종교가 되었고, 활발하게 역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아무리 기독교의 것을 모방한다고 하여도 한 가지만은 모방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불교에는 부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탄생하게 된 것은 부활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있을 수 없고 그리스도도 없습니다. 세상 종교가 아무리 기독교를 모방해도 모방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기독교가 결코 세상종교처럼 취급 받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신앙을 빼버리거나 부활신앙이 흐려지면 더 이상 기독교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개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죽은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이 그랬습니다. 방부제를 들고 아침 일찍 무덤을 찾아간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려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가 보았더니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때서야 제 3일에 살아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하는 부활절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활감사축제예배로 드리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큰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1.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6절)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6)그가 여기 계시지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의 마지막에는 항상 부활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마16:21, ”21)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하소설이나 전집에 비교하면 작은 분량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미친 영향력은 다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생명이 있어서 세상과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되었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고, 변화된 삶을 살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활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평생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핍박한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평생을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다가 로마에서 순교했습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받아 죽었습니다. 어떤 이는 돌 맞아 죽었습니다. 어떤 이는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어떤 이는 칼에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어떤 이는 굶주린 사자의 이빨에 밥이 되어 죽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비굴하지 않았고 천사 같은 편안한 얼굴로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다 이루어집니다. 말씀은 방망이와 같습니다.(렘23:29) 그래서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완악한 마음이 깨트러지는 것입니다.
말씀은 불과 같습니다.(렘23:29,20:9) 그래서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이 다 태워지는 것입니다.
말씀은 씨앗입니다.(벧전1:23) 씨앗은 재생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 가운에 들어오면 우리는 거듭나는 것입니다. 변화되는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약1:23) 그리하여 말씀이 우리 심령에 들어오면 우리의 죄와 허물이 다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으면 못 베기는 것입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벧전2:2, 히5:12, 고전3:2)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등입니다.(시119:105) 말씀은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의 길을 비춰주므로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바른길로 인도해 줍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하여, 계시록 등의 예언서에는 다시 오실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기록된 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으셨다가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기록된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말씀은 반드시 성취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활절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고백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10절)
본문 1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마28:10,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무서워 말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무서워하지 말라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 더 이상 슬퍼하거나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부활절에 우리가 만나야 할 주님은 어떤 분일까요?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 가운데 있는 우리와 함께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함으로 참 기쁨을 맛보고 변화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의미는 과거의 예수님께서 부활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임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 할 새”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두려움보다 큰 기쁨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과 가정에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내세관 역시 부활신앙에 있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이며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요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멸망 받는 이스라엘을 보며, 하나님께 왜 이 나라가 사라져야 하는가? 하다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합3:17-18,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내 인생에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나는 부활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즐거워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의 삶의 여건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힘든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이 세상의 상황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세상의 여건이 바뀌어져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7절)
마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부활하신 주님을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빨리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소식은 빨리 전할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은 빨리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소식은 복음입니다. 지체 없이 빨리 알려할 소식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베드로, 야고보, 바울, 아니 모든 제자들은 다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25이하에서 베드로는 다윗이 쓴 시편을 인용하면서 이미 다윗이 예수의 부활을 예언했음을 지적하고 32절에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였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 는 것이 사도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요 임무였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은 핍박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순교를 당하면서도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활을 믿습니까?
죽음을 극복했습니까?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부활을 믿고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고, 그 죽음을 극복했다면,
여러분이 진정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가장 힘든 것을 극복한 것입니다.
가장 큰 두려움을 이긴 것입니다.
가장 큰 절망을 이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업이 실패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어야 합니다.
사업이 안 되어 너무나 힘이 듭니까?
건강이 안 좋아서 힘이 듭니까?
인간관계가 힘이 듭니까?
공부를 못합니까?
좋은 대학 못가서, 좋은 직장이 아니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부끄럽습니까?
아니요!!!!
죽음을 극복했다면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어야 합니다.
죽음 뒤에 부활이 있다면,
실패 뒤에 성공이 있고,
절망 뒤에 희망이 있고,
슬픔 뒤에 기쁨이 있고,
가난 뒤에 부요함이 있고,
질병 뒤에 건강함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연약함 뒤에 강함이 있고,
불행 뒤에 행복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 뒤에 부활이 있음을 믿는다면,
실패 뒤에 성공이 있음도 믿어야하고,
절망 뒤에 희망이 있음도 믿어야 하고,
슬픔 뒤에 기쁨이 있음도 믿어야 하고,
가난 뒤에 부요함이 있음도 믿어야 하고,
질병 뒤에 건강함이 있음도 믿어야 하고,
연약함 뒤에 강함이 있음도 믿어야 하고,
불행 뒤에 행복이 있음도 믿어야 하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음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죽은 예수를 믿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다면,
내가 만난 예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일 모레가 4.3 입니다. 70년 전 이 제주 땅에서 이념 때문에 서로 편갈라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전세계적으로 4.3과 같은 비극적인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희생의 당자자와 그 가족들은 상처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부활절에 제주의 아픈 역사와 희생자 가족들을 치유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이 나라와 민족이 이념 때문에 편갈라서 죽고 죽이는, 미워하고 원망하는, 전쟁과 피흘리는 일이 없도록 부활의 주님이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