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 ----------
아브라함의 예배
180408낮 (창15:6-17)
<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아멘
우리는 지난 시간에 창13장과 14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에 대하여 알아보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데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 가나안으로 갔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롯을 동일하게 축복하셔서 그들의 소유가 많아졌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의 가축과 소유가 기거할 땅과 초지가 부족하게 되자 서로 다투는 일이 잦아지게 됨으로 서로 간 골육이 다투는 것을 원치 않았던 아브라함은 먼저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그러자 롯은 요단의 기름진 벌판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롯은 점점 물질의 풍요를 쫓아 소돔에 들어가 살게 되었고, 그 땅은 에덴동산과 같이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었으나 죄악의 도시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끝까지 머물게 됩니다. 이 때부터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차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에 정착하고, 롯은 눈에 보이는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다가 결국 소돔성과 함께 비참한 꼴을 당하고,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롯보다도 처지가 열악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셔서 큰 부족의 장이 되고 포로가 된 롯을 구출할 만큼 강력한 힘과 부를 가진 부족으로 성장했음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가? 참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하는가를 우리에게 교훈해주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물질의 풍요로움과 안락을 선택하고 쫓아 살던 롯의 결말이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인가를 보았습니다.
지금 인류를 뒤 덥고 있는 거대한 사조가 유물론과 인본주의와 포스트모던이후의 탈윤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성적타락과 방탕함이 마치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인권이라 부르짖으며 소돔과 같이 죄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깨어 있지 않으면 그 폐해를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사야 선지가가 활동하던 시대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도 악이 법으로 보호 받는 악법이 만들어졌고, 악이 사회에 성행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볼 때, 지금 이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심령에 불이 붙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승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인류의 삶에 기준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5장의 시작은 “이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이 후에는 언제입니까? 아브라함이 침략자인 메소포타미아 4개 연합군을 물리치고 롯을 비롯한 사해 연안 국가들의 포로를 구출한 후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히려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의 보복성 침공의 위험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일로 인해 승리의 기쁨보다 오히려 보복의 두려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바로 ‘이 후에’란 이런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15:1, “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의 보복성 침략을 우려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의 보복성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나는 네 방패다. 즉 내가 다 막아줄게 걱정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런 은혜입니까? 아브라함이 얼마나 용기가 나고 힘이 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면 다 해결해주고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보고 들은 이 환상과 음성을 여러분도 듣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 상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상급 그 자체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상급은 창 12장에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약속하셨던 땅과 민족과 후손에 대한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상급이라는 말씀을 듣고서도 아브라함은 여전히 그 방법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습니다. 상속자도 없는데, 다른 많은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게 씨를 주시지 않으셨으니 집에서 기른 다메섹사람 엘리에셀이나 상속자로 삼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밖으로 끌고 나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합니다.(창15:2-5)
그리고 6절 말씀입니다.
창15:6, “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믿으니(ןמא/아만)” 은 “계속해서 꾸준히 신뢰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끝까지 의지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참된 신앙이란, 일의 형편과 무관하게 무조건 그 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습니다.(창12:2) 그러나 지금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자신은 자식도 없고 낳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초조하고, 약해지겠습니까?
이런 상황 즉, 아브라함 자신과 아내 사라가 이미 늙었다는 현실적인 제약을 초월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기대하는 아브라함의 확고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신앙이 복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절입니다. 이신득의(以信得義),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의 교리의 근간이 되어 주는 위대한 말씀이 바로 본문 6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여호와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 땅을 제게 주신다고 했는데, 이 땅을 내가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창15:8, “8)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9절입니다.
창15:9, “9)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제사를 요구합니다. 즉 예배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알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예배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를 통하여 예배가 무엇인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예배를 잘 드릴 수도 있고 잘못드릴 수도 있는데,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은혜 되시기 바라며 여러분은 예배 잘 드리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예배는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9절)
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창15:9, “9)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예배를 준비하라고 하시는데, “나를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가져올지니라”(케하 리)
앞 절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리), 즉 ‘하나님을 위하여’ 제물을 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섭리하시고 운행하실 뿐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귀결되고 또한 동시에 하나님을 위한 것이 진정 사람을 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계4:11,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러한 영적 진리를 이해할 때, 성도는 자기 위주의 이기적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삶의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나를 위하여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입니다. 나를 위한 목적, 나를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배를 방해하는 세력을 물리쳐야 합니다.(11절)
창 15:11, “11)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솔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가로 채고 방해하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솔개가 제물에 앉으려 할 때마다 쫓아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위해 바쳐진 제물위에 부정한 새들이 앉지 못하게 한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백성들을 질투하고 그 관계를 깨드리려고 하는 사탄의 모든 방해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열납 되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끝없이 방해합니다. 우리는 다양하게 우리의 예배를 방해하는 그 사탄의 방해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임재를 경함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끝임 없이 마귀는 방해합니다. 은혜의 자리에 아예 나와 앉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이 자리에 나와 예배할 때에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여러분의 감정을 지배합니다. 듣는 귀를 막아버립니다. 의심을 집어넣어줍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9) 고 말씀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마귀의 방해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솔개를 쫓았던 것처럼, 이것은 예배드리는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은혜 받고 예배당 나가는 순간에도 역사합니다. 집에 가서 세상에서 한 주간 살 때도 받은 은혜대로,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솔개를 열심히 쫓았으면 해질 녁에 깊은 잠에 빠졌겠습니까?(예: 예배에 방해될만한 것은 사전에 제거하라, 휴대폰, 다툼, 감정상함등등.....)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마귀와 싸워 이기고 결국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부어주시는 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배를 방해하는,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하는 솔개는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여러분의 주변을 맴돌며 방해하는 솔개를 쫓아내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온전한 예배를 받으십니다.-아브라함의 실패한 예배(창15:9-10, 17절)
창 15:9-10, 17, “9)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7)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횃불언약은 제물을 쪼개어 마주대하여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불로 그 쪼갠 사이로 지나가시는 것으로 그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절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준비한 짐승을 다 쪼개어 놓았는데, 새는 쪼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새는 작으니까 쪼개지 않았을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는 동물은 반드시 쪼개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작은 것이라고 하찮게 여겼습니다. 작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밤이 되도록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솔개가 제물을 쪼아가려고 날아듭니다. 아브라함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를 드리면 평안과 기쁨이 찾아와야 정상이죠? 우리가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고 하나님이 열납 하시면 예배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예배드리는 예배 자에게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드리는 예배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창 4장에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예배를 하나님은 열납 하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안색이 변하고 분이 가득 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데 왜 안색이 변합니까? 예배드리는데 왜 혈기가 납니까? 예배가 잘못 드려진 결과입니다. 결국 가인은 아무도 보지 않는 들에서 동생 아벨을 처 죽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예배 잘 못 드리고 일어났습니다.
예배를 정말 잘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후예배라고, 수요예배라고 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모든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순서 순서 하찮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소홀이 여기면 안 됩니다. 우리 마음에 그런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은 작은 새라고 쪼개지 않고 그냥 드렸다가 결국에는 마귀가 틈타고, 두려움이 찾아오고, 하나님의 말씀에 이방의 객이 되어 종살이를 하다가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 하다가 모세의 인도 하에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잘못 드린 예배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게 됩니다.
레1:5-9절 말씀에 번제의 제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시면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제사 드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전가시킨 그 제물을 직접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그 제물의 가죽도 직접 벗겨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직접 그 제물의 각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직접 그 제물의 내장을 물로 씻어내야 합니다.
9절을 보시면,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을 죽이면서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의 가죽을 벗기면서 자기의 위선의 가죽도 벗겨 버리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제물의 각을 뜨면서 자신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낱낱이 각을 떠서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그 번제물의 내장을 씻으면서 그 마음의 죄까지도 하나님 앞에 다 내놓는 것입니다. 이 정신이 그대로 우리의 예배에 깃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자기 자신의 각을 뜨는 시간이며, 자기를 죽이는 시간이며 자기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하나님 앞에 낱낱이 열어서 내려놓는 시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용해서 그렇게 나 자신의 각을 뜨고 나를 죽일 수 있습니까?
히4:1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히4:12,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구약의 제사는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드리는 예배요, 신약의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과 혼을 쪼개어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은 새는 작다고 쪼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예배의 실패는 후손들이 이방의 객이 되어 430년간 애굽의 종살이를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며, 자신의 뜻과 고집, 생각, 방법, 교만 등을 완전히 쪼개고 죽여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쪼개진 사이를 횃불로 지나셨습니다. 찾아오셨습니다. 쪼개집시다. 쪼개져야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배 잘 드리셔서 여러분의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