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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창세기 강해 8.아브라함, 누구 말을 듣느냐?(창16:1-4/ 15-16)-180415 낮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18.04.12|조회수173 목록 댓글 0

창세기 강해(8) -----------

 

                                     아브라함, 누구 말을 듣느냐?

180415낮                                           (16:1-4/15-16)

 

<16:1-4, 15-16, “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 였더라 4)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15)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아멘

 

 

  인간은 모두 다 불안전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16장은 아브라함 당대뿐 아니라 그의 후손들의 전 역사를 두고 심각한 갈등과 장애를 야기한 아브라함의 일대 실수를 보도합니다즉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종용에 따라 사라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후사에 대한 약속을 거듭 받았을 뿐 아니라 횃불 언약을 통해 그 언약에 대한 표징도 보았습니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보려고 시도하다가 도리어 문제만 야기 시키는 실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허락해 주신 언약인 자신의 상속자를 하루속히 얻기를 원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아니하고 행한 일이었습니다.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창16장은 그 결과 얼마나 악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며, <아브라함, 누구 말을 듣느냐?>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세속적인 방법으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1, 2)

  1, 2절 함께 읽겠습니다.

  “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1, “생산치 못하였고”(로 얄레다)


  히브리말 <>는 지속적인 부정의 뜻을 가진 부정어입니다. 여기서 지속적인 부정어가 사용된 것은 사라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들을 갖지 못한 현실에 대해 깊은 좌절감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라와 아브라함은 3절과 16절을 보아 알 수 있듯이 가나안에 정착한 지 약 10년 쯤 되었을 때이므로 아들을 기다리는데 지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라는 아들을 얻을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었고, 아브라함도 이에 동조하는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2)

 

  그러나 사라의 이러한 자기희생이 하나님의 법도에서 어긋나는 것이므로 후에 이로 인하여 더욱 큰 심적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대로 하갈을 첩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하갈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심각한 가정불화로 이어져 끝내는 하갈이 집에서 도망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6)

 

  그뿐이 아닙니다.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아랍족속의 조상이 됨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스라엘의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와와 아담의 순간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온 인류를 죄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듯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순간의 실수는 이스라엘에게 평생의 올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세속적인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일인지 분명하게 깨닫게 해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과 뜻은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와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인간의 섣부른 판단과 방법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문제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인내로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이것이 확실하고도 은혜로운 문제 해결의 첩경임을 명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말씀에서 벗어난 행위는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맺습니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정부인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 아이를 낳게 함으로 대를 잇는 것은 보편적인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악한 행위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행위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려고 했다는 점과 둘째는 일부일처(一夫一妻)의 결혼제도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2:24)을 거스렸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이미 말씀드렸듯이 아브라함의 가정에 큰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후에 하갈을 통하여 낳은 이스마엘이 선민 이삭의 후손을 괴롭히는 아랍족속의 조상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에게 큰 올무와 짐이 되었고,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교제의 단절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16:16-17:1)

 

  16:16-17:1, “16)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17: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옳치 못한 방법으로 하갈과 동침할 때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셨던 것을 보게 됩니다. 무려 14년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행위는 비록 그것이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나치게 내 욕심을 채우려고 인간적인 수단을 이용하면 반드시 화가 임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비록 아무리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또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선한 의도를 가진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즉 아무리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방법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하리라”(4:15)의 야고보 사도처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선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3. 아브라함, 누구 말을 듣느냐?(2)

  16:2, ”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여호와께서 나의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힌네 나 아차라니 예흐와 밀레데트)

 

한글 개역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원문성경에는 본문의 서두에 보라라는 뜻을 갖는 힌네란 감탄사와 참으로”, “지금이라는 뜻을 지닌 가 같이 쓰여 있습니다.

 

원문를 직역하면 참으로 보라 여호와께서 나의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가 됩니다.

이는 당시 사라의 아이가 없는데서 오는 절박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출산을 허락지 아니하셨다”(힌네 나 아차라니 예흐와 밀레데트)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을 가지고 강하게 막으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는 사라가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원인을 여호와께 돌리는 것으로 아직까지 아들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대하여 원망이 심했음을 보여 줍니다.

 

원컨대...과 동침하라(들어가라)”(뽀 나 엘)


  여기서 가라는 뜻의 명령형입니다. 그러나 이어 나오는 가 명령형에 덧붙여질 때 명령하는 본래의 뜻은 없어지고, 애원과 훈계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에게로란 뜻의 전치사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제발 ~에게로 가라는 뜻입니다. “제발 내 여종 하갈에게로 들어가라(동침하라)는 사라의 간절한 애원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여자의 책임이며 큰 수치로 여겼으므로 사라는 이러한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 아브라함에게 첩을 취하여 동침하도록 간청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와이쉬마 아브람 레콜사라이)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사래의 논리에 설득 당했다기보다 사라의 간곡한 권유와 자신을 희생하는 그 행동 자체에 큰 감명을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또한 들으니라에 해당하는 솨마주의를 기울이다”, “순종하다란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어떤 반론도 없이 사라의 말에 동조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비록 자녀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지만, 매우 아리따웠고(12:14), 매우 충실한 아내였으며, 그의 큰 재산의 공동 소유자였고, 순종적인 여인(남편에 대한 호칭과 누이라고 하라 해도 따르는...)이요,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편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잇게 해주려고 첩과 동침하게 하는 사라입니다. 누가 이런 아내의 말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불신앙적인 제안의 말을 듣지 말아야 했습니다.

 

  성도는 항상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신앙은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의 말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늘 명심해야 할 것은 사탄의 술책은 나와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연고자를 통하거나, 신임하고 사랑하는 친구를 통하거나, 별 의심할 바가 없는 자를 통하여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야기하는 자가 누군가 하는 것 보다, 무슨 말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정확히 그 부분을 알고 공격해 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서양 속담에 사람마다 지옥에 내려가는 사닥다리가 각각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약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노아는 술에, 에서는 식욕에, 아간은 물질에, 삼손은 정욕에 약점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인에게 약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듣고 전혀 하나님께는 그 뜻을 구하기 위하여 묻지 않았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아브라함에게 자기 아내 사라만 있지,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인의 말이라도 그것이 불신앙적인 말이라면 단호하게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를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신앙입니다.

 

  남편이 불신앙의 길로 가고, 아내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게 가고, 부모와 자식이 잘못된 것을 알고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포기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되 끝까지 믿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 까지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때(kairos)와 인간의 때(chronos)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진정한 축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1. 하나님의 뜻을 세속적인 방법으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1,2)

2. 말씀에서 벗어난 행위는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맺습니다.

3. 성도는 항상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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