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180422낮 (창17:1-9)
<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아멘
지난 주 월요일부터 2층 리모델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마무리 되지 못했지만, 곧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분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주방의 불판과 설걷이를 서서 할 수 있도록 물통이 큰 계수대로 교체하는 것도 이번 주에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리모델링에 일당 용역으로 이틀 오셔서 일하신 분이 계신데, 얼굴을 눈 밑으로 수건으로 모두 가려서 확실히 얼굴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목사님이랑 너무 닮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는 물어보기가 그래서 공사를 맡아하시는 집사님에게 그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잘은 모르지만, 자기 느낌에는 어느 교회인지는 모르지만, 장로님 같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날 오셨을 때에 봐도 너무 제가 아는 목사님이랑 많이 닮았는데, 한 번도 수건으로 가린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일 끝나고 돌아간 후 그날 밤 늦게 성전에 앉아서 그분 일당 입금한 계좌번호 이름으로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침례교단 신문에 이분 기사가 실린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맞았습니다. 목회자들이 초교파적으로 월요일마다 모여서 축구를 하곤 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감리교 목회자들만 따로 운동) 늘 공을 차면서 참 괜찮은 성품을 가지신 목사님이다. 생각했고, 만나면 즐겁게 인사하며 운동했던 그분이 맞았습니다. 이분이 제주시에 2005년도에 개척을 했는데..... 건물을 임대해서 개척을 하다 보니 많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아는 목사가 있는 교회인 줄 알면서 얼굴을 가리고 일하러 왔을까? 우리교회에서 이틀 일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을 텐데...아는 체도 못하고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나이도 있는데....사모님과 아이들은 또 어떻게 지내나?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잠 못 이루며 기도하고, 생각하며 밤을 그냥 보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미자립 교회가 70%, 많게는 80%까지 보는데.... 20-30%정도의 교회만 빼고는 모두가 생활 뿐 아니라, 교회 유지하기도 어려운 교회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님들이 노가다를 뛰고, 택시운전하고, 대리운전하기도 하며 교회를 유지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밤새 마음아파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넉넉하게 쓰고, 모자람 없이 사는 것, 그것만으로도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25장 31-46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아멘
한번 시간 내서 연락하고 찾아가 봐야할 것 같습니다. 혹 힘이 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헌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창세기 16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실수에 대하여 말씀을 나눴습니다. 16장은 아브라함 일생일대 가장 큰 실수가 기록되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 름 아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하신 말씀이 네 후사가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번성하리라는 말씀인데,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자기들은 나이만 점점 더 들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가망성이 사라지자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자식을 낳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부인 사라의 몸종이었던 여자 하갈을 첩으로 취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그 이름이 이스마엘이죠.... 이후 이스마엘은 아랍의 조상이 되고 정실부인 사라에게서 약속의 자녀로 나은 이삭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당시 아브라함의 실수로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혔고,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분쟁으로 그 고통을 후손들이 그대로 떠안고 살고 있고, 더욱 큰 문제는 아브라함이 자기 부인 사라의 말을 듣고 첩을 통하여 동침한 순간부터 하나님은 더 이상 아브라함과 교제를 하지 않으시고 긴 세월을 침묵하시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이 말씀을 통하여 교훈으로 얻은 것은
1. 하나님의 뜻을 세속적인 방법으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1,2절),
2. 말씀에서 벗어난 행위는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과,
3. 성도는 항상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17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본장(17장)은 전장(16장)에 비해 약 13년간의 간격이 벌어져 있습니다.(1절, 아브라함 99세 때 ) 16장에서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하여 아들을 낳은 때가 86세라고 밝히고 있고, 17장 1절은 아브라함 99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6장과 17장의 시간차이는 13년이 되는 것입니다. 13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셨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처인 사라의 말을 듣고 첩인 하갈과 동침 할 때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침묵하신 것을 합치면 아브라함은 14년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 그 뜻을 이루려고 한 것에 대한(하갈에게서 후사를 본 것) 하나님의 징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14년 만에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마디가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1절)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부족과 인본주의적인 해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행이 14년이 늦어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으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일하시도록 해야지 내가 내 방법을 써서 이루려 하면 오히려 하나님은 손을 놓으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손을 완전히 떼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오늘은 17장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징계는 하시지만, 버리시지는 않는 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지난 14년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참으로 괴롭고 참담한 날들이었을 것입니다. 믿음이 좋았던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라면 자신과 날마다 동행하시고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곁을 떠나 14년 동안 아무말씀도 안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자기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 부인 사라의 말을 듣고 첩을 얻어 자식을 낳는 큰 실수를 한 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더욱더 그런 생각이 안 들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은 그동안 결코 아브라함을 버리지도, 잊지도 않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아브라함의 잘못에 대해 징계의 일환으로 14년 동안 그에게 침묵하셨지만, 한 순간도 그를 잊지 아니하시고, 보호하시고, 지켜주셨으며 다시금 그에게 나타나 약속을 주어 아브라함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다시 한 번 본문 2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이 한번 택한 백성에 대해서는 어 떤 경우에도 그를 버리거나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잊는다할지라도,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으셨다고 우리들이 생각하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지켜보시며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버렸거나 잊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임을 기억하고 소망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이 하나님을 외쳐 불러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는 거기에는 여러분을 향해 자신의 어떠한 잘못에 대해 회개하며 근신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고 그 원인을 찾아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2.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고 그를 열국의아비가 되게 하심은 물론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의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내가”라는 말이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 게 하리라 하시니
4)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개역/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주체가 하나님 자신이시며 그렇기에 그 언약을 기필코 이루고 말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사라의 말을 듣고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이 이루려고 했던 아브라함 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강하게 내가 이룬다는 것을 믿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메세제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것은 아브라함이 특출한 인물이거나 노력으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 집안의 아브라함을 그곳에서 부르셔서 택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연약함과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배후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셨고, 시종일관 인내하시면서 섭리해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된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섭리의 결과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엡2;1),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셔서 죄에서 불러내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 당신의 거룩한 백성을 삼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의로움이나 행위를 자랑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 생명의 주권도 하 나님께 있습니다. 내 소유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 자녀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 구원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 꿈과 비전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의 일상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드리고,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원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오늘날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신앙 즉, 코람데오(Coram Deo)의 신앙입니다.
14년 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첫 말씀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만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나 대화 할 때도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임을 깨닫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예수님 닮은 언행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라가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라가 아니라, 행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보고 계 신다”는 것을 알고 행할 때 세속의 유혹을 극복하고 참 경건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는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린대” (17:3)’(와입폴 아브람 알 파나이우)
이를 직역하면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입니다. 마치 건물이 붕괴하듯 몸을 숙이고 얼굴을 땅에 붙이는 행동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14년 만에 나타나시니까 아브라함이 황급히 몸을 숙이며 엎드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것은
1)아브라함이 첩을 취한 자신의 범죄에 대한 회개
2)전능한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는 표시
3)하나님의 언약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는 복종의 표시라고 칼빈이나 케일은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참 경배에 대한 가뭄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경건한 흐름을 역류하는 것이 살아있는 성도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든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신앙이 복의 근원이 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엎드리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줄로 믿습니다.
셋째, 변화되는 신앙입니다.(17:5)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개명하여 주신 것은 단순히 이름만 바뀌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존재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가 “세상인”, “죄인”에서 ‘그리스도인“, ”성도“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름만 성도, 그리스도인이라 불리 우는 자가 아니라, 진실로 삶이 변화되고, 생각이 변화되고, 말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되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증표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겠습니다. 1.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징계는 하시지만, 버리시지는 않는 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코람데오(Coram Deo)의 신앙, 즉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지켜보고 계시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는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셋째, 진실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