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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유대교회인가? 기독교회인가?(행3:1-10)-180506낮(교회창립기념주일)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18.05.03|조회수191 목록 댓글 0

 

                          유대교회인가? 기독교회인가?

180506(교회창립기념주일)                                   (3:1-10)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아멘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 20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섬길 수 있는 교회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20년은 짧다 생각하면 짧은 기간이고, 길다 생각하면 긴 세월입니다. 그동안 교회를 허물려고 하는 수많은 사탄의 공격과 맞서 싸우면서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교회가 승리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교회가 20주년을 맞이하여 필리핀 선교지( Camella spring villie)에 기념 예배당을 건축하고(건축 진행중, 공정 40%), 감리교회가 없는 제주도 모슬포(대정읍)에 20주년 기념교회를 설립하게하시는(10월 중 창립예배드릴 예정)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교회를 작은 교회임에도 크게 사용하여 주심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의 은혜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31-10절은 베드로가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로서 무려 40년 이상을 앉은뱅이로 지내온 자였습니다.(4:22)

 

  사건의 전개로 보아 이 사람이 나면서 앉은뱅이 되었다는 것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으며 더욱이 치유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성전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곧 모든 예루살렘 백성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고 선풍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놀란 예루살렘 사람들은 성전 경내의 동편에 위치한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11-26절은 모여든 군중들을 대상으로 사도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서 행한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데, 베드로는 이들에게 그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한 후,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치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 솔로몬의 행각 설교의 결과에 따라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오천 명에 이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4:4)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단순히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 받은 사람의 수가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병 고침만 받고 말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육신의 질병만 고침 받고 끝났다면 교회의 사명을 다한 것이 못되는 것이죠? 육신의 고침뿐 아니라 영혼의 질병까지 고침 받아 이 앉은뱅이는 성전에 들어가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고, 이를 목격하고 소문으로 듣고 몰려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은 사람이 5천명이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진정한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본문 말씀을 가지고 유대교회인가? 기독교회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성전 미문 앞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구걸을 합니다. 미문(美門)은 한자대로 아름다운 문입니다. 높이가 23미터나 되는 거대한 문으로 금과 은으로 입혀진 황동으로 만들어진 이중문이어서 웅장하고 장엄하기 까지 한 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소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들의 뜰로 들어가는 출입문으로 통행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 문 반대편에는 솔로몬 행각이 위치해 있습니다. 바로 이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유대교회인가? 기독교회인가?”라고 잡은 것은 영적 의미로 우리교회가 유대교회가 아니라 기독교회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유대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큰 은혜가 되시기 바라며, 교회의 참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중문한사랑교회가 여러분에게는 중앙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했습니다.

 

  오늘날은 수많은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32천여 개 정도 되는데 여기에 등록되지 않은 군소교단의 교회들까지 합치면 7만여 개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 중에서 여러분은 중문한사랑교회를 선택하여 다니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선택하고 등록하여 적을 두고, 성일마다 와서 예배드리고 수시로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내 교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영혼을 맡기고 영적으로 의지하고 믿음생활의 지도를 받으며 설교를 듣는 목회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한국교회에 기러기 교인들이 엄청나다고 그럽니다. 이 교회가 내가 평생 섬길 교회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평생 나의 목자이다 믿고 섬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교회 갔다가 내일은 저 교회 갔다가.., 자기교회 개념이 희미해져서 형편에 따라 가깝고 편리한 곳에서 예배드리는 이들이 많아 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중앙 성소 개념이 사라지고, 편리주의가 들어오고, 주일 낮 예배 한 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그래도 되려니 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권사님 어머니 권사님이 지금은 소천하셨지만, 아들이 목회를 하시는데, 어머니 아들하고 같이 사세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는데, 이 어머니 권사님은 아니다. 나는 지금껏 내가 섬기던 교회 다니다 여기서 천국 갈란다...그러시면서 소천하실 때까지 혼자 사시면서 평생 섬기던 교회를 나가셨다는 거예요... 옛날 어른들은 대부분 이러셨죠....요즘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귀한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서울에 우리 본 교회(서대문지방 낙원교회)에 이년춘 장로님이 계셨는데, 이분이 파일럿 출신이셨는데,,, 서울 교회 근처 사시다가 전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그때 제 기억으로 내외가 집사셨을 때로 알고 있는데....이분들이 매주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예배를 드리고 내려가시는 거예요... 처음 몇 주 그러다 말겠지.... 모두들 그렇게 생각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매주 올라오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전주에서 학원을 차리셨는데... 전도를 해서 아예 버스를 대절해서 버스로 한차씩 서울로 사람을 데리고 와 예배를 드리고 내려갑니다. 하루 이틀이죠.... 나중에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셨습니다. 그러고도 계속 매주 관광버스로 한차씩 자기가 전도한 교인들을 데리고 서울 본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즘 우리에게는 이런 중앙성소 개념이 사라져 안타깝습니다. 평생 내가 섬겨야할 교회, 내가 지켜야할 예배자리가 없습니다. 목회자로서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중에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를 시작하셔서 같은 연회였기 때문에 연회에서 목사 안수 받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울 본 교회 목사님이 안수보좌 하러 오셨고, 저도 우리 지방 전도사님이 안수 받으실 때 안수보좌를 하게 되어 같은 연회에서 제 본 교회 담임목사님과 제가 안수 받는 분은 다르지만 한 연회 목사 안수식에서 안수보좌를 하게 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고 묘한 감동을 받는 계기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분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와 요한이 그 바쁜 사역가운데도 꼭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다른 곳에 기도처를 마련할 수 있고, 그때그때 있는 곳에서 편리하게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꼭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올라 갈새는 어쩌다 한 번 올라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이 성전에 올라 왔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아네바이논, 미완료과거형태) 습관적으로 자주하였던 행동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습관적으로 성전에 올라와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여러분의 중앙 성소로 삼아야 늘 이 성소에 올라와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에 여러분의 기도자리가 있고, 예배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 신앙이 현대에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죽어서도 누군가의 신세를 지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을 때만 여러분의 담임목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죽어서도 저는 여러분의 담임목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저는 여러분의 임종을 지키고, 임종예배를 드리고, 운명하면 기독교 장례절차에 따라 여러분의 시신을 염을 하고, 입관예배를 드리고, 발인예배, 하관 및 화장예배를 인도합니다. 평생 믿음생활 했는데 이교회 저 교회 전전하다보니 자기 담임목사님도 없어서 장례를 집례해줄 목사를 구하는 이들도 있더라구요...전혀 모르는 목회자가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의식에 지나지 않는 장례가 여러분의 장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평생 함께 동고동락하고 함께 하나님 섬기면서 이런저런 추억이 있는 그래서 천국에 보내는 것이 안타깝고 못내 아쉬워서 눈물지며 장례를 치러드리고 교인들도 환송하며 찬양을 불러드리고, 울어줄 수 있는 그런 그야말로 교회의 아름다운 천국가족의 모습이 마지막 내 모습이기를 원하시는지요?

 

 저는 여러분이 우리 중문한사랑교회를 여러분이 중앙 성소로 삼고 믿음생활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이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탄식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주일마다, 예배 때 마다 이 성전에서 예배하는 성도, 주의 종과 성도들끼리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고 함께 하나님 섬기며, 함께 주의 일 하며, 함께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성도가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1절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제 구시 기도시간을 지키려고 성전으로 가는 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성전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다니엘)

그들의 시간으로 3, 6, 9시에 기도 했는데, 이는 오전 9, 정오12,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여러분 사도들이 당시에 얼마나 분주 했겠습니까? 성도들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예배 인도하고, 구제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반드시 성전에 가서 기도드리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주님은 전날 귀신들린 소년을 고쳐주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는 이러한 귀신을 쫓아 낼 수 없다고 교훈하셨습니다.(9:28-29) 그리고 주님도 늘 기도에 힘쓰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활 중에 가장 큰 특징은 기도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2:46, 4:24-31, 13:2-3) 그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의 권능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늘 기도하지 않았다면 성령의 권능을 나타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능력을 행하는 것은 성령 충만 할 때만 가능하며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나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기도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11:13, 4:31)

 
  저나 여러분이 기도를 게을리 하면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지 않고
, 대신 나의 정욕과 탐심과 무지가 내 영혼을 장악하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은 소멸되어 가고 그 대신 인간의 본성과 정욕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거룩하신 성령의 권능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도, 교회의 봉사도, 전도도 성령의 권능을 힘입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신령한일들입니다. 우리가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도를 게을리 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권능 속에 살고, 또 그 권능을 세상에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어야 합니다.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3:5-6)

 

  5, 6절을 보면 교회가 세상에 정말로 주어야 할 것이 무었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걸인은 제자들이 주목하자 은금을 원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요.. 그저 사람들이 던져주는 몇 푼의 돈이 앉은뱅이 걸인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사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동전 몇 닢 주겠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귀를 울린 것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은과 금이 큽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큽니까? 은금이 소중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소중합니까? 교회가 세상에 주어야 하는 것이 은금입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까?

 

  중세에 한 교황이 사제들을 모아놓고 아주 흡족하게 말했습니다. “교회 창고에 재정이 넘쳐납니다. 사도들이 은금은 내게 없거니와하고 말하던 시대는 지나갔소이다.‘ 그러자 곁에 있던 중세의 유명한 철학자요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황폐하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참으로 깊이 새겨듣지 않으면 안 될 일화입니다.

 

  흔히 현대를 물신숭배시대라고 말합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런 까닭에 돈이 최고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풍조는 성도들의 의식까지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많은 돈이 추한 자를 정하게 하지 못합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불신앙의 완고한 마음을 복음을 받을 만한 옥토로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천년 전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이천년 전에 추한 자를 정하게 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추한 자를 정하게 하십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만듭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와 같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라도 능히 해결하십니다.

그러므로 정말 교회가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을 향해 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인 줄로 믿습니다.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9: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2:2-3, “2)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
3:6) ,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아르귀리온 카이 크뤼시온 우크 휘파르케이 모이/ ( Άργύριον καί Χρυσίον ούΧ ύπάρΧει μοι )

 

  베드로의 이 선언은 단순히 자신에게 물질을 바라는 앉은뱅이의 바램을 일언지하에 포기시키는 의미 외에 중요한 내적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은과 금이라는 표현은 금, 은으로 장식되어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미문처럼 껍데기만 남아 형식적인 종교로 타락한 유대교를 빗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앉은뱅이가 앉아있는 공간적인 배경이 되는 현장은 성전 미문입니다. 이 미문은 유대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 입구의 사치스러운 문이지만 정작 유대교는 성전의 화려한 외양에 비해 이미 능력을 상실하여 앉은뱅이를 비롯하여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없거니와라는 표현은 자신이 이제부터 행할 일은 물질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의 더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적선을 베풀 생각은 않고 그의 불구인 몸을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는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무리들이 비록 물질적으로는 퐁요롭지 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가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외양과 형식에 치우쳐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상실한 유대교가 줄 수 없는, 자신의 생명을 죄인을 위하여 희생함으로 인류를 구원한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만이 줄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걸으라”(에게이레 카이 페리파테이/ έϒειρε καί περιπάτει )에 해당하는 페리파테이는 현재명령형이지만, 지속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명령형입니다. 그러니까 나면서부터 40년간 앉은뱅이로 살던 이가 일어나 걷게 된 것은 한번 반짝쇼로 일어났다 다시 주저앉는 일시적인 효과가 아닌 영구적이고 완전한 치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통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40년간 말라붙어 있던 앉은뱅이의 한스럽고 초라한 다리의 근육에 단번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었을 뿐 아니라 이제 다시는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지 않도록 하는 참 능력이요, 인생 자체가 바뀌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또한 8절 말씀에 보면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자신이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보인 반응이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예수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장애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건강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은과 금이 풍부하고 화려함과 형식의 매끄러움을 자랑하지만, 앉은뱅이에게 고작 해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미문 앞에 구걸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어 평생 구걸해먹고 살도록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생명이 전혀 없는 박제된 종교에 불과하지만, 베드로가 외치는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소유한 기독교는 앉은뱅이의 메마른 다리를 고쳐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 치유하고 인생자체를 바꿔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의 금은보화와는, 유대교가 자랑하는 화려한 미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값진 보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속의 은혜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가 기록한 베드로 전서에서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의 신앙이 금보다 귀한 것이라고 했고,(벧전1:7)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도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보배라고 했습니다.(벧전1:18) 또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믿음이 보배라고 고백했습니다.(고후4:6-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의 보배들은 사람의 육신은 즐겁게 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영혼은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또 세상의 보배들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쓰기 시작하면 금세 없어집니다. 또 도적질 당하기 쉽고, 사람으로 더러운 정욕과 이기적인 자로 만들게 하여 물질 때문에 이웃과 가족과 친지끼리 다투게도 만듭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고 하나님 대신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게 만들어 멸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유대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버리고 세상보배를 취하므로 생명 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 은혜는 참된 보배입니다. 그것을 지닌 사람은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세상보배로 얻을 수 없는 하늘의 은총을 얻게 만듭니다. 사죄함을 얻게 하고, 성령을 모시게 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만듭니다. 또 사람으로 하여금 거룩한 성품을 지닌 자로 만들어 갑니다. 영원한 것을 버리고 잠깐 있다 없어질 것을 취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놓고 물질을 움켜쥐지 마십시오. 우리교회는 유대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유대교인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 안에 있는 기독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유대교회입니까? 기독교회입니까?

당신은 유대교인입니까? 기독교인입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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