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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창세기 강해 11.그래도 믿음의 가정이 낫습니다.(창19:1-11)-180513낮(어버이주일)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18.05.11|조회수203 목록 댓글 0


창세기 강해(11) -----------

                                   그래도 믿음의 가정이 낫습니다.

180513(어버이주일)                                   (19:1-11) 

 

<1)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지난주일은 어린이 주일이자 우리교회 창립기념 주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무엇인가 불신자들의 가정보다는 달라야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하고 있고,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즘 세상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구분이 잘 안갑니다. 믿음의 가정이나 불신자의 가정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걱정들하고 한탄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님도 그러실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래도 믿음의 가정이 낫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악이 관영하여 소돔과 고모라 같아도 희망은 여전히 믿음의 가정에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창19장은 전장(18)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밝혔듯이 소돔성을 멸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심판예고대로 소돔성을 유황불로 심판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돔성에 유황불을 내리시기 전에 두 천사가 소돔성을 방문합니다. 이때 롯이 두 천사를 강권하여 집에서 유숙하도록 하고 극진히 대접합니다. 두 천사가 잠자리에 들기 직전 소돔성의 모든 사람들이 원근과 노소에 관계없이 모여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의 집에 온 사람을 끌어내라 오늘 우리가 그들과 상관하리라고 말합니다.

  4-5절을 읽겠습니다.

 

  <4)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여기서 상관하리라는 말은 동성 간의 성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 한 구절에서 우리는 소돔성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롯이 자기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뒤로 문을 닫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에게 이런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고 사정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에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으니 차라리 내 딸들을 내어 줄테니 내게 들어온 손님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간청합니다.

  6-8절을 읽겠습니다.

 

  <6)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이때 소돔사람들이
너는 물러나라 네가 나그네로 우리 성에 들어와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고자 하느냐며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 이때 두 천사가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문을 닫고 문밖의 무리의 대소를 막론하고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9-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9)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비록 롯이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 물질의 풍요를 쫓아 소돔과 고모라까지 들어와 살게 되었지만, 아직도 롯만큼은 심성이 완악하져지지 않고 여호와의 신앙을 지키고 살아왔음을 보게 됩니다. 롯의 집에 들어온 나그네(천사)를 끌어내어 동성관계를 하자고 몰려든 사람들은 소돔성의 모든 사람으로 노소가 다 모여들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나이 많은 늙은 사람에서 나이어린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이미 다 동성관계에 중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롯은 오히려 그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영접하여 극진히 대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롯 자신도 돔성의 죄악에 물들지 않았고, 두 딸 역시 아직까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적으로 무분별하고 완전히 타락한 도시에 살면서 롯의 두 딸들은 성장하도록 순결을 지켰음을 보게 됩니다.

 

  다른 곳에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유황불로 심판하실 정도로 타락한 소돔성에서 믿음의 가정을 지켜 왔다는 것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더구나 롯 본인이나 두 딸들도 순결을 지켰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롯이 믿음을 지키고 가정을 믿음으로 이끌지 않았다면 두 딸이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며 지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롯의 가정에서 희망을 본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악하고 성적으로 타락했어도 믿는 가정이나 불신 가정이 다를 게 없다고 해도 그래도 믿음의 가정이 낫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도 믿음의 집안이 낫습니다. 그래도 믿는 가정의 자녀가 낫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가정을 잘 이루세요. 믿음의 집안에 시집보내고 장가들이세요... 돈 많다고, 인물 좋다고, 직장 괜찮다고 불신가정이라도 서슴없이 결혼시키지 마시고요.... 한번 따라합시다. <그래도 믿음의 가정이 낫다!>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실 때, 유일하게 심판을 면한 가정이 롯의 가정입니다. 이 세대에 하나님이 심판 하신다면 유일하게 심판을 면할 가정이 바로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가정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합니까? 믿음의 가정으로서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할까요?

 

 

1.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상 2장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와 한나 여인의 아들 사무엘을 대조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2:12)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삼상2:18)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아들들을 가리켜 불량자라고 하셨습니다. 불량자라는 의미는 가치가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제사장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예배를 멸시함으로써 하나님께 무가치한 자들이 되었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취하는 등의 악행으로 하나님께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에게도 무가치한 자가 되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들은 얼마 후 하나님의 말씀처럼 전쟁에서 함께 죽임을 당했고 또한 전쟁에 패함으로써 백성들까지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이 같은 차이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 그것은 그들의 부모가 그들을 어떻게 양육했느냐에 달려있음을 성경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의 경험입니다. 이웃교회의 집사님 부부가 고민을 이야기하더라는 겁니다. 믿음 좋으신 부부 집사님들이십니다. 그 아들도 믿음이 좋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입학하기도 전에 중고등부 교사로서 헌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개학하고 학교에 가자마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학교 동아리 모임에서 자꾸 술을 마셔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시잖아요. 대학생들 동아리에서 엠티 가가지고 술 마시고 죽는 자식들 종종 뉴스에 나옵니다. 그래서 이아들이 부부집사에게 그 고민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 부모님도 고민이 돼지요. 그래 엄마 집사님은 뭐라고 답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빠 집사님은 적당히 알아서 마셔라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겁니다. 과연 이렇게 답하는 아빠 집사가 경건한 가장이 될 수 있을까요? 술 마신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거 아닙니다. 술 마신다고 지옥 가는 거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작은 시험도 못 이겨내면 앞으로 돈 앞에서, 권력 앞에서, 쾌락의 유혹 앞에서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아버지는 자신이 이런 시험 앞에서 맥도 못 추고 무너지는 사람입니다. 이런 가장이 이끄는 가정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이 머물 수가 없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 그 자식도 나중에 그런 가정을 이끌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이 자꾸 예배드리기 싫어하고
, 게으름 피우고, 예배 빠지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합니까? 그래서 속상합니까? 그러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됩니다. 그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이라는 것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 같고, 말을 할 땐, 철저한 신앙인 같은데, 정작 결단이 필요할 때, 적당히 타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신앙의 결단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환경을 뛰어넘고 자신의 상황을 뛰어넘는 믿음의 결단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2.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해야 합니다.

  링컨의 어머니 낸시는 개척자의 아내로서 무수한 고난과 빈곤과 싸우면서도 링컨에게 두 가지를 가르쳤답니다.

 

  얘야! 나는 너를 두고 하나님 앞으로 먼저 간다. 나는 네게 좋은 집도, 좋은 땅도, 많은 재산도 물려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네게 이 성경책 한 권을 유일한 유산으로 주고 간다. 너는 한 평생 이 가운데 있는 말씀으로 보배를 삼고, 재산을 삼고, 양식을 삼아 이 교훈대로 살아 나가거라그러면 네 길이 형통할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얘기보다는 성경이 그에게 얘기하게 하고 책이 그에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어머니는 링컨의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새엄마 사라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위대한 분입니다. 아버지 토마스는 링컨이 장작 패는 일이나 하며 평범한 농부의 길을 걷기를 원해서 성경과 책을 읽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때마다 사라는 그의 남편을 설득합니다.

 

  '나는 링컨의 엄마예요. 링컨을 낳아준 엄마 낸시처럼 키우고 싶습니다. 낸시는 성경의 가르침과 책의 가르침을 통하여 아이를 양육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성장시키고 싶습니다. 협력해 주세요.'

 

  링컨은 어머니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의 잘 한 것은 우리 어머니 덕입니다. 두 어머니께서 나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유산은 성경의 가르침과 책의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머니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링컨은 우리가 잘 아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고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딤후3:15-1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3:15-17, “15.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수학문제, 영어문제, 국어문제... 한 문제 더 풀고, 문제를 맞고 틀리는 것에 온 신경을 쓰고, 투자를 하는데.... 정작 하나님 말씀은 자녀들에게 얼마나 들려주며, 보게 하며, 가까이 하게 하는지요?


  오병이어의 주인공이 된 어린이가 자기 스스로 도시락을 싸들고 예수님 말씀 들으러 광야 빈들로 나갔을까요? 그의 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서 예수님께 말씀을 듣고 오라고 보냈던지...아니면 직접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빈들로 나갔겠죠? 부모로서 자녀가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인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부모는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2: 51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요셉이 세상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실 때까지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셔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을 때도, 효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19:26-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면서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늙으신 어머니 마리아의 노후를 이렇게 부탁합니다.

 

  “26.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어머니 마리아의 노후를 걱정하는 효자로서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자기 연로하신 부모님의 공경에 대한 의무 소홀함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악행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가정생활을 강력하게 주문하였습니다.

  딤전5:8을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가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효도교육을 시키지 못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들이 잘못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됩니다.

 

  22:6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자의 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효도에 대한 도리를 반드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가 먼저 우리의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마음을 담아서 신실하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자녀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면, 그들은 나이가 들수록 빛이 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존귀한 자로 보배처럼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어머니가 어느 날 밖에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났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순간적으로 집안에서자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망설임도 없이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 두 아들을 이불에 싸서 나왔습니다. 이불에 싸인 아이들은 무사했지만 어머니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다리를 다쳐 절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거지가 되어 구걸을 하면서 두 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희생 덕분에 큰 아들은 동경대학에, 작은 아들은 와세다 대학에 각각 수석으로 입학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 졸업하는 아들이 보고 싶은 어머니는 먼저 큰 아들이 있는 동경대학을 찾아갔습니다. 수석졸업을 하게 된 아들은 졸업과 동시에 큰 회사에 들어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의 눈에 수위실에서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귀빈들이 오는 자리에 거지 어머니가 오는 것이 부끄러웠던 아들은 수위실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하라" 고 전했고 어머니는 슬픈 얼굴로 돌아섰습니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서러움에 자살을 결심한 어머니는 죽기 전에 둘째 아들 얼굴을 보고 싶어 둘째 아들이 졸업하는 와세다 대학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교문 밖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 마침 이러한 모습을 발견한 둘째 아들이 절뚝거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부르며 달려 나와 어머니를 업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사람을 잘못 보았소" 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졸업식장의 귀빈석 한 가운데에 앉혔습니다.

  값비싼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한 귀부인들이 수군거리자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수석으로 졸업하는 아들이 답사를 하면서 귀빈석에 초라한 몰골로 앉아 있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자신을 불속에서 구해 내고 구걸을 해서 공부를 시킨 어머니의 희생을 설명했고 그제야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소식은 곧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게 되어 둘째 아들은 큰 회사 오너의 사위가 되었으나 어머니를 부끄러워한 큰 아들은 입사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6: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내 자녀가 주님을 만나도록...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최소한 믿음의 부모들은 내 자녀가 믿음의 가정을 꾸리는데 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 자녀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10:13절을 읽어볼까요?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님 당시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왜죠? “만져주시길 바라고입니다. 여기 만져주신다는 표현은 영어로 ‘Touch’입니다. 즉 자기 아이들을 예수님께 접촉시켜 주려고 데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터치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식들에게 예수님의 손길이 터치되길 축원합니다. 그냥 만져지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래서 주님과 연합되고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예수님께 가고 싶어서 데려왔겠습니까? 부모들이 보기에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믿어지니 강제로 데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제자들이 길을 막아도 달려들어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 했던 것입니다.

 

  본문에는 기록이 안 나와 있으나 제가 예측하건데 이 본문에서 축복을 받은 아이들은 분명 엄청난 인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이 아닌 주님의 위대한 인물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안수기도를 해 주셨는데 어찌 그 기도가 땅에 떨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내 자녀가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처럼 자녀가 배필을 만나는 문제에 있어서도 믿음 좋은 배필을 만나도록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공부만 가르쳐 놓고 어떤 남자를 만나든, 어떤 여자를 만나든 관심이 없거나 방임하면 안 됩니다. 결혼함에 있어서 믿음 좋은 배필을 선택 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하는데 까지 부모가 책임지고 신경 써야 합니다.

 

  24:3-4, “3.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그들이 거주하는 가나안땅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족속에서 며느리를 찾지 않고 자기 고향 자기 족속이 사는 먼 곳까지 종을 보내어 며느리 깜을 찾아오게 합니다. 그가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롯의 가정을 통해서 보듯 그래도 믿음의 가정이 낫고, 그래도 믿는 집안의 자녀들이 낫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이 믿음의 집안과 자녀로서 그래도 불신자 가정보다 낫고, 불신가정 자녀들보다 낫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가정으로서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의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하고, 자녀에게 효도를 가르치고, 자녀들이 주님을 만나게 하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데 까지 책임지는 부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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