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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창세기 강해 12.아브라함의 실수(창20:1-7)-180520낮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18.05.17|조회수219 목록 댓글 0

창세기 강해(12) ------------

                                                                    아브라함의 실수

180520낮                                                   (20:1-7)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아멘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후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진 이래 약 20여 년 동안 정착했던 가나안땅 헤브론의 마므레를 떠나 남방 그랄 땅으로 이주한 직후 발생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임으로써 사라가 아비멜렉의 첩이 될 뻔한 사건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통치자는 그 땅의 어떤 여자라도, 심지어 타국에서 일시적으로 방문한 자라도 마음에 들면 후궁으로 취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똑 같은 실수를 24년 만에 똑 같은 이유로 똑같이 저지르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75세 때(12:10-20) 저지른 죄를 99세 때(본문) 동일하게 저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는 습관적이요, 답습적(유전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도 24년 만에요...한번 저지른 죄는 또다시 쉽게 빠져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는 그 뿌리 채 뽑아내고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으면 십년 이십년 후에도 반드시 다시 우리를 넘어지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창26장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이유로 똑같이 자기 부인을 누이라 속이다 부인을 빼앗길 뻔 한 실수를 저지릅니다. 죄는 답습되고 유전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4년 전에 애굽에서 저질렀던 실수의 재현으로 분문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인간의연약함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은 죄에 대하여 부단히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10:9-11, 12:1)

 

  오늘은 본문 말씀의 사건, 즉 아브라함이 24년 만에 똑 같은 실수로 자기 부인을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길 뻔 한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을 얻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성도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헤브론 마므레 수풀 근처에서 살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남방 그랄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1절 읽어보겠습니다.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리고 그랄 이주 직후 그랄 사건 곧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아비멜렉의 첩으로 빼앗길 뻔했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절 읽어보겠습니다.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이것은
24년 전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이주했을 때의 실수의 재현이었습니다.(12:10-20)

결국 이러한 사실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여 갈 때 실패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악한 마귀가 공중권세를 잡고 있고(2:2) 악의 세력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 스스로는 이들의 공격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비록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그의 약속의 말씀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품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곤경에 처해있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를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더욱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위에 굳게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2. “거할 곳과 떠나야할 곳을 구별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1)

  1절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아브라함이 거할 곳에 거하지 못하고
, 떠나야 할 곳에 머물다 위기와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2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머물다가 무슨 이유인지 그곳을 떠났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종종 수렁과 어려운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은 가지 말아야할 곳을 가거나, 머물지 말아야 할 곳에 머물거나, 머물러 있어야 할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해서 당하는 손해와 수치가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일(주일)에는 주의 몸 된 성전에 있어야지, 일터에 있으면 안 됩니다. 예배시간에는 예배당에 있어야 합니다. 이사도 잘해야 합니다. 직장도 잘 구해야 합니다. 내 중심이나 세상 가치관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이사도 해야 하고, 직장도 구해야 합니다.

술좌석, 도박판, 음란한 장소 등등은 성도가 머물 곳이 아닙니다. 주일날은 성전에 거하고 일터와 세상은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품에 영원히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 품을 떠나 세상으로 가서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그곳이 그랄 땅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머물러야할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품을 떠나 멀리 가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돌이켜 언제든지 팔을 벌리고 계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머물러야 할 곳과 떠나야 할 곳을 잘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진리를 거스른 인간적인 처세술은 더 큰 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2절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한 것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처세였습니다.

 

  2절 읽어보겠습니다.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아브라함의 입장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라는 본래 아브라함의 이복누이로서 아브라함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한 것은 진리를 거스른 인간적인 처세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이런 솔직하지 못한 인간적인 처세술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인간적인 처세술은 더 큰 문제와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24년 전에도 아브라함은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도 이런 진리를 거스른 인간적인 처세술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가 부인을 잃을 뻔한, 그리고 불신자에게 큰 수치를 당한 경험을 했으면 두 번 다시 똑같은 처세술을 쓰지 말아야하는데, 아브라함은 똑같이 진실하지 못한 인간적인 처세술을 또다시 썼다가 역시 동일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진리를 떠난 인간적인 처세술은 결코 선한 결과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나쁜 결과만 낳는 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성도여러분!

  악은 악을 낳을 뿐입니다. 악이 결코 선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결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십시오. 선한 하나님에게서만 선이 나올 수 있습니다.

  42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4:24)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갈자 없습니다. 그는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누가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주시고, 상급이 되어주시고, 열국의 아비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수치스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일부분입니다. 그가 얼마나 두려움이 많고, 연약한 인간인지 보여줍니다. 24년 전 실패했던 처세술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똑같은 위기를 당하는 어리석은 모습도 있습니다. 자기 부인을 지켜주지 못하고, 자기 하나 살자고 누이라고 속이는 치졸한 남편의 모습을 두 번이나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해도, 인간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그는 인간일 뿐임을 알게 해줍니다. 여전히 연약한 인간이요, 죄에 노출되어 있는 인간이요,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실패하는 것이 인간이요, 아무리 기도 많이 해도 언제나 무너지고 쓰러질 수 있는 것이 인간임을 알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내 생명, 내 믿음, 내 재물, 내 건강, 내 사랑하는 자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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