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3) ------
내가 아들을 낳았다!?
180527낮 (창21:1-7, 16)
<1)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아멘
<16)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아멘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권고하사 그의 몸에서 아들 이삭을 출산하게 하시는 기적적인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축하하고 기뻐할 일입니까? 아브라함의 집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향 갈데아우르를 떠난 지 25년 만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조급한 나머지 중간에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 보려고 했던 첩을 통해서 자식을 낳은 일이 있었지만, 그 후 온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려 약속의 자녀를 얻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승리요, 인내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의 성취로 인한 기쁨과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정실부인과 첩, 적자와 서자의 관계에 있게 된 사라와 하갈,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가 끝내 파경을 맞아 하갈 모자가 추방되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보도하는 두 문단에서 삶의 과정에서 한 번 잘못 뿌려진 인간의 실수는 끝내 커다란 불행의 열매를 모든 당사자에게 맺게 하고야 만다는 엄숙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용납하지 못했던 사라와 하갈 등 인간 모두의 근본적인 한계를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델로 삼은 믿음의 가정인 아브라함의 가정도 이런 미움과 시기, 본처와 후처의 자식으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랑으로 허물을 덥고 공동체를 보전하지 못한 것을 보면, 이런 갈등의 문제가 인간사에서 참으로 극복하기 힘든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가장 힘든 부분으로 경험해 오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이런 부분을 염두 해 두고 말씀을 한절 한 절 읽으며 의미를 파악하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가운데 역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1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הוהיו, 와이흐와)”
일반적인 히브리어 문장은 동사로 시작하나 여기서는 여호와란 고유명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21장에 서 전개되는 모든 역사, 즉 하나님께서 수차례에 걸쳐 언약의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약속(12:2, 15:4-5, 17:16, 21, 18:14)이 이루어지는데 그 모든 것을 약속대로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21장을 시작하면서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밝혀야 될 분명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두번이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2. 2절과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5)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세라>
2절,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서”
5절에, “....백세라”
아브라함이 최초 약속을 받아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25년, 그의 아내 사라는 90세가 되었고,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 되었을 때 드디어 후사를 주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나이를 분명하게 백세라고 밝히는 것은 아브라함 자신이 이미 죽은 자와 같은 나이(히11:12)인 늙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을 낳을 수 있도록 하신 일이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이라는 것, 단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도록 인내를 잃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이같이 성도들 누구든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으며 약속 에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인내하며 살아가는 믿음과 용기를 가질 때, 아브라함과 같이 인간이 능히 상상치도 못할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음을 깨달으시라는 말씀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능성이 보인다면 많은 사람들이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지고, 환경은 더욱 절망적이 되어 간다면 어느 누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면서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100세라고 밝히는 것은 그 어려운 것을 아브라함이 해냈다는 것입니다. 인내하며 기다려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3.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여기서 ‘이삭’은 ‘웃는 자’란 뜻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웃음을 주는 자입니다. 기쁨 그 자체입니다. 복덩어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웃음을 주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복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웃음을 주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근심이 되지 맙시다. 목회자의 근심도 되지 말고, 교회의 근심도 되지 맙시다. 이삭이 됩시다. 웃음을 주는 자, 기쁨을 주는 자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4. 1절과 7절을 대조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1절과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7)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 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1절은 분명이 하나님이 행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사라가 자기가 했다고 큰 소리 칩니다.
다음 구절들을 읽어 보겠습니다. 16:1절과 18:11절입니다.
<창16: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창18:11)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6장 1절에 보면 분명히 사라는 본래 출산하지 못하는 여인이었고, 18장 11절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너무 많아 자식을 생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라는 여성으로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생리가 끊어졌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사라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게 된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대로 사라를 돌아보셨고, 하나님이 사라에게 행하신 일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라가 아이를 낳고 난 후에 7절에서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다’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리고 오늘 16절에 보니 <16)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첩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에 의해 쫓겨난 후 먹을 물과 양식이 떨어져 뜨거운 태양아래서 아들 이스마엘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식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며 방성대곡(放聲大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은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가 자기의 의나 공로를 내세우며 큰소리를 치게 되면 반드시 그 공동체는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했다고 큰소리치며 자기 공로를 내세우는 순간 누군가는 상처입고, 눈물 흘리는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절대로 자신의 공로나 주장을 내세우면 안 됩니다. 설사 자기가 많은 일을 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영광과 공로를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공동체는 더욱 은혜롭게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가 하지 않으면 협력하지 않고 뒷짐 지고 어디 잘하나 보자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속상해하고, 심지어는 시험 들어 교회도 안 나오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다 내가 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누군가가 하겠지 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루고 난 후에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 공로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해서는 안 됩니다. 박수를 받지 못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고,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일입니다. 그 자체가 축복이요 상급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칭찬받으면 저는 이미 자기상을 다 받은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잠깐 동안 칭찬 받으려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상급과 축복을 날려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시편115편 1절에서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라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이 있습니다. 2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한에...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성급한 기대와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도 결코 취소되거나 변질되지 않고 마침내 성취된 하나님의 언약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본문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라가 이삭을 낳은 기적을 창출한 것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노년, 불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목적하신 뜻을 온전히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창21:1, 5, 7) 그러므로 오늘 본문 7절의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라는 사라의 자랑은 기적의 창출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깨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내 공로를 내세우거나 자기를 앞세우면 누군가는 아파하는 사람이 생기고 공동체는 좋은 공동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만 높여드리는 신앙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으로 살아야 함을 교훈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삭은 택함 받은 사람이요, 이스마엘은 택함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갈과 이스마엘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고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창21:13, 18) 여기서 하갈과 이스마엘이 받은 은총은 일반은총 이요, 이삭이 받은 은총은 특별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특별은총으로 살아야 합니다. 택함 받은 자녀가 일반 은총으로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즉 이삭으로 살아야지, 이스마엘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삭처럼, 택한 자녀요,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삭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인데, 이스마엘로 살아가는 이삭이 많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여러분은 이삭입니다. 이삭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 웃음을 드리는 자녀,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복덩어리가 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