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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창세기 강해 15.시험과 순종(창22:1-6)-180610낮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18.06.08|조회수154 목록 댓글 0

창세기 강해(15) ------------

                                                      

                                                          시험과 순종

180610                                                 (22:1-6)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아멘

 

 

  221절에서 19절까지는 구약의 갈보리 사건으로 불리는 이삭희생제사사건과 관련된 기사가 세 단락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1-8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바칠 것을 명령하시는 것으로 시작하여 아브라함이 3일 길을 가서 이삭 희생 제사를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고요.

  9-14절까지는, 아브라함이 실제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리려는 찰라 하나님이 당신의 사자를 보내어 아브라함을 제지시키고 대신 하나님이 미리 준비 해 두신 숫양으로 아브라함이 제사를 마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고,

  15-19절까지는, 제사를 마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부르사 땅과 후손의 언약을 아브라함 생애에 있어서는 최종적으로 재 수여하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생애 최대의 사건이었던 이삭 희생제사 사건은 한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또한 역으로 하나님이 인생에게 요구하시는 믿음과 순종의 절대 경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삭 희생제사사건을 이해함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정도를 시험하기 위한 표면적인 목적 이외에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 인간의 구원을 위한 구속의 필요성과 희생 제물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로 보여 주시고자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절대 전능전지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굳이 시험하지 않으셔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 아시는 분인데..꼭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런 시험을 하시는 것은 아브라함 개인 자신과 그의 육적인 후손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그의 영적인 후손인 만 세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과 절대 순종의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뿐 아니라 젊은 아들 이삭의 믿음과 순종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삭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의중을 파악한 후에도 노쇠한 아비를 거스리고 도망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아비와 그 아비의 하나님이요 자신의 하나님이기도 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마지막 순간까지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수천 년을 흐른 오늘날에도 우리 믿음의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가슴 저미게 하고, 심금을 울리는 구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바로 지금 드리러 가고 있는 번제의 제물인 줄 아직 모른 채 제물로 쓸 어린 양은 어디 있냐고 묻는 이삭의 물음에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한 아브라함의 대답이고,

  둘째는, 이삭 대신 하나님이 준비 해 두셨던 숫양으로 번제를 마친 후 아브라함이 그 땅을 여호와 이레라고 부른 부분입니다.

 

  8절의 말씀과 14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초대 교부 오리겐(Origen, A.D. 185-254)은 진정으로 구원 받은 성도는 누구나 이 이삭 희생제사가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믿음과 순종의 정수가 기록되어 있는 창22장의 말씀 중 1절에서 6절까지 보면서 <시험과 순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test)(22:1-2)

  ->합격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정(22:12)과 복(15-19)

마귀의 시험(temptation/유혹)(22:7)

  ->이겨야 한다 ->능력과 성숙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에게 제일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 맞습니다. 100세 때 얻은 독자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이삭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데, 아브라함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지고 시험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있어서 독자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것으로 여러분을 시험하십니다. 그것 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테스트 하신 것입니다.

  1) 얼마나 약속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믿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100세 때 독자 이삭을 주셨고, 그 이삭을 통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기업을 이어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증표를 다시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약속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스스로 해놓으신 약속을 어기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믿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2) 얼마나 순종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아브라함이 얼마만큼 순종할 수 있느냐?을 알아내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자식에게 집착할 것인가?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축복 받고 난 후에도 변함없이 순종하는가? 축복 받은 후에도 변함없이 믿음생활 하는가? 입니다.

사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순된 것입니다. 윤리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신인제사를 절대적으로 싫어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으로 모순입니다. 스스로 약속을 뒤 집어 엎으시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순종하는가? 를 보시고자 함입니다.

 

  이 시험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11:19),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으로 당신의 약속을 능히 이루실 줄 믿고(4:17-22) 신속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합니다.

 

  3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9절과 10절을 읽겠습니다.

<9)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믿음이요 순종입니까? 아브라함은 이로 인하여 오히려 사랑하는 독자도 잃지 않았고, 더 큰 축복과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순종은 어떤 순종일까요?


1. 아브라함의 순종은 끝까지 순종입니다.(22:2)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한 구절에 하나님은 네 가지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모리야 땅으로 가서

2) 한 산

3) 거기서

4) 번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4가지 요구에 끝까지 순종합니다.


 

2. 아브라함의 순종은 즉시 순종입니다.(22:3, 17:23-27)

  본문 3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독자 이삭을 번제의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으로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날이 밝자마자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창1723-2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3)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의 표시로 할례를 시행하라는 말씀에 당일에 할례를 시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99세 된 할아버지가 성기의 표피를 잘라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자기뿐 아니라 자기에게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 아브라함의 순종은 말씀대로만 하는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조금도 주점함 없이 즉시 순종합니다. 그것도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합니다.

 

  대상 13장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오는데, 새 수례를 제작하고 연도에 수많은 환영인파를 동원하여 법궤를 수례에 싣고 옮겨 옵니다. 그러나 수례를 끌던 소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펄쩍 뛰게 되고 이때 웃사가 법궤가 수례에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궤에 손을 댑니다.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 웃사를 치시므로 웃사가 그 자리에 즉사합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법궤 모셔오는 일을 포기합니다. 이때 오벧에돔이 법궤를 자기 집으로 가져다 다윗이 다시 법궤를 모셔 갈 때까지 3개월을 모십니다. 이로 인해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내리십니다.

 

  법궤는 반드시 레위의 후손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하나님께서 규례로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좋을 대로 새 수례를 만들어 옮기다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웃사는 고핫 자손이지만, 법궤는 절대로 손을 대서도 안 되고 들여다봐서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이를 어기고 들여다보거나 만지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궤가 넘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선한 의도가 있었지만, 그래도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에 내 생각이 포함되면 안 됩니다. 말씀대로만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삼상1522-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22)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은 사무엘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한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결국 사울왕은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지 않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순종은 끝까지 해야 순종이고, 즉시 해야 순종이고, 말씀하신 그대로 해야 순종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열려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22: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에 즉각적으로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아딱 한번 이름 한마디 부르셨는데, 아브라함은 즉각 응답하는 신앙적 열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언제 하나님께서 부르시던지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상태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적인 안테나와 주파수는 늘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영이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열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깨어 있는 영혼과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아브라함처럼, 항상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 부르시던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믿음, 주님의 부르심에 , 제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영적인 주파수가 항상 하나님께 맞춰져 있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 있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떼어 놓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22:5)

  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5)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나서 내가 아이와(이삭) 함께 가서 예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집에서부터 함께 갔던 두 종을 모리아 산 밑에서 떼어 놓습니다. 이삭을 드리는데 방해될 것을 떼어 놓는 것입니다. 방해꾼은 잘라내야 합니다.

 

  우리가 불신자와 함께 갈 수 있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방해가 됩니다.(고후6:14-15)  아브라함은 사전에 이것을 끊어 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일찍 부모를 잃은 조카 롯을 떼어놓지 못하고 데리고 갔다가 뼈저리게 겪었던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떼어 놓아야 할까요?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결정적일 때 여러분의 믿음이 흔들리게 만드는 것, 결정적일 때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누굽니까? 무엇입니까? 그것을 떼어 놓을 줄 아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가 있습니다.

 


3. 성령과 말씀을 붙드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22:6)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6)


  불은 성령을, 칼은 말씀을 상징합니다.(2:3/4:12) 우리가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려면 성령과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한손에는 성령(), 한손에는 말씀()을 붙들었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내 힘과 내 의지나 결단으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성령과 말씀, 불과 칼을 손에 든 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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