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헤(17) -------
아브라함의 신앙적 인품
180708낮 (창23:1-20)
<1)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2)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13)그 땅의 백성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14)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5)내 주여 내 말을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그것이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아멘
23장은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사라의 장례기사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본장은 사라의 죽음과 장례에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라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처음으로 자신만의 땅을 합법적으로 가 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라의 죽음은 간단하게 서언으로 다루고 사라의 장례도 결언으 로 다루는 반면 에브론 소유의 땅이었던 막멜라 굴을 얻기 위한 협상과정을 본론부로 길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라는 성경에 나이가 기록된 유일한 여자입니다. 사라가 여자로서 유일하게 127세의 향년이 기록된 것은 모든 믿는 자들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51:2, 벧전3:6) (‘사라’ = 열국의 어미, 즉 믿는 자의 어미)
그녀는 127세를 살고 죽었습니다. 1절은 사라가 누린 햇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
그전 성경(개역)은 향년 127세라고 표현 했습니다. 사라가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그냥 살다가 가는 인생이 아니라, 누리는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여러분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병들고, 병들어 또 고생만 하다가 가는 인생 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 건강, 삶, 행복...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누리라면 육신적인 쾌락을 생각하는데, 삶을 의미 있고, 보람되게 보내며 행복을 맛보는 삶이 누리는 삶입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가 죽고 그를 장례하기 위해 햇사람 에브론에게 막벨라 굴이 있는 땅을 사서 장지를 삼고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서 보여준 아브라함의 신앙인품에 대하여 알아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신앙인품을 소유했을까요?
1. 마음이 따뜻한 신앙인품을 가졌습니다.(2절)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리쓰포드...웨리브코타흐)
‘슬퍼하며’의 히브리말 ‘리쓰포드’는 싸파드(הפם)에서 나왔는데, 가슴을 치는 애곡행위를 말합니다. 또한 ‘애통하다’의 히브리말 ‘웨리브코타흐’는 빠카(הכב)에서 나왔는데, 조용하게 우는 것이 아니고 큰 소리로 슬피 울며 눈물 흘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유사한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겹쳐서 사용한 것은 아내의 죽음을 맞은 아브라함이 감당키 어려운 크나큰 슬픔가운데 깊이 잠겨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인 사라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가슴을 치며 슬퍼했던 것은 평생 동고동락했던 인생의 동반자요, 신앙의 조력자를 잃은데 대한 슬픔이 얼마나 컸는가를 말해줍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하여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 했던 좋은 남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의 죽음 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요즈음은 배우자가 죽으면 화장실 가서 웃는다고 그러데요.....
평생을 사랑하며 살다가, 인생의 동반자요, 신앙의 조력자를 잃은데 대한 슬픔...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신앙인의 가정에서 보여줘야 할 모습이라 여겨집니다. (엡5:25)
신앙인은 마음이 따뜻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음이 따뜻하셨습니다.
마11:28-30,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수고하고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자들이 당신의 품안에서 쉼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셨구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면서 안타까우셔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배고픈 군중들을 보시고 안타까워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벗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너무 힘들어 기도할 수 없을 때 우리 곁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롬8:26)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직접 군사 318인을 거느리고 가서 조카 롯을 구출해 왔습니다. 땅과 초지를 가지고 조카 롯의 종들과 자기의 종들이 싸울 때에도 우리가 골육지친인데 왜 싸우느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먼저 선택권을 롯에게 주고 양보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신앙 인품을 소유했는가를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를 이렇게 비유하셨습니다.
마11:16-17,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하지 못하는 세대에서 이 사회를 훈훈하게 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만났을 때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미소 한번, 따뜻한 손 한번 내밀며 살아갑시다. 내가 좀 덜 가지면 어떻고 상대방이 좀 더 가지면 어떻습니까? 나보다 상대방이 좀 더 잘나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천하보다도 귀한 영생을,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인데요...
어미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어서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가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따뜻합니까? 사랑, 용서, 관용, 이해, 넓은 마음, 긍휼-불쌍히 여기는 마음, 양보, 온유한 마음...이런 것들이 많은가요? 미움, 시기, 질투, 혈기, 선입관, 대적, 탐욕, 경쟁심, 이기심, 짜증, 분노, 다툼, 오해.....이런 것들이 많나요?
아브라함처럼 마음이 따뜻한 신앙 인품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만 보면 안기고 싶고,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고, 위로 받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같이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존경받는 신앙적 인품을 가졌습니다.(23:5-6)
5-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 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아브라함에 대한 헷 족속의 공손한 태도를 보세요.
“내 주여”->아브라함에 대한 극존칭의 표현을 쓰고 있습니 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하나님의 방백-개역)->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왕이란 뜻입니다.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헷 족속의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장지를 제공하는데 반대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의 모든 족속들에게까지 존경 받을 수 있는 있는 인품, 우리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인격입니다.
11절을 보면 헷 족속의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매장지로 막벨라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브라함이 햇 족속으로부터 지극한 존경과 호의를 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비록 햇 족속 가운데서 나그네로 우거했고, 그들보다 비교적 재산이 풍부했지만, 그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기는커녕 도리어 존경 받는 대상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인품이 햇 족속을 감동시켰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질투와 시기를 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 햇 사람들이 사는 땅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그들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아브라함은 시기의 대상이 되어 우물을 빼앗기고, 우물을 메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그들이 오히려 찾아와 화평을 청했습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세월이 흐르면서 햇 사람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에서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그들 가운데서 나그네로 살면서 그의 신앙인품을 통하여 햇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입니다.
빌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
딛2:7-8, “7)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세상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브라함처럼 주위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고매한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믿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7,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7)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12)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아브라함이 일어나”(7),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7),
“아브라함이 ....몸을 굽히고”(12)
여기서 몸을 굽히고의 (와이쉬타후)는 단순히 몸을 숙이는 정도가 아닌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 몸을 완전히 굽히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 행동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는 것으로서 대개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하며 기도할 때 취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왕상1:47)
아브라함은 햇족속이 자신에게 아내의 주검을 장사지낼 매장지를 기꺼이 줄 것을 허락한 것에 대하여 의례적인 감사의 표시가 아니라 진실 된 마음으로 최고의 예의를 갖추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감사의 마음을 겸손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겸손한 모습은 이방 민족으로부터 존경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부족의 족장이요,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요, 큰 부자요, 사람들이 극진히 높이고 존경하는 인물이지만, 그 땅의 백성들 앞에서 정중히 일어나 몸을 굽히는 모습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즈음 갑(甲)질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조금만 힘이 있고, 조금만 더 가지고 있고, 조금만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면 온갖 갑(甲) 질을 합니다. 을(乙)을 존중할 줄 모르고 짓밟습니다. 이것은 누구 한사람의 책임이거나, 갑(甲)질하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사회가 지나친 경쟁을 가르치고, 내가 살기위해서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는 더 뛰어나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는 더 잘나야 하고, 온통 모든 교육이 친구를, 동료를 경쟁상대로 만든 사회적, 교육적 구조,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를 짓밟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이 사회의 문제요, 우리 부모의 문제요,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갑(甲)질하는 사람들만 두드려 잡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원인을 개선하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갑(甲)질 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생깁니다.
이런 사회에서 아브라함은 우리 신앙인에게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겸손함이 미덕으로 따르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23:11-12,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
어거스틴은 기독교인의 덕목으로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함이 여러분의 신앙인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마무리가 깨끗한 신앙적 인품을 가졌습니다.(23:4, 9, 16-18)
4, 9, 16-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9)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6)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18)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아브라함은 뒤가 깨끗한 신앙인입니다. 부인이 죽어서 경황이 없을 텐데도 헷 족속 앞에서 사라의 장지를 정중히 구하고, 정당한 준가(準價)를 주고 에브론에게 막벨라굴이 있는 밭을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인은 뒤 끝이 깨끗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거래나 관계가 석연치 않거나 깨끗지 못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것과 내 것의 구별이 잘 안되면 안 됩니다. 남의 것을 가볍게 여기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거나 떼먹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이 머물렀던 자리에 좋지 않은 흔적이 남으면 안 됩니다. 신앙인이 머물렀던 자리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야 합니다. 인생의 끝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거저 주겠다는 헷 족속사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거래 값인 준가에 맞춰 은 사백 세겔을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깔끔하게 세상을 삽시다. 뒤끝 없이 삽시다.
우리는 16-20절에서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운데, 맨 먼저 묘지를 약속의 첫 땅을 받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이 묘지를 필두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전체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묘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약속의 땅으로 주시겠다고 하시고, 그 땅을 주시는 시작이 하필이면 묘지입니까? 그 많은 땅 가운데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칙칙한 무덤을 약속의 첫 땅으로 허락하셨을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기 위한 심오한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나라의 모형입니다.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가나안 천국은 자아가 죽은 자만이 들어 갈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죄악 된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에만 들어갈 수 있음을 교훈해주고 있습니다.(롬6:6, 갈5:24) 이것이 바로 영적 비밀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따뜻한 마음의 신앙인품, 존경받는 신앙인품, 겸손한 신앙인품, 관계의 깨끗한 신앙인품을 소유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육적인 자아가 죽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의 신앙 인품, 존경 받는 신앙 인품, 겸손한 신앙 인품, 관계의 깨끗한 신앙인품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세상을 감동케 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