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일 설교말씀

창세기 강해 27.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쟁(창30:1-24)-180916낮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18.09.14|조회수755 목록 댓글 0


창세기 강해(27)------

                                                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쟁

180916낮                                                  (30:1-24) 

 

<1)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9)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 셀이라 하였더라 14)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15)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16)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17)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19)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21)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22)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아멘

 

 

  본문은 레아와 라헬이 자신들은 물론 자신들의 여종을 통하여 출산 경쟁을 벌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아내이자 자매지간인 레아와 라헬은 서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종까지 동원, 경쟁적으로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런 출산경쟁은 두 사람간의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931-35절에서 보듯이 레아는 비록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네 명의 자녀를 낳게 됩니다. 반면 라헬은 야곱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노골적으로 시기, 질투하여 자신의 몸종 빌하를 남편 야곱에게 첩으로 주어 아들을 낳게 함으로써 출산경쟁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결국 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쟁으로 인해 야곱은 약 14년 동안 레아에게서 6, 레아의 몸종 실바에게서 2, 라헬에게서 1,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2명 등 모구 11명의 아들과 레아가 낳은 딸 1명까지 모두 12명의 자녀를 하란 땅에서 얻게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돌아와 라헬이 얻은 아들 베냐민(35:18)과 함께 이스라엘의 12지파의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은 야곱의 두 아내이자 자매지간인 레아와 라헬의 출산경쟁을 기록한 말씀을 한 절 한절 보면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 교훈을 듣고자 합니다. 큰 은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왓테칸네 라헬 빠아호타흐)

 

  시기(투기)하여(왓테칸네)라고 쓰여졌는데, 여기서 쓰인 테칸네의 원형은 카나’(אנק)인데, 마음속의 질투심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질투로 인하여 흥분된 감정이 성을 내는 등의 외적인 표현으로 드러나는 것까지 의미하는 아주 강렬한 표현입니다.

 

  이것은 자신은 자식을 한명도 낳지 못한 반면에 그 언니 레아는 출산을 거듭함으로 인해 라헬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을 만큼 불쾌한 감정을 외부로 발산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 야곱에게도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1) 말합니다. 마치 자기가 자식을 못 낳는 것이 야곱에게 책임이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라헬의 분노와 수치심이 극에 달아올랐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적어도 여호와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라헬이었다면, 이 같은 불타는 시기를 발산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무릎부터 꿇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면 그까짓 불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라헬은 이런 신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하면서 교회 안에서나 직장 내에서나 형제들 끼리나 시기심과 경쟁심이 자신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고, 공동체를 망치고, 형제들 간의 우애를 깨트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시기심을 라헬처럼 다른 사람이 다 느끼고 알 수 있게 겉으로 표출하고 드러내어 다른 사람들까지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274절에 말씀하시기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투기의 해악성을 잘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투기는 작게는 투기를 품은 자기 개인을 비롯하여 그가 속한 공동체를 파괴 시키는 죄 중에서도 무서운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지금 내 모습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인지,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지나친 경쟁심과 시기로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은 교회를 위한다고,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위하는 일도 아니요, 교회를 위하는 일도 아닙니다. 자신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니 그 죄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5:19-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육체의 일, 다시 말해서 마귀의 열매를 열거하고 있는데, 시기와 분 냄도 들어 있습니다.

 

  <(5:19-21),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기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시기에는 반드시 분 냄이 따라옵니다. 인류최초 살인자인 가인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동생을 시기하여 아무도 보지 않는 들에서 동생 아벨을 쳐 죽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합니다.

 

  4:5-6,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시기질투는 분노를 낳고, 미움을 낳고, 결론은 살인입니다. 시기질투에 사로잡히니까 아주 미워 죽겠답니다”, “없어졌으면 좋겠답니다”, “꼴도 보기 싫답니다이것이 믿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이마다 이미 살인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열매를 맺으면 안 됩니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생각이 들어오면 즉시 물리치십시오...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힘쓰십시오.... 마귀가 아니라 성령님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5:22-23,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본문 2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부부싸움의 전형을 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죠?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부부싸움과 닮았습니다.

마귀의 꾐에 속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줍니다. 둘이 선악과를 먹고 나니 눈이 밝아져 벌거벗은 것을 보고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고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누가 먹지 말라하는 것을 먹게 하였느냐? 하나님이 물으실 때, 아담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준 저 여자가 줘서 먹었습니다. 하와는 말합니다. 뱀이 꾐으로 먹었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도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깁니다. 너 때문에 잘못됐다고 합니다.

  라헬과 야곱을 보십시오... 라헬이 자식 못 낳는 탓을 야곱에게 돌립니다. 이때 야곱은 애를 낳고 못 낳게 하는 것은 하나님 속안인데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랴하고 야곱은 하나님 탓을 합니다. 야곱과 라헬도 죽고 못 사는 사이 아닙니까? 야곱이 굉장히 신앙적인 말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3절 이후에 라헬이 여종 빌하에게 들어가서 자식을 낳게 하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라헬의 요구에 그대로 따르고 첩 빌하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3-4절을 읽어봅니다.

< 3)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라헬의 불신앙적인 요구를 야곱이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Keil이라는 신학자는 당시 야곱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부족하였으며 아내를 신앙적으로 위로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당시 야곱이 믿음이 성숙해서 자기 부인 라헬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아내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어야 옳습니다. 2절에서 자기가 말했던 것이 하나님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이었다면 그는 분명 라헬을 이끌고 기도의 자리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어야 합니다.

 

  야곱 자신이 세상에 어떻게 나왔습니까? 자기 아버지 이삭이 그의 아내 리브가의 불임 때문에 자식을 못 낳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여 낳은 아들이 아닙니까?(25:21) 자기가 그렇게 기도해서 세상에 나온 산 증인이었으면 자기 아버지 이삭처럼, 자기도 자식을 못 낳은 자기의 사랑하는 부인 라헬을 데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어야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조부 아브라함과 조모 사라가 첩 하갈과 그를 통하여 낳은 이스마엘 때문에 겪어야 했던 뼈아픈 경험들을 되새겨 보아야 했습니다. (16)

 

  라헬은 6-7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억울함을 풀어줬다고 아들 이름을 이라고 졌고, 또 다시 첩 빌하가 자식을 낳았고 그 이름을 납달리라 짓게 됩니다.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8)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나프툴레 엘로힘 나프탈르티 임 아호티)

 

  여기서 경쟁하다로 번역된 나프탈르티파달’(לחק)의 수동형으로 격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당시 라헬이 언니에게 가졌던 질투의 맹렬함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언니와의 감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이 말씀에 숨어 있는 뜻이 있는데요...원어에 있는 것이 번역이 안 된 단어가 있습니다. ‘엘로힘’(םיהלא), 즉 하나님이란 단어가 번역이 안 되었습니다. 이 단어를 넣어서 번역하면 내가 내 언니와 함께 하나님의 경쟁을 경쟁하여라는 직역이 됩니다. 최고의 존재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자기의 뒤틀어진 감정의 정도가 최고조에 달해 있다는 표현과 함께 마치 자기가 언니와의 경쟁이 하나님을 위한 정당한 경쟁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하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시기와 질투로 인해 필요이상의 경쟁을 일삼으면서 마치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믿음 안에서 행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지만,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자신의 욕심과 경쟁심과 시기질투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라헬이 여종 빌하의 두 번에 걸친 출산으로 언니 레아에 대한 질투와 경쟁의 마음을 가라앉히게 된 것과 모든 상황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끝난 것을 보고 안도해 하는 라헬의 심정을 보여주는데요, 자신이 언니와 심하게 다툰 것을 오히려 자랑삼아 얘기하는 라헬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픈 가슴을 느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심정은 아마도 인류 최초의 살인을 불렀던 가인을 보실 때나 경쟁적인 살인을 저질렀던 라멕(4:23-24)을 보실 때 가지셨던 것과 별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강팍함에 대하여 가슴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라면 우리가 도모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다른 사람과의 치열한 싸움과 시기질투로 말미암지 않는 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에 앞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잠언16:3)

 

  이기었다”(야콜레티, יתלכי)(8)

 

  안도하다’, ‘승리자가 되다는 뜻입니다. 이는 언니를 누른 라헬의 심정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레아에게는 이미 4명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아들의 숫자를 두고서 승리를 외치는 소리라기보다는 감정싸움에서 상대를 짓누르고 느끼는 희열감을 의미합니다. 우리교회는 이런 자가 단 한명도 없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라헬은 지금 무엇이 참된 승리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우리가 객관적으로 지금 라헬을 보고 있지요? 자기가 자기 자신은 잘 보지 못하지만, 라헬이라는 여인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런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마귀가 그런 마음을 심으려고 여러분의 마음을 무수히 두드렸지만, 다행히도 여러분은 믿음으로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기에 라헬과 같이 어리석은 모습을 지니지 않았겠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외치신 승리는 유대인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데서 오는 감격적인 외침이셨습니다.(19:30) 십자가의 뜻을 제대로 알고 믿음생활 하는 자라면 결코 이웃을, 같은 교회 안에서 교인을 형제를 질투나 경쟁상대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할 기회로 보일 것입니다.

 

  선한 경쟁의식의 차원을 넘어 반드시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지나친 경쟁의식은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나친 경쟁의식은 상대방을 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자리지 않음으로 심지어 악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게 되고, 그로 인해 씻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발전을 위한 선한 경쟁심을 갖되 상대방을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는 지나친 경쟁심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경쟁관계에 있다하더라도 상대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3:17,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9-1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9)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9절 말씀에 보면, 레아도 라헬처럼 자기 몸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자식을 낳게 합니다. 레아도 동생 라헬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레아가 자기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들어가 자식을 낳게 한 것은 계획적인 것보다는 라헬에 대한 질투심의 반응으로 갑자기 이루어진 행동인데요, 라헬과 레아는 이처럼 경건치 못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자녀 출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자녀를 하나님이 주셔서 낳게 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키워야 되겠다,... 어떤 자녀로 키워야 되겠다고 하는 미래 자녀에 대한 아름다운 비전을 가지고 자녀를 낳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야곱의 사랑을 차지하고, 자매간의 경쟁심으로 자식을 줄줄이 낳았으니 이 자녀들 입장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축복 받은 자녀이겠습니까?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너무나 비교되지 않습니까? 비록 한나는 자식을 못 낳아 후처로 인해 괴로움의 발로로 하나님 앞에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지만, 그는 아들을 주시면 이 아들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나실인, 즉 거룩하게 구별하여 키우겠습니다라고 다짐 합니다. 그는 주신 아들을 젖 뗀 후에 성전으로 가서 서원한대로 제사장에게 드립니다. 성전에서 자란 사무엘이 장차 얼마나 위대하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가는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바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영적인 메시지는 이러한 인간적인 실수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가정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한 나라를 조용히 준비하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라헬과 레아가 질투심과 경쟁심으로 자식을 낳는 것이 옳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녀를 출산하고 하나님이 내 원한을 풀어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돌아 보셨다라고 했지만, 과연 하나님도 같은 마음이셨을까요? 자기들의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온갖 술수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을 동원해 놓고...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해 놓고...’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나의 원한을 풀어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셨다라고 합리화하면 되는 것인지요?

 

  우리에게도 이러한 모습이 많습니다. 악을 행하고도, 내 욕심과 시기심으로 이루어 놓고, 하나님이 나를 기쁘게 여기셔서 축복하셨다고 합리화 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은 절대로 공의로우사 죄를 기쁘게 여기시지도 않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룬 것들을 통하여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오래 참으실 뿐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면 즉시 용서하시지만, 자기 죄를 합리화하며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하시는 분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라헬과 레아처럼,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 하려고 하는 모습이 여러분에게는 없어야 합니다. 그런 시기와 질투, 경쟁심에 사로잡히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모순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정이 이렇게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을 택한 선민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의 결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 인정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 성공한 것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자가 잘난 것이라는 생각과 기준은 이 세상의 기준이요, 사람의 기준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기와 질투, 편법을 사용하여 이기려고 애를 씁니다. 문제는 사람은 박수를 쳐줄지 모르지만, 하나님도 과연 박수를 쳐 주실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자식을 더 많이 낳나? 이게 경쟁할 일입니까? 우리가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도 경쟁거리로 삼는 것입니다.

 

  이지성 김종원 공저(共著)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문학동네, 225-226)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미국 LA 올림픽 때 한 중국 선수가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한 기자가 금메달의 비결을 물을 때, 참 흥미로운 대답을 했습니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달리기를 좋아해서 경기 에 자주 나갔지만 잘 넘어졌고 매번 입상권 안에 들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나에게는 네가 일등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야. 네가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모습이 일등보다도 내게는 더 뿌듯했단다.’

  그리고 다이빙을 시작해서 실수했을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등은 문제가 아니야. 나는 네가 운동하는 그 모습, 그 자체가 기쁨이란다. 너를 보는 것이 내 기쁨이고 엄마의 행복이야.’

  나는 다이빙의 스탠드에 설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절로 웃음이 나오고 편안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어머니 때문입니다.....”

 

  참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하십니다. 우리가 인생 길 가운데서 넘어지고 쓰러질 때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나는 너에게 꼭 일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란다. 네가 일어나는 모습이, 아니 네 존재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란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