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0)-------------
사탄의 유혹
190217낮 (창39:7-23)
<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아멘
사탄의 유혹은 그 역사가 깊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사탄의 유혹에 범죄하고 맙니다. 사탄의 유혹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신분고하,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유혹합니다. 예수님도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마4장, 마16:23) 사탄의 유혹은 천의 얼굴을 하고 찾아옵니다. 그래서 성도는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황금보자기에 싸서 옵니다. 성공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오기도 하고, 축복의 보자기, 평안의 보자기에 싸서 오기 때문에 성도들이 쉽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사탄의 유혹은 실패했을 때에도 찾아옵니다. 사탄의 유혹은 성공했을 때에도, 잘 나갈 때도 찾아옵니다. 사탄의 유혹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도, 충성하는 사람에게도 찾아옵니다. 요셉도 사탄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요셉을 넘어트리려고 했던 사탄의 유혹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은혜 받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사탄의 유혹은 형통할 때 찾아옵니다.
6, 7절을 보겠습니다.
<6절)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7절을 보면 보디발의 처가 요셉을 유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보디발의 처의 유혹은 표면적으로만 보면 욕정에 사로잡힌 부도덕한 여인의 성적유혹이지만, 그 배후에는 요셉을 넘어트리려고 하는 사탄의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요셉을 넘어트리기 위한 사탄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입니다.
7절을 다시 한 번 봅시다.
<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여기에 보면, 그 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면 그 후가 언제입니까?
6절 읽어봅시다.
<6)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주인 보디발이 요셉에게 그의 소유에 대하여 전권을 위임한 이후입니다. 당시 요셉은 노예였지만, 더 이상 노예의 신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당시 애굽의 최고 실력자중의 한사람인 시위대장의 집에서 요셉의 말을 거역할 자 아무도 없었습니다.
창39:9절을 보면,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바로 그 순간 사탄은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요셉을 유혹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주로 하나님 백성이 형통할 때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형통한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져 있을 때, 불통할 때는 그냥 놔둬도 상관이 없으니까! 사탄의 뜻대로 되어 가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지만, 잘되어 가니까 사탄이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성도가 형통할 때는 신앙의 경계가 흩틀어지기 때문입니다. 형통하게 되면 신앙이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잘되어가니까 긴장이 풀리죠...바빠지니까 예배생활, 기도생활 소홀하게 되죠...마귀가 침투하기 딱 좋은 환경이 되어갑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충복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은 시점이 언제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유다의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시고, 그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건국이후 최고의 영화를 누릴 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성도가 주로 형통할 때 찾아와 성도를 유혹하여 넘어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형통하게 될 때에 교만해져는 안 됩니다. 영적으로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생활 더욱 철저히 해야 하고, 더 많이 기도해야합니다. 언제 사탄의 유혹이 찾아와 신앙을 무너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아 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의 유혹은 형통할 때 더욱 찾아옴을 알고, 오직 그 모든 유혹을 이기고 더 큰 하나님의 축복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확고한 믿음과 깨끗한 양심에 바로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탄의 유혹은 끈질기고 집요합니다.
7, 10, 12절을 읽어봅시다.<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이 구절들을 보면, 요셉에 대한 보디발의 처의 유혹이 얼마나 집요한가를 보게 됩니다. 한번으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더 강도가 세집니다. 눈짓하다가(7절), 동침하자고 청하다가,(10절) 아예 옷을 잡아끕니다.(12절)
요셉을 향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이 끈질긴 것처럼, 성도를 향한 사탄의 유혹도 끈질깁니다. 성도가 한번 단호하게 물리쳐서 이겼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내가 넘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유혹을 포기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절대로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잠자면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도적이 어느 시점에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을 한두 번 뿌리쳤다고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사탄은 성도들을 넘어트려 멸망으로 인도하기까지 결코 성도에 대한 유혹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탄의 유혹이 계속되다보면 아무리 신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마4장과 눅4장에 보면, 40일금식후 사탄이 시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세 번에 걸친 유혹을 말씀으로 다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4:13절에 보면 <13)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얼마동안 떠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언젠가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하러 다시 올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언제 마귀가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다시 찾아왔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선포했을 때, 베드로가 막아섰습니다. ‘주여 절대로 그럴 수 없나이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16장 23절) 사탄은 이렇게 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탄의 도구가 됩니까?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영적인 일이 아닌, 육신적인 생각이 앞서는 사람이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순간 사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도 아니 되고, 사탄의 도구가 되어 다른 사람을 넘어트려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자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저는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탄의 유혹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하찮은 것이라고 타협하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절대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마시고, 끝까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셔서 반드시 의의 면류관을 차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보디발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입니까?
12-1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 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 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요셉이 보디발로부터 인정받고,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인정받습니다. 둘 다 요셉을 맘에 들어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보디발은 요셉을 인정하고 맘에 들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요셉에게 다 맡깁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자기 소유로 삼으려고 합니다. 자기 소유로 삼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자기 욕심대로 되지 않으니까 요셉을 모함하여 옥에 갇히게 만듭니다. 요셉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내 욕심대로 내 마음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관심과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온갖 해꼬지와 모함을 일삼습니다. 이런 보디발의 아내의 모습, 이런 악한 모습이 여러분 속에는 없습니까?
보디발의 아내는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하여 자기 남편에게도 탓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 남편이 자기 뿐 아니라 자기 집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라는 표현을 써서 편가르기를 합니다. 남편을 적으로 만들고, 자기 집 하인들을 자기편 으로 만듭니다. 자기의 잘못을 감추려고, 악질적인 짓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을 모함에 빠트리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 시키고, 패거리를 만든다면 실수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성적충동을 못 이겨 요셉을 유혹한 죄보다 그 죄가 들통날까봐 요셉을 모함하여 옥에 갇히게 하고, 남편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집안 하인들을 자기와 한편으로 만드는 짓은 고의적이고 악질적으로 하나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죄악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탄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입니다.(예/다윗...)
14절을 보겠습니다.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진정으로 상대를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 차이가 적은 것 같지만, 우리들의 모습에서 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그를 위한 것인가? 보디발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입니까?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디발의 아내로 살라고 유혹합니다.
4. 요셉이 사탄의 유혹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사탄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를 요셉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1) 거절했습니다.(8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예)마틴루터/
2) 듣지 않았습니다.(10절)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3)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10절)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4)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9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죄를 짓고 못 살겠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의 선택의 기준도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코람데오(Coram Deo), 즉 신전의식(神前意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어디에도 계십니다. 시편139편에 보면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은 피할 수 없습니다.
요셉이 10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얼마나 착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습니까? 그 결과 비록 종의 신분이지만 주인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아서 그 가정에 모든 것을 맡아서 처리하는 가정총무까지 되었는데, 하루아침에 성폭행 범이 되어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허탈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주변의 사람들이 요셉을 향해 얼마나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비난을 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혼자 깨끗한 척 하더니 꼴좋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살아계시면 왜 너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느냐? 왜 너를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시느냐” ...낯선 외국 땅에선 아는 사람도 하나도 없는데...누가 요셉 편을 들어주며, 누가 요셉을 믿어줍니까?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요셉을 향해 욕하고 요셉을 향해 등을 돌렸지만 끝까지 요셉과 함께 하셨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하나님은 요셉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감옥에 갇힐 때 이미 하나님께서 요셉보다 앞서 가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서 가정총무의 옷은 빼앗았지만 하나님은 빼앗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할 때, 세상이 우리를 알아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할 때, 세상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쳐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세상이 우리를 존경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는 줄 알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먼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시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 역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여한 일인 것입니다.
독일 유학을 다녀오신 이후에 나환자촌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하셨던 김요석 목사님의 간증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양씨라는 분이 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이웃 동네는 워낙 불교가 지배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온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양씨가 목사님을 찾아와서는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목사님께 이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목사님!! 오늘 오후에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가 옆집 채소밭에 들어가서 그 집 채소를 몽땅 먹어치웠거든요. 그랬더니 옆집에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야 당연히 배상해야지요."
"저도 손해는 배상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글쎄,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달라는 겁니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화가 안 나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그 옆집 사람은 형제님을 시험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마구 흥분하고 화내기를 바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셔야 합니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겁니다."
목사님의 말을 듣고 초신자 양씨는 고민을 하다가 "좋습 니다. 어쨌든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났지만, 다 접어두고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돌아가서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한 마디 불평 없이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양씨가 미쳤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양씨의 태도를 보고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일이 여름에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가을 어느 날 밤 양씨가 다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쎄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 집 밭에서 실컷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그걸 보고 저한테 와서 난처한 얼굴로 “양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 황소 일곱 마리를 냅다 끌어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버리시고 그분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형제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을 듣고 양씨는 갑자기 침울해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양씨는 또 한번 신이 나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정말 더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옆집 사람에게 아무런 배상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 사람이 제한테서 가져간 돼지 5섯 마리가 낳은 새끼까지 합해서 모두 90마리를 끌고 우리 집에 왔습니다. 목사님 지금까지 옆집에서 90마리 전부를 먹인 사료까지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제가 손해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이제 저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십니까? 마을 전체가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겁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지만 오히려 더 어려워진 형편으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아 낙심 가운데 있는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충성을 했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혹 상처 되는 말을 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한 여러분의 수고와 땀과 노력을 기억하고 반드시 축복해 주시는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든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반드시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