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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감사(시편116:12-19)-191117낮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19.11.16|조회수1,512 목록 댓글 0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감사

191117                                                (116:12-19) 

 

<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아멘

 

 

  세상에는 불평의 세계와 감사의 세계가 있습니다. 불평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늘 불평하고, 감사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늘 감사합니다.

 

  디엘 무디(D.L. Moody)는 말하길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위해 빠짐없이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경건한 사람은 그 모든 기도 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새커리(Sakery)는 유능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잘 개발하여 쓰임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모든 재능을 발휘하고 난 후에 그 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레이싱(Leising)가장 완벽한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C.C. 콜턴(Colton)어떤 철학자도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언어의 빈곤을 느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노르웨이 속담에는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앗을 뿌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수준 있는 믿음은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성도들은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감사를 못하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감사를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보고,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더욱 풍성한 감사,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

 1) 미련한 마음 때문입니다.(1;21)

<1:21,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마음이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마음입니다. 믿는 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 미련한 마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부서져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12:13-21)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재물이 쌓을 곳이 없이 많아서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소출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 할 줄 모르는 교만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고,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버릴 때 우리는 더욱 감사하는 신앙이 될 줄 믿습니다.

 

 3) 인색한 마음 때문입니다.(삼상25;3-42)

  다윗이 어렵고 힘들 때에 피난길에서 평소 잘 돌봐 주었던 나발을 찾아가서 음식을 요청했습니다. 나발은 별 볼일 없는 다윗에게 더 이상 도와줄 마음이 없어 거절을 하였습니다. 다윗의 신하들이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나발의 아내이었던 아비가일이 이 일을 알고 속히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가져와서 사죄를 하였습니다. 인색한 나발은 하나님이 쳐서 얼마 후 죽고,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의 풍성한 마음이 그를 왕비가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를 가로 막는 것은 인색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귀하게 쓰실 줄 믿습니다. 더욱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4) 원망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15장에 탕자의 비유에서 집나간 둘째 아들이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이 밭에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염소 새끼 하나라도 잡아 준 적이 있느냐? 면서,,,' 그는 아버지 집에 살면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도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위하여 잔치를 벌인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감사를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감사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할까요? 어떻게 감사해야 하나님이 감동하실까요?

 

 1) 참된 감사는 생각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영어의 Think(생각)Thank(감사)는 어원이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없으면 감사가 나오지 못합니다. 감사를 생각할 때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유명한 명상록 팡새는 파스칼이 길을 가다가 다리에서 떨어져 엄청난 아픔을 당할 때 썼다고 합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친구와 함께 가다가 그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은 것으로 보고 인생이 한 순간임을 깨달아 법학도의 길을 버리고 주님의 일에 몸 바쳤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 그 불 속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못해 불같은 주의 종이 됐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감사의 질이 달라집니다. 썩어 없어질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생각하고, 내게 주실 것을 생각할 때 그저 감사, 감사, 또 감사, 감사뿐인 줄 믿습니다.

 

  어떤 군부대에서 특식으로 돈가스가 나왔습니다. 평상시에는 1인당 돈가스가 한 개씩 나왔는데 이날따라 두 개가 나온 것이에요. 병사들은 두 개를 먹는다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식탁에 앉은 병사들 사이에서 탄식과 투덜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돈가스는 있는데 소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식담당자가 돈가스 한 상자와 소스 한 상자를 가져와야 하는데 그만 실수로 돈가스 만 두 상자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자 돈가스를 두 개를 먹는다는 감사는 온데 간 데 없고 소스가 없다는 불평만 가득했습니다. 이 때 고참병이 일어나서 한 마디 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야 불평할 필요 없다. 지금 어느 부대에서는 돈가스 한 개는 커녕 소스만 두 봉지씩 빨고 있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불평을 선택할 수 있고, 감사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불평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하고요 감사하는 사람은 조건을 뛰어 넘어서 감사합니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감사거리를 생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은혜를 기억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답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감사란 기억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고백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부모형제와 이웃이 우리를 위해 수고한 일들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사랑으로 돌보고 격려해 준 일들을 기억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본문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 할꼬”(12) 하고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죄인들이 그 은혜를 생각하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그 은혜에 감사하는 그 감격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할까 하고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 우리나라의 설화들은 이 보은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들인 학, 두루미, 제비, 두꺼비, 잉어, 까치, 사슴, 심지어 쥐, 개미까지 모든 짐승들 곤충들을 총 망라해서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짐승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그 은혜를 잊을 때 금수만도 못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기억하는 것만 아니라 보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감사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는 것도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 온 것은 미국의 선교사들의 목숨을 건 선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이렇게 세워지고, 성장하게 된 것도 개척 초기에 많은 교회들의 도움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20주년 기념으로 필리핀에 성전을 건축 봉헌하고, 대정한사랑교회를 개척 봉헌한 것도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교회 목회자님들을 돕는 것도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와 성도들의 사명이지만,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요, 감사의 표현입니다.

 

  입술로만 감사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의 신앙의 문제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사랑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하신 말씀대로 입술로만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원을 갚을 수 있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 행동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은혜를 보답하는데 내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희생 없는 감사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96: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 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 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린 다는 것은 감사함으로 그 영광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감사가 예물을 가지고 와서 드려지는 감사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3:15 에는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지키면서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물질을 드림은 곧 마음을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희생 있는 감사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는 것입니다.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선비가 뱀에게 잡혀 죽어가는 까치를 살려 주었는데 이 선비가 뱀에게 복수를 당해 죽어갈 때 종이 울리면 살고 종이 울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야기....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 까치가 종을 머리로 받아 땡그렁 땡그렁 하고 울려 선비를 살리고 자기는 죽었다는 가슴 뭉쿨한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희생 없는 감사는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교인 중에 하나가 1억원 짜리 차를 샀다고 예배를 드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교인이 부자가 되고 좋은 차를 구입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그 집에 가서 더 잘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내는 감사헌금 봉투를 갖고 왔는데 와서 보니까 감사헌금이 만원이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감동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내가 도대체 교인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하나님을 얼마나 가치 없게 가르쳤으면 일억 짜리 차를 사고 만원 헌금을 합니까.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하고 회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도 왠지 마음에 서운한 분이 안 풀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인을 향해 욕을 딱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나쁜 놈의 교인!(속으로만...)

 

  임영훈감독님이 말씀을 하시는데,,,자기 교인 중에 비행기 조종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권사님이 외국 비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여자 권사님이 집안에서 청소하는데, 갑자가 마음이 불안하고, 일이 손에 안 잡혀서 그 자리에 앉아 기도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공항에 착륙하다가 이륙하는 여객기랑 충돌할 뻔 했다는 것입니다. 간신히 방향을 틀어 충돌을 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을 자세히 물어보니 자기가 불안하여 기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입니다. 큰일 날 뻔한 것입니다. 자기뿐 아니라 두 비행기에 탄 승객들 모두가 큰 사고를 당할 뻔한 것을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입니다. 이 여자권사님은 교인들한테 이 간증을 자랑했습니다. 감독님한테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감사헌금을 했습니다. 얼마나 들었는지 아십니까? 2만원! 목숨 값에 대한 감사,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뻔한 사건에서 건져주신 감사가 2만원이었답니다. 비행기 조종사가 월급도 괜찮습니다. 임감독님이 그 헌금 돌려줬답니다. 하나님이 큰 사고를 막아주시고 목숨을 살려주셨다고 자랑은 하면서 네 목숨 값이 2만원이냐? 하나님이 거지냐? 그랬더니 회개할 생각은 안하고 교회를 떠나더랍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셔서 감사하다고 저와 교인들을 초청해서 밥은 수십 만 원 비용을 들여 사면서 고작 감사헌금 일이만원 하는 분들이나, 십일조도 안하는 분들 보면, 하나님 것을 도둑질 한 것으로 내가 밥 얻어먹은 것 같아서 너무나 하나님께 죄송한 생각이 들고,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이런 대접은 받고 싶지가 않습니다. 서로가 하나님 보시기에 복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하의 주인이신데 인간이 드리는 예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하시는 것은 그 물질 자체를 원하셔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느니라”(6:21)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누구나 물질을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기꺼이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진실한 마음이 없는 빈껍데기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중심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물질도, 화려한 예배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예배를 드리고, 수천수만의 인원이 예배를 드려도, 엄청난 예물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주 추수감사축제주일에 드리는 물질과 몸짓과 예배에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담아 올려드리는 감사절기가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감사절을 앞두고 하는 설교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드리는 예물에 의미를 부여하여 예물을 드리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물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마음과 정성과 존경의 표시가 담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실례를 사례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일본 동경에 어느 한인교회 이 에스더 집사님이 계신데, 이분이 매년 자녀를 위하여 생일이면 감사헌금을 드리는데, 10살이면 10만원, 11살이면 11만원을 드렸습니다. 나이가 성장하면서 감사헌금도 늘어났습니다. 추수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50살이면 50만원, 60살이면 60만원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어느 해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가 다리에서 난간을 받고 굴러 물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차가 굴러 떨어질 때에 충격으로 아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난간에 거꾸로 걸려 있었습니다.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늘 감사드리니 하나님이 늘 감사한 일만 생기게 한다고 간증합니다.

 

  서울 금천지방 성광교회는 그 교회 온 성도들은 추수감사절 감사 수준을 정하고 기도한답니다. 교역자와 상근 직원은 한 달 치 보너스를, 장로, 권사, 집사님은 십일조 수준을, 그리고 일반 평신도들은 평소 감사헌금의 3배를 드리기로 모두 정하고 기도한답니다.

 

  서울 갈보리 교회는 하루에 1000원씩 감사하여 365일이니까 365,000원입니다. 가정 당 그렇게 하거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드리거나 더 이상 드리든지 믿음의 분량입니다. 해마다의 추수감사헌금을 이렇게 드리는 전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우리교회도 감사절에는 우리 교회만의 좋은 전통이 생겼으면 좋겠고, 여러분과 가정만의 감사원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각 교회나 성도들이 드리고 있는 감사의 예를 말씀 드렸습니다. 정해져 있는 원칙은 없는 것이니까 참고하셔서 여러분 나름대로 형편 것, 마음이 담긴 나름대로의 의미가 부여된 감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부터 저희 어머니와 저는 동경의 집사님처럼, 나이만큼 감사를 한다고 하신다는 것에 감동이 되어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하여 추수감사헌금은 나이만큼 합니다. 근데 금년에는 아무래도 교회에서 세운 예산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제 나이에 두 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자녀가 드리는 용돈으로는 생활비와 일반 헌금을 하시는데 쓰시고, 정부에서 노인수당으로 주시는 것은 잘 모아두셨다가 절기 때 헌금으로 드리시는데 사용하십니다. 아들이 아닌 목회자로서 볼 때, 천국이 가까운 인생의 말년을 살아가는 성도로서 참으로 하나님이 감동하실만한 감사생활입니다.

 

 3) 끝까지 변하지 않는 마음이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감사입니다.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본문 18절과 19절에는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하였습니다.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 쉽게 변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을 다스릴 때 우리는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감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장암으로 진단을 받고 가망성이 없었으나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병원 복도에 스웨터를 입고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일도 제대로 못하는 불충한 종이었습니다. 수술해서 낫게 해주시면 하나님 맘에 꼭 맞는 멋진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후 수술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도 인간인지라 수술 받을 때 하나님 앞에 한 생각을 시시때때로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불만 갈등 괴로움 등등 그를 괴롭게 하는 일들이 계속 생겼습니다. 그럴 때 마다 목사님은 오백만원짜리 스웨터를 입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은 내가 덤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 된다고 합니다. 그 스웨터는 바로 그가 병원 복도를 거닐며 기도할 때 입던 스웨터입니다. 그때 수술비가 오백만원이라 목사님은 이 스웨터가 오백만원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얼마나 잘 변하는지. 어제의 은인이 오늘의 적이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게 잘 해 주어도 자기에게 조금만 잘못하면 그 은혜는 다 잊고 원수를 맺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고난과 어려움의 역경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감사할 여건을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어떤 여건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7)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그리하지 아니할지라도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매튜 헨리는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 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주일은 추수감사절 축제예배로 드립니다. 일 년 동안 베푸신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십시다. 직접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감사하는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베푸신 축복에 감사한 마음과 함께 지난 1년 동안 하나님 앞에 지은 죄와 허물을 다 버리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 앞에 예배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정성을 최선을 다하여 드리되 빈껍데기의 신앙이 아닌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드리는 물질과 찬양과 몸짓으로 드리는 절기가 되셔서 기쁨의 축제, 감사의 축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감사절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를 생각하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변함이 없는 마음으로 평생을 감사하는 감사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복음찬송>

주님것을 내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천한이몸 내것이라고 주의일을 멀리했네

주님사랑 받기만하고 감사할줄 몰랐었네

주님말씀 듣기만하고 실행할줄 몰랐었네

아버지여 철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사명 맡긴재물을 주를 위해 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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