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10)-----------
제자를 부르심
191222오후 (마4:18-22)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아멘
예수님이 전도인을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직업적으로 갈리리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이었음을 볼 때, 예수님의 이 표현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은 제자로 부름 받은 그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 성도를 세 부류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잘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에 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11장 24절에 보면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 하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리"란 초대 교회 당시,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는 참석하나, 그저 교회는 드나드나 시류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확신도, 천국에 대한 소망도 없습니다.
2. 두 번째 부류는 신자입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4장 32절에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5장 14절에는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믿는 사람'이란 '신자'를 말합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확실히 믿고 신앙 고백하는 참다운 신앙인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험과 고통 중에서도 신앙의 변화가 없이 꾸준하게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삽니다.
3. 세 번째 부류는 '제자'입니다.
'제자'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예수와 동거동락하며, 예수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예수와 함께 그의 영광에도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며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부르사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과 권세도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막3;13-15).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부류의 신자 중에서 어떤 부류에 속하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무리의 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신앙의 태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신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는 '제자'가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할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생명이시기에 주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제자"라는 명사가 265번, "제자가 된다"는 동사가 25번이나 쓰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먼저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제자를 세우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본문을 한절 한 절 보며 강해할 때 큰 은혜의 말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19절입니다.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나를 따라오라’(듀테 오피소 무/ Δευτε όπίσω μου )
직역하면 ‘내 뒤에 오라’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이 말씀의 본래의 뜻입니다. 제자는 뒤를 따르는 자입니다. 앞서 가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앞서 가는 자가 환영 받을지 모르지만, 주님의 제자는 주님보다 앞서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입니다.
이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단호한 명령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내린 단 한마디 ‘나를 따라오라’는 명령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순전히 자기만 뒤 따를 것을 원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자신들이 스스로 인생행로를 결정하고 이에 대하여 책임지는 삶을 살아 왔으나 예수님의 제자가가 된 이후로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오직 그분의 뜻만 쫓아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면서 외형적인 직업이나 재산 그리고 가족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버려야 하는 자기 부정의 삶, 그러한 결단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카이 포이에소 휘마스 할리에이스 안드로폰/ καί ποιήσω ὑμας ᾁλιείς άνθρώπων )
이 말씀에서 특징적인 것 두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포이에소 / ποιήσω)’ 인데, ’만들다‘, ’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드는 주체, 되게 하는 주체가 부름 받은 베드로나 안드레가 아니라 부르신 예수님 자신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그들 스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로 불림 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으로 인해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들이 직분을 맡거나 사명을 맡게 될 때, 우리는 “나는 못해요”, “부족해요” 라는 말로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자로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실 때는 나보러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게 하신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내 부족함이 핑계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베드로나 안드레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기타 어떤 우연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주권과 섭리로 되는 것임을 분명히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내 자의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 지상에서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하여 이토록 권위 있는 말씀을 할 수 있는 분이 누가 있습니까? 오직 주님뿐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주님께 여러분 자신을 맡기시기를 축원합니다.
2. 20절을 보겠습니다.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호이 데 유데오스 아펜테스 타 디크뒤아 에콜루데산 아우토/ οἱ δὲ εὐθέως ἀϕέντες τὰ δίκτυα ἠκολούθησαν αὐτῷ )
여기서 곧, 즉시로 번역된 ‘유데오스’는 ‘당장’, ‘속히’라는 뜻으로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얼마나 신속히 반응 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금도 머뭇거리거나 지체하지 않고 예수님의 소명을 수락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절에 나온 그물은 (‘암피블레스트론/ ἀμϕίβληστρον) 어부가 손으로 던져 고기를 잡는 투망을 가르킵니다.
18절 읽어볼까요?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그러나, 20절에 쓰인 ‘그물’은 ’디크튀아/δίκτυα‘로 쓰였는데, 이것은 모든 종류의 그물을 가르키는 일반적인 명사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버려두었다는 표현은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던지고 있던 투망 그물을 비롯하여 그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인 모든 그물을 다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는 어부라는 직업뿐 아니라 이 세상에 속한 삶을 예수 중심의 삶으로 완전히 전환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버려두고’(ἀϕέντες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보내버리다’, ‘포기하다’, ‘~에게서 떠나다’ 라는 의미를 지닌 말인데,,,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에 대한 소유권과 사용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것으로부터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본문에서는 분사부정과거형으로 쓰여서 그물을 완전히 버린 후에 예수님을 쫓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차츰 버린 것이 아니라 완전히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즉,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어부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더 나아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의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의 결단은 세상에 속한 과거의 삶에 대한 부정과 포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도 자기의 주장도 자기의 경험도 버려야 하고, 자신의 자존심도 버려야 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서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눅9:23절입니다.
<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사도로서의 길을 가면서 자신의 결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빌3:7-8절입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라면, 아직도 자신에 대하여 자기가 소유권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 대하여도, 자신의 모든 소유에 대하여도 여전히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진정한 제자가 아닙니다.
3. 21-22절을 읽겠습니다.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야고보와 요한도 형제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베드로와 안드레의 아버지는 소개하지 않지만,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배대가 갈릴리 지역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거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고, 독자인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예루살렘에 따로 집이 있었고(요19:27), 휘하에 삯군들도 있었던 부자였습니다.(막1:20) 뿐만 아니라 부인 살로메가 예수님을 추종하였던 것으로 보아(마27:56, 막15:40, 16:1) 그도 역시 예수님의 사역이나 초대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인물로 추측이 됩니다.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21절)
즉 그들이 어로 작업 준비를 위해서 한창 일을 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강조해 줍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도 물고기를 잡는 현장에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도 물고기 잡을 준비를 한창 바쁘게 하고 있는 중에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우리가 시간이 많을 때나 한가할 때 만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참 바쁠 때, 일하고 있을 때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의 일에 즉각 순종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 지금 너무 바빠요.... 지금 일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변명을 합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지요....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한가할 때만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니까요.....가장 바쁠 때 나를 필요로 하시거나 부르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한가할 때만 순종하고 주님의 일을 하는 자라면 진정한 일꾼, 진정한 제자가 아닙니다.
예) 김을두 권사님(예산 삽교교회)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22절)
배를 버렸다는 것은 그물을 버린 것처럼, 생업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더하여 아버지도 버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혈연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혈연에 얽매이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혈연을 떠나야 합니다. 물질을 뛰어 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혈연을 뛰어넘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것을 모두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기 아버지가 당시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요, 재산도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배경을 포기하고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 훗날 제자 중 하나가 부친을 장사 지내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 한 것에 대해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는 헌신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 자의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불러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절대 주권이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소유도 버려야 하고, 혈육도 버려야 하고, 자기도 부인해야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입니다. 앞서가는 자가 아닙니다. 그분이 하신대로 하고, 그분이 사신대로 살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말하고, 그분이 생각하신 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자기가 한가할 때만 따르는 자가 아니라 가장 바쁜 때도 필요로 하시면 따라야 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 얽매이는 자는 좋은 일꾼, 제자가 아닙니다.(딤후2:4)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일꾼은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리를 지나 신자가 되고, 신자를 넘어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