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12)----------
산상수훈의 개관
200119오후 (마5:1-2)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마5-7장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The Sermon on the Mount)입니다. 주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소문은 빠른 시간에 갈릴리를 넘어 데가볼리, 예루살렘, 유대, 요단 건너편까지 퍼져갔고, 많은 무리가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오늘부터 살피는 마5장부터 나머지 마태복음 전체 내용은 사실 주님께서 가르치시고 전파하신 일과 긍휼을 베풀어 고치신 일들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에는 총 다섯 번 주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말씀이 나옵니다.(五大講話) 그 중에 5-7장은 흔히 ‘산상보훈’ 또는 ‘산상수훈’이라 부르는 주님의 첫 번째 가르침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먼저 산상수훈에 대한 개괄적 개론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나서 5장부터 자세한 강해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은 신학적 입장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갈 기독교인에 대한 윤리헌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의 도래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천국은 이미 세상에 임하였으나 그 완성은 역사의 종말(예수 재림)에 가서야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에 천국이 완성될 때까지 천국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탄의 불법이 혼재해 있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이렇게 천국을 현재적으로 이미 맛보고 누리며, 또 종말에 그것의 완성을 소망하며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성도들에게 종교적, 윤리적 삶의 절대적 규범을 제시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산상수훈은 이미 구원 얻은 천국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행위구원론과는 무관합니다. 즉, 산상수훈에 말씀 하신대로 살아야 구원 받는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실천 불가능한 것을 단지 은혜를 구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제시된 것도 아닙니다.
이런 산상수훈은 그리스도께서 어느 한 시기에 한꺼번에 주신 것은 아닙니다. 마5:1절에 의하면 마치 그리스도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고 제자들이 나아오는 어느 한 시기에 산상수훈을 다 주신 듯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그리스도께서 1차 갈릴리 사역 중(27-28년, A.D)에 여러 번 걸쳐 갈릴리 지역의 야산에서 행해진 일련의 설교들을 본서의 저자인 마태가 그의 주제별 편집원칙에 따라 5-7장에 모아 기록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이 설교가 행해진 산은 디베랴 서쪽, 막달라 남쪽에 위치한 완만한 구릉인 핫틴산으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이곳은 팔복산으로 불려지며 지금 산 정산에는 팔복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사진 띄울 것)
<팔복교회>
산상수훈의 전체적 주제는 ‘의(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진정한 ’의(義)‘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의가 성도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런 점에서 산상수훈은 구약의 율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율법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은 구약의 율법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 합니다.
구약의 율법이 주로 인간의 외적인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면, 산상수훈은 율법준수 규정을 내면적인 영역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산상수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 백성들에게 무엇을 바라시며 어떤 수준의 삶을 사시기 원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눈에 보이는 의만 다루고 있다면, 신약의 산상수훈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의 율법까지도 다룸으로써 율법을 더 깊이 확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5:17절을 읽겠습니다.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이어서 율법의 완성과 성취 그리고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의의 수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5:18-20절을 읽겠습니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파기자가 아니라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으며(5:17), 따라서 천국의 백성들에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높은 의의 수준이 요구되는 것입니다.(마5:20)
그렇다면 율법을 행함에 있어서 그토록 철저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어떻게 더 나은 의를 가질 수 있을까요?
바로 5:21-48절까지에서 율법규정의 기준이 절대적 차원까지, 율법준수의 기준이 내면적 자세로까지 확대된 것을 살인, 간음, 맹세, 보복 등의 몇 가지 실례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주로 외적인 행동을 규정합니다. 살인의 경우를 예를 들 때, 바리새인은 타인에 대해 증오와 미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살인은 하지 않습니다. 율법의 기준에 의하면 그는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내면의 동기와 의도에 중점을 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미워해도 저는 이미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완성한 율법으로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21-22절)
마5:21-22절을 읽겠습니다.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단지 외적으로 행하는 것에 불과하였지만, 천국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수준은 내적인 기준면에서까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은 바로 외적인 행함만 강조하는 율법주의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마6:1-18절에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는 것을 경계하며, 대표적인 것으로 기도와 금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기도를 오히려 자랑으로 여기고, 기도를 자기의 공로로 여기는 풍토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가르침으로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서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관계가운데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6:1-18절을 읽겠습니다.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한 예수님은 천국백성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재물과 염려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천국백성의 재물관과 염려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마6:19-34절을 읽겠습니다.
<19)○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천국 백성은 하나님의 의에 목말라 하고, 적극적으로 그 의를 추구해야하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과 재물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것에 결정적인 장애가 될 수 있음을 교훈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 집을 짓는 두 건축자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면서 실천적인 신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8:24-27절을 읽겠습니다.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다시 말해 산상수훈에서 말하고 있는 의는 내적인 의로서, 그 내적인 의는 반드시 외적인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의 말씀은 종교적 형식에 자족하며 그 내면이 천국의 복음으로 변화되지 않은 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임과 동시에 열매 맺는 참된 의를 추구하도록 하는 강한 권면의 말씀인 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의는 내적인 의이지만, 인간의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결핍된 자신을 깨닫고, 목말라 하며, 하나님께 구할 때, 위로부터 부어지는 ‘믿음의 의’입니다. 따라서 천국의 시민 된 성도들은 팔복의 기준에 비추어 진정한 의가 결핍된 자신의 내면을 살피며, 목말라하는 자의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의를 구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그 의를 힘입어 삶의 현장에서 의의 열매를 맺어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