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22)---------------
쓴물이 단물로
200202낮 (출15:22-27)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아멘
홍해의 기적으로 인해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벅찬 승리의 감격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감사 찬송을 부릅니다.(1-21절까지) 그리고 찬양이 끝난 후 애굽의 영향권을 완전히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격적인 광야 생활이 시작 됩니다.(22절부터)
그러나 승리의 벅찬 감격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부른지 3일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지고 있던 가죽부대의 물이 다 떨어지고,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을 넘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삼일 만에 발견한 물이 마라의 쓴물입니다. 우물을 발견했지만, 물이 마실 수 없는 쓴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전의 홍해를 건너고,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군을 홍해바다에 수장했던 하나님을 찬양했던 그 감격을 상실하고 또 다시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이 가르키신 한 나무를 물에 던지니 마시지 못하던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하여 마실 수 있는 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쓴물과 같은 고난을 만나게 되는데.... 그 쓴물과 같은 고난이 단물 같은 은혜와 축복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힘든 쓴물을 만나도 그 쓴물에서 좌절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 쓴물이 변화여 단물 되게 만들며 살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쓴물 인생이 단물 인생이 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쓴물이 단물이 되게 할 수 있을까요?
1. 냄비 신앙으로는 쓴물을 단물로 바꿀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속성을 냄비근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게 안 좋은 말인데... 금방 뜨거웠다 금방 식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말인데... 이것이 우리 민족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성에도 그런 근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신앙적인 면에서 우리는 냄비와 같은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불과 3일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다.(22절) 그러나 3일 후 마실 물이 없고, 그나마 발견한 물은 마실 수 없는 쓴물이자 그들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합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원망하여“란 ’온 밤을 경야하다‘, ’불평하다‘, ’수군거리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말은 온 밤 내내 울분을 참지 못하는 심정으로 모세를 향해 불만의 소리로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3일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지닌 간사함과 유약함과 이기적 속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냄비 끓듯 금방 끓어오르다 금방 식어 버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우리 믿음에는 이런 냄비 속성이 없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잘되고 형통할 때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셔!’ 하더니 조금만 어려운 일당하고, 속상한 일을 만나면 금방 살아계신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한숨과 불평..더 심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구나?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하고 의심하죠....깃털처럼 잔잔한 바람에도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지 말고 어떤 환란의 바람이 불어도 꿈적도 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7절의 말씀을 봅시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 말씀을 보면,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말씀합니다.
물 샘 12개는 이스라엘 12지파에 하나씩 돌아가고, 종려 칠십 주는 이스라엘 70장로들의 장막 하나씩에 돌아갈 수 있는 풍족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엘림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광야 가운데서 예비해 두신 축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평하고 났는데, 금방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엘림을 만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사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처럼 쓴물이 있는 마라로 인도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잘못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25절 읽겠습니다.
<25) 모세가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걸어서 건너고, 또 그 홍해바다 속에 잠겨버린 애굽 군대를 목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셔,,하면서 자기들을 홍해를 마른땅처럼 건너게 하신 하나님,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하여 더 이상 그들을 추격하고,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신 하나님을 밤새도록 찬양하고 춤추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 되었는지...그래서 다시 위기가 닥쳐온다면 이제는 의심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셨듯이 그들을 쓴물이 있는 마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그들을 위해 해결책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를 능히 해결해주실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지도자 모세만 원망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피할 길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께서 또한 피할 길을 마련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과 마귀의 시험이 그래서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테스트(test)라고 하며, 마귀의 시험을 템프테이션(temptation)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그야말로 테스트...믿음이 얼마나 성장했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신뢰 하는가?를 보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 시험에는 상을 준비하고 계시고, 마귀의 시험은 유혹을 말합니다. 이 유혹은 우리로 하여금 망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려는 함정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하고 싶을 때 좀 더 참고, 불평하고 싶을 때 좀 더 참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불평 섞인 얘기를 하고 싶어도 조금만 참으시기 바랍니다..... 마라의 쓴물 뒤에 엘림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 하나님의 축복은 엘림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현실에서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엘림에 이르되” 인내하며 전진할 때 엘림의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냄비신앙을 버리시길 축원합니다. 냄비 같은 신앙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한 기독교인 부부가 노동을 마치고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향하여 가는 중에 호화로운 저택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둘 다..그 안의 화려한 정원, 값비싼 대리석, 진기한 테라스, 소품들을 보면서..서로 말은 안했지만, 그들의 눈망울에 한탄과 다소 불평 섞인 묘한 눈빛이 감돌았습니다. ‘저들은 재물에 파묻혀 평안하고 호화롭게 지내는데, 우리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해도 먹고살기 힘드니...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다’ 서로 말은 안했지만, 두 부부 마음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던 부부는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집에 다다르자 세 아이들이 꾸밈없는 즐거운 표정으로 밝은 미소를 띄며 달려 오는 것이 아닙니까... 아내가 아이하나를 번쩍 들어올리며 ‘우리가 이 아이만한 황금덩어리를 준다 해도 이 아이와 바꾸지 못할 꺼예요. 이만한 황금덩어리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아이들이 셋이나 있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우리 불평하지 말고 이미 받은 복을 세어보며 살아요...!’ 했다는 것입니다.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며 모세를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불평이전에 자신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이제까지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했습니다.
2. 쓴물이 단물 되게 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25절을 읽겠습니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가 환란을 만났을 때, 부르짖어야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사람을 향하여, 우상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아무리 부르짖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부르짖음은 탄식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들으십니다. 그리고 해결해 주십니다.
예레미야33: 2-3절을 일겠습니다.
<2)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놀란드 헤이즈라고 하는 흑인 가수가 독일 베를린에서 독창회를 가졌습니다. 독창회에 모여든 사람은 모두 백인들이었습니다. 헤이즈가 노래를 부르려고 무대에 올라 왔을 때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흑인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검둥이! 노래를 집어 치워라>
누군가는 그 이상의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어떤 이는 가지고 있던 물건을 던지며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외쳤습니다. 치욕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흑인가수는 화가 나서 같이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
그리고 무대에서 돌아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그의 앞을 가로막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빌라도의 법정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모욕을 다 당하시면서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헤이즈는 그 환상을 보고 청중 쪽을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고개를 숙고 묵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소란스럽던 청중도 그 모습을 보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모두들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렇게 10분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헤이즈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청중을 뜨겁게 사로잡는 훌륭한 독창회가 되었습니다. 노래가 끝났을 때 박수소리가 우뢰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흑인 가수가 모욕을 참으면서 10분 동안의 묵상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10분이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쓴물을 만나거든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2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모세가 쓴 우물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나무를 던졌더니 그 쓴 우물이 단 우물이 되었습니다. 나무를...던지매 물이 달아 졌더라고 말씀합니다.
혹자는 시내 반도 부근에 자생하는 어떤 나무의 열매, 예를 들면 '구르쿠드'(Ghurkud)란 나무의 열매가 쓴 물을 달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Burckhardt) 그러나 비록 나무 자체에 물을 맑게 하는 어떤 성분이 소량 함유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효력이 갈증에 목이 탄 200만 이스라엘 백성을 충족히 먹게끔 하기에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나무는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기적의 도구로 사용됐을 뿐입니다. 한편 영적으로 이 나무는 만국을 치료하며 죽은 것을 소생시키는 하늘나라의 생명나무를 예표 합니다.(계22:2) 만국을 치료하며 죽은 것을 소생시키는 생명나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천하만국을 치료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입니다.
프란시스가 자기 고향에 있을 때, 하루는 자기 집 하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인은 물을 길을 때마다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큰 물통을 내려 물을 가득히 담은 후 끌어올릴 때 항상 조그마한 나무토막 하나를 그 물통 안에 던져 넣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프란시스는 하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하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을 퍼 올릴 때 나무토막을 물통 안에 넣으면 물이 요동치지 않게 되어 물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어요. 나무토막을 안 넣으면 물이 제 마음대로 출렁거려서 나중에 반 통 밖에 안 될 때가 많거든요."
하인의 설명을 들은 프란시스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자기 친구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 마음의 물통을 가지고 있는가?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마음, 고통으로 심하게 요동하는 마음, 절망으로 부서지는 마음, 이것은 마치 심하게 흔들리고 출렁거리는 물통과 같은 것이지. 그러나 거기에 십자가라는 막대기를 던져보게."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주님은 목마름의 고통을 맛보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 분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엡2:1, 5절을 읽겠습니다.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하셨습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의 쓴물 인생을 단물 인생으로 바꾸시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끝까지 붙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의 쓴물을 만났을 때, 단물로 바뀌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쓴물이 단물 되게 하려면 냄비 같은 신앙을 버리고, 굳건한 믿음으로 기도하며, 십자가를 붙드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