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38)--------------------
귀 뚫은 종
200809낮 (출21:1-11)
<1)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상전이 그를 데리고 1)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7)사람이 자기의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지며 8)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하지 아니하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이나 상전이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니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요 9)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 10)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 11)그가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여자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아멘
20장에서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갈 때 필요한 뼈대를 이루는 계명인 십계명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단과 제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21장에서 십계명의 실제적인 실천규약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번역 성경에는 빠져있지만, 원문 히브리어에는 접속사 와우( ו )=‘그리고’로 시작합니다. 21장을 시작하면서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인데, 우리말 번역은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20장의 십계명에 이어지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명령이지만, 이제부터 시작되는 말씀들은 구체적인 재판의 상황을 가정하고, 각 상황에 따른 판결까지 기록한 일종의 ‘판례’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율례’라고 부릅니다. 십계명이 큰 틀의 계명이라고 한다면 이제부터 23장까지는 그 계명대로 살기 위한 세부적인 시행규칙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히브리 노예에 대한 율법규정 중 일부입니다. 노예는 전쟁노예와 히브리노예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전쟁노예는 전쟁 중에 사로잡혀온 포로로 노예가 된 이방인입니다. 반면, 히브리 노예는 동족 중에서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이들이 노예가 된 이유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는데 배상할 능력이 안 될 경우, 몸으로 종살이를 해서 때우느라 노예가 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노예가 6년 동안 섬긴 후 제 7년에는 자유를 주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도 본문과 같은 규정이 있는데,,, 약간 다릅니다.
신15:13-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3)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14)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보낼 때는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후히 주어 내보내라는 부분이 신명기 말씀에는 추가되었습니다. 왜 그러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자유한 종이 이후에 먹고 살 밑천을 마련해 주기 위함입니다. 만약 빈손으로 나가게 되면 경제적 기반이 없어서 또다시 다른 집의 노예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6년을 섬기고 7년에 자유를 주셨을까요? 이는 7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안식년과 관련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규례는 7년을 일곱 번 보낸 49년을 지낸 후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규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희년에는 노예해방뿐 아니라 전에 저당 잡혔던 모든 농토까지 돌려주는 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자비의 법이라고 합니다. 이 제도는 경제적으로 파산이 난 사람을 일거리를 주고 먹여주고 재워 주고 입혀주고, 보낼 때에는 자립할수 있도록 충분히 한몫 챙겨서 보내주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일시적인 노예는 있지만, 노예제도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종에 대한 말씀을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 자체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노예제도를 인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남의 종이 되었을 경우, 그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주인과 종이 어떻게 책임성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함부라비 법전’이 있었습니다. 이 법전에는 종에 관한 규례가 가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그만큼 종을 비천하게 여기고, 가장 나중에 다루어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법조문은 가장 먼저 종에 관한 규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종이나 주인이나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있고, 똑같은 가치의 영혼으로 여기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법을 가진 민족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는 한번 노예는 영원한 노예였습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처자식까지 노예 신분은 세습되었습니다. 어떤 주인이 노예를 딱 6년만 부려 먹고, 자립할 수 있는 재물까지 두둑히 챙겨서 지유를 주겠습니까? 6년을 일하면 기업체를 치면 과장직급으로 가장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할 때 아닙니까? 이런 종을 풀어주려고 할 때 주인입장에서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실제로 예레미야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이 규례를 잘 지키지 않는 주인들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심히 책망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렘34:17절을 읽겠습니다.
<17)○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그런데, 특별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7년째가 되어서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하지만, 스스로 자유의 몸이 되기를 거부하는 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5-6절을 읽겠습니다.
<5)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주인을 너무 사랑해서, 처자를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계속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종살이하기 전에 결혼하여 들어왔으면, 자유의 몸이 되어서 자기 처자를 데리고 나갈 수 있지만, 종살이 도중 주인의 배려로 결혼을 해서 처자가 생겼다면....그 처자는 소유권이 주인에게 있어서 데리고 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유한 몸이 되어 집을 나가게 되면 처자와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종들 중에 평생 자유의 몸이 되어 살 것인가? 아니면 그 자유를 포기하고라도 처자식을 사랑하여 평생 종으로 살더라도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이 되겠죠? 그래도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평생 종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종이 이렇게 영원히 종이 되길 원하는 경우 재판장에게 가서 문인방과 설주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귀를 뚫도록 했습니다.
의무에 의한 종이 아니라 자원하는 종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를 버리고 스스로 속박되기를 결정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원하여 종이 되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주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유와 퇴직금도 다 버리고 스스로 종이 됩니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사랑은 그 소중한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종이 되기를 기뻐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의무에 의한 종은 6년이라는 기한이 있지만, 자원하는 귀 뚫은 종은 종신토록 그 상전을 기쁨으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서 자기 처자를 사랑해서 평생 종이 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주인을 사랑해서 평생 주인의 종으로 살겠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그 주인은 어떤 주인일까요? 아마도 그런 주인은 엄청 인자한 주인일 것입니다. 종을 하대하지 않고 아들처럼 대해준 주인일 것입니다. 공의롭고 만사를 공평하게 다루는 주인일 것입니다. 노예를 노예로 여기지 않고 친자식, 친형제처럼 아끼는 주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제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암시해 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영원한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빌2:6-8절입니다.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빚진 일이 없습니다. 종이 되어야할 의무가 전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종이 되신 이유도 역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버지 성부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스스로 종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는 대가가 피 흘려 찢겨 죽임 당해야 하는 고통임을 알고도 스스로 종이 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스스로 채찍에 맞고, 가시면류관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에 허리를 찔리는 고통을 겪으면서 종이 되셨습니다. 귀 뚫은 종이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1장에서 자신을 종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왜 사도바울은 자신을 늘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이는 율법에 얽매여 그 율법에 속박되어 사람을 정죄하고, 핍박하고, 죽이는데 까지 가담했던 자신을 빼내 주셔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주인을 사랑하고 처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원하여 귀 뚫은 종이 된 것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종이 되기를 자청하고, 죄의 종이었던 자신을 구원하여 영원한 자유를 주신 주님을 위해 스스로 귀 뚫은 종이 되어 평생 그 선하신 주님을 위해 복음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킨 유명한 링컨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고 닷새 후에 워싱톤 시내 포드 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암살자의 총을 맞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신을 링컨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안치시키기 위해 워싱톤 볼티모어 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그의 유해가 백악관 앞 펜셀바니아 애비뉴 길을 지날 때였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길가에 도열해 있던 무리 중에 링컨의 영구차가 지나가려 하자 한 흑인 신사가 자기 앞에 있던 아들을 번쩍 안아들고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아들아 잘 보아라, 저 분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거야. 결코 잊지 말아라. 저 분의 죽음으로 너와 내가 자유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란다."
우리가 전에는 다 마귀의 종이요 죄와 사망의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귀를 뚫은 아픔 정도가 아니라 두 손과 양 발에 못을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는 고통을 겪으시며 대신 죽기까지 하시고, 우리를 마귀와 죄와 사망의 종살이에서 건져 영원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 외에 다른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노예 시장에서 한 노예가 팔려 나왔습니다. 그 곳을 지나가던 선교사님이 그를 불쌍히 여겨 값을 치르고 그 노예를 샀습니다. 그리고 쇠사슬을 풀어 주면서 “당신은 이제 자유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예가 선교사님을 계속 따라 옵니다. 선교사님이 다시 “당신은 이제 완전한 자유인입니다. 부디 행복하게 사십시오.”라고 했더니 그 노예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눈에 보이는 사슬에 묶여 끌려 다니는 노예였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교사님의 사랑의 사슬에 포로 된 노예입니다. 앞으로 일평생 선교사님을 섬기며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평생 선교사님을 섬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처자식을 사랑하여 자유를 포기하고 송곳으로 귀를 뚫어 영원한 종을 자처한 노예가 있었다면, 주님 때문에 구원을 받고, 주님 때문에 영원한 자유인이 되고,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알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종이 있습니다.
법으로 타의에 의하여 섬기는 종과, 은혜로 자원하여 섬기는 종이 있습니다.
귀 뚫은 종과, 귀를 뚫지 않은 종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올바로 아는 성도는 귀 뚫은 종처럼 자원하여 섬깁니다.
나는 어떤 종인가요?
스스로 자문하여 보세요.
율법 아래서 억지로 종노릇 하는가?
아니면 은혜로 자원하여 섬기고 있는가?
예수 믿는 것이 행복하십니까?신앙생활이 기쁘십니까?
주님의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기쁘고 감사합니까?
마지못해서 해야 되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합니까?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족쇄라면 갑절의 족쇄를 채워주십시오. 만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멍에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멍에로 묶어 주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멍에로 묶어지는 것이 유일하며 완전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자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귀를 뚫은 종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주인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기에 스스로 사랑의 종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인의 영원한 종으로 살기 위해 자유를 포기한 사람을 문지방과 설주에 대고 귀를 뚫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문지방과 좌우설주입니까? 문안에 있는 주인이 하시는 말씀에 늘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짜 종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음성에 늘 귀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하여 사는 귀 뚫은 종으로 헌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고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