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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마태복음 강해 24.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마11:28-30)-201025오후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20.10.22|조회수10,623 목록 댓글 0

마태복음 강해 24)--------------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201025오후                                               (마11:28-30)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아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고 그리고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피조물들이 안식을 누리며 살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고난 받고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수고롭고 무거운 삶은 무엇 때문입니까? 왜 인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수고’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 남자에게는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죄와 더러움과 질병과 가난과 죽음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쉼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평안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짐이 넘치면 침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배입니다. 배에 적재 한계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선을 보고 짐이 한계를 넘지 않았는지 측정합니다. 만약 이 적재 한계선을 무시하고 더 많은 짐을 실으면 결국 배는 바다에 가라앉아 버리고 맙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인생의 짐이 계속 늘어나면 그 무게를 견디다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있는 이혼이나 자살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라는 마음의 짐이 쌓이고 쌓여 한계를 넘어갈 때, 문제가 터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을 위하여 짐들을 그대로 방치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주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너무나도 유명한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후 지난 2천여 년의 세월 동안 삶에 지친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동아줄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1. 28절을 읽겠습니다.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호 코피온테스 카이 페포르티스메노이/ οί κοπιωντες και πεφορτισμένοι )

 

 ‘단 한 번의 낙담하고 지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지치고 낙담 중에 있는 사람들아‘라는 뜻입니다. 또한 ’짐 진자들아‘는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낙담하고 지치게 만드는 무겁게 지워진 짐은 무엇일까요?

 

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무거운 율법적인 관행들(마23:4)이며,

 

2. ‘마귀가 우리에게 지운 죄의 짐’을 가리키며,

 

3. 당시에 로마의 압박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쇠잔해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것들은 당시 사람들이 겪는 실존적인 짐이었습니다. 인간이 살아 가며서 겪는 실존적인 문제들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 살아가면서 인간이 겪는 실존적인 문제들입니다. 시대마다 겪는 문제들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인생 그자체가 수고요, 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를 한 후 인간에게 주어진 징벌이 바로 ‘수고’였습니다. 인생자체가 수고요, 사는 것 자체가 수고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실존적인 문제 앞에서 지치고 힘든 이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주님께 나아간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습니까?

 

 이런 실존적인 짐 진 자 뿐 아니라,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 순교한 이들과 지금도 고난과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수많은 하나님 백성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실존적인 문제가 크고, 내가 진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또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해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느라고 수고 많았지...내게로 오라시며 두 팔을 벌리고 맞아주시며 참 쉼을 얻게 해주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영적인 휴식을 주다’, ‘안식 하다’는 의미입니다. 쉼은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현재적인 쉼도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쉼을 의미합니다.(히3:18-4:11, 계14:13)

 

 

2. 29절을 읽겠습니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주님의 이런 요구 앞에서 멈칫해집니다. 그렇잖아도 지금 지어져 있는 짐도 버거울 만큼 지기 힘든데....자기 짐까지 지라고 하시다니..... 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더니 자기 짐을 메라고 말씀하시는가? 자기 멍에를 메야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니 이해가 되는가? 내짐도 무거운데...주님 짐까지 더 언져서 지면 아예 엎어져 일어나지도 못할 것인데.... 상당히 부담 가는 말씀이죠?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 당시의 멍에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시의 멍에는 두 마리의 소나 나귀가 일조를 이루어 메는 것입니다.

  <함께 메는 멍에의 모습1>

<함께 메는 멍에의 모습2>

 

 이것은 홀로 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둘이 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멍에를 메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너 혼자’ 멍에를 메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멍에를 메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메어야할 멍에는 우리가 혼자 힘겹게 메는 1인용 멍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메는 2인용 멍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의 멍에를 메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자연스럽게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멍에를 주님이 함께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어주시려고, 가볍게 해주시려고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으로 인하여 멍에를 메고 계시다면 그것으로 걸려 넘어지지 마시고, 기쁨으로 그 멍에를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가 홀로 외로이 메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예수님 자리가 옆에 마련된 2인용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일을 혼자 하는 것 같으세요... 교회 일을 나만 하는 것 같으세요.... 그렇게 생각된다면 큰 축복인줄아세요...

 

 여러분이 누구네 밀감 따러 가는데, 내가 따고 싶다고 마음대로 땁니까? 아니죠.... 주인이 따라고 허락해야 그 집일을 하는 것이죠? 아니면 대행업자인 상인이 고용을 하고 따라고 해야 일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누가 허락해야 일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죠? 당연한 거죠.... 내 맘대로 내가 시간 난다고, 내가 하고 싶다고,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말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죠?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고 일한다면, 그것은 불법입니다. 불법에는 상이 없습니다. 책망만 있을 뿐입니다. 이미 여러분이 주의 성전에 와서 주의 일을 하고 있다면...하나님이 허락하셨고, 써주시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큰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억지로 할 일입니까? 기쁨과 감격 속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밀감을 따러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합니다. 일당을 받죠? 왜 고생하죠? 보상이 있으니까...그게 일당이죠... 하나님의 일은 누가 일당을 주실까요? 누가 보상을 해줄까요? 하나님이 하십니다. 일당 몇 푼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인 금 면류관! 영화로운 면류관으로 주십니다. 또한 이 땅에서도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주님이 그 상을 갚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고, 여러분의 자녀가 복을 받고, 여러분의 부모가 복을 받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과 건강의 복을 주십니다.

 

 나 혼자만 멍에를 메는 것 같으세요... 아니요 주님이 함께 메고 가는 멍에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그 멍에를 지고 갈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염려할 것도, 힘들어할 것도, 부담스러워할 것도, 불평할 것도 없어요...주님이 대신 지어주는 멍에니까요.....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3. 29-30절 읽겠습니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은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배워야할 제일의 교훈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그분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배우는데 만 관심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하면 좋겠다. 그래서 병든 자도 고치고, 예언도 하고, 능력도 행하고. 설교도 잘하고..... 그런데 주님은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은 세상에서 행해지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온유와 겸손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토마스 아베케이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한체하며 매일 아침마다 13명의 거지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보다 한 명 더 발을 씻김으로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을 뿐 진정으로 겸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만을 숨기고자 가식된 모습으로 온유와 겸손을 흉내 냅니다.

 

 주님은 내게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스승 되시고 인도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에게서 배우세요...엉뚱한 사람에게서 엉뚱한 거 배워 못된 모습보이지 말고, 마귀에게서 마귀 짓 배우지 말고, 주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진실을 배웁시다. 배워야 깨닫고, 배워야 변화되는데.... 주님이 나에게 배우라고 말씀을 해도 배우지 않으니 평생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벧전5: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네 짐을 맡기라!” 우리 인생과 신앙의 문제는 짐이 아닙니다. 단지 그 짐을 나 혼자 지려는 것이 문제인 거죠.

 

찬송가 337장 1절을 함께 불러 볼까요?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이 찬송가는 엘리사 호프먼 목사가 작사했습니다. 어느 날 아주 큰 시련을 당한 성도가 호프먼 목사를 찾아와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심에 싸인 저는 무엇을 해야죠?”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호프먼 목사는 한참 동안 그 성도의 하소연을 다 들어준 다음 간절한 마음으로 위로의 주님이 역사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그 성도는 밝은 얼굴을 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래요. 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겨야 하겠어요.”

 성도가 나간 후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호프먼 목사는 펜을 들어 찬송시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337장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쓰러지는 것은 짐 때문이 아니라 그 짐을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똑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사고가 비껴가는 것도 아니고, 병이 찾아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자녀가 잘 알아서 크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사업이 갑자기 잘되고 남편과 아내가 갑자기 천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며 무거운 짐을 질 때 그것을 맡길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함께 읽고 마칩시다.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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