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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마태복음 강해 26.안식일 논쟁(2)-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이 옳으니이까?(마12:9-13)-201108오후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20.11.07|조회수1,477 목록 댓글 0

마태복음 강해26)---------------

                                  안식일 논쟁(2)-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201108오후                                                (마12:9-13)

 

<9)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아멘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사이를 지나다가 밀을 잘라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왕의 일화와 제사장과 선지자에 대한 말씀으로 반박하시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그 밀밭을 떠나서 회당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날도 역시 안식일입니다.(눅6:6-11, 또 다른 안식일에.....)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제 안식일에 대한 논쟁 장소가 밀밭에서 회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회당은 율법을 가르치고, 교육을 실시하는 장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을 대신하여 기도와 예배를 드렸고,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일을 결정짓는 회의장소나 집회장소로 활용되었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회당은 매우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안식일과 절기가 되면 그들은 이곳에 모여서 율법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중요한 사안을 결정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가셨을 때가 안식일인 것으로 보아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곳에서 안식일에 대한 논쟁을 벌입니다. 왜 그들은 사람들이 많은 이 회당에서 논쟁을 벌이려 하는 것일까요?

 

 회당은 바리새인들에게 홈그라운드와 같음.....(지난 주 들판은 어웨이(away)이라면) 홈그라운드의 잇점이 분명 있다.(운동경기도 홈그라운드에서 강하다. 월드컵 4강)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는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하는 질문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질문을 했을 때에는 적어도 그들 나름대로는 예수님께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몇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그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10절)라고 말 씀하기 때문입니다. 고발하려는 사람이 아무런 대책 없이 고발하겠습니까? 적어도 그들 나름대로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 질문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기들의 안식일 규례에 맞지 않는 이상한 답변을 한다면 이것을 근거로 예수를 고소할 참입니다. 그들의 규례에 의하면 이 당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행위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 질문에 대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다'라고 하면 안식일 규례를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손 마른 사람은 생명이 위급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여기에 나오는 '손 마른 사람'은 돌을 다루는 석공이었고, 중풍으로 인해 피가 통하지 않아 마비증세를 보인사람이라고 합니다. 특히 의사였던 누가는 그의 마른 손이 오른손이었다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눅6:6)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석공으로 일하던 사람이 질병으로 인해 오른손에 마비증세를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를 많이 흘려서 생명이 위독한 것도 아니고, 다리가 부러져서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바리새인이 보기에는 지금 당장 고쳐주지 않아도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고쳐준다면 안식일 규례를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반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메시아로서 자격에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전하셨던 말씀과는 완전히 모순이 됩니다. 그렇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된다’고 하면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보기에 진퇴양란(進退洋亂)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을 하십니까?

 11절을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의 예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안식일에 동물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 그 동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두 가지 규정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동물이 웅덩이에 빠졌을 경우 그 상황이 동물의 생명에 아주 위급하다고 판단되어지면 그 동물을 건져주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위급하지 않을 경우라면 식물을 갖다 주어 그 다음날까지 지내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이런 규례를 정해놓은 것일까요? 정말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이런 규정을 정해놓은 것일까요?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동물을 건지는 행위도 노동에 속하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고, 동물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것도 노동에 속하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런 규례를 정해놓은 것일까요?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는 생각보다는 비록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재산상의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동물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허락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절 읽겠습니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의 논지는 너무도 명석합니다. "구덩이에 빠진 동물에게도 하다못해 먹이를 던져주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이 위태할 때는 건져주기도 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더 옳고, 더 합당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이 말씀 앞에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 말씀이 '틀렸다'고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

까? 만약 반론을 제기하거나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자기는 짐승만도 못한 꼴이 되고 맙니다. "나는 하찮은 동물보다도 더 하찮고 형편없는 사람입니다."하고 스스로 광고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두 번째 안식일 논쟁도 바리새인들의 완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고침 받은 손 마른 사람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 손 마른 사람의 직업은 원래 석공이었습니다. 돌을 깨고 쪼아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풍으로 손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의사 누가는 더 정확하게 말합니다. 마비된 쪽이 오른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석공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할 수 없죠? 직업을 잃은 것입니다. 이 사람의 속사정에 대하여 성경은 자세히 말씀해 주지 않지만, 부양할 가족들이 많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석공이니 돈을 많이 벌어 놓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뿐 아니라 식구 중에 늙으신 부모님이나 병든 식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니 석공이 중풍으로 인해 직업을 잃었다면 이 집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의 무엇만 보고 있습니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신체중 하나인 오른손만 마른 것, 그리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이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합니다. 법만 있지,,,, 그 사람의 형편을 생각하는 관심과 사랑은 전혀 없습니다.

 

 반면 우리 주님은 어떠십니까? 주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람의 지금 손 마른 것만 보지 않고,,, 손 마른 것 때문에 그의 삶과 그의 가정에 읽혀 있는 수많은 문제들과 어려운 고충들을 모두 보고 계십니다.

 

 이 사람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돈이 많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는 가진 돈이 없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석공이 전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한가지 밖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마비된 손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게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만이 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단지 손 하나를 못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알 턱이 없습니다. 배고파보지 않았는데 남이 얼마나 배고픈지 알 수 없습니다. 이해하는 척 할 수는 있지만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손 마른 것만 가지고 안식일 범하는 문제를 논했습니다. 정말 그가 손 마른 것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가운데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사람의 사정을 다 아십니다.

 그가 손 마른 이후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해왔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어져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감히 동물을 건지는 것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동물도 웅덩이에 빠졌을 때 안식일이지만 건져주기도 하고, 먹이도 던져주는데 그보다 더 귀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이제 아무도 예수님이 하실 행동에 대해 저지하거나 반론을 펼만한 사람도 없고 명분도 없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라’ 하시고는 그의 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치유해주셨지만 그것은 손만의 치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금 당면해 있는 가장 절박한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규례에 얽매여서 절박한 상태에 놓여있는 손 마른자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셨습니다. 아셨을 뿐 아니라 그를 치유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도 아시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아십니다. 아실뿐 아니라 해결하실 능력도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바리새인처럼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는 질문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할 차례입니다. 손 마른 자는 '손을 내밀라'는 말에 두말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고쳐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치료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기에 그냥 내밀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왼손과 같이 마비되었던 오른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주일에 주의 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지금 이 코로나 시국에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며 지금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논쟁으로 몰아가는데....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환경과 어떤 형편과 어떤 시국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것은,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생명과 사망’의 문제입니다. ‘내 영혼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마귀는 자꾸 우리로 하여금 ‘옳고 그르냐’로 문제를 보게 하고, 그래서 정죄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코로나 시국에 꼭 교회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이 옳으냐?“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그저 순종하는 자세로 손을 내 밀고, 그저 순종하는 자세로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손 마른 자에게 아무것도 약속하시지 않으셨지만, 손을 내밀라는 말씀에 순종했더니 회복되었습니다. 살았습니다. 해결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코로나에 예배당에 나아와 예배드리면 코로나 안 걸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아무런 보장도 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손 마른 자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주일 성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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