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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우리가 만나는 풍랑(막4:35-41)-210221낮(1,2부)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21.02.18|조회수681 목록 댓글 0

                                                         우리가 만나는 풍랑

210221낮(1,2부)                                                    (막4:35-41)

 

<35.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아멘

 

 

 오늘 본문의 일은 배를 타고 디베랴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에게 일어났습니다. '디베랴 바다'는 바다가 아닌 담수호인데 물이 귀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호수가 워낙 컸기에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디베랴 바다'는 다른 말로는 '갈릴리 호수', 혹은 '게네사렛 호수'로 불리었습니다. 호수의 둘레가 53km인데, 수심이 26m 이므로 상당히 깊은 호수에 속합니다.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는 해발 2,800미터의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헬몬산이 있습니다. 이 산에서 남쪽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따뜻한 갈릴리 호수의 바람과 부딪치면서 그 온도 차이로 인해 2미터가 넘는 파도가 치는 것입니다.

 

 배안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풍랑이 일었고, 배는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스도인이건, 그리스도인이 아니건 모든 사람은 큰 파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지형적인 특색으로 파도가 일어났듯이, 우리 의지나, 각오와 관계 없이 우리 인생의 항해 길에서도 피해 갈 수 없는 풍랑들이 발생합니다.

 

 풍랑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나 때문에 일어나는 풍랑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요나서에 기록되어 있는 풍랑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40일후면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정 반대 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니느웨는 앗수르라고 하는 나라의 수도입니다. 당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 보다는 그냥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이 요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반대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요나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납니다. 선장이나 모든 사람들이 이런 풍랑은 살아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풍랑이었습니다. 모두들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그래서 배의 침몰을 막기 위해 먼저 자신들의 짐을 모두 바다에 던집니다. 그래도 풍랑이 잠잠해지지 않자 이것은 신이 노여워서 일어난 풍랑이라고 생각하고 신을 노엽게 한자가 누군지 찾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바로 요나가 뽑혔습니다.

 요나는 이 풍랑이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순순히 고백합니다. 이 풍랑이 잔잔해지게 하려면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요나서에 나타난 풍랑은 너 때문에 일어나는 풍랑이 아니라 ‘나’ 때문에 일어나는 풍랑입니다.

 

 인생에 크고 작은 풍랑을 만날 때, 나보다 너 때문에 일어난 풍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 때문에, 부인 때문에, 자식 때문에, 부모 때문에, 친구 때문에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요나서의 풍랑은 ‘나’ 때문에 일어난 풍랑이었습니다.

 

 교회에 풍랑이 일어납니까? 나 때문입니다. 가정에 풍랑이 일어납니까? 나 때문입니다. 나라에 풍랑이 일어납니까? 나 때문입니다. 요나처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당신들이 삽니다. 요나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입니다.

 

 어느 집에 며느리가 시집와서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옛날에는 시집오고 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 집 사람들에게 아침을 올려야했잖아요? 그래서 며느리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하려고 먼저 물을 길러 가는데 그만 미끄러져 물항아리를 깨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어려웠기 때문에 물항아리 조차도 비싼 그 집의 가보입니다. 야단났습니다. 시집온 첫날부터 일을 저질렀습니다. 잘못하면 소박맞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보더니 ‘얘야.. 미안하다..전날 밤에라도 부엌 바닥이 미끄럽다는 얘기를 해주었어야 했는데..그 소리를 미처 못해줬구나.. 다 나 때문이다. 미안하구나...’ 그러자 시아버지가 들어오시면서 ‘아니오...내가 잘못했소..며느리가 미끄러지지 않게 재라도 뿌려놨어야 하는데..내가 잘못했네..다 나 때문에 그려...’ 그러자 신랑이 ‘아닙니다. 제가 그만 늦잠을 자서 일찍 일어나지 못하여 물을 길러오지 않아 그렇게 됐습니다. 다 나 때문입니다.’

며느리가 내가 지금 시집에 온 것이 아니고 천국에 와 있나 싶었습니다.

 

 풍랑일 때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풍랑은 잠잠해지고 행복이 찾아오는 줄로 믿습니다.

 

 

2.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풍랑도 있습니다.

 행27장에 나타난 풍랑입니다.

 

 로마로 항해하는 상선에 바울이 탔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이지만 그런 몸으로라도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이 배가 출항할 때 바울은 이 배가 출항하게 되면 큰 위험이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지나고 출항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배의 책임자인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출항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못가 바울의 말대로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납니다. 이 큰 풍랑으로 인해 배안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짐을 모두 바다에 버렸지만, 여러 날 동안 해도보지 못하고, 풍랑은 그대로 계속되었습니다. 배안의 모든 사람들은 살 소망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랫동안 먹지도 못하고, 풍랑에 시달리고 지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바울 때문에 배안의 사람들을 건져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서서 배안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23.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3-25)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276명이었으나 바울의 말대로 그들 모두 살았습니다.

 

 이 풍랑은 바로 너 때문에 일어난 풍랑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종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백부장이 기도하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큰 풍랑을 만나 배안의 모든 것을 잃고 겨우 생명만 건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잘못으로 일어난 풍랑도 있습니다. 남편의 잘못으로 일어난 풍랑, 아내의 잘못으로 일어난 풍랑, 자식 잘못으로 일어난 풍랑, 나라의 지도자가 잘못해서 일어난 풍랑도 있습니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지옥, 그것은 타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지옥과 같은 풍랑 대부분이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너무도 싫은 타인이 내게 지옥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사랑하는 타인 또한 내게 지옥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너무도 사랑하는 나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의 배우자가 내 곁을 떠났을 때 지옥을 맛봅니다. 나의 자녀는 어떠합니까? 아이를 키워 오면서 항상 그 아이가 내게 천국을 맛보게 해 주었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아이 때부터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해서 까지도 자녀는 지옥을 맛보게 해 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면 자녀도 지옥이 될 수 있으며 큰 풍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난 풍랑, 너 때문에 일어난 풍랑은 내가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풍랑을 만난 배안의 사람 276명 모두 살았습니다. 너 때문이 일어난 풍랑...자식 때문에 일어난 풍랑...남편 때문에 일어난 풍랑, 아내 때문에 일어난 풍랑...부모 때문에 일어난 풍랑...교인 때문에 일어난 풍랑...목회자 때문에 일어난 풍랑... 내가 기도할 때 잠잠해집니다. 너 때문에 일어난 풍랑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이라고 원망하기 전에 나의 기도로 풍랑을 잔잔케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원인을 알 수 없는 풍랑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일어난 풍랑이 그렇습니다.

 

 나 때문도 아니요, 너 때문도 아닌 이름 모를 풍랑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풍랑이 일어나는지..왜 이런 고난이 닥치는지.. 그렇게 크게 잘못을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풍랑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많이 만납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복음 전하고,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배를 탔고, 노를 젓고, 배안에는 예수님도 계신데... 왜 이런 풍랑을 만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잘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잘하고, 봉사생활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주일성수도 열심히 하는데... 왜 이런 고난을 만나고, 풍랑을 만나는 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주님을 원망할 때도 많습니다.

 

 만약, 교회 집사님이 주일날 계모임하고 한라산 등산을 갔다가 다리가 부러졌으면 오늘 주일인데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주일을 범하고 등산이나 하고 있으니 당연하지...할건데....주일예배, 새벽기도회 빠지지 않고 드리는데..주일날 새벽기도 왔다가 다리가 부러졌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십일조를 드리지 않다가 회사가 부도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내가 하나님 것을 떼먹어서 그렇지 할 것인데... 십일조도 온전하게 드리고 주일성수도 철저히 했는데도 회사가 부도나고 어려움을 당했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신앙생활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은 금방 깨닫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데도 풍랑을 만난다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도 시험을 당하고, 큰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것을 섭리적 풍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뜻이 계셔서 풍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욥의 경우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고, 강간범으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는 인생에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풍랑을 만나지만, 그가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큰 흉년에 자기 민족을 구할 수 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풍랑을 섭리적 풍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풍랑을 만났을 때에는 이해할 수 없고 알 수도 없어서 견디기 힘들지만,,,그 과정을 믿음으로 잘 극복해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어도 소용없더라!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의심하고,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다 해결이 됩니다. 모든 풍랑은 주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람아 잔잔해져라! 풍랑아 잔잔해져라 하시니 잔잔해졌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고난이든지...문제든지...풍랑이든지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주님이 타신 배는 풍랑을 만날지언정 결코 침몰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 인생 항해의 배도 주님과 함께 하는 한 결코 침몰되지 않을 것입니다.

 

 30대 자매가 SNS에 쓴 글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가 결국 부도가 났다. 오늘 집으로 법원 집달관이 찾아와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명 빨간딱지라고 하는 압류 딱지를 여기저기 붙이고 갔다. 아이들은 창피해서 학교도 못가겠다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

결혼하지 8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을 사는 동안 힘든 일 참 많았지만 지금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오늘따라 친정엄마가 많이 생각난다.

그래서 부산 친정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엄마, 나 너무 힘들어”라고 하면서 울었다.

 그런데, 등이라도 토닥이며 위로해 줄줄 알았던 엄마는 갑자기 부엌으로 가더니 냄비 세 개에 물을 채우더니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첫 번째 냄비에는 당근을 넣고, 두 번째 냄비에는 달걀을 넣고, 세 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넣으시는 것이었다.

 

 짤짤 끓어오르기 시작한 세 개의 냄비,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불을 끄고 엄마는 네게 말했다.

“이 냄비 속에는 세 가지 사물들이 모두 역경에 처해 있다. 끓는 물은 바로 그 역경이지....

세 가지 사물들이 어떻게 대처했을 것 같니?

 

 당근은 원래 단단했는데 끓는 물이라는 역경을 만나고 나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약해졌어.

 

 반면에 달걀은 너무나 연약했었다. 조그만 충격에도 깨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걀은 끓는 물을 견디며 스스로가 단단해 지기로 결정했어. 그래서 달걀이 끓는 물이라는 역경을 만나서 오히려 단단해졌단다.

 

 그런데 커피는 좀 독특했어... 물색깔이 완전히 커피색으로 변했어.. 커피는 역경이라는 끓는 물을 만나자 그 물들을 모두 변화시켜 버린 거야...“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내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딸 많이 힘드니?”

 “우리 딸은 지금 당근일까? 달걀일까? 커피일까?”

 

역경이라는 풍랑을 만났을 때, 당근처럼 더 약해지는 사람이 있고,

역경이라는 풍랑을 만났을 때, 계란처럼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고,

역경이라는 풍랑을 만났을 때, 커피처럼 완전히 그 역경 바꿔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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