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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삶 자체가 감동인 사람(눅7:1-10)-210418낮(1,2부)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21.04.10|조회수1,027 목록 댓글 0

 

                                                          삶 자체가 감동인 사람

210418낮                                                        (눅7:1-10)

 

<1)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아멘

 

 

 제주도를 한 때는 삼다삼무도(三多三無島)라 불렀습니다.삼다(三多)는 알시다시피 바람, 돌, 여자이고...삼무(三無)는 도둑, 거지, 대문이지요... 과거 제주의 자연환경과 시대상을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가르쳐 3무의 시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무관심, 무책임, 무감동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 빼놓고 관심가질 일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고, 감동 받을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극도의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시대의 특성 중에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무감동입니다. 감동받을 일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자로 감동을 느낄 ‘감(感)’ 움직일 ‘동(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 옛날 어느 마을의 푸줏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젊은 학생들이 모를 것 같아서 설명하지만, 옛날에는 요즘의 정육점을 푸줏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백정’이라고 불렀는데, 사람들은 백정들을 매우 천하게 여기며 아예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마을에 ‘지돌석’이라는 환갑을 넘긴 백정이 있었습니다. 그가 푸줏간을 내고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양반 가문의 젊은 자제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석돌아, 쇠고기 한 근만 다오!” “알겠습니다.”

 지노인은 대충 고기를 잘라 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들어온 또 다른 사람은 고기를 파는 사람이 아무리 백정 출신의 천한 신분이었지만, 환갑을 넘긴 노인에게 말을 놓기가 거북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지서방, 나도 쇠고기 한 근만 주시게!” “아이구, 예.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뜻밖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지노인은 제일 좋은 부위의 고기를 뭉턱 잘라 주었습니다.

 먼저 고기를 산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자기가 받은 것보다 살도 많고 양도 훨씬 많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따져 물었습니다.

“야 이 놈아! 한 자리에서 똑같이 한 근 고기를 샀는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이 내 것보다 훨씬 많으냐?”

지 노인은 태연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손님 것은 석돌이 놈이 자른 것이고, 이분 것은 지서방이 자른 탓입니다.”

 

 옛날부터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하고,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감정을 천당으로 옮겨놓기도 하고, 지옥으로 옮겨놓기도 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설문조사를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원한다고 답을 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삭막해져가는 인간의 마음.... 온갖 사건과 사고로 가득 찬 뉴스들 속에서 어쩌면 우리 인간의 본성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만 감동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도 감동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감동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감동시키는 자녀가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주시기를 원십니다. 소원을 다 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영에 감동시키신 후에 쓰시기도 합니다.

 

 대구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설루디아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다니는 교회는 지금 60명가량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목사님과 사모님 두 분만 빼놓고는 혼자서 모두 다 전도하였습니다. 돈 벌어서 전도에만 사용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주유소가 얼마나 잘되는지 하루에 평균 1300만원이나 팔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돈을 전도에 쓰려고 하였더니 하나님이 엄청나게 복을 주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그에게 하나님은 복 을 부어 주신다는 간증입니다.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에 우리는 은혜를 받습니다.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한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감동시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온 세상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로마가 점령하였습니다. 그 때 되어 진 일이었습니다.

 로마에서 백부장이 이스라엘 가버나움에 와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 주었을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화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백부장이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을 방문하시게 되셨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으신 분임을 소문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장로 몇 명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자기 종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장로들이 예수님 앞으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4-5)

 

 이 백부장의 부탁대로 그의 종을 꼭 고쳐주셔야 할 이유에 대해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 백부장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 우리를 위해서 회당도 지어준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을 지은 백부장이라는 말을 들으시고 그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 때 백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게 하였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8)

 

 굳이 자기 하인을 고치러 수고스럽게 오실 필요 없이 계신 곳에서 말씀만 해주셔도 하인이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9)

 

 이 가버나움 백부장은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인 로마 백부장이 이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다니.....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사건건 대적하는데,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자신이 감당 못할 귀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자기 집까지 오시는 수고를 하지 마시고 계신 그곳에서 말씀만 해주시면 자기 사랑하는 하인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누구라도 백부장의 말에 감동했을 것입니다. 백부장의 삶 자체가 감동입니다. 이 백부장이 무엇으로 예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동시켰을까요?

 

 

1. 백부장의 사랑입니다.

 2절 읽겠습니다.

<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백부장의 사랑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백부장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종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종은 물건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돈 주고 사고팝니다. 그 생명이 주인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살리든 죽이든 권한이 주인에게 있습니다. 병들면 내다 버리든지 팔아버리든지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로마 백부장은 자기 집 하인이 병들었다고 예수님께 부탁해서 꼭 살려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찮은 종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이 로마의 백부장은 자기가 다스리는 이스라엘 나라도 사랑하였습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5)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백부장의 사랑의 이야기가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참사랑은 감동을 줍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으로 감동시키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주전자 뚜껑을 보면 뚜껑에 구멍이 뚫려서 물이 끓어도 뚜껑이 들썩이거나 물이 넘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주전자 뚜껑에 어떻게 구멍이 뚫리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모르실줄 알았습니다. 

 

                                                                      (#주전자 뚜껑 사진)

 

=> 환자를 간호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밤새도록 주전자에 물이 끓으면서 뚜껑이 펄럭여서 잠을 자지 못 하였습니다. 환자를 간호하던 이가 생각했습니다. 환자가 어떻게 하면 주전자 뚜껑 때문에 잠 못 이루지 않고 잠을 잘 자게 할 수 있을까하여 생각해 낸 것이 주전자 뚜껑에 구멍을 뚫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환자를 사랑하는 감동적인 사랑의 아이디어입니다.

 

여러분, 음료수를 빨아먹는 빨대를 보면 윗부분에 주름이 잡혀서 구부렸다 폈다 할 수 있게 돼있습니다. 그래서 누워서도 쉽게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됩니다.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나온 줄 아십니까? 또 모르실 줄 알았습니다.

 

                                                                 (#주름 잡힌 빨대 사진)

 

 일본 병원에서 환자가 누워 있으면서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물을 마시려면 불편한 몸을 꼭 일으켜야 합니다. 환자도 힘들고 간호하는 보호자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워서도 물을 마실 수 없는가 생각하다가 만들어 낸 것이 빨대를 꾸부러뜨릴 수 있는 주름 빨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번득이는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사랑은 감동을 줍니다.

 

 어느 모임에서 이런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호랑이>

다른 사람은 말했습니다. <악어>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표범>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왕따 당한 고라니입니다. 고라니는 초식동물입니다. 순한 동물입니다. 그러나 일단 왕따를 당하면 반감으로 맹수로 돌변하여 어떤 맹수와 싸워도 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문제를 낸 사람이 말했습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동물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떠나 악한 마음을 먹으면 어떤 맹수보다도 더 악하여지고 잔인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배신으로 상처를 입고, 그 상처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였습니다. 죽기까지 사랑하기로 약속하고 약혼하였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남자가 군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멀다고 편지가 오고 갔습니다. 애틋한 사랑을 고백하며 보고 싶어 하는 애절한 편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남자로부터 편지가 끊어졌습니다. 전사한 줄 알고 몸 달아 있던 중에 편지가 왔습니다.

 <나는 전쟁터에서 두 손을 잃었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없습니다. 약혼의 약속에서 놓아드립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도록 하십시오. 이 편지도 나는 두 손을 잃어서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대신 써준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약혼녀는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선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는 동안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전선으로 가서 수소문하여 남자가 입원하여 있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병상에서 폭탄을 맞아 두 팔이 없어진 남자를 찾았습니다. 그 남자를 꼭 안고 말했습니다.

<나는 결단코 그대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일생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감동스러운 이야기입니다. 백부장은 사랑으로 예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처럼, 여러분의 사랑이야기로 세상 사람들과 여러분 주변 사람들이 감동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6-8절을 읽겠습니다.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 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백부장은 자기의 종은 집에 있는데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만 하셔서도 집에 있는 종의 병이 나을 줄 믿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예수님은 백부장을 놀랍게 여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 세계적인 수학자 김인강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충청도 농사꾼의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으나 너무 가난하여 치료시기를 놓쳤고, 그 후유증 때문에 앉은뱅이로 어린 시절을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시며 술을 마신 날이면 저런 쓸모없는 놈 제발 좀 갖다버리라고 말하며 폭력을 휘둘렀고, 어머니는 눈물로 지샜습니다.

 

​ 혼자 힘으로 설 수도 없었기에 기어 다녔습니다. 비료 포대 위에 엎드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론 포대를 잡아끌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친구라고는 병아리들과 강아지, 마당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작은 꽃들이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집에서 1시간 떨어진 초등학교에 입학 하고자 했으나 학교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그의 등교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날 교문 밖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아들을 등에 업고 오는 길에 슬픈 마음으로 어머니는 아들의 꽁꽁 언 발을 만지며 “아가야 춥지?”라고 따뜻하게 물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그에게 다른 어떤 말보다 값지고 힘이 났으며, 세상의 힘든 일들이 비수처럼 다가올 때마다 힘이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아들은 평안해졌고,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1세에 집을 떠나 재활원에 들어갔고 굳은 다리를 펴서 보조기를 끼우고 목발을 짚으며 걷는 방법을 배우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그런 그가 공부에서는 늘 1등을 했고, 선생님의 추천 덕분에 대전중학교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입학 연합고사에서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충남고에 배정받았습니다.

 TV가 크게 틀어져 있는 방 한구석에서 밥상을 놓고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여 서울대학교 수학과에 입학했고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카이스트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고등과학원(KIAS) 교수로 계시며, 2007년엔 40세 이하의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상’을 받았습니다.

 

 김인강 교수는 자전 에세이 <불완전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을 펴내 소외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 그는 남들보다 조금 느리고, 조금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부합니다.

책에서 김 교수는 장애를 이겨낼 수 있었던 신앙의 힘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공식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불완전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끔찍한 고문과도 같은 재활 치료 끝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조기를 끼고 목발을 짚고 처음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초, 목발을 짚고 무거운 가방을 맨 체 너무 많이 걷다 보니 갈비뼈와 폐가 부딪쳐 폐에 큰 구멍이 났다. 의사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기도원 한 구석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왜 저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 때 문득 등 뒤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다.

“..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그 순간 나의 자아가 꺾이면서 회개가 터져 나왔다. 욥처럼 하나님의 모든 주권과 통치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겪은 아픔을 통해 또 다른 고통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해답을 얻었다. 나처럼 연약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셨다.

나는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기도하는 법과 성경 읽는 법을 배웠다. 고통 가운데서도 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육신의 나약함에 끊임없이 노출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인해 약한 데서 강해지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세상이 나를 죄인 취급할 때,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시며 당신이 하실 일을 계획하셨다.

나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질그릇이 되게 하신 것이며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이름과 선하심을 나타내려 하셨다.

<세계적인 수학자 김인강박사 강의 모습>
<세계적인 수학자 김인강교수 믿음의 가정>   

 예수님은 우리를 통하여 감동적인 믿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으로 주님이 감동하고, 주의 종이 감동하고, 성도와 이웃이 감동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백부장의 겸손입니다.

 6-8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6)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겸손이 묻어 있는 백부장의 말을 보십시오. 겸손한 사람인가 아닌가는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금방 알게 됩니다. 우리는 백부장의 말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 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6-8)

 

 수고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말씀만 하여 달라고 하는 백부장의 겸손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겸손은 감동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2장 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세 번이나 낮아 지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사람이 종으로, 종이 사형수로 낮아 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겸손하십시오. 큰일을 해도 겸손하십시오. 많은 일을 해도 겸손하십시오. 헌금 많이 해도 겸손 하십시오. 나이를 많이 드셨어도 겸손하십시오. 많은 지식을 가져도 겸손하십시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어도 겸손하십시오. 훌륭한 자녀를 뒀어도 겸손하십시오. 기도 많이 해도 겸손하십시오. 신령한 은사가 있어도 겸손하십시오. 교회를 오래 다녀 신앙의 연륜이 많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아도 겸손하십시오.

 

 잠11:2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1;2)

 

백부장의 겸손은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신앙생활의 덕목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성공한 사람이 낮아지는 것도 겸손이지만, 실패한 사람이 자존감을 잃지 않는 것도 겸손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겸손으로 예수님이 감동하시고, 이웃이 감동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상도 감동을 원하지만, 예수님도 감동을 원하십니다. 가버나움 백부장은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그의 사랑이, 그의 믿음이, 그의 겸손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자를 축복 하십니다.

 

 여러분의 사랑, 여러분의 믿음, 여러분의 겸손이 주님을 감동케 하고, 세상을 감동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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