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210502낮(1,2부)교회창립기념주일 (마16:15-18)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아멘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또한 감사한 날입니다. 저희 교회가 세워진지 23주년을 맞이하는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참으로 뜻 깊고 감사한 주일입니다. 오늘은 교회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 창립 23주년을 맞으면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일까요?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확고한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워야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15년 정도의 목회 기간 중에 아주 험한 목회의 여정을 걸어오셨답니다. 이분에 대한 글을 보니까, 처음 이 목사님은 어느 시골 교회의 전도사로 목회의 첫 출발을 했습니다. 이 교회는 60년 가까이 된 교회인데, 한 노인 장로님이 전권을 잡고 흔드는 바람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습니다. 주일을 제외하고는 어린아이들이 교회에 드나들 수도 없었고, 어린이 이름을 적은 출석부를 붙이는 것이나, 예배시간에 오르간을 치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장로님의 막강한 교권 앞에서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얼마 후 이 전도사님은 산골에 있는 작은 교회로 옮겼습니다. 가보니 이 교회는 천당만 기다리는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 없다는 내용의 찬송은 이 교회의 주제가였습니다. 세상은 마귀의 것이기에 얼마 후면 망할 것이라고 교인들은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이야기를 하면 교인들은 불평을 늘어놓기가 일쑤였습니다.
얼마 후 목사님은 그 교회를 떠나 공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산업선교에 헌신해 보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산업선교는 목회자의 외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에, 밤낮 가리지 않고 하루에 12시간씩 고된 일을 해가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기 위해 땀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기성교회는 냉정하고 비협조적 이었습니다.
4년 후 목사님은 바닷가에 제법 크다는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축복"을 좋아하는 교인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믿음은 그저 육신의 축복을 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마을에 점쟁이가 여럿 있었는데, 목사도 점쟁이 중의 하나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은 중소도시 변두리에 있는 한 교회로 옮기셨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두 파로 나뉘어져서 치열한 싸움이 그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사랑, 일치, 봉사, 친교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두 그룹이 서로 다투는 바람에 평화가 없는 교회였습니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교회는 싸우는 곳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습니다.
3년을 견디다가 목사님은 도시에 있는 어느 교회로 옮겨 목회를 계속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갈팡질팡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인권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강한 발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15년의 목회 여정을 돌아보며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무엇이 참 교회입니까? 교회란 무엇 하는 곳입니까?
미국의 어느 도시에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교인이 네 명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 신자가 가끔 오는데도 어떻게든 그 사람을 상처를 주어서 내보냅니다. 너무 신기해서 조사를 해 보았더니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교회 뒤뜰에 교인들을 위한 묘지가 있는데 딱 네 개가 남았다고 합니다. 새 신자가 오면 그 묘지 뺏길까봐 쫓아내버리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오늘 한국교회에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분열되고, 싸움이 끊이지 않고, 세상법정에 소송하고... 이런 현실에서 오늘 교회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여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교회의 기능적인 측면에서 알아보며 우리의 믿음생활에 새로운 결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최고의 사명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찬송과 예배를 받으시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최고의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천상교회의 모습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 만물들은 찬송합니다. 천사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계4:10, 5:14; 22:8-9).
지상교회는 천상교회의 그림자이며 모형입니다. 천상교회가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같이, 지상의 교회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예배드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행8:27; 24:11, 엡1:4-6, 마4:10, 요4:23-24)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배가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종탑이 우뚝 서있고, 강단에 십자가가 걸려 있고, 장의자가 있어도 예배드리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유럽은 정말로 복 받은 곳이었습니다. 바울에 의해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를 시작으로 유럽에 복음이 전파된 이후로 유럽 전역에 복음이 확산되어 도시마다, 성마다, 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졌으니까요.. 몇 년 전 지방에서 유럽을 돌아볼 때,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마을마다 교회가 아름답게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교회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 있고, 도시의 큰 교회들은 공연장 및 연주장으로 쓰여 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캐톨릭이나 개신교회가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여기에서 예배가 드려졌겠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성대한 성가와 의식이 있는 예배를 드렸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세계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배가 없는 교회는 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교회를 지었어도 예배가 없으면 교회는 죽습니다. 예배를 잃어버린 성도 또한 성도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틈만 나면 성도들이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예배에 관심과 흥미를 잃게 만듭니다. 마지막 때는 모이기를 폐하는 이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히10:25)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예배를 사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교회를 교회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없는 교회에 주님이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화려한 금장식, 스테인글라스, 거대한 대리석, 석상들로 채워진 유럽의 이 많은 교회에 더 이상 예수님은 없습니다. 세계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명목으로 와서 구경하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음 성경구절들을 읽겠습니다.
출20:24, “24)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강림 하셔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고 말씀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 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 된다... 드리지 말아야 된다’로 한국교회는 분열되고,,,언론과 사람들은 그런 교회의 모습을 보며 비난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낯선 사람이 오면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신천지 때문에 그랬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낯선 사람이 교회에 오는 것을 꺼려합니다. 아직도 코로나 때문에 예배에 나오지 못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욱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예배드리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구경거리 밖에 안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더욱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소성케 되며, 하늘의 위로를 받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2.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막11:17절을 읽겠습니다.
<17)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기도에 힘써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성령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도 기도입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도 마가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행2장)
행3:1절을 읽겠습니다.
<1)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행3:1)
베드로와 요한이 그 바쁜 사역가운데도 꼭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다른 곳에 기도처를 마련할 수 있고, 그때그때 있는 곳에서 편리하게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꼭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올라갈 새’는 어쩌다 한 번 올라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속 진행형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이 성전에 올라 왔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습관적으로 성전에 올라와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제 구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들이 당시에 얼마나 분주 했겠습니까? 성도들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예배 인도하고, 구제하는 일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반드시 성전에 가서 기도드리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성도가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성전이 여러분의 기도처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나 여러분이 기도를 게을리 하면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지 않고, 대신 나의 정욕과 탐심과 무지가 내 영혼을 장악하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은 소멸되어 가고 그 대신 인간의 본성과 정욕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도, 교회의 봉사도, 전도도 성령의 권능을 힘입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신령한 일들입니다. 우리가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도를 게을리 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권능 속에 살고, 또 그 권능을 세상에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교회는 복음 전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다와 갈릴리 지역 등 어디든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본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만약 교회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불행하게도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니까 갈수록 산부인과 의원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전념하지 않으면 교회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오늘의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뿐 아니라 주님의 마지막 명령인 선교에 힘써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다음 성경구절들을 읽겠습니다.
마28:18-20, “1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행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딤후4:1-2,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교회에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의 속량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여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구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귀결은 영혼구원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병자를 고치시고, 배고픈 자를 먹이시고, 사회악을 꼬집기도 하셨지만, 이 모든 것이 복음을 전하는데 귀결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초대 교회는 전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보다 구제에 치중했습니다. 교회가 구제에 치중해서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교회에서 구제품의 분배 문제로 성도들끼리 다투고 비난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모여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일곱 명의 집사를 세워 그들에게 구제의 일을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초대 교회 때 사도들이 전도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우리교회가 전 세계에 복음 전하는 교회가 되고, 여러분은 열심히 전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음 성구들을 읽어보겠습니다.
고전1:2-3,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빌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골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편지 서두에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에 편지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5:13절을 읽겠습니다.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다만 밖에 버려져”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밖은 어디고 안은 어디입니까? 맛을 잃은 성도들과 교회가 “다만 밖에 버려져”라고 말씀했는데, 안 밖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씀하는 밖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고, 밖에 있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고 구경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나 우리 성도들의 가치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교회도 주님 밖에 있으니 사람들의 구경거리요, 밟히는 것이 되고 말 듯, 우리 인생도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고, 성공하고, 부를 거머쥐어도, 주님 밖에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품어주시는 것,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가치가 있습니다.
마16:18절을 읽겠습니다.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도 “내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버려진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탐욕과 시기와 질투, 자기 과시와 교만으로 가득한 세속화된 교회가 아니라 끊임없이 죄악과 적그리스도와 어둠의 영과 싸워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가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5. 교회는 거룩한 공교회입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교회에 관한 고백 중에 ‘거룩한 공회’라는 말이 나옵니다.
‘거룩한 공교회’란 무엇입니까?
옛 번역본에는 ‘거룩한 공회’라고 하였는데 이를 새 번역에서는 ‘거룩한 공교회’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영어로는 Holy catholic church인데 ‘Catholic’ 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인, 우주적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라는 고백은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이며,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공동체임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교회가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지역에 있어서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옛적에는 유대 땅에서만 알려지셨지만 이제는 온 세상에 알려지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전 세계 모든 지역에 세워져서 예수 그리스도는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증거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간에 있어서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박해자들에 의해서 소멸되지 않고, 사탄의 유혹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존속될 것입니다. 아무리 사탄이 교회를 핍박하고 없애려고 해도 교회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존재할 것입니다.
셋째로, 구성원들에 있어서 보편적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인종, 성별, 출신과 학력, 빈부와 계급 등의 차별을 뛰어넘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디옥교회가 이런 차별이 없는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모델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교회는 차별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모든 사람은 똑같이 구원 받아야할 대상이고, 형제이고, 자매입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어떤 차별도 없지만 하나님의 종으로서 받은 은사와 능력은 다르고, 각자의 맡은 역할과 기능의 차이는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고로 인간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인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교회이며,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교회이며, 하나님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지역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구성원들로도 보편성을 잃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기능적인 면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배가 중단되지 않는 교회, 기도가 끊이지 않는 교회, 복음이 증거 되는 교회, 보편성을 잃지 않고 차별이 없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로써 우리교회는 진정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모델삼으시는 교회가 되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