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족함을 디딤돌 되게 하라
210808낮 (막10:17-22)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아멘
오늘 본분에 부자인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7절 읽어보겠습니다.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10절에 보면, 예수님이 집에 계시다가 길로 나가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에 나가시자마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 와서 그 앞에 꿇어앉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길바닥에 꿇어앉아 물어본 사람은 성경 전체에서 이 사람 하나 뿐 입니다. 그만큼 진지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무릎을 꿇고 물을 정도로 진지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9절입니다.
<1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러자 이 사람이 대답합니다.
20절입니다.
<20)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이 때 예수님이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21절입니다.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결론이 있습니다. 22절입니다.
<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1절에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 많은 것이 부족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걸까요? 재물 많은 것이 잘 못된 일일까요?
여기서 주님은 이 청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네 많은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이 사람이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의 부족함은 재물 많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가진 것이 많으나 인색했다는 것입니다. 돈 욕심이 너무 많아 소유할 줄만 알았지 없는 사람에게 나눠줄 줄 몰랐던 것이죠... 그것을 나눠 주라할 때 그 돈이 아까워 그냥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러 왔지만, 그에게는 영생보다 재물이 더 가치 있었기 때문에 영생보다 재물을 택한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소유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재물이 많이 없어도 재물에 가치를 두고 살면 재물의 노예가 되고 인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재물이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재물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온전한 믿음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명들을 잘 지켰다고 하는 것을 보면 종교인 생활은 어려움 없이 잘 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진짜 믿음생활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이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포기하고 근심하면서도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자신의 부족함을 디딤돌 되게 하라>로 잡아 봤습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을 몇 가지로 알아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부족함, 단점이 오히려 강점이 되고,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디딤돌과 걸림돌은 같은 돌입니다.
토마스 카일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한 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하고 강한 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삶의 돌을 만납니다. 그때 마다 그 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그 돌을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디딤돌이라 합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장애를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보는 것과 또 그것을 발판으로 재기와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과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장애의 요소와 같은 돌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돌들은 생활에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깔린 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뒤쳐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걸림돌을 오늘부터는 역으로 발판을 삼아 디딤돌로 생각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보다는 성공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시죠^^
이 아이가 징검다리 돌을 잘 딛고 개울을 건너면 저 돌은 무슨 돌이 되는 것이죠?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저 아이가 저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걸려 넘어져 개울에 빠졌다면 저 돌은 무슨 돌이 되는 것일까요?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돌이 다른 돌일까요?
돌은 그대로입니다.
디딤돌과 걸림돌은 같은 돌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저 아이가 문제죠.... 용기를 가지고 담대히 징검다리를 건너면 디딤돌이 되고, 겁을 먹고 두려워서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빠져버리면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환경은 똑같은 환경입니다. 문제는 그 환경을 대하는 내가 문제입니다. 내가 이기느냐? 지느냐? 극복해 내느냐? 굴복하고 넘어지느냐? 그것이 문제지요...환경을 탓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부족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피조물은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능력이 많은 사람도, 최고의 권력가도..믿음 좋은 사람도.. 부족함이 있습니다. 어디 한 가지만 부족하겠습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한 부자도 한 가지 부족 때문에 걸림돌이 되어 넘어진 예입니다. 이 청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 같았습니다.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많은 재물이 오히려 장점이 되지 못하고 단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에게는 재물이 문제가 아니라 재물을 대하는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것은 다 잘했습니다.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다 잘 지켰습니다. 삶에 대하여도 진지했습니다. 영생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할 만큼 영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물질 앞에서만큼은 모든 이성적 기능이 마비됩니다. 판단이 흐려집니다. 물질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조금의 여유도 없습니다. 결국 그는 슬픈 기색을 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어디를 보아도 예수님에게로 다시 온 적이 없습니다. 물론 지옥 백성이 되었습니다. 물질 때문에 영생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생의 주인이신 예수님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으면서도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온 우주에서 가장 값진 영생을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고로 불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에 그렇게 집착하고 있나요? 제일 잘하는 것 같죠? 제일 어리석은 자가 아닐까요?
주님은 풍년이 들어서 많은 수확을 하고, 창고를 더 짓고 저장하고 뿌뜻해 하면서 ‘내 영혼아 이제부터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할 때에 어리석은 자야 오늘 내가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잖아요...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에 관한 언어입니다. 용은 두껍고 단단한 비늘로 되어 있어서 어떤 무기로도 용의 비닐을 뚫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의 목 밑 부분 심장위에 비늘 하나만은 거꾸로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 거꾸로 붙어 있는 비닐을 역린이라고 합니다. 용을 죽이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창과 칼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은 용에게 역린밖에 없습니다. 역린은 용에게 급소입니다. 용은 자기의 약점이 역린에 있는 것을 잘 알기에 역린을 건드리려고 하면 화를 내며 폭발하게 됩니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덤벼들게 됩니다. 용에게는 역린이 한 가지 부족한 곳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최고로 강한 짐승인 용도 약점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인간이야 얼마나 많은 약점과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사사 삼손은 힘도 좋고 믿음도 좋았습니다. 가문도 좋았고 애국심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성에 약한 것 한 가지가 그의 단점이었습니다. 결국 음란 때문에 눈이 빠지고 죽기까지 연자 맷돌을 돌리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인생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다 좋은데, 그 말을 하면 삐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하면 담을 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만 들으면 신경질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만 들으면 상처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만 들으면 시험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만 들으면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한 가지 부족이 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가 건강하여도 한 곳만 병들면 그 한 곳 때문에 생명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다 건강하여도 위에 암에 들어가 한 곳이 악화되면 다른 곳을 따라 죽게 됩니다. 다 건강하여도 팔이 부러지면 다른 지체도 다 같이 병원에 가서 누워 있어야 합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다리만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 그 것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완벽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무엇이든지 잘해야 되고 잘해내야 됩니다. 자신의 실수나 실패에 대하여 조금도 용납이 안 됩니다. 그러니 삶 자체가 얼마나 무겁고 스트레스 입니까?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완벽한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니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분들이 있다면.... 이제는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은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도 할 수 있고, 남들보다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을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스스로 자기를 위로할 수 있고, 남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을 뿐입니다. 내가 완벽하려고 들지 말고 하나님의 완벽을 찬양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닌 이상 누구에게나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해내고, 성공해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좋아하신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스스로 기쁨이십니다. 영광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영광 받으시는 분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심의 발로입니다.
창세기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사람을 지으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 좋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우리가 부족하던 잘났던 보시기에 좋으신 것입니다. 나의 존재를 보시는 것만으로 좋으신 것입니다. 나를 보시는 것만으로 좋은 것입니다. 나를 보시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입니다. 영광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짜 서로 사랑하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조건이 있고 이유가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러니 부족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부족해서 사람이지요....
3.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디딤돌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 한 가지만 부족하겠습니까? 수도 없이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우리 아닙니까? 그러나 그 부족한 것 때문에 인생을 실패로 돌린다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부족한 것도 억울한데, 그 부족한 것이 걸림돌이 되어 인생을 망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누구나 아킬레스건은 있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자신을 넘어지게 만드는 부족이 있습니다.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대부분의 사람을 넘어지게 합니다. 그것이 고비마다 나를 괴롭힙니다. 그것이 성공의 문턱에서 주저앉게 합니다. 그것이 축복을 눈앞에서 놓치게 만듭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우리 인생을 다 망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단점이 나를 다 망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점이 다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고 하다가 복된 인생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가 그것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단점이 곧 그 사람의 축복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는 나의 단점, 나의 부족함 때문에 걸림돌이 되어 실패하는 인생, 한숨짓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나의 단점, 나의 부족함이 디딤돌이 되어 성공하는 인생, 춤추는 인생,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부족함이 여러분인생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보면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세무서장이라는 지위도 있었습니다. 모든 면에 부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에게도 한 가지 부족이 있었습니다. 용에게도 역린이 있듯이 삭개오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키가 작았습니다. 그냥 작은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동네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데 볼 수 가 없었습니다. 키가 작은 것이 평상시에도 늘 자기를 괴롭히는 콤플렉스였지만, 이날만큼 키가 작은 것이 한이 되는 날은 없었습니다. 그 때 그는 자기 옆에 커다란 뽕나무(돌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위로 올라갈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위험과 부끄러움, 체면을 무릎 쓰고 뽕나무(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삭개오 인생을 바꾸어 놓는 기회가 됐습니다. 예수님이 뽕나무위(돌무화과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자기가 보고 싶어 나이 꽤나 먹은 어른이 나무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분입니다. 뽕나무(돌무화과나무) 밑으로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
삭개오는 키가 작은 한 가지 부족 때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키가 작은 한 가지 부족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었습니다. 키가 작은 한 가지 부족이 천국 가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 화제가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사꾼이 고등학교 교과서 <진로와 직업>에 최초로 실리게 된 이야기입니다. 충북 음성군에서 고추 농사를 25년간 짓고 있는 이종민씨 이야기입니다. 컴퓨터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기발한 것도 아닌 평범한 이야기인데 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의 귀감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학력은 중학교 한 학기 공부한 것이 전부입니다. 집안이 너무나 가난하여 부모님이 학자금을 내는 시기마다 걱정을 하였습니다. 부모 걱정을 덜어 드리려고 일부러 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그리고 농사일에 나섰습니다. 그 학력 가지고는 취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음성이 이름난 고추 산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추로 성공하여 보자고 결심하였습니다. 우선 그는 도시로 고추를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고추를 좋아 하는가를 연구하였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의, 70%가 매운 고추보다 달면서도 덜 매운 고추를 좋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를 하였습니다.
물을 얼마나 주면 그런 고추가 나올까?
물을 몇 시에 몇 번 주면 달고 맵지 않은 고추가 생산될까?
그는 이렇게도 하여 보고 저렇게도 하여 보면서 드디어 그런 고추 생산에 성공하였습니다.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고추빛깔은 검붉은 것이 제일 좋다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고추가 나올지를 계속 연구한 것입니다. 건조법도 개발하였습니다. 자갈을 깔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넣고 그 위에 고추를 말리면 낮에도 밤에도 태양열로 고추를 말릴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명품 고추를 드디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의 고추를 사겠다는 사는 사람이 일 년에 4만 명 내지 5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음성에 고추 전시장을 만들어 찾아오는 사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는 고추를 생산만하면 아무리 비싸도 사겠다는 이가 늘어났습니다. 미처 생산을 못할 정도로 날개돋힌 듯이 팔려 나갔습니다. 생산에 비해 요구가 엄청나고 있습니다.
고추 농사에 성공하였습니다. 학력의 장애물, 자본의 문제, 배경이 없어도 어려움을 다 극복하였습니다. 이 농부는 자신의 부족함을 걸림돌로 삼은 것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았습니다.
주님 앞에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다 좋아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부족한 것을 걸림돌로 삼는 어리석은 실패자입니까?
그 부족한 것을 디딤돌로 삼는 지혜로운 성공자입니까?
크게 된 사람들을 보면 문제가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잘 된 사람들을 보면 약점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약점을 이긴 사람입니다.
우뚝 솟은 사람들을 보면 실패를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실패하였을 때 일어났던 사람입니다.
남보다 앞서 간 사람들을 보면 부족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라 부족을 채운 사람입니다.
한 가지 부족을 디딤돌로 삼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이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고, 실패하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디딤돌로 삼고 승리하는 인생, 승리하는 신앙되시길 축원합니다.
4. 예수님이 우리의 디딤돌입니다.
벧전2:7-8절을 읽겠습니다.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산돌이요, 머릿돌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님은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남아프리카 최남단에 희망봉이 있습니다. 1448년 포르투갈 항해사 “바드톨로메유 디오스”가 이곳을 발견한 후 처음에 “폭풍의 봉”이라고 지었습니다. 폭풍이 심해 이곳을 지나가는 배들이 거의 좌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9년이 지난, 1497년 바스코 다가마가 이곳을 통과하여 인도양을 발견한 후 희망봉이라 바꿔 불렀는데, 이유는 폭풍의 해협은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일 뿐 아니라 이 해협을 통과한 후 비로소 신비하고 부유한 땅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폭풍의 봉과 희망봉은 같은 장소이고 같은 지점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은 배를 파선하게 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이지만, 이곳을 지나면 인도양과 태평양을 만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귀한 진리와 가치 사명을 발견할 때 그곳은 “폭풍의 봉”이 아닌“희망봉”이 되는 것입니다.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하는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가장 곤궁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책이며, 성경 중 가장 기쁨과 소망이 담긴 “요한계시록”은 사도요한이 황량한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기록하였습니다. 바울 또한 옥중서신에서 가장 깊은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넘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험에 모든 것을 올려놓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기초가 튼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믿고 있는 것들이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합니다.
성도여러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위에 인생을 설계하고 사는 자입니다. 머릿돌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버리면, 그것이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머릿돌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기준이며,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 삼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면 다 무효입니다.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저와 여러분은 산돌이신 예수그리스도 위에 우리의 인생을 세워야 합니다.
벧전2:6절에 <내가 택한 보배 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예수그리스도를 머릿돌로 삼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버린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버린 예수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산돌과 머릿돌, 디딤돌이 되신 예수그리스도 위에 우리 인생을 세워 나가는 성도들이 되셔서 여러분의 부족함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는 은혜가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