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 버리고 하나님 뜻대로
210829낮 (요5:30-33/6:38-40)
<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31)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3)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요5:30-33)아멘
<38)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아멘
본문 요5장 30절에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요6:38절에 <내가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하려 함이니라>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토대로 우리도 ‘내 뜻 버리고 하나님 뜻대로 살자’는 뜻에서 말씀제목을 <내 뜻 버리고 하나님 뜻대로>라고 정했습니다. 큰 은혜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로봇이나 기계처럼 만들어 버튼 하나 누르면 움직이고 끄면 멈추는 그런 존재로 만드시지 않으시고,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마음껏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꿈을 이루며 성취감과 행복감도 느끼며 살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이 자유의지야 말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한 일에 쓰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에 써야 하는데, 인간이 그러지 못하고, 불순종하는 일에 써서 불행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의지는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기 때문에 마치 배의 키(key)와 같은 것입니다. 배가 키에 의하여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사람에 있어서도 인격의 삼요소인 지. 정. 의(지식, 감정, 의지)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 의지라는 것이 배의 키와 같아서 내 의지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지는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도 사람의 감정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도,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과 나쁜 그리스도인은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느낌을 표현할 뿐이지 그렇게 깊은 요소가 못됩니다. 그러나 의지는 그 사람의 뼈와 같은 것입니다. 의지가 약하고 흔들리기 잘하는 사람은 뼈가 없는 사람들처럼 흐물흐물한 그런 인격자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특권이며 최대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 의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어서 인간에게 멸망을 끌어 들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의지로 하나님께 복종하되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시면서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었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에게 구원을 가져왔고 잃어버렸던 영생을 다시 찾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루도, 한 시간도, 단 일 분도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30절에 <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이 참다운 행복을 찾고, 보람 있는 삶을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활을 하려면,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에 그는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 인격을 소유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을까요?
1.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앞에 놓고 기도하실 때 얼마나 괴롭고 쓰린 일이었는지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가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마 이 기도를 하실 때 마귀는 좋아서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하신 말씀이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천사가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주기도문에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당신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어 주시옵소서"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기도의 한 표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지식이나 감정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영감을 잘 받고, 직관이 예민하고,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고, 음성을 듣는다 할지라도 그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출 줄 모르고 순종할 줄 모른다면 그 모든 신비한 은혜도 다 헛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5)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내가 기도한 대로만 응답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과 합일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불만을 표출하거나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상충될 때, 하나님을 외면한 채 내 뜻을 세우려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나의 필요대로 주님께서 움직여 주시길 바라며,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여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뜻을 내려놓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수없이 나의 겸손을 드러내기 위해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시며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셨습니다. 내 뜻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주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삶은 자신의 뜻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오스왈드·스미스(O.J. Smith) 목사님은 30세 되던 해에 목사가 되었는데 그는 유명한 목사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큰 교회 목사라는 명예를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어느 해 생일에 드린 특별기도는 "하나님! 제 뜻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꼭 맞는 목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러한 기도를 드렸는데, 그가 구하지도 원하지도 아니했던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제일 유명한 목사가 되어서 그 교회가 500명의 선교사를 보내는 신령한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받으시고 ‘내가 네게 무엇해주기를 원하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하셨을 때에 솔로몬은 자기가 원하는 부귀영화와 무병장수, 정적들을 척결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았더라’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 솔로몬에게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까지 주시고, 왕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내 욕심, 내 뜻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여러분!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왜 믿음의 표상이 되었습니까? 믿음이 훌륭했던 그는 100세나 되어서 모처럼 귀한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아주 정성을 다해 길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내가 지시한 모리아 땅에 가서 네가 가장 사랑하고 하나 밖에 없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제사를 드리라"(창22:2)는 명령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하나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차라리 나의 목숨을 가져가십시오. 그건 죽어도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정말 자기를 사랑하나 시험 하시는데, 아브라함 자신을 제물로 바치라하지 않고, 자식을 바치라 했을까요?
부모님들이신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자식과 부모가 있는데,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된다면, 누가 죽기를 원하겠습니까? 모든 부모는 차라리 자신이 죽지 자식을 죽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신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사진>아프칸 탈출 사진
우리는 아프칸의 비극을 보고 있습니다. 텔레반을 축출하고 지난 20년간 100조원 가까이 투입이 되었는데...미군이 철수 하자 단 며칠만에 텔레반에 의해 아프칸 정부가 무너졌습니다. 카불공항은 텔레반의 보복을 피해 탈출하려는 이들이 몰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중에 전 세계인의 마음을 아프게하고 안타깝게 했던 사진이 있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기 어린 아기만이라도 탈출하여 살수 있도록 담장 철조망 넘어 미군에게 어린 아기를 넘겨주는 모습입니다. 사진으로 보듯이요.... 자기는 죽더라도 자식만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세기를 뛰어넘어 세계 어느 민족이나 똑 같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생명보다 자식 이삭의 생명이 더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자신보다 자식 이삭을 바치라 하신 것도 이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 가장 아끼는 것을 원하시고, 그것까지 포기하고 드릴 수 있나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보상 심리도 없어야 합니다. 내가 가장 아끼는 것, 가장 좋은 것을 드렸으니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시겠지? 무엇인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거래지 헌신이 아닙니다. 사랑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 했을 때, 하나님과 아무런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냥 바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냥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순간이던 세월이 흐르던요...보상을 원하는 순간 하나님과 나 사이는 사랑과 경외의 관계가 아닌 거래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거래의 관계를 만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랑의 관계이지 거래의 관계가 아닙니다. 거래의 관계는 주고받으면 끝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가 되면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좋겠어요? 거래의 관계가 좋겠어요? 우리 인간은 자꾸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보다 거래처로 삼으려고 합니다. 마귀에게 속지 마십시오. 축복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지 거래처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 묶어 놓고 칼로 찔러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은 인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제야 알겠다. 네게 그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일지라도 나에게 아낌없이 드리려고 하는 너의 신앙을 알았다. 네 뜻을 나의 뜻에 순종하려 하는 너의 충성을 알았다.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창22:12)
아들은 다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그 후에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내 뜻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도 포기할수 있어야 함을 깨달으리시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불행이 오는 것 같이 생각되지마는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과 축복은 그 때에 오는 것입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내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길 원하시는데, 나는 내 형편 따라 내 뜻대로 삽니다. 나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질 못합니다. 순종과 불순종은 나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믿음이 큰 믿음이요, 복 받는 믿음입니다. 축복은 바로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그 순간에 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젊었을 때에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왕이 특별대우를 해서 "너는 왕궁에서 먹는 진미를 먹도록 하여라. 고기며, 포도주며, 좋은 것을 다 줄 터이니 마음대로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이 주는 진미와 떡, 고기, 술들을 먹지 않기로 작정 하였습니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 고기나 술은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떡과 고기와 술은 못 먹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뜻을 정하고 생활한 결과 그의 몸이 더 건강해졌습니다. 그러한 신념으로 평생 살았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죄로 사자 굴속에 넣는다고 했지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두려움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더니 사자 굴에 던져진 죽을 자리에서도 살아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의 신앙이 훌륭합니까? 감정적으로, 일시적으로 흥분하고, 또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훌륭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뼈와 같은 가장 중요한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뜻을 여지없이 내려놓는 신자가 훌륭한 신자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마도 오늘 이곳에 못 올 형편이나 사정이 있는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했기 때문에 신령한 예배를 드리며 은혜를 받고 있으신 줄로 믿습니다. 시대가 혼탁할수록, 환란과 핍박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뜻을 정하고 살고, 뜻을 정하고 믿음생활 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 왕의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가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집어넣어 태워 죽인다고 했지만, 그의 명을 받들지 않았습니다. 왕은 "이제라도 저 신상에 절만 해라 그러면 살려 주리라" 고 했지만, 그 다니엘의 친구들은 "그런 말씀 마십시요! 우리는 불 속에서 타 죽는다 하더라도 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한 줄로 아옵소서"라고 담대히 대답했습니다. 그런 결과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집어넣어 죽이려 했으나 그 곳에서 죽지 아니하고 살아난 사실을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볼 수 있잖아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내 뜻을 하나님 뜻에 복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아니하면 아무리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기뻐하며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모두 무효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의지가 약한 자, 순종하지 않는 자는 뿌리가 깊지 아니해서 태양이 떠오르면 곧 말라 버리는 풀과 같은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사탄의 뜻이 있습니다. 그 중간에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내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 하느냐, 아니면 마귀의 뜻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마귀의 뜻을 선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마귀의 종이 되고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서 받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그 말씀을 받아먹었더니 입에는 달콤하나 배에서는 쓰더라고 했습니다. '쓰다'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 받아들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달지만, 나의 의지적인 결단을 내려서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할 때는 쓰디쓰고 괴로운 것입니다. 이 쓴 맛을 경험하지 아니한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에는 신념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념, 자기의 신념, 즉 의지적 결단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손바닥 뒤집듯이 변죽이 들끓는 신앙은 신앙의 인격이 없는 것입니다. 인격이 없는 신앙은 옳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과 약속했으면 목숨 걸고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술, 담배 끊기로 했으면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 버리기로 했으면 버려야 합니다. 주일성수하기로 결단했으면 목에 칼이 들어오고 무슨 환경에 처해도 주일이면 주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했거나, 한 번 입 밖에 냈으면, 그것을 의지를 가지고 지켜야 믿음이 가는 사람, 신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자기의 뜻대로 다시스로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럴 때에 요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배에 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이 풍랑을 만난 것은 나 때문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내 마음 속에, 내 가정에, 혹은 내가 속한 기관에 풍랑이 일어나고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내 뜻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오는 것이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요나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한 것처럼, 내 뜻을 던져버리게 될 때에 풍랑은 잔잔해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다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의지적인 결단을 내려서 얼마나 내 뜻을 굽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가? 고난이 오더라도, 손해가 오더라도,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런 사람이 가장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인 줄로 믿습니다.
4.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에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의 종의 설교나 권면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씀으로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뜻을 나타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뜻, 내 감정 버리고, 하나님 뜻에 맞추어 삽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거래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의지적인 결단을 가지고 그 뜻에 순종하며 사는 성숙한 신앙인 되셔서 풍성한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찬양/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함께 찬양하고 기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