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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영적침체-그리스도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막8:22-26)-220327낮(1,2부)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22.03.21|조회수371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220327낮                                        (막8:22-26)

 

<22)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거늘 23)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아멘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왔던 선교초기에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과  민족해방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를 보듬고 전쟁고아와 가난한 이들의 위로와 힘이 되었고, 군사독재하에서는 민주화의 산실이 되었던 한국교회, 나라가 위태할 때마다 민족의 희망이 되었던 교회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늘 날 교회가 현대 사회에서 어찌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곳이 되어 버렸을까요? 그 한 가지 이유는 영적침체에 빠진 그리스도인이 많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인답게 살거나 행동하거나 증언하지 못하는 탓에 교회는 별 볼일 없는 곳이 되어 버렸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이 희귀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 중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주님이 맹인을 보게 하신 기적인데요... 사람들이 한 맹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대주시기를, 즉 안수해 주시기를 원했는데.... 주님은 맹인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눈에 침을 뱉고 안수하신 후,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번 그의 눈에 안수 하시고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모든 것을 밝히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맹인들을 고치신 다른 사례들을 볼 때, 주님은 “보라”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고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런 능력이 있으시고, 또 못하실 것이 하나도 없으신 분입니다. 다른 맹인들은 말씀으로만 고치셨고, 이번에도 말씀으로만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손만 대셔도 고치실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고치신 데에는 어떤 의도와 목적이 있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행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맹인은 특별히 고치기 힘드셔서 방법을 달리하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르치시고자 하는 교훈의 말씀이 있으시기 때문에 작정하고 그렇게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그는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떤 상태인지 아시겠습니까?

 

 맹인이라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본다고도 할 수 있고, 못 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맹인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닌 상태라면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합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인이 맞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만나면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만날 때마다 인상이 달라지니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앞을 본다고도 말하기가 꺼림칙하고, 못 본다고 말하기도 꺼림 찍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그러니 본인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상태, 어떤 때는 구원 받아 천국 갈 것 같고, 어떤 때는 지옥 갈 것 같고,... 이렇게 불행하게 지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맞아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생각하다가도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내가 그리스인일 리가 없어...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 하면서 낙심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기가 그리스도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스스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낍니다. 세상을 마냥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생활에 크게 만족을 누리는 것도 아닙니다.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합니다.(계3:15)

 

 보기도 하고 못 보기도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괴로운 상태입니다. 영적침체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의외로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까? 보이는 것 이라 말할 수도 없고, 안 보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상태, 어떤 때는 예수 믿는 사람 같은데, 어떤 때 보면 예수 믿는 사람 같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교인)을 보면 항상 예수 믿는 사람 같이 보이지 않고, 어떤 때는 예수 믿는 사람 같고, 어떤 때는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안 믿는 사람 같이 보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23절과 25절을 읽겠습니다.

<23)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5절은 안수만 했는데, 모든 것이 밝히 보였고, 23절은 눈에 침을 뱉고 안수를 했습니다. 24절을 읽을까요?

<24)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안수에다가 침 뱉는 것을 더했을 때는 보긴 보이는데,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 같이 보였다고 말합니다.

 

 25절에 안수만 했는데 밝히 보였으면, 23절에 눈에 침까지 바르고 안수 했으면 더 밝히 보여야 되는데..... 오히려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닌 상태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시기 위함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내 생각을 섞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참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즈음 성도들이 왜 성도다운 삶을 살지 못할까요? 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스도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할까요?

 

 말씀대로 살지도 않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데, 성경 말씀에 자기 생각을 뒤섞어 버립니다. 마치 눈에 침을 바르고 안수하는 것 처럼요.... 그러면 더 잘 보여야하는데,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 보이는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내 생각을 섞어서 믿고,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푼 것만 하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신앙 생활하니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교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는 어정쩡한 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생활에 아무런 능력도 변화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다고 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나가면 안 된다. 적당히 믿어야지 푹 빠지게 믿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하면서 성경의 권위나 설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의 삶은 예전과 달라요...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생각대로 성경을 수정해서 믿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시대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굴복해야 하며, 자신의 뜻과 방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너희 생각을 섞으면 너희는 그렇게 희미한 영적 상태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주님은 교훈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영적침체에 놓여 있는 이들의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1. 정직해야 합니다.

 주님의 질문에 진실하고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적인 비결입니다. 주님은 맹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마땅히 보여야 할 만큼 보이느냐?” 그는 아주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이 맹인을 구한 것은 바로 이 철저한 정직성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단계에 있습니까?

모든 것이 정확하게 보입니까? 밝히 보입니까? 만족스럽습니까? 앞이 잘 안보입니까? 앞이 잘 보이는 지 안 보이는지 자기 상태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우리의 구주라는 사실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을 인격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구원 받았습니까?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안 받은 것 같기도 합니까? 천국에 갈 것 같습니까? 갈 것 같기도 하고 못갈 것 같기도 합니까?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이 맹인처럼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간혹 자신의 치부가 부끄러워서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님께 정직해야합니다. 안보이면 안 보인다고 말씀해야 합니다. 보이긴 보이는데 사람이 나무토막처럼 보입니다. 지금 내 심령이 어둡습니다. 지금 내가 무척 힘이 듭니다. 믿는 것도 같고 안 믿는 것도 같고, 하나님이 계신 것도 같고, 안 계신 것도 같습니다. 답답합니다. 주님께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벧전 1:8절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정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굴복해야 합니다.

 본문의 맹인처럼 완전히 굴복해야 합니다. 그는 계속되는 치료를 거부하지 않고 즐거이 받아 들였습니다. 아마 주님이 더 치료해주시지 않았으면 맹인 자신이 더 기도해달라고, 더 확실하게 보이게 해달라고 간청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그대로 굴복하십시오. 그대로 아멘 하시고, 순종하십시오. 이제 의문은 그만 제기하십시오. 어린아이처럼 주님 앞에 완전히 엎드린 채 선명하고 완전하게 보게 해달라고 온전히 치료해달라고 간절히 구하십시오. 희미하게 보이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어린아이처럼 매달리십시오... 의심하고 의혹하며 반신반의 하는 불행한 상태에 머물면 안 됩니다. 우리를 이런 혼동의 상태에 벗어나게 하시려고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는 것, 하늘에 오르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은혜를 모르면 안 됩니다.

 23절과 26절을 읽겠습니다.

<23)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6)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왜 예수님이 맹인의 손을 붙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맹인을 고치셨을까요? 그리고 맹인을 고치신 후에 왜 마을 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22절을 시작하면서 “벳새다에 이르시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벳새다입니다. 벳새다는 어떤 곳일까요? 벳새다는 오병이어의 기적 등(막6:31-44, 눅9:10-12) 수많은 권능과 은혜가 베풀어진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은 예수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회개를 하지 않아 주님으로부터 큰 책망과 저주를 받았던 마을입니다.(마11:20-22) 그 이후 주님은 그 마을에 두 번 다시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의 맹인이 벳새다에 까지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를 고쳐주시기를 원하자 그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가셨던 것이며, 또 맹인을 고치신 이후 집으로 곧장 가라고 말씀하시고 마을로는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무가치하게 여긴 벳새다에는 두 번 다시 은혜를 베풀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강력한 의지와 또한 고침 받은 맹인이 그 마을에 들어가서 전파하는 것조차 철저히 막으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벳새다 사람들과 말 섞는 것조차 막으신 것입니다. 분명 그들은 주님이 맹인을 고쳐주신 은혜에 대하여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이런저런 말들을 내 뱉을 것이 뻔합니다. 주님은 은혜를 모르고 늘 불평하는 자들, 하나님의 영광을 하찮은 세상 것으로 추락시키는 자들과는 아예 접촉조차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러실까요? 백 프로 내 영이 병들고 침체되니까요.....

 

 여러분!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벳새다가 철저히 외면당하시고, 버림받는 모습을 보십시오. 은혜를 받았으면 감사할 줄 알고, 그 은혜를 귀한 줄 알고 잘 간직해야지~ 조금만 지나면 다시 교만해지고, 은혜를 다 까먹고, 거저 주신 은혜를 모르고 자신이 잘 나서 사랑 받고 은혜 받은 줄 착각하면 안 됩니다.

 

 벧후2:22절을 읽읍시다.

<22)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면 안 됩니다.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나니(롬5:20이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베푸시는 것은 내가 그 만큼 죄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이 잘해서, 잘나서 은혜를 많이 주시는 줄로 착각합니다. 은혜를 무가치하게 여기고 회개할 줄 몰랐던 벳새다가 주님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듯이 은혜를 모르면 버림받습니다.

 

 고전13:12절입니다.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김구 선생님이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서 이렇게 주례사를 하셨답니다. “너를 보니 네 아버지가 생각난다. 잘 살아라.” 명쾌하고도 이 짧은 주례사는 신랑신부뿐 아니라 하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시고, 영적침체에서 벗어나 “당신을 보니 예수가 보인다”는 소리를 듣도록 믿음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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