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산으로 올라가라②
호렙산의 축복
220821낮 (출3:1-10)
<1)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아멘
오늘 <축복의 산으로 올라가라> 두 번째 시간으로 모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입게 된 곳인 호렙산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호렙산에 대한 지도와 사진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시작으로 4장 17절까지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과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영도할 지도자로 부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떨기나무는 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거예요... 모세가 하도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는데...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호렙산에서 모세는 지난 80년의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모세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산에서 모세는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요 심리학자였던 오그 만디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당신에게 주신 축복들을 세워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였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웃음을 회복하게 되고, 우울한 마음이 밝아질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은혜와 힘, 용기와 확신의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는 40년 동안에는 바로의 궁궐에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배우고 익힌 것으로도 충분히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또 다른 40년을 광야에서 목동으로 보내게 하십니다. 40년을 목동으로 있으면서 모세는 아마도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의 전부를 잊어가고 있었을 때에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모세를 지도자로 부르신 곳이 호렙산입니다. 이 호렙산에서 우리는 세 가지의 축복을 만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시간을 알게 되는 축복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궁궐에서 당시 최고의 학문을 연마하며 하나님의 내일을 기다리던 인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의 어머니 요게벳의 손에 자라서 바로의 공주의 입양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일하실 것으로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근거가 출애굽기2장11절 그리고 사도행전7장 23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출2:11)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7:23)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랐습니다. 애굽왕가의 모든 학문과 예법을 다 익혔습니다. 인생의 황금기인 나이 40이 되었습니다. 바로왕 공주의 아들이라는 뒷배도 든든합니다.(이 바로의 딸은 훗날 20년간 나라를 다스렸던 강력한 세력자인 하셒스트<Hatshepsut)>다.)
세상적인 조건으로 보면 무언가 이루기에, 성공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자기 민족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실패했습니다.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을 쳐야 되었습니다. 애굽왕자의 지위도 다 잃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철저하게 준비하고, 완벽한 때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때와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고자 부르실 때에 우리의 조건을 보고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공 대신 광야 40년의 생활을 먼저 던져 주셨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이 광야 40년 동안 자신이 배웠던 그 어떤 것도 사용해보지 못하고 지냈을 것입니다. 양을 치는데, 애굽의 학문이나 기술이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지리와 기후만 익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하면 족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는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모세는 일할 수 있는 시절은 다 가고 80세의 노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행1:6-7절을 읽겠습니다.
<6)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때와 시기는 아버지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시간에, 우리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계획하신대로 일은 성취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궁궐의 40년이 모세 자신의 시간과 계획대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려고 했던 시간이었다면, 이제 광야 40년의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자신을 순종케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나의 뜻과 나의 때에 맞추려 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그냥 걸어가면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응답하여 회개하고 기도를 드리는 예배 가운데 모든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모세처럼, 호렙산에 올라 하나님의 시간을 아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일을 맡겨주시는 축복입니다.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떨기나무는 시내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나무 종류의 키가 작은 가시덤불을 가리킵니다. 이 나무는 땔감으로도 부적합 할 만큼 나무 중에서 가장 볼품없고 쓸모없어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런 쓸모없는 나무 가운데서 자신을 계시하셨을까요? 값비싸고 귀한 침향목이나 백향목이 아닌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가치한 떨기나무였을까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은 이 떨기나무는 이스라엘의 형편을 상징합니다. 애굽에서 비참하게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형편이 떨기나무 같은 신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 하셨습니다. 이는 떨기나무 같은 이스라엘, 애굽의 노예로 비참하게 생활하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모세의 소명과 관련이 있는데요,,,떨기나무는 곧 모세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명 받은 당시 모세는 더 이상 애굽의 왕자도 아니요, 살아가는 환경도 결코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광야에서 양치는 비천하고 늙은 목자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떨기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로 떨기나무를 보면서 ‘너는 신세가 나와 똑 같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가치 없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심으로 지극히 비천한 존재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모세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존귀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비천했던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 받고, 존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는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위대한 인물, 존귀한 인물로 꼽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0절에서 우리는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겠다’라고 말씀하시는 사실에 주목해야겠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제”를 “Now"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시간적으로 ‘지금’, ‘현재’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뒤이어 어떤 사건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을 또한 암시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지금’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지금’ 우리를 부르셔서 주님의 일들을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에 합당 할 때까지는 하나님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 같이 우리도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곧 ‘연단’의 시간이 길다고 낙심하지 말 것이며,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자만하지도 말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비로소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에 자신의 모든 것을 순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절대적으로 훈련되어야 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하신 바에 철저히 자신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일하심을 알게 된 축복입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9)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3장9절은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계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는 모습, 애굽 사람에게 학대 받는 모습....모세가 애굽 궁궐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40년간 처가살이하며 목자생활을 하는 자신의 신세를 다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잊으실 뿐 아니라 아예 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잊지 않으셨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다 보고 계셨고, 알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음소리도 들으셨습니다. 애굽의 학대에 고통 받는 것도 보고 계셨습니다. 모세를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 80세가 되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에 던져 놓으시고 아무 말씀도 없으셨을 때에는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버리시지도 않으셨고, 한 순간도 잊지를 않으셨음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힘들고 고난의 연속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환경은 바뀌지 않고, 부르짖고 신음하여도 침묵만 하시는 하나님... 나를 버리셨구나...나를 잊으셨구나...나 같은 것.... 내가 뭐라고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기억이나 하시겠나....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그들이 학대 받는 모습을 다 보고 계셨고, 잊지 않고 계셨듯이 나의 작은 신음도 들으시고, 단 한 순간도 나를 잊지 않으시고 보고 계셨다는 것을 .... 그리고 앞으로 나를 잊지 않으시며 나를 버리지 않으실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찌라’ 가사......“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아무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아무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성도여러분!
궁궐에서의 화려한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광야의 생활이 모세를 참으로 모세 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이란 축복의 전주곡이 될 수 있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는 형들에 팔려 애굽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있을 때, 그는 강간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옥살이는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의 길목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호렙산에 올랐을 때 그의 훈련의 시간은 끝이 나고, 하나님의 거룩한 종으로서 위대한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산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 나의 처지를 비참케 하려고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지도록 하시기 위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모세처럼 호렙산에 올라, 하나님의 때를 잘 분별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