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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축복의산으로 올라가라⑥ 변화산의 축복(눅9:28-36)-220918낮(1, 2부)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22.09.14|조회수194 목록 댓글 0

축복의산으로 올라가라⑥

                                                                     변화산의 축복

220918낮                                                          (눅9:28-36)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아멘

 

 

 본문 말씀은 마17:1-8, 막9:2-8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된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자 우리에게 주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바로 앞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시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을 말씀하신 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후 8일 쯤 되어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 가셔서 기도하는 중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셨고, 또한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하시는데,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때 문득 베드로와 제자들이 깊이 졸다가 깨어서 예수님의 영광과 모세와 엘리야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떠날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지금 이런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 갑자기 구름이 와서 덮으니 무서워하고 있는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소리가 그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직 예수만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산 이름이 별도로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변화된 산이기 때문에 ‘변화산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은 축복의 산으로 올라가라 6번째 시간으로 예수님과 세 제자가 올라간 <변화산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큰 은혜 되시기 바랍니다.

 

 

1. 변화되는 산입니다.

 29절입니다.

<29)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과 성령 충만함을 받는 사건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5:16절 말씀 보면 ‘예수께서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6:12절 ‘이때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9:18절 에서도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라고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할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외적인 변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 영접했다고 해서 작은 키가 갑자기 커진다든지....검은 피부가 갑자기 하얘진다든지.... 갑자기 얼굴이 천사처럼 된다든지..... 갑자기 돈벼락이 쏟아진다든지.... 이런 거 없잖아요... 이런 외적 변화가 한개도 없잖아요. 그러면 모든 현상은 어디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내적인 변화에요. 내 신분이 변화를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내 사고방식, 내 가치관, 이게 안 꺾여지고 안변하는 겁니다. 비록 예수님은 믿었지만 내 속에 남아있는 옛사람의 삶의 태도와 방법과 가치관들이 내게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화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안변하는 것입니다.

 

 이게 베드로에게 바로 나타나죠? 무엇입니까? 신앙 고백을 해놓고, 예수가 그리스도라 고백해 놓고.... 예수님이 십자가 진다고 하니까 ‘그리하지 마옵소서!’ 막아섭니다. 누구 생각이죠? 네~~ 자기 생각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안 되는 부분이 바로 뭔가요? 분명히 내 신분자체는 하나님 자녀가 되었는데, 이미 복음 안에 모든 답이 다 들어있는 건데.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여전히 뭐가 나를 장악하고 있죠? 바로 나의 옛사람이 나를 장악하고서 이게 몽땅 다 사단의 통로가 되어서 나로 하여금 구원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고 사명 감당치 못하도록 나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뭐 하시는 것입니까? 변화산 사건을 통하여서 “변화되어야 한다!” 는 것을 시청각으로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변하고, 무늬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메테 모르포 본질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생각도 바뀌고, 내 말도 바뀌고, 내 성품도 바뀌고, 내 삶의 태도도 바뀌고, 본질이 마귀의 속성을 지닌 마귀의 자녀에서 본질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 자녀로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 합니다. 변화산은 이런 변화의 축복이 있는 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화되어야 합니다. 기업들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합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기업은 도태 되고 맙니다. 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러는데.... 하물며 영물인 사탄마귀와 싸워 이기려면 우리도 변화되지 않고는 믿음생활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탄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그러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 믿기 전이나 예수 믿은 후나 변한 것이 없다면 잘 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나오는데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아직도 본질이 마귀의 자녀이든지.... 그리하여 마귀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살고 있던지.... 예수님 영접하고 예수님 믿으면 거듭나는 것인데,,,,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자녀로 났으면 하나님 닮아야 하는데.... 안 닮았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 자식이 나를 안 닮고 옆집 아저씨 닮았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요.... 변화되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이것을 성화되어 가야한다고 말씀합니다. 거룩해져야 합니다. 부단히 예수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경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육의 습성이 자신도 모르게 툭툭 튀어 나와 자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기도할 때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옛 습관을 이길 수 있는 성령이 충만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 닮은 내 영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내 육을 지배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변화의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들리는 산입니다.

 35절입니다.

<35)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오직 예수님 말씀만 들어야합니다.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설교가 귀에 들려야 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 읽다가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대화 중에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왜요? 말씀이 들려야 순종하니까요!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주님이 주인 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주인 되어 삽니까? 내가 왜 내 생각과 고집대로 삽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리니까 그렇죠!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누구 말만 들으라고요? 예수님의 말만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속에 들어오는 것은 곧 예수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 속에서 말씀이 역사합니다. 그분이 내 속에 들어오신 것은 더 이상 내가 내 인생의 주인노릇 하지 마라. 내가 네 일을 내가 대신 살겠다. 그리스도를 내 인생 주인으로 모실 때 그분이 나를 통해서 이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갈 길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는 어느 길이 좋은 길인지 어느 길이 망하는 길인지 한 시간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모릅니다. 그분이 내 인생의 주인 되셔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거예요. 그분의 인도를 받게 되었을 때 그분이 나를 통해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아 말씀을 따라 말씀에 순종만 했는데 요단이 갈라져요. 여리고가 무너져요. 내가 요단을 가릅니까? 내가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겁니까? 누가 하신다고요? 하나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 되도록 만들어라!.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한참 그 조국 문제가 나왔을 때 신문에 "조국의 적은 조국이다" 이러더라고요. 이재명 씨가 나오니까 "이재명의 적은 이재명이다" 이러더라고요. 황동현의 적은 황동현이다. 나 때문에 안 되는 겁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나. 하나님이 내게 다 주셨는데 뭐 때문에 안 된다고요? 나 때문에 안 돼.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주인 노릇 하니까.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면, 주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지금도 말씀대로 홍해가 갈라지는데. 지금도 여리고가 무너지는데. 누가 하고 앉았다고요? 내가요..... 왜 안 되죠? 너 때문에? 아니요! 나 때문에..... 지금 누구 때문이라고! 누구 원망하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100프로 신뢰하고 그냥 따라가면 되는데... 오늘 우리가 새롭게 결단을 해야 됩니다. 강단의 메시지 속에서 항상 두 가지를 잡으세요.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설교가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야 합니다..... 목사의 말로 들으니까...왜 설교를 그렇게 하냐? 듣기에 조금만 불편하면, 귀를 막고 이를 갊니다. 왜 그럽니까? 사람의 말로 들으니까... 설교하는 목사가 미운 것입니다.

 

 강단의 메시지는 참고사항이 아닙니다. 강단의 메시지가 선포될 때는 반드시 성취될 언약으로 내게 주신 것을 잡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잡으세요.

 또 하나는 말씀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다 놓쳐버리고 신앙생활을 하니까 신앙생활을 여러분들이 10년, 20년, 50년 신앙생활을 해도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주인 되어 사는 거예요. 예배만 드리고 할렐루야 하고 하나님 앞에 눈도장 찍으러 오셨나요? 예배 안 드리면 뭔가 껄적지근 해가지고.. 그렇게 신앙생활 해가지고는 여러분들의 믿음이 자라지를 않아요.

 

 매주 예배 시간마다 오늘은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말씀하실 것인가? 성취될 언약으로 내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 이것을 기대감을 가지고서 찾아지게 되면 예배가 달라질 것입니다. 금요일, 토요일 되면 이번 주일에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주실 것인가? 이 기대감을 가지고서 예배를 준비하고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산에 올라 오직 하나님 말씀만 듣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음성이 들려지기를 축원합니다.

 

 

3. 오직 주만 보이는 산입니다.

 36절입니다.

<36)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율법이나 혈통으로(선민사상)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로만 구원 받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내용 속에서는 모세도 등장하고, 또 누가 등장했죠? 엘리야가 등장을 합니다. 엘리야는 참신 논쟁을 했던, 영적 삶을 살았던 중요한 인물이죠. 또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자입니다. 엘리야가 했던 일들이 무슨 일일까요? 참신 논쟁입니다. 누가 참신이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신이냐? 바알과 다른 신들이 참신이냐? 이 싸움을 엘리야가 했습니다. 자 여기서 무엇으로 발전한 것인가 하면은? 여호와 하나님이 많은 신들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하나님이야‘ 그래서 나오는 내용이 선민사상입니다. 선민사상은 곧 혈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나면 자동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고, 구원받는 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는 말씀은 율법으로도 구원 못 받고, 혈통으로도 구원 못 받고 오직 예수로만 구원 받는 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슨 싸움일까요?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는 이 싸움입니다. 초대교회 이백오십 년 동안에 10명의 황제를 통해서 삼백만 명이 순교를 당할 때,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아십니까? 큐리오스’, 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싸운 것입니다. 이거 하나 때문에요. 예수님을 ‘주’라고 이야기 하니까 ‘예수가 주다‘, ‘아니다! 황제가 주다‘, ‘아니다! 예수가 주다’ 이 싸움 때문에 죽은 거예요. 이 싸움 때문에요. 다른 말로하면 ‘오직 그리스도는(주는) 한 명밖에 없다. 예수만이 그리스도야! 그분만이 해답이야!‘ 이거 싸움한 거예요.

 오늘 우리도 이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그리스도! 나로 하여금 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다른 것 다 없애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가 되어야 할까요?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 되도록 만들어라!‘ 이것이 오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다 사라지고 누구만 남았죠?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예수만 보여야 되는 것이예요. 마태복음 8장 21-22절에 보면, 예수님이 70인 제자를 불렀을 때에 한 제자가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지금 연세가 많아서 곧 돌아가실 것 같은데 내가 장사 지내고 난 이후에 와서 예수님 따라 가겠습니다’ 예수님이 일언지하에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례하게 하고 너는 나를 쫓아라‘ 어느 정도 우선순위를 두라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이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는 네 부모 장례하는 것보다도, 더 우선순위로 삼고서 잡아야 될 것이 바로 뭐다? 이 사명이라고 오늘 우리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냥 빛이 아니라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중국의 대 사상가 임어당 선생은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에 회의를 가지고, 유교, 도교, 불교, 근대철학, 유물론 등 종교와 사상들을 순례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독교로 되돌아와서 <이교도에서 기독교로>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임어당의 종교 순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고대 중국의 한 은둔 철학자의 말을 빌려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해가 떠올랐다. 촛불을 꺼라” 간단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캄캄할 때는 반딧불도 빛이지만 해가 뜨면 다른 빛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참 빛 되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다른 빛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깊은 밤에 어거스틴이 성경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주님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어거스틴은 깊은 꿈속이지만, 그의 의식과 신앙을 지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 밖에는요”

 

 토마스아켐피스에게도 꿈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켐피스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까?” 저는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니다 너의 충성됨을 보아서 주고 싶은 것이 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 저는 주님한분으로 만족합니다. 세 차례 똑같은 답을 한 아켐피스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참으로 좋은 것을 가졌느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만족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이요,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변화산의 축복!

여러분의 삶에서 오직 주만 보이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4. 기도하는 산입니다.

 28-29절을 읽겠습니다.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누가는 마태와 마가 다른 복음서 저자들이 언급하지 않는 산행의 목적을 밝힙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의 옷이 굉장히 희어질 때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하여도 다른 복음서 저자들은 언급이 없지만 누가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높은 산에 올라가신 목적은 기도하기 위함이었고, 예수님의 기도가 진행 중일 때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실 때도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빈번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뭐가 그렇게 부족 한 것이 많아 기도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를 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이 기도라면, 예수님의 제자 된 오늘 우리도 기도에 더욱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사라지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편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육신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육신의 변화는 눈부시고 잘 살게 되었지만, 영적 변화는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대로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로 살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깊이 졸다가....... 이 기록 역시 누가만의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함으로써 하늘의 계시를 다시 한 번 확인하신데 반해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에 곯아떨어짐으로써 중요한 계시를 놓쳤으며, 계속해서 상황을 곡해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합니다(33절).

 

 이와 유사한 장면은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연출되는데, 그 때에도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는데 반해 제자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결국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 교훈하실 때, 계속 강조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해야 하지만, 지금 이 시간 구별된 장소인 예배당에서야말로 더욱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적으로 밤이 깊어지면서 잠들기 쉽습니다. 영이 잠들면,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 취해 있으면, 성도의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졸다 깨어서 딴소리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떠나려 하자, 베드로가 만류합니다. 초막 셋을 짓고 살자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들이기에 사라져야 하는데 베드로는 붙들려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겪어야 하는 고난과 그 이후의 영광을 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예수님만 붙들어야 하는데, 모세도 붙들고, 엘리야도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나와서 예수님만 붙들어야 합니다. 왜 사람 붙들려고 합니까? 왜 다 붙들려고 합니까? 예수님만 붙드세요. 오직 예수님만 보세요!

 

 성경은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하는 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믿음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내가 지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지? 내게 지금 복이 임하는지? 저주가 임하는지....? 전혀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 보고 살지 않고 사람까지 잡으려고 하고, 이것저것 잡으려고 하면 이렇게 믿음생활이 뒤죽박죽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방금 전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제 곧 별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여 인류를 구원시키실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베드로는 전혀 딴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겠다고 말씀하는데, 지금 여기가 좋다고 같이 집짓고 살자고 합니다. 같이 죽자는데, 같이 살자고 말합니다. 이것이 지금 수제자 베드로가 말 같은 얘기를 하는 것입니까? 자기 위치, 자기 사명 다 잊고...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계획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기도해야할 시간에 잠자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때 변화됩니다. 기도할 때 말씀이 들립니다. 기도할 때 오직 주만 보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가 무엇이 필요할 때,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할 때, 힘들고 어려울 때만 그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기도는 무엇을 주님께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시간을 많이 늘리시기 바랍니다.

 

 변화산의 축복은 변화의 축복, 말씀이 들리는 축복, 오직 예수만 보이는 축복, 기도가 회복되는 축복입니다. 변화산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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