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다의 사랑
110619낮 (행9:32-43)
욥바에 다비라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도르가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도르가라는 이름은 <사슴>,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양>이라는 의미입니다. 도르가는 아람어이고, 다비다는 헬라어입니다. 다비다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눈을 가진 양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눈이란 육체적인 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적인 눈이 아름다웠다는 말입니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이 아름다운 눈입니다.
다비나는 선행과 구제를 심히 많이 하던 여자입니다. 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 동네 룻다에 베드로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두 명이 베드로에게 가서 급히 말했습니다.
“지체하지 마시고 급히 와주십시오.”
이스라엘이나 중동지방은 사람이 죽으면 그날 매장하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이기에 시체가 금방 부패합니다. 그래서 시신이 썩기 전에 묻는 것이 고인에게 예의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체하지 말고 급히 오라고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서 보니 다비다 시신을 깨끗이 씻어 다락에 눕혀 놓고 있었습니다. 그 동네 가난한 과부들이 모여 시신을 둘러싸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들의 손에는 속옷과 겉옷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울면서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다비다가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우리에게 지어준 옷입니다.”
베드로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다비다는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오라고 불렀습니다. 이 사건으로 욥바가 복음화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다비다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특별합니다. 그는 죽었다가 사시 살아남으로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다비다의 사랑은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비다를 통하여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다비다가 과부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깊은 성경 연구를 통하여 다비다는 십중팔구는 과부입니다. 여제자라는 말은 당시 혼자 살고 있는 여자를 의미하였습니다. 그 주변 사람들은 늘 과부들이었습니다. 다비다가 죽었을 때 과부들이 모여왔습니다. 자신도 과부이면서 도움을 받아 살아야 할 사람이 자기와 같은 처지의 과부들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다비다의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증평에 가면 꽃동네가 있습니다. 입구에 동상이 서 있습니다. 그 동상은 박계동 할아버지라는 분인데 거지옷차림으로 깡통을 들고 서있는 모습입니다. 누가 보아도 거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거지 동상을 만들어 흠모하고 있는 곳이 이곳 말고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동상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박계동 할아버지는 다리 밑에서 병들어 누워 얻어먹을 힘도 없는 거지들에게 거지 노릇하여 먹을 것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자기도 빌어먹는 거지면서 그 빌어먹을 힘조차 없이 다리 밑에 병들어 누워 있는 거지들을 돌본 사람입니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움을 주는 것, 이것이 참 사랑입니다. 다비다는 받아야 할 사람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난할 때 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추울 때 더 추운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배고플 때 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아플 때 더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괴로울 때 더 괴로운 사람을 간호하여 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다비다의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요?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2차 대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필리핀 군인들이 일본군에서 패하여 포로로 수천 명이 잡혔습니다. 포로수용소는 지옥과 같았습니다. 포로의 생명은 파리 생명 같았습니다. 목욕물은 그만 두고라도 마실 물조차 없었습니다. 침대가 없는 것은 물론 이부자리도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동물처럼 살았습니다. 게다가 전염병이 퍼져서 하루 밤에도 수많은 포로 병사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철조망 안으로 날아와 떨어졌습니다. 독수리에 찢긴 상태였습니다. 한 쪽 날개가 거들거렸습니다.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포로들은 의사들에게 비둘기 치료약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를 돌아가면서 열심히 치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포로들의 관심이 비둘기였습니다. 배고프면서도 자기들이 먹을 음식을 비둘기에게 먹였습니다. 돌아가면서 애무하여 주었습니다. 정성껏 모두가 사랑하였습니다. 얼마 후 비둘기는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비둘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한 달에 100명가량 죽어 나갔는데, 비둘기를 사랑하고부터는 40명가량 밖에 죽어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면서 엔톨핀이 나오면서 모두 건강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잘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비다가 과부들을 그렇게 사랑하면서 사랑을 받은 과부들이 잘 된 것이 아니라 사랑한 다비다가 잘되었습니다.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랑하면 자기가 사랑을 받습니다. 사랑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고, 외로워할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십시오. 사랑 받고 사는 사람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됩니다. 자녀를 사랑 받는 사람으로 키우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고, 잘될 것입니다.
2. 동감이 참 사랑입니다.
다비다가 죽었을 때 그 마을 과부들이 다 모였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마을 과부들이 모두 모여 도르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보면 도르가는 과부로서 과부를 퍽 사랑하였던 것 같습니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이 동감의 사랑입니다. 같이 느껴 주는 사랑입니다.
신애성구사 사장 임선재 장로님은 서울 봉천감리교회 장로님입니다. 이분은 어릴 때 너무나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심장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여 달라고 하였더니 병원에서 치료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의사가 무료로 치료하여 주어서 살아났습니다. 그 후 그는 돈을 벌게 되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무료로 치료하여 주셔서 내가 살아났다. 이런 환자가 많을 것이다.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장로님은 매년 한 명이 심장수술 받을 돈을 그 의사 선생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돈이 없어 심장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를 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동감의 사랑입니다. 자신이 어려운 처지를 당해 보니 그런 사람들의 처지를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비다는 과부들을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자 동네 모든 과부들이 모였습니다. 동감의 감정으로 그들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동감이 참 사랑입니다.
가이드 포스트에 실린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국 메사스츄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칼 테일러와 아내 이디트가 결혼한 지 23년 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1960년 남편 테일러가 일본 오끼나와 군용공장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몇 달 파견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많아져서 그 곳에 몇 년 머물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도 자주 오고 전화도 자주 오더니 어느 날 경악스러운 편지가 왔습니다.
“이제 당신과 이혼하여야 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하숙하던 집의 식모 19살 된 아이고라는 여자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이디트는 이 편지를 받고 처음에는 기절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직장에서 일은 고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서 지쳐있었을 터인데 나는 옆에 없었다. 식모가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 주었을 것이다. 몇 년을 그렇게 하다 보니 사랑스러워진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몇 년 동안 나를 생각하고 굳굳하게 버티어 준 남편이 오히려 대견스러운 것이 아닌가? 남편은 지금까지 결코 경솔하지 않았다. 이혼까지 생각하였을 때 남편은 얼마나 고민하였고 얼마나 망설였을까?”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그 여자는 19살입니다. 다 늙은 사람이 19살 여인과 사랑한다면 길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받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답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딸을 낳았습니다. 선물을 보내 주었습니다. 일 년 지나 또 두 번째 딸을 낳았습니다. 선물을 사서 또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암으로 죽어간다는 편지가 식모로부터 왔습니다. 죽었습니다. 식모로 두 딸을 공부시키고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부인은 두 딸을 보내주면 미국에서 기르겠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였지만 식모가 기를 수 없어서 두 딸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54살 된 이디트는 5살, 3살, 두 딸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양녀로 입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아이고가 식모 격무에 시달리다 병이 들었습니다. 이디트는 수속을 하여 그를 미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얼마나 자기 딸들을 보고 싶어 할까?” 동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뉴욕 비행장에 그 여자가 도착하는 날 아침 이디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내 남편을 빼앗아갔던 여인이 오늘 공항에 도착합니다. 원수로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하게 하옵소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남편이 돌아 온 것처럼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비행기에서 아이고가 내리는 순간 그가 자기를 보고 미안해 할까봐 먼저 달려가서 끼어 안았습니다. 같이 살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한 명을 데려 가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극히 사랑할 세 사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진실로 감사합니다.”
동감이 사랑입니다.
3. 최선이 참 사랑입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비다는 옷을 사준 것이 아닙니다. 옷을 얻어다가 가난한 과부들에게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옷을 손수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비다는 옷 재단하는 법을 배웠던 여자인 것 같습니다. 다비다가 죽었을 때 과부들이 다비다가 만들어준 속옷과 겉옷을 들고 와서 울었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눈에 띄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은 속옷과 겉옷을...>(39절)
정성스러운 선물은 감동을 줍니다.
다비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생긴 이야기입니다. 영국 비행기와 독일 비행기 사이에 공중전이 벌어졌습니다. 영국이 이겼습니다. 독일 비행기를 격추시켰습니다. 독일 비행기가 폭격에 맞아 격추되었습니다. 영국 비행사는 독일 비행사를 염려하면서 비행기가 떨어진 현장에 착륙하여 보니 독일 비행사가 죽어 있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사진 한 장이 나왔습니다.
어머니 사진이었습니다. 그 밑에 이상한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너의 어머니>
이 말이 이상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을 비행기에 실고 와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주소를 물색하여 그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당신의 아들을 죽인 영국 비행사입니다. 나는 죽이고 싶어 죽인 것이 아니라 전쟁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죽였습니다. 미워서 죽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당신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 부대를 그 비행기가 공격하여 우리 군사들이 수없이 죽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죽였습니다.
나는 당신 아들을 죽인 후 따라 착륙하여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어머니 사진이 나왔습니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어머니가 살아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저는 비록 당신 아들을 죽였지만 당신을 어머니같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 같아서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눈이 눈물로 흐려져 더 이상 쓸 수가 없군요.>
이 편지는 중립국을 통하여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영국으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보내주신 편지를 받기 전에 나는 이미 내 아들이 비행기가 격추되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기 전에는 아들을 죽인 사람을 원수같이 생각하였으나 이 편지를 받고 보니 죽은 아들이 살아난 것 같아 감격입니다. 전사한 아들이 살아나서 편지를 보내는 것같이 생각됩니다. 죽이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 자기 조국을 위한 것이 전쟁이지요.
당신은 나를 어머니로, 나는 당신을 아들로 느끼고 있습니다. 무슨 인연일까요? 당신이 죽인 내 아들은 세 아들 중 막내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 집을 방문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들로, 형 둘은 동생으로 당신을 맞을 것입니다. 속히 그 날이 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너의 어머니로부터.>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최선이 참사랑입니다. 사랑이 최선입니다.
4. 댓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다비다는 과부들을 구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감동을 주는 사랑입니다.
부자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댓가를 바랄 수 없는 과부들을 사랑하였다는 것이 다비다의 특징입니다.
유대인 마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남자가 죽었습니다.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장례식에 갈 예정인가?”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 장례에 오지도 못 할 사람에게 왜 가나?”
이것이 사람들의 보통 심리입니다.
그러나 다비다는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1-5)
토스토에프스키는 말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 가장 행복한 사랑이다.”
어거스틴이 말했습니다. “남에게 한 가지 친절한 일을 하여 주고 은근히 채권자 같은 마음으로 그 보답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좋지 않다. 친절하려면 무엇보다도 순수하여야 한다. 그 곳에 아무 목적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친절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다비다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더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부메랑입니다. 사랑을 주니까 사랑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 왔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솔로몬도 말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체 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
다비다는 도움을 받아야 하면서도 도움을 주는 사랑을 했습니다. 동감의 사랑을 했습니다.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주로 최선을 다하여 사랑했습니다. 댓가를 바랄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다비다의 감동적인 사랑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