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길을 물을 것인가?
230409낮(부활주일) (마28:1-10/요14:6)
<1)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4)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28:1-10)아멘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아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갇히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무덤도 예수님을 가두지 못했습니다. 사망권세도 예수님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다시 사신그리스도,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영광의 박수를 올리겠습니다.
오늘 부활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과연 우리 인생은 누구에게 길을 물을 것인가? 에 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1) 예수님의 죽음은 가장 비참한 죽음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가장 비참한 처형입니다. 십자가가 사형틀이 된 동기가 있습니다. 폐르시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폐르시아인들은 이 땅은 페르시아인들의 신(神) 올무즈(Ormuzd)에게 바쳐진 신성한 땅이라고 여겼습니다.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을 처형할 때 신의 소유물인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죄인의 시체를 땅에 닫지 않도록 높이 들어 올리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십자가 처형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십자가의 처형이 폐르시아에서 북 아프리카 칼타고로 건너갔습니다. 칼타고에서는 다시 로마로 전해졌습니다. 인간이 생각해낸 사형방법 중에 가장 잔인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로마인은 로마 사람이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처형을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처형 방법이 있습니다. 사형언도를 받은 현장부터 십자가 처형 장소까지 죄인이 십자가를 메고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형벌이 시작됩니다. 가로, 세로 각 무게가 40㎏ 씩 해서 80㎏이나 되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무게는 80㎏이지만,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으니 그 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그 심리적인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 할 것입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1.5㎞ 정도 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닙니다. 평지도 아니고 언덕길입니다. 80㎏의 십자가를 메고 1.5㎞의 언덕길을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시작부터 가는 내내 세 갈고리가 달린 채찍으로 내리 칩니다. 이왕 죽일 사람이기에 채찍으로 반쯤 죽이게 됩니다. 양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리면 피를 흘리게 됩니다. 갈증이 시작됩니다. 박힌 못의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피 냄새를 맡은 파리와 모기떼들은 극성스럽게 몰려듭니다. 상처를 빨고 물어뜯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사형수는 죽어 갑니다. 긴 시간 아주 오랜 시간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유대인 저술가 “클라우스너”(Klausner)는 십자가의 처형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인간이 복수의 수단으로서 지금까지 고안해낸 방법들 중에도 가장 지독하고도 잔인한 죽임이다.”
키에르케고르도 말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가장 잔인하고 가장 가공할 처형이다.”
타키투스도 말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오직 노예에게만 적합한 처형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죄의 댓가는 이렇게 비참한 것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은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비참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가장 비참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2)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보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하체부분에 천을 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라면 완전나체입니다. 그것을 걸 수 가 없어서 천 조각을 그려 넣게 된 것입니다.
요19:23절입니다.
<23)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성경은 예수님이 완전 나체로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대중 앞에 벌거벗겨 놓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수치가 없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할 때 임신한 여자들을 발가벗겨 행진하게 한 후 죽였습니다. 발가벗고 대중 앞에 걷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벌거벗겨지는 수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 수치스러움은 내가 당할 수치였습니다. 이 수치를 주님이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이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 부활의 특징이 있습니다.
1)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본문6절을 읽겠습니다.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느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부활 사건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미리 선포하신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니”
제자들에게 분명히 죽고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마가복음으로 가면 8장 31절에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또 마가복음 9장 31절에 가면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이렇게 또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으로 가면 24장 7절에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분명하게 예수님이 선포하신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마27장 62~64절에 보면, 예수님을 죽인 사람도 그 말씀은 기억하는 기록이 나타납니다.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하는 예수의 예언은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공식화된 주님의 예언이었습니다. 예언의 말씀대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2)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부활사건의 특징은 당시 사람들에 의해 확인된 사건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목격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약 300년 동안 계속해서 박해의 시대를 살아왔던 것입니다. A.D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 때 비로소 박해가 사라지고 숨을 쉬고 나왔습니다. 300년 이상을 끝없는 박해 속에서 기독교가 살아왔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유대 나라 안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로 직결됩니다. 초대 교회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현장 직결 처형되었어요. 야고보도 순교당하고 베드로 투옥되고……. 견딜 수 없던 성도들이 이웃 나라 다메섹으로 탈출하였더니 사울이 그들을 체포할 수 있는 법적 영장을 발부 받아 군사들을 이끌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베드로서를 보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박해 역사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서 어떻게 초대 교회 신자들은 날마다 숫자가 늘어 가는가? 무슨 힘이 그들을 죽음을 각오하게 했을까? 적어도 300년이라는 긴 역사를 끝없는 박해 속에서 살았으면 기독교인들은 점점 줄어들고, 사라졌어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수없이 죽임을 당하고, 극심한 박해를 받아왔는데, 오히려 왜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아졌을까요?
이는 예수 부활의 목격자들의 증언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목격자들의 증언의 힘이 실려서 어떤 핍박과 박해가 다가와도 보이지 않는 힘으로 확산되어서 그 중에서도 계속해서 복음은 확산된 것입니다.
오늘 10절까지 읽었는데 11절 이하를 계속 읽어 가면 예 수님의 무덤을 굳게 지키던 로마 현역 군인들의 증언이 나옵니다.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이것은 파수꾼들의 양심선언이에요.
요한복음 20장 14~17절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9절 오늘 말씀에 여러 여자들이 예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다고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3-33절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마가복음 16장 14절 열 한 제자가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누가복음 24장 41~42절 제자들 앞에서 육체 부활의 증거를 구운 생선을 잡수시면서 증거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갈릴리 바닷가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 베드로와 대화하시고
고린도전서 15장 6절의 기록은 오백여 명이 일시에 보는데서 승천하셨다 그랬습니다.
이 목격자들의 증언이 핍박을 무릅쓰고 예수의 복음을 확산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격과 증언이 있었습니다.
게리하르마스 교수가 1975년부터 현재까지 1400개의 예수 부활에 대한 논문을 검토한 결과 거의 모든 학자들이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5가지 팩트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고 함.
1.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것.
2. 예수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목격했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어떠한 실제적인 경험을 한 것.
3. 예수 부활소식이 매우 일찍 퍼지기 시작한 것.
4. 예수 죽음이후 그를 안 믿었던 자기 동생 야고보와 기독교 박해자였던 바울이 부활한 예수를 목격했다고 확신한 것.
5. 그의 제자들이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여 결국 순교 당한 것.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다고 결론짓는 것이 이런 팩트에 근거한다고 함.
역사적으로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달렸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부활했다는 것, 그리고 그 소식이 매우 빨리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놀라운 변화와 순교를 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 에 앉아 계십니다. 곧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이 마르다를 향해 질문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5-27)
이 질문에 여러분들도 아멘!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누구에게 길을 물을 것인가?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예를 들면 마호메트나 공자나 석가모니 등 이런 모든 사람들은 다 죽어서 그 무덤들이 오늘날까지 뼈가 묻혀 있는 대로 남아 있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만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또 그를 믿는 신자들이 생명의 부활로 다시 산다는 것을 믿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요, 참된 구원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십자가에 죽으시기만 하고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신성(神性)이나 교회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도 없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살아 있는 종교로 존재할 수 없었고, 또 전 세계에서 작년(2022년)기준 25억 5천만이나 되는 기독교인들, 앞으로 2050년 되면 33억 3천만 명으로 기독교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 하는데...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이런 역사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며 그렇게 많은 수의 교회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기독교는 날마다 번성하고 교회는 부흥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이 창시자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창시자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인간이 진리를 찾아 나서는 구도자의 것이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찾아오신 구원의 종교입니다.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 등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사람 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다시 사셨습니다. 죽음과 사망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여러 갈래 길이 가로놓여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을 때.... 그 앞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한사람은 죽은 사람이요, 또 한사람은 산 사람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갈 길을 산 사람에게 묻겠습니까? 죽은 사람에게 묻겠습니까?
죽은 자에게 길을 묻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까? 누구에게 영생의 길을 물어야 합니까? 누구에게 구원의 길을 물어야 합니까? 누구에게 참 길을 물어야 할까요? 죽은 자에게 물어야 합니까? 죽은 자에게 길을 묻는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산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우리가 갈길을 물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까?
산 자에게 물어야 합니까? 죽은 자에게 물어야 합니까?
누가 살아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했습니다.
내가 곧 길이라고!
내가 곧 진리라고!
내가 곧 생명이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