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최초의 세례자
230514낮 (행10:1-8/44-48)
<1)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아멘
오늘 본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넬료는 주후 40년경 가이사랴 빌립보에 주둔한 이달리야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로마군제(軍制)로 이 대(隊)라고 하는 것은 보병대(步兵隊)를 의미합니다. 보병대(步兵隊)는 6개의 백인대(百人隊)로 편성된 부대입니다. 백인대(百人隊)를 지휘하는 사람을 백부장이라고 부르고, 최 일선 지휘관입니다.(오늘날 우리 군으로 말하면 중대장급이다) 보병대가 10개 모이면 하나의 군단이 됩니다. 그는 최 일선 지휘관으로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경건하고 덕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식민통치하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많은 자비를 베푼 이방인이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는 자, 최초로 세례 받은 이방인, 최초로 성령 받은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로마군인으로 이스라엘 지배와 치안유지를 위해 파견 나온 군 장교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을 뿐 아니라 이방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성령 받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임기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서도 그를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겼는데요... 과거에는 선교사가 직접 미전도 종족이나 그 나라에 가서 선교를 하였고, 물론 지금도 선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글로벌 시대로서 우리나라에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직업을 위해서, 공부를 위해서 많은 유학생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결혼을 통한 이주민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들에게 복음 전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 다시금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선교사가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들에게는 더더욱 이 방법이 새로운 선교의 대안이 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고넬료의 가정이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빌립의 전도를 받은 에디오피아 내시가 돌아가 에디오피아에 복음이 전해졌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에게도 정식적으로 선교사 파송을 하는 교단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고넬료 집에서 일어난 성령강림사건(44-48절)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과 비교될 만큼 역사적 사건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본격적인 선교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에서 비롯되었다면, 이방인 선교에 대한 필요성과 중대성은 고넬료 집에서 일어난 성령강림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유대적 관습과 전례를 뒤엎는 사건이요,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할례자(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베드로는 이 날의 전후의 성령께서 행하신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하게 되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상당히 거부감과 폐쇄적이었던 유대인들과 사도들이 이방인 선교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고,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최초가 된다는 것에는 상당한 의미와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제주에 최초로 파송된 선교사가 이기풍선교사님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로 제주에 파송된 선교사입니다. 1908년에 입도하여 복음을 전하였고, 115년이 지난 현재, 제주에는 500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보다 1년 먼저 자생적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세워진 교회가 애월에 있는 금성교회..조봉호선생이 한양에 유학 갔다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향 제주에 와서 전도하고 기도모임을 시작하여 교회가 생긴 것이 금성교회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전하러 온 최초의 선교사는 미국의 아펠젤러와 언더우드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조선에서 처음 세례를 받은 사람은 노도사로 알려져 있는데, 1886년 7월18일 세례를 받습니다. 이때 세례식은 언더우드가 집례하고 아펜젤러가 보좌하는데,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가 함께 집례를 하였다는 사실은 오늘날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남한교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조선 최초의 목사는 감리교의 김창식목사입니다.
그는 1901년 5월 14일, 선교사가 들어온 지 6년 만에 서울 정동교회에서 개최된 미국 감리교 한국선교회 연례회에서 김창식과 김기범 두 사람이 ‘목사’로 안수를 받습니다. 두 사람 중 먼저 안수를 받은 김창식(1857∼1929)은 선교사들로부터 ‘조선의 바울’이란 칭호를 받은 한국 개신교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전도인이며 그에게는 머슴 목사란 별명이 붙게 되었습니다.
<머슴에서 목사로>
황해도 수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김창식은 열다섯 되던 해에 무작정 가출을 합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머슴살이를 비롯해 마부, 지게꾼, 장돌뱅이 같은 밑바닥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15년 동안 전국 팔도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떠돌아다닙니다. 스물아홉이 되어 비로소 늦장가를 들어 남대문 안에 정착했을 때 그는 서울 장안에 떠돌던 흉흉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서양 사람들이 조선 아이들을 데려다 지하실에 가둬 놓고 하나씩 잡아먹는다더라.” “예쁜 애들은 밤에 끼고 자고, 싫증나면 자기 나라에 노예로 팔아넘긴다더라.”는 소문입니다.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고아와 가난한 집 아이들을 가르치며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하자 이를 시기한 수구파가 선교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헛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흥분한 시민들은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학교와 병원에 난입해 난동을 부려 한때 학교와 병원은 문을 닫았고, 종교 집회도 모일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를 교회역사에서는 ‘영아 소동’(baby riot)이라 부릅니다.
이에 김창식은 선교사들이 조선 아이를 ‘잡는’ 현장을 잡겠다고 결심을 하는데, 이때 마침 한국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올링거(F. Ohlinger) 선교사가 사람을 구하고 있어 그 집에 ‘행랑아범’이라고 불리는 머슴이 됩니다. 김창식은 예리한 눈길로 선교사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그러나 그가 기대하던 만행은 볼 수 없었고 오히려 선교사 가족들은 그를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합니다. 올링거 선교사는 물론이고 그의 친구 선교사들은 나라님(고종)과 자주 만난다는데, 머슴에 불과한 그에게 보내는 눈길과 손길은 따뜻하기만 했습니다.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조선 양반들과 질적으로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대접’을 해 주는 선교사들에게 감동을 먹게 되자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때 올링거 선교사는 마태복음 5장을 읽어보라고 쪽 복음을 건네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하는 산상수훈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올링거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위장 취업한 지 2년 만이었습니다.
<조선 평양의 바울>
그 후 김창식은 열성적으로 전도에 나섭니다. 1893년 의료 선교사 홀(W. J. Hall)과 짝이 되어 평양에 내려가 선교를 시작하였는데, 보수적인 평양에서 선교사가 전면에 나설 수 없어 그가 나서서 서문 밖에 선교사 사택과 병원, 학교와 교회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 일로 그는 평양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평안 관찰사로 내려 와 있던 민병석은 선교사와 기독교를 아주 싫어한 수구파 인사로 평양에 기독교 확산을 막기 위해 1894년 여름 기독교인 체포령을 내립니다. 그때 김창식을 비롯해 평양의 감리교와 장로교인 10여 명이 투옥되는 ‘평양 기독교도 박해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에 미국 공사는 조선 정부에 강력 항의하였고, 이들은 1주일 만에 풀려납니다. 그런데 그때 배교를 거부한 김창식은 심하게 매를 맞았고 ‘거의 반 시체가 되어’ 실려 나옵니다. 당시 평양에서 이 사건을 목격한 홀 부인의 회고입니다.
“홀 박사가 서울에 있는 동료들에게 전보를 치자, 평양 관찰사에게 모든 기독교인들을 석방하고 또 선교사들을 보호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관찰사는 교인들을 사형수 감방에 가두고 마치 다음날 사형을 시킬 것처럼 겁을 주고는 교인들을 끌어내어 배교를 강요하였답니다. 그때 우리 용감한 김창식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응답하였고, 그로 인해 아주 심한 매를 맞았습니다. 그 무렵 평양 거리는 돌투성이였는데, 감옥에서 나온 직후에 돌 세례를 받으며 가까스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신실한 증인의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를 부끄럽게 만든 김창식의 신앙 투쟁은 평양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며칠 후 그를 매질한 관찰사는 선교사를 찾아와 사과하고 배상금을 물어야 했으며 얼마 후 그는 좌천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평양 주민들은 “나는 새도 떨어 트린다”는 평양 관찰사의 위세도 선교사와 교회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기독교는 ‘치외법권’ 종교가 됩니다. 이 사건 직후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평양은 청군과 일본군의 주전장(主戰場)이 되었고, 이에 평양 주민들은 대부분 성 밖으로 피난 갔지만 김창식은 교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청일전쟁 때의 일이다. 이 때 평양은 청일 두 나라 군인의 전쟁터가 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후에 들은즉 중국 군사는 패하고 일병이 성중으로 들어온다 하여, 이 말을 들은 성중은 인심이 물 끓듯 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피난하는 자가 무수하였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조금도 두려워 아니하고 피난할 생각을 버리고 성중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의 문으로 인도함이 나의 의무임을 깨달았다. 나는 또 성중의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육신의 위로까지 줄 기회가 있었음으로 그때부터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교회도 몇 곳에 새로 설립되었다.” <김창식, 나의 교역생활. (조선기독교창문사, 1927), 3쪽.>
그가 말한 ‘육신의 위로’란 전쟁 중에 교회로 피신한 사람들 혹은 성 밖으로 피신하면서 교회에 맡긴 피난민들의 짐을 안전하게 보호한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전쟁 중 청나라나 일본 군대는 ‘십자기’(十字旗)를 내건 예배당을 공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병사들을 보내 보호 조치를 취하였던 것인데, 이는 교회를 공격함으로써 선교사를 파견한 미국과 영국 등 서구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까 우려한 때문이었습니다. 전쟁 중 십자기가 달린 교회는 양쪽 군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성역’이었습니다. 피난 갔다 돌아와 짐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평양 주민들이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또 전쟁 후에 평양에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이때 홀 선교사와 김창식은 몸을 돌보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았고, 이때 홀선교사는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이런 헌신과 희생이 선교의 밑거름이 되어 훗날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개신교의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이후 김창식은 목회자 수업을 받고 1901년 한국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아 1924년 정년 은퇴하기까지 마치 사도 바울과 같이 영변, 수원, 해주 지방을 돌며 125개 교회를 개척하였고 48개 예배당을 건축합니다. 김창식은 머슴 출신으로 한국 최초 목사가 되었을 뿐더러 수많은 교회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헌신적인 시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향마을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우리 아버지 황봉한 장로님과 정경식목사님이었는데..이분들이 한분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 자손들이 목회자가 되고, 믿음의 가정이 되고, 이분들 통해 고향에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분들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최초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또한 귀한 일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역사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어떻게 이방인 최초로 기독교 세례를 받고, 뿐 만 아니라 이방인 최초로 성령을 받는 사람이 되었는가? 고넬료의 가정이 어떤 가정이기에 마가의 다락방처럼 그의 가정이 성령강림의 장소가 되었는가? 고넬료 가정의 특징을 알아보며 우리들의 가정도 고넬료의 가정처럼 복된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고넬료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고넬료의 믿음은 상황을 초월한 믿음입니다. 지체 높은 사람이 겸손하기 쉽지 않습니다. 고넬료가 로마의 백부장 지체 높은 고급군인으로써 당시 식민지의 백성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기독교에 비판적인 남편이 있는 집 심방 –익히 이야기를 듣고 간터라 목사님이 신중하게 대화를 하며 예수 믿을 것을 권면을 하는데, “목사님 우리 남편 절대로 예수 안 믿어요”. 남편이 이 이야기를 듣고서 –“아 나는 절대로 예수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못 믿는 사람이구나” –인식이 박힙니다. 그러면 남편은 절대로 예수 믿기 힘들어 집니다.
가정의 가장을 예수 믿게 하려면 절대로 남편 듣는데서 이런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남편이 부정적이어도 “나는 언젠가 당신이 예수님을 믿고 훌륭한 신앙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지금은 당신이 마음이 안 열려서 그렇게 당신은 분명 한 번 믿기 시작하면 똑 부러지게 믿을 거예요. 당신은 시작을 안해서 그렇지 한 번 한다면 잘하는 사람이잖아요.” 이렇게 얘기해 봐요. 그 남편 반드시 교회 나옵니다.
인가귀도 돼서 남편들, 가족들, 다 주님영접하고, 교회 나와서 고넬료 가정처럼 믿음의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고넬료의 가정은 경건한 가정입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2절)
2절입니다.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헬라어 본문 “Φοβουμενοζ τον θεον”(포부메노스 톤 데온)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의미 합니다다. 여기서 “Φοβουμενοζ”(포부메노스)는 공포감에 의한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과 경외심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이란 의미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입니다. 잘못하고 죄지면 벼락을 때리지 않을까? 나를 심판하고 책망하고 망하게 하는 자로서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이런 마음이 있는 자가 경건한 자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말씀을 듣는 자였습니다.(순종하는 자)(33, 44절)
행10:33절과 44절입니다.
<33)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44)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고넬료는 환상 중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하는 말 그대로 욥바에 있는 피장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식솔들과 일가친척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럴 때 말씀 든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프란시스코의 일화입니다. 제자가 되겠다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찾아온 두 사람에게 식물을 주며 뿌리가 위로 올라오고 잎과 줄기를 땅에 심으라고 했습니다. 서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심으면 식물이 다 죽을 텐데... 한사람은 아마도 스승님이 무엇인가 착각하고 그렇게 심으라고 했을 거야..나름대로 생각해서 뿌리가 땅으로 가도록 정상적으로 심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스승님의 말대로 스승님이 이렇게 심으라고 한 대는 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하면서 옳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스승이 시키는 대로 식물을 거꾸로 심었습니다. 프란시스코가 시킨 대로 뿌리가 하늘로 가고, 줄기와 잎이 땅으로 가도록 심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다른 사람은 돌려보냈습니다. 식사자리에서 제자가 된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스승님은 뿌리가 땅으로 가도록 식물을 정상적으로 심고 우리보러는 거꾸로 심도록 하셨습니까?
“나는 자네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겠다고 나를 찾아 왔는데, 하나님은 농사꾼을 쓰시는 분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을 쓰시기 때문이네” 라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경건한 사람, 경건한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입니다. 순종의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3) 백성을 많이 구제 했습니다.
2절입니다.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구제는 남을 배려하고 돕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고 돕는 자입니다.
약1:27절입니다.
<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4) 기도하는 사람입니다.(2절)
2절입니다.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남자가 예쁜 여자와 돈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예쁜 여자 주면 여자 속만 썩일 남자 같아서 안주셨습니다. 응답이 없으니까 다 빼버리고 "돈과 여자 주세요. 하나님 돈, 하나님 여자, 하나님 돈, 여자 돈 여자주세요. ‘돈여자 주세요’"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여자를 먼저 주셨는데, 기막히게 예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예쁜 여자 주셨네요. 감사’ 그런데 이 여자는 예쁜 여잔데, 뭐가 좀 이상합니다. 알고 보니 "돈 여자"입니다. 하나님 어찌된 일입니까? 응 네가 돈 여자를 구했지 않았느냐?
터키에 동굴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에 초대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 조각이 있습니다. 가운데 예쁜 여자가 있고 좌우로 남자가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턱에 수염이 나서 땅에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 작품은 초대교회에 있었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 것인데, 교회 안에 예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는데 그렇게 뜨겁게 사명 감당하던 남자들이 다 이 여자에게 정신이 팔리기 시작하여 사명을 감당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고심 끝에 이 문제 가지고 기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사실상 직접적인 문제해결방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의 말대로 모두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자 여자 턱에서 수염이 나서 자라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자라는 속도가 빠른지 깍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더 빨라 그 수염이 땅바닥까지 길게 늘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뻐도 수염 난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단번에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기도는 직접적인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나님 방법으로 해결해 주십니다. 기도로 해결되는 문제는 후유증 없이 간단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경견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3.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이었습니다.(3절)
3절입니다.
<3)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기도 중에 영계가 열리고 보니까 천사가 자기 집에 들어 온 것이 보였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요즘은 사생활을 중시하다보니 자기 집에 누가 오는 것도 싫어해, 속회 드리는 것도, 심방 드리는 것도 싫어하고 꺼려합니다. 세상이 그렇다손치더라도 천사가 왕래하는 것조차도 싫어하는 가정은 없으시겠죠?
고넬료의 가정은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이 되기 바랍니다. 마귀가 왕래하는 가정이 되면 큰일 납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천사가 왔고, 천사가 와서 주의 종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일렀고, 주의 종 베드로를 초청하여 베드로가 와 말씀전하니 이어 성령께서 고넬료의 가정에 오셨습니다. 이방인가정으로 최초로 세례를 받았고, 최초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고넬료의 가정처럼 여러분의 가정이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 성령이 오시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에 있어서, 믿음생활에 있어서 최초의 수식어가 붙는 가정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 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넬료 가정의 특징처럼 믿음의 가정, 경건한 가정,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