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믿음의 신비
230604낮 (창45:5-8/시105:17-19)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5-8)아멘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105:17-19)아멘
성경 인물가운데 요셉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요셉만큼 억울한 고난을 당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남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 형들에게 당한 아픔이라 그 억울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남에게 당하는 아픔도 크지만, 잘 아는 사람, 믿었던 사람, 의지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에게 당하는 아픔이라면 그 아픔은 더욱 배가 되고 억울함이나 상처는 상상을 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형제들 가운데 가장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이런 요셉을 시기했고, 결국은 양을 치는 들판에 심부름 온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애굽의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노예로 거듭 팔립니다. 노예가 어디 사람입니까? 사고파는 물건 아닙니까? 그러니 요셉의 고생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동침하자는 유혹을 뿌리친 대가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수감생활까지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로 애굽으로 팔려온 지 13년 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실질적인 애굽의 최고의 권력자가 됩니다.
오늘은 요셉의 삶을 통해서 세 가지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가?
2. 요셉은 어떻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는가?
3. 요셉은 어떻게 죽도록 외롭고 힘들 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들은 요셉이 당한 현실 가운데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불가능을 가능한 삶으로 승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제목을 <요셉의 믿음의 신비>라고 정해 봤습니다. 큰 은혜가 되셔서 요셉 닮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가 있었는가?”입니다
요셉은 17세의 나이에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서 부모형제를 떠나 남의 나라에서 노예생활과 감옥생활로 13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억울함이 얼마나 컸을까요? 13년의 세월을 누구에게 보상을 받습니까? 형들에게 대한 원망과 미움이 세월만큼이나 크지 않겠습니까? 어디 13년 뿐 이겠습니까?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아픔이요, 상처가 아니겠습니까? 그 억울함에 잠 못 이루는 밤이 한두 번 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요셉 입장이라면 이게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되겠습니까? 분노와 원한이 세월이 간다고 잊혀지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이런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용서뿐 아니라 전혀 형들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창45:5-8절입니다.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 땅에 큰 흉년이 들었고, 이 흉년은 애굽뿐 아니라 요셉의 형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도 큰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애굽에 양식이 풍족하다는 소문을 듣고 애굽으로 아들들을 보내어 양식을 사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곡식을 사러 온 자기 형들, 자기를 애굽의 상인에게 팔아넘긴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에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의 신분을 밝히며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았던 그 잔인한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5절)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7-8절)
요셉은 형들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그림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았습니다. 다가올 큰 흉년에 자기 민족을 구원하시려고 요셉을 미리 애굽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애굽으로 가라고 하면 절대로 갈 일이 없으니 이 모든 시나리오를 하나님이 만드시고, 형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여 애굽 상인에게 팔았지만, 요셉은 그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형들을 용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애굽 상인에게 팔아서 노예생활 뿐 아니라 감옥생활을 하며 온갖 고생과 수모를 겪었다고 생각했다면 도저히 형들을 용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음을 믿으니까 그 형들이 밉지가 않고, 형들을 용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상처도 해결하지 못하고, 미움과 원망에 사로잡혀 상대에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되갚음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의 눈도 열어주셔서 요셉처럼 주님의 놀라우신 뜻과 섭리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기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용서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요셉의 용서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 의한 선한 역사로 믿었기 때문에 용서와 치유가 가능했습니다.
2. "요셉은 어떻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는가?"입니다.
우리가 축복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가 축복 받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 바로왕은 이름만 왕이었지, 모든 실권을 요셉에게 주었습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 팔려 온지 13년 만에 애굽의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바로왕이 꾼 꿈 해몽을 잘 했고, 또한 7년 대 흉년에 대한 대비책을 잘 말하므로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으로 7년 대 풍년 이후에 다가올 7년 대 흉년을 잘 대비하여 애굽의 모든 백성들을 살려 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부친 야곱의 후손들을 모두 살리게 됩니다. 요셉은 애굽 백성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고, 자기 부모형제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이 형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애굽의 최고의 권력을 가졌을 때, 마음껏 그 권력을 휘두르며 백성들을 괴롭히고, 억압하고, 상처를 주는 악한 권력가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한 형들이 양식을 사러 왔을 때, 그 형들을 당장 죽여 원수를 갚았을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아니라 저주의 통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히틀러가 독일의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 세계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600만 명이나 처참하게 학살한 것도 어린 시절 유태인 어머니를 통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요셉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반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생명을 구원할 자로 자기를 세워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야곱의 온 자녀들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기로 인해 세상이 기근을 면하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대로 사명을 다함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 세상의 복의 통로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살고, 직장이 살고, 사회가 살고, 세상이 사람이 살만한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흉년을 만난 요셉 시대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인 기근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여러분 때문에 살맛나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을 애굽에 보내시고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 즉 자기 인생의 사명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가졌기 때문에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인생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요셉처럼 삽시다. 용서하면서 축복의 통로가 되어 주면서 삽시다.
그래서 여러분 때문에 세상까지 변하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웃음이 나는 행복한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되도록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3. "요셉은 어떻게 죽도록 외롭고 힘들 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내의 한계점이 있습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한계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합니다.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가 체력에도 한계점이 있잖습니까? 자기가 버틸 수 있는 한계점이 있는데...너무 무리하게 일을 하거나 고민하거나 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깁니다. 저하고 감리사를 함께 지냈던 부산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큰 아들이 며칠 전 급하게 병원에 실려 갔는데.. 병원 치료의 효과도 없이 바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사인을 물어보니 너무 과로해서 피가 산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주사를 맞으면 된다고 하는데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죽도록 외롭고 힘들 때, 우리는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들고, 영혼도 병이 듭니다. 그래서 믿음도 흔들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105편 17-19절은 요셉에 대한 기록입니다.
<17)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19)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창세기의 기록만 읽으면 요셉의 수감생활에 대해 오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특별대우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편 105편을 읽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발이 차꼬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던져졌을 때 요셉은 차꼬에 채워졌고 쇠사슬로 묶였습니다. 차꼬는 죄수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쇠로 만들어 발에 채우는 것인데, 그것으로 인해 발목은 계속적으로 상처를 입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의 몸은 쇠사슬로 묶였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 [몸]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네페쉬’는 단순히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 사람의 전 존재, 전 인격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몸(네페쉬)이 쇠사슬에 묶였다는 말씀은 요셉의 몸과 마음이, 그의 전 인격과 존재가 쇠사슬에 묶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던져졌을 때 그가 경험한 것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습니다. 차꼬 때문에 발목이 까져서 피가 흐르는 것보다, 쇠사슬 때문에 온 몸이 자유스럽지 못한 것보다, 이미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의 구타와 폭언에 의해 괴롭힘을 받는 것보다, 그가 범하지도 않은 자기 주인 보디발의 부인을 겁탈하려다 감옥에 갇힌 죄목이 더 큰 마음의 억울함과 수치였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요셉에게 다가온 더 깊은 시험은 영적인 시험, 영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요셉이 이런 상황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계셨던 것일까요?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으려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요셉을 왜 이지경이 되도록 만드십니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을 때, 너무 멀리 계시다고 느껴졌을 때, 내 삶에 별 관심을 갖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을 때, 꿈을 주시기만 하고 그 성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 나의 인생에 찾아온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때에... 하나님은 과연 어디계십니까?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십니까? 하나님은 과연 나 같은 인생에 관심이나 있으실까? 이런 영적 어두움의 철장에 갇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럴 때 요셉은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위대한 믿음을 보게 됩니다. 큰 산과 같은 요셉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셉의 위대함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때에도 그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사단이 그를 세상에서 가장 어둡고 깊은 감옥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었지만, 그곳에서도 요셉은 믿음을 지켰고 하나님의 손을 꼭 붙들었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환경에서, 좌절하는 것 외에 별다른 선택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포기하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요셉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로의 감옥, 세상에서 가장 깊은 구덩이에 던져졌던 요셉이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를 실망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 것들 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득실거리는 죄수만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꿈을 좌절시키기에 넉넉하고 충분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105:19절입니다.
<19)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신 곳에 올라가게 할 때까지 요셉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보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보이지 않는 영생의 약속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한 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인생이 힘들 때면 말합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말합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자신에게 실망하면 말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이 너를 인도하신다고? 하나님이 너를 책임지신다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너의 하나님은 대체 어디에 계시기에 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시느냐?”
시 42:10절에 사단이 하는 말이 문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0)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이것이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가장 강력한 시험이고 함정입니다.
여러분, 사단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말로 여러분의 심령에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 “하나님, 대체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하나님께 묻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 계셨고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단에게 말하십시오.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셨다. 내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시며,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 이것이 사단을 향한 여러분의 선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메리 쿠슈만 부인은 남편을 잃고 3년 동안 다섯 자녀와 함께 힘겹게 살고 있었습니다. 파출부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수입마저 줄어들어 집세를 낼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도둑질을 하다 잡혀 끌려왔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동네 사람들이 돌아간 후 아들은 울면서 사실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은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가난했기 때문에 누명을 쓰고 모독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간 나의 정신력은 꺾였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모든 문을 잠그고 빈틈을 신문과 헝겊으로 막았습니다. 가스를 틀어 놓은 후 다섯 살짜리 딸을 안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딸은 ‘엄마, 왜 또 자?’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잠간 낮잠 좀 자자’고 했습니다. 눈을 감고 히터에서 나는 가스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연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부엌의 라디오를 끄지 않았던 것입니다. 음악이 계속되다가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찬송을 들으며 나는 큰 잘못을 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했으며,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펄쩍 뛰어가서 가스를 끄고 문을 모두 열었습니다. 나는 온 종일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귀엽고 건강한 다섯 아이를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나는 다시는 감사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그 후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다고 생각될 때, “네 하나님이 대체 어디 계시냐?”는 사단의 유혹이 들려올 때,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신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셨다. 내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내 곁에 계시며,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 이것이 사단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의 선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의 믿음의 신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 보았습니다.
1.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가?
2. 요셉은 어떻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는가?
3. 요셉은 어떻게 죽도록 외롭고 힘들 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 요셉의 신비스러운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신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