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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말씀

요셉을 통해서 본 그리스도인의 형통(창39:13-23)-230611낮(1, 2부)

작성자소로(小路)|작성시간23.06.07|조회수489 목록 댓글 0

                                                     요셉을 통해서 본 그리스도인의 형통

230611낮                                                                                          (창39:13-23)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아멘

 

 

 지난주에 우리는 <요셉의 믿음의 신비>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엄청난 고난가운데서도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는가?

요셉은 어떻게 죽도록 외롭고 힘들 때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요셉의 믿음의 신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요셉에 대하여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리고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요셉이 당한 고난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삶의 연속 가운데서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요셉의 키워드는 형통입니다.

 창39:2, 3, 23절입니다.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꿈으로 가득 차 있고, 요셉의 성장한 시절에 대한 기록은 형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꿈과 형통이라는 단어는 요셉의 생애를 관통하는 단어이며, 요셉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주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고, 이삭이 순종의 사람이며, 야곱이 기도의 사람이라면, 요셉은 형통한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형통일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축복할 때도 제일 많이 축복하는 말이 형통의 복을 주옵소서일 것입니다. 형통은 불신자들도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형통은 사람이 노력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찾아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형통은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우리의 처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형편과 관계없이 하나님은 형통을 만드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형통하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또한 형통하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현재 우리의 사정이 어떠하든지,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형통하게 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의 형통을 살펴보면서 그리스도인의 형통에 대하여 이해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라며, 또한 요셉의 형통이 저와 여러분의 형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형통한자가 됩니다.

 창39:2, 3, 20-21, 23절입니다.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20-21)........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이 애굽의 노예 상에게 팔려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자가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범사에 형통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업이 잘되어서 형통하다고, 자식이 잘 되서 형통하다고, 고난이 없어서 형통하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형통은 환경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노예가 되었을 때에도,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성경은 형통하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형통은 환경의 좋고 나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통은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형통한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형통한자입니다. 지금 아무리 재물이 많고, 지금 아무리 건강하고, 지금 아무리 자식이 잘나가고, 지금 아무리 행복해도, 지금 아무리 출세했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자에게 형통은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자에게 형통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지금 재물이 없어도, 지금 불행해도,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도, 지금 출세하지 못했어도, 지금 자식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를 가리켜 성경은 형통하자라고 말씀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최고의 형통입니다.

 

 지금 요셉은 형들에 의해 남의 나라에 팔려와 노예가 되었고, 주인의 부인을 겁탈한 강간범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누가 이런 요셉을 보고 형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누가 이런 요셉을 보고 미래가 있다고 말하며, 네 꿈이 이루어 질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세속적인 잣대로 이미 요셉의 인생은 종쳤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요셉을 향하여 계속해서 형통한자라고 말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형통하냐?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우리에게 형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형통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버리고 포기할 때 형통한 자가 됩니다.

 창 39:12-13절 말씀입니다.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성경의 배경에서 겉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요셉은 겉옷을 두 번이나 타의에 의해 벗겨지고 빼앗겼습니다. 그것은 신분박탈을 의미합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을 찾아갔을 때 도단들에서 아버지가 입혀준 채색 옷을 형들에 의해 빼앗겼고, 오늘 본문에서는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서 겉옷을 빼앗겼습니다. 힘이 없어서 뺏긴 것이 아닙니다. 필요 없어서 버려 둔 것도 아닙니다. 옷을 여인의 손에 남겨 두고 나오는 결과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그 옷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요셉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 옷을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나왔습니다. 사실은 빼앗긴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순결, 자신의 믿음, 자신의 충성됨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들을 지키는 것이 옷을(신분을) 지키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더 중요한 것, 더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옷(신분)을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포기하고, 버린 것을 통해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입히기를 원하셨던 옷은 아버지의 편애의 상징인 채색 옷도,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 들어간 노예의 옷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옷은 따로 있었습니다.

 

 창 41:41-42절입니다.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애굽의 총리로서 입는 세마포 옷이 하나님이 요셉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형들에 의해 채색 옷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그 이후의 요셉의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만약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 들어간 노예의 옷을 포기하고, 버리지 않았더라면 요셉이 어떻게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었겠습니까? 세마포 옷을 입으려면 채색 옷을 벗어야 하고, 노예의 옷도 벗어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빼앗기고 포기한 채색 옷과 겉옷 대신에 애굽의 총리가 입는 세마포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처럼 형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세상이 주는 것들을 포기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빼앗긴 것, 포기한 것을 통해 여러분을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으로 물든 더러운 옷을 벗으면 하나님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히11:24-26절에 모세를 가리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히브리 사람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재산을 조금의 미련도 없이 포기했습니다. 애굽의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평생 하나님 앞에서 형통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당신의 자녀들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 빼앗기고 하늘을 위해 포기한 것들을 이용해서 우리를 형통하게 하십니다. 양심을 지키기 위해 재산을 빼앗길 때, 원칙을 지키기 위해 친구를 잃어버릴 때, 진리를 지키기 위해 성공의 기회를 빼앗길 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거룩함을 위해 포기한 쾌락 때문에, 순종하는 삶을 위해 포기한 명예 때문에, 영원을 얻기 위해 포기한 순간적인 이익 때문에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주일성수를 위해 좋은 직장을 포기했습니까? 주일성수를 위해 자녀들을 대회 나가는 것을 포기 했습니까? 주일 성수를 위해 주일에 자격증 시험 있는 것을 포기 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포기하고 버린 것으로 인하여 형통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형통입니다.

 

 

3. 하나님은 절망적인 불통도 형통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요셉의 겉옷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을 손에 넣은 보디발의 아내가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요셉을 함정에 빠트리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보디발의 부인은 자기가 모두 밖으로 나가게 했던 집안사람들을 불러 들여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요셉의 겉옷을 보여 줍니다. 자기의 거짓 고소에 가담할 증인을 확보한 것입니다. 평소에 요셉의 승승장구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다른 노예와 하인들이 보디발 부인의 편에 가담한 것은 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디발의 아내가 아주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을 향한 구애가 수포로 돌아가자 보복하는 일에 천재적인 두뇌회전을 보여 주는 여인입니다. 이렇게 요셉의 옷이라는 물증 외에, 많은 하인들이라는 증인까지 확보한 여자는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요셉을 고소했고, 그 결과 요셉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믿었을까요? 아닙니다. 만약에 남편 보디발이 자기 아내의 말을 믿었다면 요셉을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생명을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요셉의 한결같은 품행이나 겸손과 정직함을 봐서는 요셉이 정말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을 죽이지 않고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정치범을 가두는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에 요셉을 가뒀을까요?

 

 창39:20절에는 요셉이 갇힌 곳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 이면 다른 감옥 보다 더 좋다는 말일까요? 안 좋다는 말일까요? 요셉이 갇힌 왕의 감옥은 가장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였습니다. 그 당시 바로왕은 애굽인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을 침략해서 세운 힉소스 왕조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안정된 통치를 위해 공포의 정치범 수용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반역죄를 지은 죄인들을 이 왕의 감옥에 가두었는데 모두 사형 내지는 종신형에 처해질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에 <타르의 감옥>이라는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적 고증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갇힌 감옥은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한 그런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보디발이 반역죄를 짓지도 않은 요셉을 이 왕의 감옥에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죄 없는 요셉을 차마 죽일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집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일이 더 이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여인의 간계(奸計)와 보디발의 자기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냉혹한 처분으로 인해 요셉은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그가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요셉은 이제 평생 감옥에 갇혀 일생을 보내든지, 감옥에서 병들어 죽든지....죽어서나 감옥 밖을 나갈 수 있는 절망적인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은 형편이나 장소와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 39: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뒤집어씌운 누명은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결코 해명할 수도 빠져 나올 수도 없는 함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함정을 이용하셔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왕의 감옥을 거쳐야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총리의 자리까지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그 여인이 판 함정을 이용하셔서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죽어서밖에 나갈 수 없는 절망적인 감옥이 어떻게 형통을 기대하고 생각이나 할 수 있는 곳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절망적인 불통을 형통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롬8:2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보디발의 아내의 누명과 함정도, 보디발의 배신도 모두 합하여 형통을 이루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이용하여 요셉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누명을 쓰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배신을 당했습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억울해 하고, 아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형통으로 바꿔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실패 앞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졌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불치의 질병, 극심한 가난, 온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까지라도 모두 합해서 우리를 위해 선을 이루시고, 그것들을 통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불통도 형통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형통이 무엇인지 요셉의 형통을 통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환경과 처지가 좋은 것이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형통입니다. 버리고 포기할 때도, 절망적인 불통도 형통하게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형통한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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