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5.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260614낮 (신1:40-46)
<40)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41)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4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43)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44) 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45)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46)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머물렀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머물던 날 수대로니라>아멘
지난 주일에 1부예배때는 39절까지 말씀을 보았고, 2부 예배는 34절까지의 말씀을 보았기 때문에 오늘(이번주)은 1부 예배는 40절부터 말씀을 드리고, 2부 예배는 35절부터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부 예배는 여기부터>
▣ 신1:35절입니다.
<35)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악한"은 라(ַרע) 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을 뜻합니다. 그들의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불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심각하게 보시는 죄 가운데 하나는 불신앙이라는 죄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심각하게 큰 죄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4:23절에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6:9절, ‘죄에 대하여라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예수님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는 아무도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수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 갈수 있는 사람들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36-39절)
첫째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입니다. (36절)
<36)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순종하였으므로"
여기서 순종은 히, 밀레는 가득 채우다, 완전히 헌신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뜻을 가진 솨마(34)보다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헌신의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앞서 행하시는’(30,31) 여호와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며 그 발걸음 발걸음 마다 순종과 헌신으로 가득 채우는 삶의 모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갈렙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갈렙처럼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뒤를 따르며 나의 발걸음, 발걸음마다 순종과 헌신으로 채워가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가나안 땅을 볼 뿐 아니라 실제로 갈렙이 정탐했을 때 밟은 땅 에스골 골짜기(23절) 즉, 헤브론 지역의 땅을 갈렙에게 주셨고, 가나안 정복전쟁 때 갈렙은 그 땅을 차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수14:13, 15:13-15)
둘째는, 여호수아입니다.(38절)
<38)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며 하나님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에 입성하여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행하게 됩니다.
셋째는,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 자녀들입니다.(39절)
<39)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시에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던 너희의 자녀들도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너희 아이들이라는 표현은 당시 1-20세 사이의 모든 성인이 되지 못한 연령층을 가리키는 말로써 이들은 당시 공동체의 의사결정이나 단체 행동에 아무런 결정권이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책임 또한 없었으므로 하 나님은 그들은 광야에서 멸절되지 않고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에 20세 이상된 자들만 군대로 계수함을 받았고(민1:3) 또 20세 이상 된 자들만이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할당 받을 수 있었다)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역했던 이유에 대해 언급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적인 정탐군의 말만 믿고,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반역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자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포로로 잡히게 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정 반대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의 장래를 염려하던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반면 그들이 염려하던 자녀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만으로 자녀들의 앞날을 염려하고, 책임지려 하는 부모들의 태도에 경종을 울려주는 역사적인 교훈입니다.
부모들 중에는 지나치게 자녀들의 앞날에 대해 염려하고 그들의 장래까지 책임지려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학교 선택과 직장, 그리고 결혼문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녀 들의 삶에 간여하여 자녀들의 전 인생을 책임지려 합니다.
부모로써 어느 정도 자녀들의 삶을 염려하고 돕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그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자녀들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하나에서 열까지 불안해하고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는커녕 자기 자신조차 책임질 수 없는 한계적인 존재가 바로 인간이요, 부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로써 책임감을 느끼는 것과 자녀들의 인생에 대해 책임지려는 태도는 다른 것입니다. 책임감을 느낄수록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므로 그분께 자녀의 앞날을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삶을 더욱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 신1:37절입니다.
<37)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런데 하나님은 37절에서 모세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므리바 물 사건 때,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거룩함을 훼손함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민20:1-13)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 빠글라르캠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 너희 때문에 나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심지어 나에게도’ 란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는 대상이 심판을 당해 광야에서 죽은 세대가 아니라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세대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모세는 내게도 라는 말을 써줌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잃어버린 자는 그 누구라도... 너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너희의 지도자 나 모세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직분이 구원의 보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모세가 지금 이 말씀을 하는 것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다음세대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과 거룩함의 상실(민20:12)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를 온전히 믿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잃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1부 예배는 여기부터>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불신앙에 빠져 가나안 입성을 거부하고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에서 모두 죽을 때까지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징벌을 내리시자 지금까지 불신앙에 사로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도를 돌변하여 가나안땅을 향해 전진하겠다고...올라가서 그들과 싸우겠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하나님은 올라가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말씀하시며 ‘나는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싸워도 패할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갔다가 참패를 당하고 돌아와 통곡합니다.
한 절 한절 보겠습니다.
▣ 신1: 40절입니다.
<40)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방향을 돌려/ "돌이키라"(히, 페누) : 방향을 전환하다.
"광야"(히, 미드바르) : 훈련과 연단의 장소.
가나안으로 가야 할 백성이 불순종으로 인해 광야로 되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전진이 아니라 후퇴가 찾아옵니다.
불순종은 인생을 우회하게 만듭니다.
가나안까지 11일 거리였지만....,
불순종으로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순종은 축복의 지름길이고, 불순종은 광야의 길입니다.
한 번의 불순종이 오랜 고난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순종도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지나간 후의 순종은 진정한 순종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들어가라고 하실 때는 거절했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실 때는 올라갔습니다.
문제는 순종의 내용이 아니라 순종의 시기였습니다.
▣ 신1: 41절입니다.
<41)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무기를 가지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우리가 범죄하였도다"
"범죄하다"(חָטָא, 하타) : 과녁을 빗맞추다.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보다 결과에 대한 후회가 더 컸습니다.
후회와 회개는 다릅니다. 후회는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는 고통만 슬퍼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을 떠났으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고, 불순종 했으면 다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백성은 "우리가 범죄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고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돌아왔지만, 유다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멸망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판 후 후회했지만 주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통곡하며 회개했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선택해야 할 것은 후회가 아니라 회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후회에서 머물지만, 우리는 회개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41절)
40절에 “너희는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그 땅에 들어가면 우리는 다 죽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원망하고, 악한 말로 대적했던 그들에게 너희 악한 자들은 너희 조상에게 약속한 이 땅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으리라고 말씀하며 방향을 돌려 홍해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 하니까.... 하나님께 범죄하였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듣지 않습니다.
경솔히 산지로 올라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경솔하게 대하면 안 됩니다. 회개한 것 같은데...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경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못하고...진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가볍게 대하고, 경솔하게 여깁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에 밥 먹듯 불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신1: 42절입니다.
<4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이것이 본문 중에 가장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보면...이스라엘이 승리할 때를 보면, 그들이 군사력이 강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할 때였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없는 열심은 실패합니다. 사역도, 사업도,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라고 할 때는 가지 않고, 가지 말라고 할 때는 가는 이 고집은 믿음도 아니고, 순종도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과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에 대하여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 없는 열심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의요 교만임을 명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신1: 43절입니다.
<43)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가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지 않으며...즉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면서도 거리낌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신앙의 핵심은 말씀에 대한 복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전혀 신앙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죄를 지면서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양심에 화인 맞았다고 말씀합니다.
딤전4:2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 신1: 44절입니다.
<44)그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에게 마주 나와 벌 떼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이른지라>
"아모리 사람이 벌떼 같이"
교만하게 올라갔던 백성은 벌떼에게 쫓기듯 패배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싸우는 인생은 벌떼에게 쫓기는 것과 같습니다.
벌떼에게 쫓겨 보셨습니까?
▣ 신1: 45절입니다.
<45)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너희가 돌아와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가지 말라고,,,싸우지 말라고...이미 하나님은 광야로 돌리기로 결정하신 사항인데... 올라가라고 할 때는 올라가지 않다가 가지 말라고 할 때는 또 고집 피고 가는 그들...하나님이 이미 그들을 떠나 함께 하시지 않으니 올라가지 말라...싸우지 말라했는데..고집피고...거리낌 없이 명령에 거역하고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갔던 그들... 하나님 없이 가는 그 인생길이 아무것도 남는 것도 없고...아무 것도 할수 없고.... 패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여전히 그들은 자기들이 맘만 먹으면 하나님 없이도 될 것처럼...거리낌 없이 올라갔던 그들이 결과는 벌떼에 쫓기듯 참패하여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듣지 않으시고 귀도 기울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귓둥으로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도 듣지 않으십니다.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벼이 여겨 거리낌 없이 불순종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면 들으시고, 내가 울 때 귀 기울이실분으로 여기고 있다면 큰 오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언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즉시 순종하십시오.
늦은 순종은 많은 경우 순종이 아니라 또 다른 불순종이 될 수 있습니다.
▣ 신1:46절입니다.
<46)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머물렀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머물던 날 수대로니라>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머물렀나니"
가데스는 약속의 땅 입구였습니다.
불과 한 걸음 앞에 가나안이 있었지만 불신앙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라엘 역사의 갈림길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들어가면 축복의 땅, 불신앙으로 머물면 광야가 되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는 가데스 바네아가 있습니다.
불과 한 걸음 앞에 가나안이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 있습니다. 한 걸음 앞에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이 없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믿음이 부족함으로 영적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영적 가데스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순종은 정체를 낳습니다.
신앙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멈춰 서는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순종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즉시 순종하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즉시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오늘 순종하면 가나안이 열립니다.
내일로 미루면 광야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눈물이 열납되고,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바가 되게 하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