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2.(월). 주의 말씀을 그리며-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바스훌
렘 20:1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렘 20: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신 이용하려합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종으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이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1-2절) 바스훌 제사장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다락방에 가두었습니다. 죄목은 예레미야가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암울하게 예언하여 이스라엘을 큰 혼란으로 빠트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적대시한 것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거짓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스훌은 제사장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기준에 맞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이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였던 바스훌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때리고 다락방에 가두는 것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때린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면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였다는 이유로 그렇게 때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제사장인 바스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레미야를 때렸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제 주일은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였습니다.
오늘부터는 낮즤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밤의 길이가 점점 길어집니다.
이번에도 지방선거의 후유증이 길어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네모반듯한 투표용지는 날인이 되어있고 중국인들에게 합법적으로 투표권을 준 사실들은 밝히지 못하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스훌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와 건강을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리시고 세상의 얼굴을 바라보는 바스홀처럼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고 신앙생활하는 청지기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계십니다.
[렘 31:3] - 사랑으로 나를 돌보심(하나님의 사랑)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