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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정산필 베드로(5.29)

작성자김윤태|작성시간19.12.20|조회수7 목록 댓글 0

정산필 베드로(5.29)

 

성인명 정산필 베드로 (鄭山弼 Peter)

 

축일 529

 

성인구분 복자

 

신분 회장,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39-1749)-1799

 

같은이름 베드루스, 정 베드로, 정베드로,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충청도 덕산의 양인 집안에서 태어난 정산필(鄭山弼) 베드로(Petrus), 본래 성격이 괄괄하고 힘이 예사롭지 않아 모두가 무서워하였다. 그러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로는 아주 겸손하고 온순해졌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하였다.

 

1794년 말 중국인 주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정 베드로는 주 신부를 찾아가 직접 그에게 세례를 받는 행복을 누렸다. 또 이후에는 내포 지역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자신이 맡은 직분을 다하였다. 부지런히 기도와 독서를 하였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격려하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정 베드로에게는 박 라우렌시오, 원 야고보, 방 프란치스코 등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오가면서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1797년에 일어난 정사박해 때에 자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체포되어 모두 순교하였다.

 

정 베드로가 체포된 때는 1798년이나 1799년이었다. 그는 덕산 관아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용감하게 천주의 가르침을 증언하였다. 또 옥에서는 함께 갇힌 동료들을 격려하였으며,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면서도 전혀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사형 집행일이 되자, 정 베드로는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음식을 받게 되었다. 이때 그는 동료들에게 같이 먹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주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신 음식이니, 마지막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먹읍시다. 이제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정 베드로는 형장으로 나가 장사형(또는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799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에서 60세 사이였다.

 

정산필 베드로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8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해 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http://maria.catholic.or.kr/-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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