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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지나온 봉우리의 굽이마다 짙은 구름이 끼어있다. 하지만 지금 미시간주 애나보의 하늘은 쾌청하다.
어떻게 해서 나와 우리 가족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자욱한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발길을 따라 한 걸음씩 옮기다보니 이해할 수 없는 은혜의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결혼 15년 만에 이민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방사선과 전문의로 종합병원 진료부장까지 지내고 있는 남편의 등을 밀어 이민 길에 오를 때 우리 앞에는 아무 것도 약속된 것이 없었다. 먼저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시누이의 초청이 허가가 났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 가족은 강한 힘에 떠밀리 듯 급히 이민 길에 올랐다.
이미 40대 중반의 나이에 미국 의사 면허조차 없는 남편 앞에는 오르지 못할 태산이 가로막혀 있었으며 허약하기 그지없어서 늘 몸이 아팠던 내 앞에도 황량한 광야가 펼쳐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두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과묵한 남편은 점점 말 수가 줄어들었고, 나는 집을 정하지 못해 짐도 풀지 못한 채 계절에 맞지 않는 옷과 신발을 신고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공황상태에 이를 때마다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을 부르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섬세하셨다. 어려운 고비마다 기도하게 하셨고, 그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며, 아름다운 교회와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를 보내주셨다. 특히 아이들은 기대보다 훨씬 빨리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고, 기도로 부모인 우리 부부를 도왔다.
큰 딸인 정민이가 기도 끝에 교수인 친구 아버지의 추천을 받아 아빠를 주립대학의 의과대학 교수가 되게 한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꿈같은 일이다. 남편이 천신만고 끝에 미국 의사 시험에 합격을 하고 의과대학의 교수가 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나이도 많고 전공도 다른 내가 불과 몇 년 만에 크리스천 몬테소리 학교의 유치부 교사가 되어 담임을 맡고 아이들에게 예배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처럼 오묘하고 비밀스럽게 진행이 되고,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날선 도구로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다. 여호와 닛시! 언제나 승리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

- 미국 미시간 주 애나보에서 박초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