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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대청댐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만개한 벗꽃들은 우리머리 위에서 마구 마구 흩날리며 꽃비를 뿌리고 있었다.
" 와아! " 우리는 모두 합창을 하듯 30분 가깝게 탄성을 지르며,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벗꽃나무를 뒤로하고는 드디어 고향집에 도착하였다. 이제 부모님은 아니 계시지만 동생들이 번갈아 가며, 가꾸는 고향은 언제나 처럼 질서정연 하였다. 이다음 우리가 없어도 항상 거기 그대로인듯 생각하라시던. 두분의 말씀대로 나즈막한 울타리를 밀고 들어서며, " 엄마 우리 왔어요. 아버지 저 왔어요. " 하며 건넨 인사에 제일 먼저 답례를 하는 건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군데 군데 피어난 보랏빛 오랑캐 꽃이었고, 정원 가장 앞 쪽엔 수선화가 진한 노랑의 입을 벌리고 고개를 반 쯤 숙인 채 우릴 반겨 주었다.
" 아- 엄마! " 누군가가 나즉히 말했다. 이제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는 주먹만한 겹동백들은 가지가 휘어진 채로 땅바닥에 무겁게 닿아 있었다. 내가 얼른 몇 개의 꽃을 따내니 휜 가지들이 잠시 휘청이더니 순식 간에 위로 올라서는 바람에 우린 우하하 다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양이 뭐가 그리도 우습겠냐만,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이 집에서의 기억들이 그 시절로 우리를 도로 데리고 간듯 한 느낌. 그 느낌이 아마도 유년시절처럼 그렇게 우릴 웃게 한 것이리라.
아버지가 퍽이나 좋아하셨던 해당화도 활짝 피어 있었고, 배며, 사과꽃도 우릴 보아 달라는 듯이 서로 뒤질세라 얼굴을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냉이, 꽃다지, 여름이면 주황색 나리꽃으로 피어날 원추리는 키큰 은행나무 아래로 연록색의 향연을 이루고 있었으며, 빨간지붕 뒤 꼍엔 자두꽃이 구름 같이 피어나, 푸르른 대나무숲과 더불어 넓은 울타리로 그늘을 드리워 주고 있었다.
우린 머위와 참나물 미나리등을 캐어 씻어놓고 마늘, 고추 깻닢등을 준비해 고기를 구웠다. 매운 연기 풍기며, 고기를 굽고 눈물도 짜내면서 된장, 고추장 얹어 서로 먹여 주기도 하였다. 큰 올케가 솜씨를 발휘하여 식탁 여기 저기에 놓아둔 꼬들꼬들 잘 눌은 누릉지, 그리고 끓인 북어와 콩나물국은 단연 최고의 메뉴였다.
우린 생전의 부모님 소원대로 거기 두 분이 마치 우리와 함께 계신듯 그렇게 웃고 떠들었다.누구 하나 빠짐없이 참석하라던 연락책 친정 동생 덕분에 형용할 길 없는 정다운 행복이 우리 모두를 따사로운 봄날처럼 감싸 주었다.
" 사랑하는 가족여러분! " 모닥불을 가운데로 하고 모두 둥그렇게 앉았을 때 그날의 주인공이자 우리 형제들을 고향의 집으로 소집시킨 당사자인 둘째 올케가 나즈막한 목소리가 이렇게 서두를 꺼내었다.35년 간의 긴 세월을 교직에 몸 담은 너무나도 성실한 교사였던 올게는 학교에서도 여러가지 퇴직행사를 준비하였지만 정중히 사양하였고, 도리어 동료들께 자신이 저녁을 대접하여 모두를 감격케 한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이어 주인공 올케는 이렇게 인사를 시작하였다. " 먼저, 큰형님 내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맞벌이를 하느라 육아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저희를 위해 우리 아이 둘을 잘 인도해 주셔서 모두 자신의 길을 바르게 찾아 성실히 살고 있습니다. 형님이 저희를 위해 해주신 것은 그외에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제가 가장 감사했던 것 중 하나는 긴세월 동안 단 한번의 언잖은 내색도 없이 때마다 맛있는 김치를 담그어 주신 것이랍니다. 아무리 형제일지라도 그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그 감사한 마음을 어찌 다 말로 표현 할 수 있겠는지요.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시작된 올케의 인삿말은 가족 한사람 한사람 모두의 이름을 호명하며 이어지고 있었다.
" 35년이란 긴 세월을 단 한번의 작은 사고도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사랑하는 여기 모인 가족들이 이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셨기에 가능했음을 고백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
그리고는 자기들 부부가 꼭 같은 마음으로 정한 일 이라면서 봉투 하나 씩을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올케를 위해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던 나로서는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선물이었지만 올케의 순수한 감사의 마음을 알므로 거절 할 수도 없었다.
그 날, 서울로 올라 오는 길에 우리 모두는 오늘의 주인공인이었던 올케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들도 모두 마음을 모아 작지만 알뜰한 답례를 하기로 약속도 하였다. 마침 걸려온 올케의 전화에 막내동생은 " 형수님 사랑합니다! " 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고 우린 모두 찬사의 박수를 아낌없이 날려 보냈다.
집에 돌아와 열어 본 봉투에는 한번도 쓴 적 없는 새 만원권이 cross 로 묶인채 들어 있었다. 큰 액수보다 더 큰 그녀의 마음이 부끄러운 내 마음에 다시 한번 전해지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