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도 카스트 제도가 있냐고 묻는 이들이 꽤 많은데, 카스트 제도는 네팔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와 매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제도로, 80% 이상의 국민이 힌두교를 믿는 네팔에도 카스트 제도가 있다.
카스트라는 말 자체는 인도나 네팔의 말이 아니라 ‘pure, pure lineage’를 뜻하는 포르투칼어, ‘Casta’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카스트 제도에 따르면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 이렇게 4개의 카스트로 이루어져 있고, 이 4개의 카스트에 들 수 없는 ‘불가촉천민 계급’이 있다. 이 불가촉 천민은 인도나 네팔에서는 ‘달릿(Dalit)’이라고 부르는데, 동물보다도 낮다고 여기는 계급으로 각종 쓰레기나 더럽다고 여겨지는 일, 죽은 동물의 사체나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다루는 일들을 한다.
그런데 실제 힌두 카스트 제도를 보면 훨씬 복잡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는 힌두교의 ‘Varṇa (वर्णः)’의 구분과 관련이 되고, 이와는 또다른 ‘Jati’라고 부르는 것들이 카스트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네팔에서는 ‘카스트’라는 말보다도 ‘잣(Jat)’이라고 말을 ‘계급’의 의미로 더 많이 썼는데 이게 아마도 ‘Jati’와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네팔에서 카스트를 물으면 알고 있는 카스트가 아닌 바훈, 체트리, 따망, 타루, 네와르 등 다른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재차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 이 4개의 카스트 중 뭐냐고 물어도 큰 차이는 없다. 왜냐면 네팔의 카스트에서는 브라만을 바훈이라고 부르고, 크샤트리야는 체트리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착민들은 역사적으로 카스트가 없었기 때문에 이 힌두 카스트로 딱 나누어 얘기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네와르 족의 경우에는 브라만부터 달릿에 이르기까지 모든 카스트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네팔에서는 민족과 카스트가 함께 쓰이는데, 카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으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데 네팔이나 인도에서는 성만 들어도 그 카스트를 바로 알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얼굴만으로도 대략의 카스트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2000년 이상을 계층간의 이동없이 지낸온 탓에 유전자에서도 비슷한 형질들이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네팔은 18세기에 이르러 Khas (즉, 힌두교를 믿는 인도-아리안계 혈통의 사람들로 주로 바훈, 체트리, 수드라, 달릿 계급)의 체트리 계급인 프리티비 나라얀 샤(Prithivi Narayan Shah) 왕에 의해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이루면서 힌두교가 매우 번성하게 된다. 그러다 라나 시기를 연 Jung Bahadur Rana 수상이 1854년에 Muluki Ain 법을 만드는데, 이 법은 종교나 민족에 관계없이 네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에 따라 분류를 하는 법이다. 이 법에서는 토착민과 타종교인들을 각각의 민족 또는 직업에 따라 바이샤, 수드라, 달릿의 계급으로 나눠 넣는데, 대부분의 토착민들은 중인계급인 바이샤로 분류를 하게 되고, 소수종교인 이슬람과 외국인들은 천민계급인 수드라에 넣는다.
이 법에 따르자면, 나같은 외국인은 천민인데 실제로 네팔에서 외국인을 천민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 법이 만들어질 당시 네팔에 알려진 외국인이라고는 영국인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나 그나마도 그 숫자가 매주 적어 카스트에서도 의미가 거의 없었을 것이고, 또 지금의 네팔은 돈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고 이들에게 외국인은 자신들의 돈줄을 쥐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법이 단순히 모든 사람을 카스트로 분류만 해 놓은 것이 아니라 이들의 생활 양식을 상세히 규정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가혹한 처벌이 따르도록 했다. 특히 부정(impurity)한 것과 불가촉(untachability) 을 강력하게 통제함으로써 카스트에 따른 차별을 명문화를 해 놓았는데, 이 법은 100년 이상이나 지속되다 20세기 중반, 1963년에 와서야 카스트에 따른 차별, untachability를 법률적으로 철폐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최근인 2011년에는 카스트에 따른 차별은 범죄라고 규정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법을 만든다고 해서 혹은 없앤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특히나 산악지역이 많은 네팔에서 2천년 이상을 카스트와 함께 살아온 네팔에서는 여전히 카스트가 매우 중요하고 또 카스트에 따른 차별도 잘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인인 내가 이름을 말하면 카스트가 뭐냐고 묻는 네팔인들도 여럿 있었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카스트가 이들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카스트는 사람들의 일생을 통해 큰 힘을 발휘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일상과 생활양식을 규정하고, 이에 따라 부나 교육의 기회도 다르며 직업에 있어서도 그 차별이 확실하다. 바훈과 체트리 계급에 대부분의 부가 몰려있으며, 교육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수드라나 달릿의 경우에는 교육의 기회도 훨씬 적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없게 된다.
네팔에서 지내면서 달릿에 대한 얘기를 수없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들과 교류를 할 일이 거의 없었고, 그들의 삶을 실제로 볼 기회도 없었다. 다만 한 번쯤 우연히 마주쳤던 낮은 계급(직업으로 봤을 때 수드라 쯤에 해당되나 보다)의 사람은 가구를 배달하러 온 사람이었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던 집주인 (성이 Shrestha로 네와르 족의 중상 계급 정도에 해당한다)이 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너무나 깜짝 놀랐다.
2011년 실시한 네팔인구조사에 따르면 네팔 인구의 약 20%가 달릿이라고 한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40대 초반(네팔의 평균 수명은 60대 후반이다)이고, 문해율 역시 10%대 (네팔 전체는 50%대)이다. 이 중에서도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Facts about Dalits in Nepal (credit: RAOnline Nep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