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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니취(泥醉)

작성자鄭士勳(晉州鄭氏大宗會*弘報委員長|작성시간26.06.18|조회수15 목록 댓글 0

 

 



* 니취(泥醉) * 술에 취해 진흙처럼 흐느적거림으로, 몹시 술에 취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泥 : 진흙. [니] 醉 : 취할. [취] 니취(泥醉)라는 것은 일설에 술 벌레라고 한다. 이물지(異物志)에 의하면, 남해(南海)에 사는 니(泥)라는 벌레는 뼈가 없어 물속에서는 활발히 움직이지만, 물이 없어지면 진흙과 같이 된다는 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나, 역시 술에 몹시 취하여 흐느적거리는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이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것을 술벌레가 몸에 들어가 작용한 것으로 나타낸다. 장경성(長庚星)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아명을 태백(太白)이라 불렀다. 물론 그는 훗날에도 그 이름을 계속 써 왔다. 이백(李白)이 장안에 있을 때, 이틀 동안이나 술에 취하여 자고 있었는데, 심향정(尋香亭)에서 모란을 구경하고 있던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에게 불려나와 술과 음악을 갖춘 시를 짓게 되었다. 이백(李白)은 불려나갈 때 니취(泥醉)해 있었기 때문에, 환관(宦官)인 고역사(高力士)의 눈앞에 다리를 내밀고, 신발을 벗기게 하는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행동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백(李白)의 술은 위(魏), 진(晉)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이나, 도연명(陶淵明)의 주도(酒道)와 통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노장사상(老莊思想)의 허무적이며 낭만적인 인생관, 우주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달관한 이백(李白)을 주선(酒仙) 또는 시선(詩仙)이라 부르고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 용모가 수려했고 문학과 역사에 심취했다. 우연히 이백(李白)의 문재(文才)를 알게 된 당(唐) 현종(玄宗)은 그에게만은 궁안 법도(法道)를 따르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며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했다. 그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석 잔을 마시면 크게 깨우치고, 다섯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하네. 술 세계 제호의 맛은, 취해 보지 않은 자 모르리라." 만년(晩年)에 이르러 이백(李白)은 관직이 번거러워 유람을 하였는데, 동정호(洞庭湖)의 악양루(岳陽樓)에서 놀고, 다시 배를 채석강(采石江) 위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런데 어디선가 유랑한 풍악 소리가 들려 왔다. 물론 이 소리는 다른 이에게는 전연 들리지 않고 이백(李白)에게만 들여 왔다. 그때 강 위에는 큰 물고기가 뛰놀며 큰 고래가 수염을 휘날리며 솟구쳤다. 두 선동(仙童)이 사신의 기를 가지고 이백(李白)에게 다가왔다. “상제(上帝)께서 장경성(長庚星; 李白)이 귀환하시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 뱃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이 쓰러져 잠이 든 때에 이백(李白)은 풍악에 인도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물론 전설이다.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나오는 시(詩)이다. 중국의 두보(杜甫)와 함께 2대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이백(李白)은, 40대가 되어서야 장안(長安)의 궁정시인(宮廷詩人)이 되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대부분의 시기는 호북성(湖北省)을 중심으로 유람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 무렵에 양양(襄陽) 부근의 명소 고적을 읊은 시(詩) 양양가(襄陽歌)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落日欲沒峴山西(낙일욕몰현산서) 倒著接羅花下迷(도저접라화하미) 지는 해 현산 서쪽으로 넘어가려는데, 거꾸로 흰 모자 쓰고 꽃 아래 방황하네. 襄陽小兒齊拍手(양양소아제박수) 攔街爭唱白銅鞮(난가쟁창백동제) 양양의 어린이들 모두 함께 손뼉을 치고, 거리를 막고 다투어 백동제 노래하네 傍人借問笑何事(방인차문소하사) 笑殺山公醉如泥(소살산공취여이) 옆 사람에게 묻노니 무슨 일로 웃는가, 산공이 술에 취해 진흙 같아 웃는다네...🖌☕ -◐- [모셔온-글/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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