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0장: 70인 전도자들을 보내심
1-16절, 70인 전도자들을 보내심
[1-2절] 이 후에 주께서 달리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 . . .
이 후에 주께서는 12사도들 외에 또 70인51)을 세우셔서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 각 처소로 둘씩 앞서 보내셨다. 전도자들을 둘씩 보내신 것은 그들이 확실한 증언으로 증거하고, 또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혹은 권면의 말로 붙들어주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주께서는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그는 전도를 추수에 비유하셨다. 씨는 이미 뿌려졌다. 유대인들에게는 선지자들에 의해 뿌려졌다. 씨가 심겨지고 자라 추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추수할 것, 즉 구원얻을 영혼들이 많다. 그러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그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 즉 전도자들을 많이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추수하는 주인이시다. 그는 천국 백성의 씨를 뿌리게 하셨고 그것을 자라게 하셨고 또 그것을 추수하게 하신다. 오늘날은 세상의 종말이 더 가까우므로, 전도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주었던 서양 선교사들처럼, 우리도 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3절]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는 3절 이하에서 전도자들의 위험과 고난을 암시하시면서 그들의 임무에 대해 말씀하신다.
첫째로, 전도자들은 가야 한다. 주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의 세계를 떠나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처럼, 전도자들은 복음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마 28:19; 막 16:15).
둘째로, 전도자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전도자들은 어린양이 이리 가운데 보내짐같이 이 거칠고 악한 세상으로 보내진다. 세상에는 이리 같은 악한 자들과 핍박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고난과 죽음을 각오하며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4절]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 . . .
셋째로, 전도자들은 물질적 염려를 버려야 한다. 주께서는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 등은 생활 문제에 대한 염려 즉 물질적 염려를 의미한다. 그런 염려는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시고 보내시는 주님께 다 맡겨야 한다.
넷째로, 전도자들은 오직 자기 임무만 생각해야 한다. 주께서는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다른 일에 관여하지 말고, 오직 자기에게 부여된 전도만 생각하고 그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5-7절]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 . . .
다섯째로, 전도자들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의 평안을 기원해야 한다. 주께서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기원할지라도, 하나님의 평안은 평안을 받을 만한 자들에게만 임한다.
여섯째로, 전도자들은 한 집에 유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자들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동하지 말아야 한다. 전도자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자청한 자들이다. 그들은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는 초월하는 태도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8-12절]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 . . .
일곱째로, 전도자들은 어떤 동네에 가든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야 한다. 주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전도자들이 전해야 할 내용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전파하신 주제이며 성경의 대주제이다. 그것은 죄인들의 현재의 구원의 문제이며 구원받은 자들의 장래의 영광, 곧 부활과 천국에서의 영광스런 영생의 문제이다.
그러나 전도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응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영접할 것이지만, 다른 이들은 거절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그것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주께서는 전도자들이 전한 복음을 거절한 자들에 대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 악인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때, 복음을 거절한 자들은 소돔 사람들보다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13-15절]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 . .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은 기적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심판의 날에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기적 체험과 믿음은 별개의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또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 가버나움 사람들도 천국에 갈 것같이 생각했으나,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회개치 않는 자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16절]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 . . .
예수께서는 또,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자들의 말을 듣는 자는 곧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요, 그들을 저버리는 자는 곧 주님을 저버리는 자이며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구원과 심판의 갈림길이 있다.
1절로 16절까지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전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 우리는 하나님께 세계복음화의 사명의 완수를 위해 일꾼들을 많이 일으켜 주시기를 구하자. 둘째로, 전도자들은 세상 염려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나라만 전파해야 한다. 그들은 어디에든지 가야 하며 자신의 안일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전도에는 항상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음을 알고 낙심치 말자. 영접하는 자들이 있으나, 영접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도 있다. 전도는 영생과 멸망,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엄숙한 사역이다.
17-20절, 70인 전도인들의 보고
[17-18절] 70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 . . .
70인이52) 기뻐 돌아와 말하였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영접했던 것 같고 심지어 귀신들도 그들에게 복종했다. 예수께서 말하셨다.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사탄은 그때까지 하늘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의로운 성도 욥을 비난했었다(욥 1-2장). 그는 선지자 미가야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었었다(왕상 22장). 하늘에서 활동하던 사탄과 악령들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떨어졌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사탄과 그 사자들이 하늘에서 내어쫓겼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사탄과 악령들을 파하고 지옥갈 죄인들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그것은 전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죄인들은 전도를 통해 회개하고 주 예수께로 돌아와 구원받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다가 천국에 들어간다.
[19절]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주었으니’라는 말은 전통본문에는 ‘주노니’라고 현재시제로 되어 있다.53) 그것은 주께서 주신 권세가 현재 효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뱀들과 전갈들을 밟으며 원수들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는 사탄과 악령들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5에서 장차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며 이제 사탄과 악령들을 제어할 능력을 그의 제자들에게도 주신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는 말씀은 그들의 구원과 영생의 보장을 의미한다고 본다.
[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예수 믿는 자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이 일은 귀신들을 굴복시키는 것보다 더 기쁘고 복된 일이다.
17절부터 20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진리를 깨닫는다. 첫째로, 우리는 전도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해낸다. 악령들의 권세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는 그보다 더 크시다. 사람들은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 살다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나, 전도를 통해 구원받고 천국 백성이 된다. 전도는 세상에서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귀하고 복된 일이다.
둘째로,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성도를 해할 자는 아무도 없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영생을 얻었다. 이것이 구원이다.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성도들에게서 이 영원한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 주께서는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10:28).
셋째로, 성도의 기쁨의 이유는 그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된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그들의 이름이 천국에 기록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음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은 우리의 기쁨의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다(빌 4:4; 살전 5:16).
21-24절, 구원 지식의 신비와 복
[21절]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 . . .
이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구원받고 나아가 전도하며 영혼들을 구원한 사실을 성령으로 기뻐하셨다. 구원은 우리 모두의 기쁨의 이유이다. 주께서는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자이시며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인간의 구원은 그의 뜻에 달려 있다. 물론, 인간이 회개하고 믿어야 하지만, 그 근원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지식을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 세상에 지혜로운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지식을 더 잘 또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자들이 하나님을 더 잘 믿고 구원을 받는다.
그 당시 유대의 나이 든 정치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어린아이들은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며 ‘호산나’ 찬송을 불렀다. 오늘날도 유치부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 세상 공부나 노래나 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구원의 지식을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시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얻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세상에 지혜 있는 자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지혜 있는 자도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그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22절]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주께서는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를 증거하셨다. 이것은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하신 말씀이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는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주께서는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모든 권한을 아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구원자로 보냄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에 달렸다. 그가 소원하여 그 심령에 깨달음을 주시는 자는 다 깨닫고 회개하고 믿어 구원을 받을 것이다. 구원의 방법만 제시하고 구원의 결정권을 사람에게 맡겨두신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는 죄인들을 실제로 구원하시는 구주이시다.
[23-24절]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 . . .
예수께서는 또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은밀히] 말씀하셨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제자들이 보고 듣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주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들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닫고 그를 보고 그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복이 있다. 구약시대의 많은 선지자들과 경건한 왕들은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고대하던 그가 오신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 역사의 가장 절정적 사건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이며 영광의 천국에 들어감이다. 그것은 참으로 복 중의 복, 곧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였듯이, 말씀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다. 그를 알지 못하고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21절로 24절까지의 말씀은 구원 지식의 신비와 복을 증거하고 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지식을 세상에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셨다. 어린아이는 연령적으로 어린아이들도 되겠지만, 영적으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아무도 자랑치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복음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둘째로, 구원의 참 지식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에게 주어진다. 예수님은 구원의 방법만 제시하고 구원의 결정권은 사람에게 맡겨두시는 자가 아니고, 실제로 죄인을 죄에서 구원해내시는 구주이시다. 그는 죄인의 어두운 마음에 깨달음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그를 믿게 하신다.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구주이시다.
셋째로, 구원의 복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이다. 구원은 세상의 불행의 근본적 원인인 죄 문제의 해결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씻음받음과 그 결과로 얻는 부활과 영생을 포함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복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복이다.
25-28절, 영생을 얻는 길
[25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 . . .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사람 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마음이다(전 3:11). 사람은 이 세상의 삶이 허무하다는 사실을 깊이 통감할수록 더욱 영생을 사모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이것은 실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이다.
[26-2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 . . .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 율법사는 율법의 내용을 두 가지로 잘 요약하였다. 그 두 가지 내용은 신명기 6:5과 레위기 19:18에 나와 있고, 과연 그 두 가지는 모든 계명과 율법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십계명은 결국 그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 혹은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는 것이다. 제2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헛되이, 함부로] 일컫지 말라는 것이다.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이다. 십계명의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8계명은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10계명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것이다.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다. 결국 그 두 가지는 십계명의 요약이다.
[2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 .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그는 율법을 행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본심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영생을 얻지 못함을 밝히 가르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시며 거기에는 사상적, 교훈적 일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이 율법을 다 행하면 그것이 그에게 의(義)와 생명이 된다는 것은 성경의 한 기본 진리이다. 모세는 말하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하였다(신 5:32-33).
그러나 문제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데 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고 오직 자신이 죄악됨을 깨닫는다. 로마서 3: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인간은 본성적으로 심히 부패된 존재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렘 17:9).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없듯이, 악에 익숙한 인생은 선을 행할 수 없다(렘 13:23).
그러므로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말씀은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자신의 죄악됨을 깨닫게 하시는 뜻이 있음이 분명하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자 할 때 자신의 죄악됨과 무능력함을 더욱 깨닫게 된다. 우리는 율법으로 죄와 하나님의 진노를 깨닫는다(롬 3:20; 4:15).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율법 안에 성막 제도와 제사 제도를 주셨다. 그 제도는 죄인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속죄 사역으로 죄씻음받을 것을 암시하였다. 짐승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하고 예표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도는 제사에서 예표된 메시아를 바라고 의지하며 구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와 영생을 얻는다. 그러므로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말씀은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제사에서 암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시는 속뜻이 있다고 본다.
물론 이렇게 구원을 얻는 자들은 도덕적 규범으로서 율법을 행해야 한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었고 의는 생명이다. 영생을 얻을 자는 이제 죄 가운데 살지 말고 의 가운데 살아야 한다. 율법을 저버리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지만, 영생에 이를 자는 율법을 즐거이 지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확실히 믿자. 우리는 속죄 신앙에 굳게 서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救贖)함이 되셨다. 우리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여기에 영생의 길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의 계명들을 힘써 지키자.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자.
29-37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29-32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 . . .
예수님께 영생의 방법을 질문했던 그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또 질문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는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던 마을로서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나 되지만 여리고는 해면보다 390미터나 낮은 지역이라고 한다.54)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험하고 종종 강도들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거의 죽은 상태로 버리고 갔다.
그때 우연히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강도 만나 죽게 된 자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마 자기도 피해를 당할까봐 두려워서 혹은 자기 일이 바쁘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그를 피하여 지나갔다. 한 레위인도 우연히 그곳에 이르러 그 강도 만난 자를 보았다. 그러나 그도 그를 피하여 지나갔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자들이었지만 그 죽게 된 자를 돌보고 살려주려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없었다.
[33-35절]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 . . .
어떤 사마리아인이 여행하는 중에 거기 이르렀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이 반쯤 이방인으로 여겨서 상종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유대인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다고 해서 그 강도 만난 유대인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그를 불쌍히 여겼다. 사랑은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는 그에게 가까이 가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를 꺼내어 그의 상처에 부었다. 그것은 그 상처를 소독하고 부드럽게 하는 응급조치의 방법이었다. 그는 그의 상처를 싸매고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또 그는 이튿날 노동자의 이틀 품삯이나 되는 데나리온 둘을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그를 돌보아 주기를 요청하였고 비용이 더 들면 그가 돌아올 때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시간과 수고와 물질을 아끼지 않았다.
[36-37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 . . .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 그 율법사에게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질문하셨다. 그의 질문은 이상하게 보인다. 그 율법사는 그에게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질문했었다. 우리 생각에는, 주께서 “네 이웃은 강도 만난 자이니라”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누구인가?”라고 물으신 것이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그 사마리아인이라고 율법사는 대답하였고 주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단순히 선행을 교훈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주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선행을 교훈하셨다. 그러나 주의 말씀에 그 강도 만난 자는 바로 우리 자신 곧 온 인류이며, 그 사마리아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 혹은 귀신들린 자라고 비난하고 배척하였다(요 8:48). 그러나 그는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된 인류를 위해 세상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는 참 이웃 사랑을 실천하셨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우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가진 이웃들을 돌보아야 한다.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신 15:7-11). 구제는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요(잠 19:17) 의인의 삶이며(잠 21:26) 복된 삶이다(잠 11:24-25; 28:27). 또 구제는 하늘 창고에 저축하는 일이다(눅 12:33).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생관을 버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된 그 사마리아인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생각된다. 그는 죄로 인해 죽게 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예수님의 구원적 사랑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동기와 모범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사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사도 바울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다(고후 5:15).
또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주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이 되지 말고 참된 사랑을 실천한 사마리아인처럼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하여 죄인들을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해주셨다. 우리는 이웃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돈과 우리의 힘을 즐거이 사용함으로써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38-42절, 마르다와 마리아
[38-39절]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 . . .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셨는데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다. 마르다가 살았던 마을은 베다니이었다(요 11:1). 그 집에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가 살고 있었고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마르다는 자기 집이 있었고 예수님과 아마 그 일행을 자기 집에 영접하였고 음식으로 대접하였다. 요한복음에 보면, 마리아가 300데나리온 가량의 값이 나가는 지극히 값비싼 순전한 나드 향유 한 근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는데, 그것을 보면, 그들이 가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수님을 자기 집에 영접한 것은 마르다의 믿음을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르다는 그를 영접하였다. 사도 바울이 전도할 때에도 믿지 않는 자들은 그를 핍박하였으나 믿는 자들은 그를 영접하였다. 빌립보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주 장사 루디아는 바울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 며칠 간 머물게 하였다(행 16:12-15). 빌립보 옥의 간수도 밤에 바울에게 전도를 받고 그와 그 집 식구들이 다 세례를 받은 후 바울 일행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행 16:33, 34).
마르다에게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가 예수님 앞에서 그가 마지막 날에 부활할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요 11:24), 마르다는 믿음이 있는 자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생 마리아는 언니보다 더 믿음이 깊었던 것 같다. 그는 주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였고, 아마 얼마 후, 값비싼 향유를 그에게 부었다.
[40-42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 . .
마르다는 예수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식사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했다. 세상일이 다 그러하지만, 여자들이 부엌에서 음식맛을 내기 위해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바쁘고 힘든 일이며 마음 쓰이는 일이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식 부엌일도 그런데 옛날에는 얼마나 더 하며 손님들이 집안에 들어와 있는 형편에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불평스럽게 말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의 이런 불평스런 말은 인간의 이성과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실상,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하는 것 같은 외적인 봉사의 일들은 결코 불필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런 외적 봉사의 일을 선한 것으로 장려한다.
그때 주께서는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는 구절은 전통본문에는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다”라고 되어 있다.55) 주께서 크게 여기신 그 한 가지 일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이다. 그것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일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까닭은, 첫째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혼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며(요 3:16; 6:39, 40),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일차적 목적이다(딤후 3:15).
둘째로,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 다른 많은 봉사의 일들은 육의 양식과 같다. 육의 양식은 먹어도 결국 죽는 양식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육의 양식을 먹으나 그 양식을 먹을수록 육체는 점점 늙어가고 죽어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마 4:4).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며 우리의 지식과 인격을 선하고 거룩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 양식을 섭취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은 더욱 새로워지고 활기를 얻는다. 성경은 영의 양식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우리로 온전케 하는 말씀이다(딤후 3:16-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써 점점 더 거룩하여지며 겸손해지며 선한 인격자가 되어 간다.
38절로 42절까지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믿지 않고 영접지 않았고 도리어 배척하고 핍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증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확신하고 그를 환영하고 그의 종들과 성도들도 영접하자.
둘째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대접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거나 불필요한 일이 아니다.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물질로 섬기는 것은 선한 일이며 칭찬들을 일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교훈하였다(롬 12:13).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선한 일들을 많이 힘써야 한다.
셋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은 모든 선한 일들 가운데 가장 귀하고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그 일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과 관계되며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인격의 변화에 관계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기를 힘쓰자. 또 우리는 모든 공적 집회 시간에 빠지지 말고 참석하여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힘쓰자.
(간증: 어느 악귀에 잡힌자를 치유 기도하는데 그 환자의 입으로 성령께서 찬송가 202장 “죄에서 자유케함은” 찬송가 부르면 치유가 된다고 하여 치유를 받았다. 또한 성경책을 얼굴에 대면시킨바 떨면서 그 입으로 ‘내가 진화론 마귀인데 무저갱으로 들어간다면서 빠져나가는 현상을 보여주셨다. 그 진화론 마귀가 고등학교 대학교 등에서 수업할 때 들어와 정신을 혼미케 하여 그 인생에 대한 많은 부작용을 주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막아야 한다. 그렇치 아니하면 청소년 학생들에게 악한 마귀를 넣는 교육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옥을 보내기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마귀를 보내기위해서 만들었다고 하시고 그렇나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은 마귀에 미혹되어 따라간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특별히 전도자 사역를 시작할때 영원한 하나님나라와 무저갱 같은 불속에서 고통하는 지옥이 있음을 알게해주셨어 너무나 감사합니다.(눅16:1-13) 2019.3.7.김목사)
(간증; 부흥강사로 같은 노회 회원으로서 목사님 영성이 대단하여 주변에서 “쪽 집게”목사라는 별명이 있는 부흥강사였다. 주님의 성령께서 꿈에 그 목사에 대한 주님의 경고의 계시를 보여주셨다. 즉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이재규) 중에 사기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를 비유로 보여주셨다. 즉 그 목사님의 사역이 자기복음을 전하고 있으면 사기꾼과 같은 사역을 한다는 주님께서 경고를 보여주셨다.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마귀에 미혹되어 사기꾼 사역하므로 그림 한장을 보여주시면서 회개하고 징계를 받지 말라는 경고 싸인을 보여주셨다. 즉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다.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권면한 사실이 있습니다. (2019.2.21.김 목사)
(간증: 주님의 성령께서 Wcc(세계종교다원화연합회)와 Wea(세계복음연맹)에대한정체를 꿈에 그림한장으로 가르쳐 보여 주셨다. Wcc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는 악한 마귀 사냥개 (시속 100키로 달리는그레이하운드 사냥개)로 비유해 보여 주셨다. WEA는 시장에서 금품을 갈취하는 조폭으로 보여주셨다. 또한 부산에서 Wcc 종교다원화 연합 대회시 주께서 그 정체에 대해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 즉 올림픽 경기장에서 세계 각종교 단체들이 입장하는데 그 앞 선두에 시속 100키로를 달리는 ”사냥개 그레이 하운드개“가 앞장서고 그 뒤을 따라서 각종 단체장들과 한국 교회 (wcc 연합된 교회 단체장)단체장을 따라서 입장하는 귀신들의 올림픽 잔치라것을 주께서 그들의 정체를 가르쳐주셨다. 즉 그 단체들에 속한 교단는 그들로부터 물이든다는 것이다. 즉 그들 단체에 속한 교회(한국 7개 교단 가입.한국교단 통합등)는 마지막에는 그들과 같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요한계시록 18장5절에 악한귀신의 처소에서 주님께서 나오라고 하셨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양들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19,3.9.김목사)
(간증: 주님께서 요한계시록3장18절에 일곱교회 중에 라오디게아교회 담임목사에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하게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고 주님의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종교다원화 (wcc)우상(귀신)단체 단합대회를 부산에서 하는데 Wcc가입한 한국교회와 정부가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귀신들의 잔치한 결과에 징계를 받는것이 ”세월호“사건이다고 그림 한장으로 성령께서 보여 주셨다. 즉 ”고사리 나물(고사리 같은 학생 아이들) 한 아름이 바다에 빠지면서 살려달라는 아우성치는” 것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 죄에 대한 결과(징계)로 나치에게 6백만명이 죽었다. 그리고 다웟의 죄에(우리아 살인사건)대한 결과로 집안에서 칼부림의 사건이 일어났다. 즉 예수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이끌어 가면 둘 다 구덩이 에 빠진다고 가르쳐줍니다. 즉 지도층들이 세속에 빠져 인본주의로 영성이 어두워져 멸망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과공의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해라고 하는데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며 너희 믿음대로 된다고 가르쳐줍니다.(2019.3.19.)
(간증) 대구에 있는 팔공산일대에 사찰과 암자 (500개)들 대하여 봉고 차량에 확성기로 노회 회원들과 같이 수차례 걸쳐서 “예수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날 꿈에 주님께서 칭찬하는 그림을 한장 보여주셨다. 즉 팔공산 일대를 봉고 차량에서 확성기로 하나님의 성경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다. 즉 화물차량에 물(생명수)을 가득 싣고 도로 주변에 목이 말라서 죽어가는 가로수들이 생명수를 먹고 싱싱하게 새싹이 나고 살아나는 것을 보여주셨다. 계속으로 노회 회원들과 함께 하나님을 선포하면서 복음전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전도지와 휴지 전도지를 나누어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꿈에 종이 전도지를 금덩어리로 보여주셨다. 일반 전도지는 구술의 크기 금덩어리로 휴지전도지는 주먹크기의 금덩어리로 상급으로 인정해 주시면 칭찬하는 그림을 보여 주셨다. 즉 고전3장 12-15절에서 두 임금을 섬기면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대형교회를 하면서 자기위하여 자아실현 자기왕국으로 교회사역을 하면 “그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가르쳐줍니다. 2019.3.24. 김 목사)
(간증: 몇 년전에 “이신칭의론“을 주장하는학파(개혁주의자)와 새 관점학파들이 “유보적인 칭의론”을 주장(김세윤)하는 학파들과 떠거운 감자가되어 논쟁이 가열된 적이있었다. 그때 그들의 주장이 헤갈리어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주님이 즉시로 그림한장을 보여주셨다. 즉 간경화로 죽어가는 사람이 먹는 “약초인 인진쓱”을 보여주셨다. 인진쑥은 간에독을 뽑은 특효과가는 약초이다. 즉 이신칭의(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다.요한19:30)는 우리의 죄의독을 뽑는 효과가 있다고 주님께서 그림한장으로 가르쳐주셨다. 유보적인 칭의론자들은 이신칭의를 종교개혁 시대의 산물이거나 기껏해야 바울을 그 창작자로 봅니다. 그러나 칭의의 기원이 루터,바울, 아브라함을 거슬러올가 영원 전의 성부와 어린양 그리스도의 언약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신칭의 구조 안에서만 성령가 있고,믿음을 부정하는 유보적 칭의론자들에게는 성령이 유보된다고 지적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러므로 이신칭의론은 “간 경화”로 죽어가는 사람에서 죽음의 독을 뽑는 특효약임을 가르쳐 주셨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골”는 믿음(주 예수)이란 죽음(정죄의식)의 두려움에 대한 해독제라면서 비약신학을 가르쳐 준다.(롬8:1-2)아멘(2019.4.26., 김 목사)
(간증: 우한 코로나 전염병 대해 주님의 성령께서 증세와 죽음에 대하여 그림한장을 보여주셨다. 즉 모세시대 애굽의 마지막재양이 유월절 어린양피를 인방과 무설주에 발랐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죽음의사자 재양이 넘어가는 유월절 현상을 그림한장으로 보여주셨다. 즉 “사람의 폐가 검정색으로 변하여 호흡이 중지” 되어 죽는 것을 보여 주셨다.그렇나 예수를 믿고 거듭난자 구원을 받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재양이 넘어가는 것을 보여주셨다. 즉 예수이름으로 죽음의 마귀의 세력이 넘어(유월)간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 어떤 성도가 얼굴이 검정색으로 변하여 독감에 걸려 심히 어려움가운데 있는데 안수기도하면서 예수이름으로 명령하였는데 “그 성도 입에서 나는 독감마귀이다 성령의불이 들어와 떠거워 못살겠다고 하면서 무저갱으로 들어간다”하면 빠져 나가는 현상을 보여주셨다. 즉 예수이름으로 명령하면 성령의 역사의 능력으로 독감의 죽음의 사자는 넘어갑니다. 출12:21-28. 성령수도원 김에스겔 목사.2020.1.29.)
(간증:우한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불안하고 있다. 즉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것을 가르쳐준다. 2020,2.2. 주님께서 이 재양에 대하여 꿈에 그림한장 보여주셨다. 즉 한 도시에 홍수가 나서 도시를 삼킬정도의황토물이 다리를 넘쳐 흘러가는데 경찰(파수꾼.두 증인 사역)들이 나타나 경계를 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지금이 이처럼 나타나는 마지막때의 재양의 징조인 것 같다.
그렇나 창조주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사자들이 애굽의 장자를 멸할때에 어린양의 피를 안방과 문설주에 받으면 죽음의재양이 넘어가는(유월)것 비결을 가르쳐주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요한계시록7장 3절에 예수님께서는 여섯째 인을 떼실때에 온 지구가 온역과 큰 지진이 날때에 “이마에 인 맞은자를 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인이라는 것은 주님의백성이라는 것과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한 코로나로 인하여 온 세계가 불안하다, 예수 믿고 거듭난자, 주님의 백성들은 임마누엘로 보호해주신다는 성경적인 진리를 믿어야한다. 즉 하나님의 종말의 시간표가 어디쯤 왔는가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부단장를 해야합니다.(마태25:1-12.성령수도원 김에스겔목사.2020.2.2.새벽)
(한국 대형 교회는 "자기배가 신이 되어 세습과 세속으로 하나님외 독립적인 자기우상화. 자기왕국 건설에 주력"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을 가르쳐주셨다. 대형교회들이 자기 욕심에 만취되어 다웟과 같이 교만하여 인구조사 할 때에 하나님께서 징계로 점염병 으로 고통을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주님께서는 넓은 길은 망하는 길이며 좁은 길이 천국 가는 길이다고 가르쳐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마귀에 미혹되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서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성경은 가르쳐준다. 그렇나 영적 지도자들이 눈먼 소경이 되어 지옥 가는 비 진리(사기)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지옥)에 빠진다고 성경에 가르쳐 주셨다.마태16:24-26.빌3;17-19.마태15:14.요일2장15-17절)